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20화 (20/150)

20. 구르칸 오크가 너무 강함

‘확실히 강하다. 그리고 끈질겨!’

요한이 식은땀을 흘리며 난처하다는 듯이 미소를 그렸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몇 번은 죽었을 전압에도 녀석들은 끄떡없었기 때문이다.

구르칸 오크들의 녹색 가죽은 기본적으로 질기고 튼튼하다.

녀석들의 가죽은 충격을 흡수하고 날붙이에도 강한 데다 열기, 냉기, 전기, 습기에 대한 내성도 높아서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험준한 구르칸 산맥을 제집 안방처럼 드나들며 키운 무지막지한 체력과 매일같이 위험한 몬스터들과 생사를 걸고 싸우는 게 일상인 녀석들. 이런 놈들이 약하다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지.’

강자존.

그것이 구르칸 오크들의 절대적인 생존 방식인 것이다.

“덮쳐!”

‘할 수 없지.’

파지직!

오크들이 덮치는 순간, 요한은 평범한 방법으론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녀석들의 억센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 판단하고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 순간, 요한은 압축시켰던 뇌전의 마나를 사방으로 폭발시켰다.

쾅!

“뭐, 뭐야?”

“크아악!”

“눈이……!”

강력한 펄스는 전자기 폭풍을 일으키며 강한 빛을 동반한 충격파가 되어 오크들을 날려 버렸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했던지 요한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던 오크들도 쓸려나갈 정도였으며 당연히 덤벼들던 오크들은 폭풍에 휩쓸린 추풍낙엽처럼 사방으로 날아가 버렸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파지직, 파직!

“으그그그그그……!”

요한과 가장 가까이에 붙어 있던 녀석들은 게거품을 물고 몸을 덜덜 떨었다.

펄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녀석들이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달려들던 놈들도 상태가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누, 눈이 안 보여!”

“젠장! 왜 안 움직이는 거야, 빌어먹을 몸뚱이 같으니!”

강력한 빛 때문에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거나, 전자기에 휩쓸려 한시적으로 사지가 마비된 오크 전사들이 크게 당황했다.

체력도 투지도 멀쩡한데,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겠지.

팟!

요한은 깔끔하게 정리된 주변 상황을 둘러보고는 빠르게 안쪽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펄스는 위력이나 효과는 확실하지만 마나 소모가 너무 큰 게 단점이란 말이지.’

이런 걸 펑펑 쓰고 다녔다간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마나가 고갈되어 쓰러질 터였다.

그 뒤로 요한은 최대한 감각을 집중하여 녀석들의 포위망이나 사각만을 골라 가면서 빠르게 전진했다.

남들이라면 구르칸 오크들이 작정하고 숨은 곳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테지만 요한의 눈에는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구르칸 오크들은 강하고 집요했다.

“저쪽이다!”

“쫓아라!”

놈들은 숲의 지리적 이점을 십분 활용하였고, 자신들의 체력과 단결력을 활용하며 요한에게 뒤쳐지는 능력들을 보완했다.

‘벌써 여기까지 막혔나?’

속도로 쫓아갈 수 없으면 미리 길목을 파악해 막아섰다.

개개인의 능력으로 당해 낼 수 없으면 협공으로 이것을 커버했다.

그 덕분에 뜻하지 않게 앞길이 막힌 요한과 오크들의 교전이 몇 차례 더 벌어졌다.

그때마다 요한이 가까스로 빠져나가긴 했지만, 자신이 빠져나간 직후 무섭게 그 자리로 몰려드는 오크들을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이제 그만 좀 쫓아와라! 이 징글징글한 새끼들아!”

파지직! 파직!

요한이 전격의 꼬리를 길게 늘어트리며 산맥을 질주하길 세 시간.

드디어 목적지가 눈앞에 보였다.

‘오랜만이네.’

높은 나무 꼭대기 위에서 거대한 규모의 구르칸 오크 부락을 내려다 본 요한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해서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사실 이제부터가 시작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나무에서 내려간 요한은 믿을 수 없게도 두 손을 살짝 들어 올린 채 부락 입구를 향해서 정면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침입자다!”

“정찰병들이 보고했던 그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포위해! 그리고 섣불리 다가가지 마라! 신기한 능력을 사용하는 놈이다!”

근위병 오크들은 빠르게 요한을 포위하며 글레이브를 겨누었다.

거칠고 날카로운 글레이브의 창날이 요한을 노려보며 번뜩이는 것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에 숨어서 활이나 투창을 겨누는 오크들까지…….

순식간에 개미 한 마리 빠져나갈 수 없는 포위망이 형성되었다.

거기에 오크들의 찐득한 살기까지 집중되자 아무리 담력이 크고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사람일지라도 오금이 저리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복면 속의 요한은 오히려 피식 실소가 터져 나왔다.

