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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21화 (21/150)

21. 그런데 주인공이 더 강함

“아둔, 이제는 슬슬 전사들의 명예를 회복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

“대족장의 기대에 반드시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꿀꺽…….

연달아 세 명의 상급 전사들이 한 주먹에 쓰러지는 것을 확인한 전사 아둔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마른침을 삼키며 요한의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이 인간 놈은 진짜 괴물이다!’

지금까지 요한이 쓰러트린 가루칸의 제자들은 모두 전사의 의식에서 당시 우승을 했던 녀석들이었다.

그런데 요한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마나를 쓰지 않고 세 명의 제자들을 전부 한 주먹으로 격침시켰다.

그런데 자신이라고 다를까?

“그럼…….”

아둔과 손을 맞잡은 요한이 주먹을 당기자 아둔이 다급하게 그를 제지했다.

요한의 입장에선 앞선 전사들이 선공을 그에게 양보했으니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주먹을 당긴 것이었다.

“잠깐! 지금까지는 전사들이 손님의 정으로 선수를 양보했지만 네 실력이 결코 우리의 아래가 아니란 것은 충분히 입증되었다! 그러니 여기서는 공평하게 코인으로 선공을 정하는 게 어떻겠나?”

“그래? 그러지, 뭐.”

요한이 수락하자 공평하게 제삼자의 동전 던지기로 선공을 결정하였다.

선공의 운을 잡은 사람은 바로 아둔이었다.

‘좋았어!’

속으로 쾌재를 부른 아둔은 눈을 빛내며 요한에게 이죽거렸다.

“이걸로 네 녀석의 운도 끝난 모양이구나.”

“글쎄, 누구 운이 끝났는지는 아직 모르는 거 아닌가?”

요한도 씨익 웃으며 지지 않고 받아쳤다.

“아둔! 그런 빈약한 인간 따위, 한 방에 끝내 버려!”

“어이, 인간! 너한테 건 돈만 3골드다! 무조건 버티고 끝내 버려! 아둔 따위한테 쓰러지지 말라고!”

“야 인마! 너 지금 누구 편이야?”

“나야 내 돈 따주는 놈 편이지, 뭐.”

가루칸은 슬쩍 시선을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낯선 인간에 대한 경계심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여성, 아이들까지 모인 자리는 축제가 되어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가루칸의 시선이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버린 이방인에게 향했다. 그의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준비됐냐?”

“언제든지.”

요한의 대답에 씨익 웃은 아둔이 순간 요한의 왼팔을 있는 힘껏 잡아 당겼다.

훽!

“……!”

대응할 새도 없이 그대로 당겨진 요한의 안면에 아둔은 전력을 다해서 주먹을 날렸다.

‘이건 몰랐을 거다!’

쩡!

당겨지던 힘과 전력으로 내지른 주먹의 위력이 더해지자 요한의 안면에서 처음으로 엄청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세상에…….”

“죽은 거 아니야?”

“선 채로 기절했나?”

관객들조차 몸과 얼굴이 팩 돌아간 요한을 보고 걱정을 금치 못했다.

물론 요한을 걱정하는 쪽은 주로 그에게 돈을 건 오크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것치고는 아둔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은데?”

“봐 봐, 아직도 손을 안 놓고 있잖아.”

“정말이네?”

구경꾼들의 말처럼 처음에는 쾌재를 부르던 아둔의 표정이 점점 똥 씹은 사람처럼 일그러져 갔고 아둔의 손을 잡고 있는 요한의 손도 그대로였다.

‘이 녀석…… 손을 쥐고 있는 악력이 더 강해졌다!’

“오호라, 이런 식으로도 가능하단 말이지?”

피슉!

고개를 돌린 요한은 한쪽 코를 막고 바람을 불어 핏물 덩어리를 바닥에 뱉어 냈다.

쌍코피가 줄줄 흘러 내렸지만 그것 말고는 전체적으로 아주 멀쩡한 모습이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걸 맞고…….”

“잘 배웠다. 이젠 내 차례지?”

“자, 잠깐!”

말릴 사이도 없이 요한 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아둔, 그리고 작렬하는 요한의 주먹!

훽! 쩡!

쿵…….

앞선 세 사람보다 더 처참한 모습으로 고꾸라진 아둔.

간헐적으로 씰룩거리는 그의 엉덩이만이 생존 사실을 알릴 뿐이었다.

와아아아아아!

