19. 구르칸 산맥으로
꿀꺽…….
지하실 문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마른침을 삼키는 요안나의 어깨를 윌라드가 다독였다.
“걱정하지 마라. 도련님은 괜찮으실 테니까.”
“그렇겠죠? 아니, 그래야죠!”
[한 달 동안 매일 감자 한 알이랑 물 한 컵만 넣어 줘. 반드시 감자 한 알에 물 한 컵이야.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들어오면 안 돼. 알았지?]
이 말만 남기고 요한이 지하실로 들어간 게 벌써 한 달째다.
그동안 당부한 대로 감자 한 알과 물 한 컵만 문 아래로 넣어주며 지켜본 요안나는 그동안 들어가서 요한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지하실 안쪽에서 빛이 쉴 새 없이 번쩍일 때는 어찌나 걱정스럽던지…….
아마 윌라드가 말리지 않았다면 몇 번 정도는 들어갔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도 다 끝났어!’
끼이익.
힘들었던 기다림에 마침표를 찍으며 마침내 요한이 굳게 잠겨 있던 지하실의 문을 열고 나왔다.
“도련님!”
와락!
요한은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날아오듯 힘껏 달려와 안긴 요안나를 부드럽게 안아 주었다.
그런데…….
“도, 도련님 몸이……?”
반가움도 잠시, 요한에게 안겼던 요안나는 그의 몸을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한의 몸은 마치 마른 빨래를 쥐어 짠 것처럼 깡말라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몸을 뒤덮은 덩굴 같은 푸른 흉터들은 또 뭐란 말인가?
“그러길래 제가 뭐랬어요! 힘들면 나오시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왜 이렇게 될 때까지 버티고 계셨던 거예요! 그러다 잘못 되시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요안나는 정말 서럽게 울면서 요한을 걱정하였다.
요한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면서 부드럽게 미소를 머금었다.
“걱정 마. 난 아무렇지 않으니까. 오히려 두 사람 덕분에 원하던 목적에 이를 수 있었어. 고마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신관을 부를까요? 일단 도련님의 몸 상태부터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윌라드까지 나서서 걱정하자 요한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그보다 밥 있어?”
그날 밤.
요한은 그야말로 10인분 어치의 식사를 한 끼에 해치우고는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 자신의 몸을 확인한 요한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확실히 성과가 있네.’
영양이 보충된 육신은 어제와 비교해서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마치 근육의 갑옷을 입은 것 같은 단단한 육신 위에는 푸른빛의 덩굴 같은 흉터가 어제보다 좀 더 옅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 흉터는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사라지겠지.
‘한번 가 본 길이라서 그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예전의 힘을 되찾고 있다.’
심지어 다시 가는 길이 이전보다 훨씬 넓고 튼튼하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가속도가 붙겠지.
‘이대로라면 이전의 힘을 되찾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이상도 노려 볼 수 있겠어.’
과거에는 절대로 불가능 할 것만 같았던 한계 이상의 경지에 손이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몸속에서 기묘한 고양감이 흘러 넘쳤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
“알파 경!”
“준비는?”
요한은 겔러핀을 찾아가 곧바로 용건을 물었다.
그에 겔러핀은 요한과 함께 창고를 찾아가 요한이 요구한 것들을 보여 주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 때문에 들어간 돈이 상당합니다. 당장 두 달 정도 버틸 수 있는 자금이 지금은 한 달분밖에 남지 않았으니까요. 저희도 사활을 걸었습니다. 반드시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아니, 성공해 주십쇼!”
“그 사활에 나는 포함 안 돼 있을 것 같아?”
피식.
“그런가요.”
툭.
요한은 겔러핀과 가볍게 주먹을 부딪친 후 곧장 말을 타고 영지를 벗어나 빠르게 구르칸 협곡으로 향해 달렸다.
콰우우우우우!
멀리서부터 들리기 시작한 웅장한 계곡물 소리는 가까이 다가가자 귀가 먹먹할 정도로 크게 와닿았다.