‘설마 그때의 악몽 같았던 전쟁이 여기서 그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될 줄이야. 역시 사람은 경험이 재산이란 건가?’

요한은 포위망의 시선을 살피면서 천천히 복면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오크들이 낮게 으르렁거리면서 포위망을 더욱 좁혔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행동으로 섣불리 움직이지 말라는 뜻을 표한 것이다.

그런데!

“걱정 마라. 복면만 벗을 테니까. 자신의 얼굴도 드러내지 않는 겁쟁이와 대화할 생각은 없잖아. 구르칸의 전사들은 말이야. 안 그래?”

“오, 오크어?”

“저 인간, 방금 우리 오크어를 쓰지 않았냐?”

“그러게……. 신기하다.”

오크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퍼져 나갔다.

인간이 오크를 아인종이라 무시하듯, 오크 역시 인간을 나약한 족속들이라 폄훼하며 무시했기에 서로간의 왕래는 좀처럼 없는 편이었다.

따라서 인간의 언어를 배운 오크도, 오크의 언어를 배운 인간도 드물 수밖에 없었다.

특히 구르칸 산맥에 갇혀 독자적인 언어 체계를 개발한 구르칸 오크어는 더더욱.

그런데 요한이 서툴게나마 의사소통이 되는 수준으로 구르칸 오크어를 사용하니 이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강한 인간이 자신들의 언어로 대화를 시도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미심쩍은 이와는 소통을 거부하는 구르칸 오크족의 습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아니면 양쪽 전부일 수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구르칸 오크들의 적의가 조금은 가라앉았다.

그 덕분에 요한은 어렵지 않게 복면을 벗을 수 있었다.

이처럼 요한이 지금처럼 마음 놓고 복면을 벗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방금 전에 자신이 언급했던 구르칸 전사들의 습성도 있지만, 다른 이유는 아인종을 혐오하는 제국의 특성상 놈들에게 그림자를 심어 놨을 가능성은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녀석들에게 아인종은 지배의 대상이 아닌 섬멸의 대상이자 착취의 대상이니까. 이런 놈들이 무서워서 그림자를 숨기는 건 제국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지. 애초에 인간이 숨어들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얼굴을 드러낸 요한은 오크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나는 알파라는 사람이다! 구르칸 산맥의 지배자이자 최강의 전사와 친구가 되기 위해 찾아왔다!”

요한이 명명백백하게 목적을 밝히자 오크들 사이에서 큰 소란이 일었다.

“친구? 인간이 우리 대족장이랑 친구가 되기 위해서 찾아왔다고?”

“헛소리! 사악한 인간의 말을 어찌 믿을까!”

“하지만 저 인간의 강함은 진짜다. 우리 부족의 전사들도 놈을 쫓다 당했다. 인간이라 해도 강자의 말은 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

“강자의 말에 가치가 있는 건 우리 전사들뿐이다! 인간들 중에는 강자일수록 탐욕스럽고 사악한 놈이 많다는 걸 아직도 모르고 있었나!”

“놈에게 당한 전사들은 많지만 죽은 녀석은 한 놈도 없었다. 놈이 그럴 마음만 먹었다면 녀석들은 진즉에 죽은 목숨이었을 거다.”

“그게 인간의 노림수라니까! 참 답답한 놈들일세…….”

오크들끼리도 요한을 쫓아내자는 편과 얘기라도 들어 보자는 편으로 의견이 나뉘어 팽팽하게 맞섰다.

결국 이번 일은 대족장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고 마침내 대족장의 사자가 요한을 찾아왔다.

오크들은 대족장의 사자가 어떤 대답을 꺼낼지 긴장하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대족장께서 너를 보자고 하셨다. 따라와라.”

“대, 대족장께서?”

“말도 안 돼…….”

대족장의 결정을 납득하는 오크들과 그렇지 않은 오크들이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지만 그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었다.

누구도 대족장의 결정에 불만을 품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한은 사자와 함께 전사들의 감시를 받으며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 안에는 호기심 강한 어린 오크들이 눈을 반짝이며 조금이라도 요한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기를 썼다.

엄마들은 그런 자식들을 말리고 요한을 경계하느라 조금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인간을 처음 보는 녀석들은 내가 신기할 수도 있겠지.’

요한은 씨익 웃으며 어린 오크들에게 살짝 손을 흔들어 주다가 전사들의 제지를 받기도 하였다.

그렇게 도착한 대족장의 움막.

한눈에 봐도 규모와 화려함이 범상치 않은 대족장의 움막은 거주지임과 동시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구르칸 오크족의 대족장은 최강의 전사임과 동시에 부족의 대제사장을 겸임했기 때문이었다.

“위대한 오르크의 대전사, 가루칸이시여! 분부하신 대로 인간을 데려왔나이다.”