요한이 아둔마저 쓰러트리자 오크들 사이에서 함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요한에게 돈을 걸어서 딴 오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저 강자를 숭상하고 존경하는 오크들 특유의 문화가 작용한 탓이었다.

“다음!”

요한이 호기롭게 외치자 가루칸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제자들이 깜짝 놀라 그를 만류했다.

“대, 대족장! 대족장께서 직접 나서실 생각이십니까?”

“그럼 네가 직접 나설래?”

“그거야…… 크흠!”

“에이…… 한심한 것들.”

쓰러진 사형제들을 보고 고개를 돌리는 제자들의 한심한 꼬락서니에 가루칸이 혀를 차며 요한의 앞으로 나아갔다.

“대족장께서 나섰다!”

“대족장께서 인간과 직접 의식을 치르시겠다고?”

“말도 안 돼!”

“누가 이길까? 대족장? 인간?”

“당연히 대족장이지! 인간 따위 대족장의 한 주먹 거리도 안 된다고!”

“그렇다고 보기엔 인간도 만만치 않아. 이건 봐야 알 거 같다!”

대족장이 직접 나서자 오크들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용광로처럼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뭐야, 벌써 우두머리가 나서는 건가? 제자들 이용해서 좀 더 힘을 빼놔도 될 텐데 왜?”

“더 이상 제자들이 상하는 걸 지켜보는 것도 마음이 아파서 말이야. 무서우면 돌아가고.”

“그쪽 제자들 마음 아플까 봐 그러지.”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은 요한이었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 전에 제 몸부터 챙기게. 나와 이 의식을 치르고 멀쩡히 걸어 나간 전사는 없었으니까.”

“그거 기대되네.”

이윽고 팽그르르 돌아간 동전이 바닥에 떨어졌다.

선공은 요한이었다.

“재미없게 한 방에 쓰러지지 마라.”

쩡!

엄청난 굉음과 함께 요한의 주먹이 가루칸의 안면에 꽂혔다.

주르륵 쌍코피가 흐르는 가루칸.

하나 표정은 여전히 심드렁했고 작은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았다.

“이 정도 주먹으로 자신만만했던 건가? 우습구먼그래.”

후웅!

쩌엉!

방금 전보다 훨씬 큰 굉음이 요한의 얼굴에서 터져 나왔다.

막말로 머리가 부서지지 않을까 싶을 만큼 어마어마한 박력이었다.

하지만…….

“뭐야, 파리가 앉았나……. 왜 이렇게 간지러워?”

마찬가지로 쌍코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씨익 웃는 요한의 모습에 가루칸도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대꾸했다.

“와라, 모기 주먹.”

“자, 그럼 지금 바로 모기 주먹 들어갑니다!”

쩌엉! 쩡! 쩡! 쩡! 쩡! …….

요한과 가루칸은 서로 주먹을 한 대씩 주고받으면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저러다 죽는 거 아니야?”

“누가?”

“그거야…….”

질문을 던진 오크는 되돌아온 반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쩌엉!

타격음이 울리고 요한의 고개가 뒤로 크게 젖혀졌다.

그러나 살아 있는 눈빛은 여전히 가루칸을 노려보았다.

‘저 빌어먹을 오크 새끼! 주먹 안에다 무쇠를 박아 넣었나…… 맞을 때마다 골이 울리네. 아, 안 되겠다. 이러다 진짜 죽을 수도……. 딱 한 대만 더 치고 포기하자!’

그러면서도 요한은 끝끝내 버텨 주먹을 휘둘렀다.

쩌엉!

요한의 주먹을 맞고 턱이 돌아간 가루칸이 미간을 찌푸리며 이를 악 물었다.

‘무슨 인간 놈 주먹이 어찌 이리 매울꼬! 저놈의 돌주먹에 맞을 때마다 돌아가신 선친께서 손짓하시는구나! 얼른 결판내지 않으면 이러다 내가 먼저 죽겠다! 그러니 딱 한 대만 더 때리고 포기해야지.’

그렇게 딱 한 번만 더, 딱 한 번만 더를 되뇌며 버티던 요한과 가루칸의 의식은 벌써 한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퍽!

“뭐야…… 주먹이 완전 솜 주먹 다 됐잖아. 설마 벌써 지친 거야?”

퍽!

“그러는 네놈이야말로 주먹이 물렁하구나. 갓난아기가 때려도 네놈보단 아플 게다.”

퉤!