“수고했다. 집으로 가라.”
찰싹!
히히히힝!
말에서 내린 요한은 말의 엉덩이를 때려 집으로 돌려보낸 후, 협곡의 절벽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격하게 굽이치며 내달리는 계곡물은 벽과 바위에 부딪히면서 하얀 포말을 쉴 새 없이 뿌렸다.
그 모습은 마치 수백, 수천 마리의 하얀 말들이 미친듯이 폭주하는 모양새처럼 보였다.
‘잘못해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목숨은 포기해야겠군.’
반대쪽 절벽까지의 거리는 무려 100m가 넘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협곡을 건너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파지직, 파직!
요한의 몸에서 푸른 전류가 방전하기 시작했다.
이전과 달리 조금만 마나를 끌어 올려도 충만히 차오르는 힘에 요한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팟!
그 순간, 절벽을 박차며 올라간 요한의 신형이 빠른 속도로 반대쪽 절벽을 향해 쏘아져 날아갔다.
뇌전을 두르고 날아가는 그 모습은 멀리뛰기가 아니라 비행에 더 가까웠다.
그 덕분에 요한은 무리 없이 반대편 절벽으로 가볍게 내려설 수 있었다.
‘벌써부터 시선들이 느껴지는구먼.’
절벽에 내려서자마자 숲 안쪽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몬스터들과 맹수들의 시선을 받아 넘기며 요한은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걸어 들어갔을까?
크허어엉!
굶주린 아울베어 한 마리가 수풀 속에 숨어 있다가 요한이 근처를 지나자 순식간에 일어나 그를 덮쳤다.
아울베어가 작정하고 은신하면 베테랑 용병이라도 눈치채기가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놈의 완력과 움직임을 생각하면 설령 정면으로 맞붙는다 하더라도 족히 열댓 명의 숙련된 용병들이 필요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면 얘기는 다르지!’
녀석의 몸에서 흐르는 생체 전기로 이미 기습은 들통난 지 오래였다.
알고 있는 기습을 피하는 것쯤은 요한에게 일도 아니었다.
푹!
허리 어림에서 뽑혀 나온 요한의 검이 두 발로 일어선 녀석의 배를 찔렀다.
만약 아울베어가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면 녀석은 조소했겠지.
자신의 뱃가죽은 인간들 사이에서 어지간한 철판 갑옷보다 훌륭한 가죽 갑옷의 소재로 사용된다.
게다가 설령 찔린다고 해도 두꺼운 지방층과 근육 때문에 칼이 좀 박힌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배에 박힌 검을 빼려고 안간힘을 쓰는 인간을 맛있게 먹어 주면 그뿐이었다.
아울베어는 요한을 머리부터 씹어 먹기 위해 거대한 부리를 크게 벌렸다.
그 순간.
파지지지지지직!
엄청난 전류가 검을 통해 아울베어의 몸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쿵!
결국 금세 눈을 까뒤집고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던 녀석은 요한이 검을 뽑자 힘없이 자리에 쓰러졌다.
가죽 밖에서 전기 충격을 가했다면 그나마 버텼겠지만 몸 안에서 전기가 흐르니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쓰러진 녀석의 눈코입귀에서 하얀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확인한 요한이 떠나자 그 냄새를 맡은 몬스터들이 달려와 녀석의 사체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역시 아울베어야. 효과 한번 확실하군.’
아울베어는 상위 포식자에 속하는 몬스터였다.
녀석이 요한에게 맥없이 쓰러지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대부분의 포식자들이 사냥을 포기하고 도망치거나 조용히 사라졌다.
녀석들은 쉽게 사냥해서 먹을 수 있는 먹이를 원하지 목숨을 걸고 싸울 호적수를 찾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울베어의 영역을 벗어나자 몇 차례 더 몬스터의 습격이 있긴 했지만 어렵지 않게 격파할 수 있었다.
‘이 길이 맞았던가…….’