사자의 외침에 움막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오크를 확인한 요한의 눈동자는 씁쓸함과 그리움, 그리고 난처함으로 가득했다.

‘진짜 똑같네. 하기야 동일인물이니까 당연한 일이려나?’

다른 오크 전사들을 내려다볼 정도로 큰 2m의 거구, 구르칸 산맥의 능선처럼 끝없이 떡 벌어진 어깨, 돌덩이 같은 근육, 전신을 휘감은 문신들과 그보다 많은 흉터들.

그야말로 전투와 싸움을 형상화 한다면 저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싶은 그런 남자였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흰머리보다 검은 머리가 훨씬 더 많다는 것 정도인가?’

회귀 전에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미래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까지 찾아와 나와 친구가 되겠다고 겁 없는 소리를 지껄인 인간이 네놈이냐.”

평범하게 말해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가루칸의 목소리에 요한이 인상을 찌푸리며 귀를 후볐다.

“천둥을 삼킨 것도 아니고, 살살 좀 얘기해. 안 그래도 잘 들리니까.”

“그 건방진 태도를 보아하니 친구가 아니라 원수가 되고 싶어서 찾아온 모양인 듯한데, 원한다면 지금 당장 처죽여 줄 수도 있다.”

“전사들의 수호신이자 전쟁의 신으로 그 이름이 드높은 오르크의 대전사와 싸울 수 있다면 나야 큰 영광이지. 하지만 나도 결코 쉬운 놈은 아니거든. 여기서 판을 벌였다가는 이곳 전체가 쑥대밭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어때? 감당할 수 있겠어?”

요한의 능글맞은 대꾸에 그때까지 험악하게 인상을 굳히고 있던 가루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그는 부하가 가져다준 의자에 착석하며 요한을 평가했다.

“특이한 놈이군. 네 녀석들이 잡신이라고 취급하는 우리의 조상신을 선뜻 존중하는 것도 그렇고, 감히 이 몸 앞에서 깝죽거릴 수 있는 당돌함도 그렇고 말이야. 겁이 없는 건지,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건지.”

“그게 궁금하면 직접 확인해 보면 될 거 아닌가?”

까드득, 까드득!

요한이 주먹을 풀며 빙그레 웃자 가루칸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 좋다! 네 녀석이 이 의식을 통과하면 내 친히 네놈과 어울려 주겠다고 약속하지.”

“의식?”

“걱정 말거라. 우리 구르칸의 사내들은 때가 되면 누구나 전사가 되기 위해서 치르는 시험이니. 다혼!”

“예! 대족장.”

호명받은 오크가 앞으로 나서더니 요한의 앞에 섰다.

‘가루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다른 녀석들보다는 훨씬 강한 놈이네. 근데 이놈도 어딘가 낯이 익단 말이지…….’

다혼이 요한의 앞에 마주서자 가루칸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다혼은 내가 직접 가르친 제자이자 내가 자랑하는 전사다. 다혼! 그 인간에게 전사의 의식을 가르쳐 주거라.”

“주로 쓰는 손이 어디지?”

“오른손잡이인데?”

다혼의 질문에 요한이 답하자 그가 왼손을 펴서 내밀었다.

“그럼 너도 왼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아라. 그리고 남은 손으로 번갈아서 한 번씩 주먹을 날리면 된다. 먼저 쓰러지거나, 항복을 선언하거나, 손을 놓는 쪽이 패배다.”

“심플하고 좋네.”

요한은 피식 웃으면서 왼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자신 없으면 오러를 사용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인간의 나약한 주먹으로는 우리 전사들의 단련된 얼굴을 쳐 봤자 제 손만 다칠 테지.”

“그러고 한 방에 나가떨어지면 개쪽일 텐데.”

“그럴 일 없으니 쓸데없는 걱정 말고 먼저 쳐라. 손님에 대한 예우로 선공은 양보하지.”

“진짜지?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요한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먹을 잡아 당겼다.

꾸드득!

고무 같은 근육이 한계까지 늘어나면서 흘러나오는 소성에 다혼은 눈을 부릅뜨며 뭔가가 잘못 되었음을 감지했다.

‘하지만 오러를 끌어 올릴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고작해 봐야 인간의 맨주먹! 이번 한 번만 견디면……!’

쩌엉!

그 광경을 지켜보던 오크들은 턱을 벌린 채로 할 말을 잃었다.

그 소리는 맨주먹으로 얼굴을 때릴 때 나오는 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쳤냐? 이제 내 차…….”

푸확!

쿵!

결국 쌍코피를 터트리며 다혼은 굳은 통나무처럼 그 자리에 쓰러져 기절하고 말았다.

요한은 기절한 다혼을 내려다보며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게 뭐랬냐. 괜히 쪽팔릴 얘기는 하지 말라니까…….”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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