요한은 최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오크족 부락이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애초에 오르칸 산맥 자체가 험준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알고 있는 길이라도 길을 잃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한 번 길을 잃으면 죽은 목숨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쒜엑!
어디선가 날아온 강력한 화살 한 발이 요한의 머리를 노리고 정확히 날아왔다.
고개를 살짝 틀어서 화살을 피하긴 했지만 화살 깃만 남고 땅속에 박혔을 만큼 화살의 위력과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아무래도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군.’
슉슉슉슉!
첫 발은 견제용이었던 모양이다.
이후에 날아오는 화살들은 처음 그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력해서 요한초자 쉽게 생각 할 수 없었다.
“누가 보면 엘프들이 쏘는 줄 알겠네!”
심지어 화살촉이 쇠가 아닌 짐승과 몬스터의 뼈로 만들어져서 조종도 불가능했다.
그 때문에 전부 눈으로 보고 피하는 건 무리인 것처럼 보였지만……!
파직!
슉!
“침입자가 사라졌다!”
“찾아!”
나무 위에서 사격하던 오크들은 푸른 번개와 함께 요한의 모습이 사라지자 깜짝 놀라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순간.
파직!
“여기 숨어 있었구나, 너희.”
“……!”
어느새 눈앞에 나타난 요한의 모습에 오크들은 눈을 부릅떴다.
하나 녀석들은 강했다.
놀라는 것과 별개로 적이 접근했다는 사실을 인식하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쉬익!
요한을 코앞에 둔 녀석이 허리 어림에 꽂아 넣은 단검을 뽑는 것과 동시에 휘둘러 요한을 공격했다.
예측하지 않았다면 기습을 가하고도 되레 역습을 허용할 수 있을 정도의 순발력이었다.
하지만 요한은 녀석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 내며 머리에 손을 얹었다.
‘지금 뭐 하려는…….’
파지지직!
요한이 비슷한 방법으로 오크 궁수들을 빠르게 전기로 기절시키는 사이, 그의 눈은 어느새 주변을 훑고 있었다.
‘벌써 포위망이 완성된 건가?’
푸스슥.
포위망이 완성되기 무섭게 주변에 숨어 있던 오크들이 움직이며 빠르게 포위망을 좁혔다.
“죽어라!”
사방팔방에서 위협적인 살기로 덮치며 모습을 드러낸 오크들의 숫자는 무려 서른!
구르칸 오크 서른이 포위망을 완성하면 숙련된 기사단도 채 1분을 버티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다름 아닌 요한이었다.
파직!
슉, 쩌엉!
푸른 뇌전과 함께 한 점을 노려서 돌진한 요한의 주먹이 몬스터의 가죽 갑옷으로 무장한 한 오크의 뱃가죽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커헉!”
당한 녀석은 눈을 까뒤집고 배를 움켜쥐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아 먹을 것을 전부 토해 내며 괴로워했다.
가죽 갑옷 때문에 전기가 통하지는 않았지만 전기 공격만이 요한의 전부는 아니었다.
뇌전의 마나를 이용한 초인적인 신체강화 덕분에 요한의 움직임은 바람을 추월했다.
그리고 뇌전의 마나로 무장된 오러 피스트는 바위조차 푸딩처럼 깨부술 수 있는 위력을 자랑했다.
전기는 부가적인 효과일 뿐, 이미 그 자체로 요한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초인이었던 것이다.
“놈이 너무 빠르다! 접근하면 혼자 상대하려 하지 말고 붙잡아서 놈의 움직임을 막아!”
리더의 명령이 떨어지자 오크들은 요한이 접근해서 타격을 날리는 순간, 정신이 날아가는 와중에도 요한을 붙잡기 위해 팔을 허우적거렸다.
그러다 우연으로라도 팔이나 다리를 잡게 되면 기절해도 절대로 놓지 않는 집념에 요한마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됐다! 놈의 움직임이 멈췄다!”
“죽여 버려!”
오크들은 동료들의 희생으로 만든 기회를 확실하게 잡기 위해 전력을 다해서 요한에게 쇄도했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