두 사람은 남은 힘을 쥐어 짜 주먹을 휘둘렀다.

얼굴은 벌 떼에 쏘인 것처럼 부풀어 올라 알아볼 수도 없었고, 다리는 바람 부는 갈대처럼 휘청거려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기만 해도 넘어질 것 같았다.

그런데 쓰러지지 않았다.

또다시 주먹이 오가고, 그때마다 다리가 풀려 당장이라도 고꾸라질 것 같은데 어떻게 해서든지 버티고 버텨 냈다.

퍽!

“어어……!”

“쓰러진다!”

남은 힘을 모두 쥐어짜 날린 가루칸의 주먹에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았던 요한이 왼발을 쑥 내밀더니 그대로 버텨 냈다.

“크아아아아!”

그리고 괴성을 내지르며 필사적으로 상체를 일으키는 요한.

이미 그것은 사람이 아닌 짐승의 울부짖음이었다.

“징글징글한 새끼…….”

가루칸은 그런 요한을 보면서 허탈함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방금 전 자신의 주먹은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 낸 마지막 일격이었다.

이제는 버텨 내긴커녕 포크 하나 들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 가루칸을 향해 요한이 마지막 일격을 선물했다.

“누가 할 소리! 이제 제발 좀 쓰러져 주라, 이 빌어먹을 자식아! 1골드 줄 테니까!”

요한은 젖 먹던 힘을 다해 몸을 날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톡.

하지만 그것은 주먹질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어찌 보면 주먹을 가져다 대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쿵!

그 솜털 같은 주먹질에 가루칸이라는 거목이 뒤로 넘어가면서 땅과 등이 마주쳤다.

털썩…….

작은 먼지구름이 일어나고, 힘이 다한 요한의 몸뚱이가 가루칸의 몸 위에 쓰러지며 두 사람이 포개졌다.

“……미안하다.”

요한은 흐릿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마음속에 우러나온 진심 한마디를 가루칸에게 전달했다.

‘그게 무슨…….’

그러나 가루칸은 그 의미를 미처 알지 못한 채 의식을 잃고 말았다.

“…….”

관객들은 얼어붙은 상태로 그 모습을 대략 1분 정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 이유는 그들조차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누, 누가 이긴 거지?”

“인간이 마지막에 날린 주먹에 대족장이 쓰러진 거잖아! 게다가 대족장이 깔려 있는 것도 그렇고 이건…….”

“야, 이 멍청이들아! 지금 그게 중요하냐? 대족장!”

전사들은 다급히 쓰러진 가루칸에게 달려가 그의 상태를 살폈다.

“기절하셨을 뿐, 다행히 목숨에 지장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 다행이군. 어서 대족장을 움막으로 모셔라!”

“예!”

“그런데 이 인간은 어떻게 할까요?”

가루칸의 옆에서 함께 의식을 잃은 요한을 보고 다른 오크들이 묻자 그와 처음으로 전사의 의식을 나눴던 다혼이 나서서 명령했다.

“당연한 걸 왜 묻나? 그는 우리와 전사의 의식을 치렀고 이겨 냈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대족장과도 주먹을 나누었던 강한 전사다! 비록 대족장과는 무승부가 나긴 했지만 그 강함은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 상대가 인간인 것은 상관없다. 우리는 강한 전사에게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할 뿐이다.”

“옳소!”

“알파는 강한 전사다! 우리의 친구다!”

오크들은 요한을 별도의 움막으로 옮겨 그를 돌봐주었다.

***

그날 저녁.

“으윽…… 머리야…….”

요한은 깨질 것 같은 두통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누군가 그의 눈앞으로 보라색 물감을 풀은 듯한 물이 담긴 사발 하나가 스윽 들이밀었다.

아둔이었다.

“마셔라. 두통이 조금은 가라앉을 거다.”

요한은 아둔에게서 사발을 뺏듯이 가져가더니 벌컥벌컥 약을 들이켰다.

그 모습에 아둔이 능글맞게 물었다.

“잘도 먹는군. 우리가 그 약에 무슨 짓을 했을 줄 알고.”

“두통 가라앉는 약이라면서? 아니야?”

사발을 깔끔하게 비운 요한이 소매로 입가를 훔치며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약이 썼기 때문이다.

그 태연자약한 요한의 모습에 아둔은 피식 실소가 터져 나왔다.

정말 티끌만큼도 의심하지 않고 자신들을 믿어 주는 요한의 모습에 되레 자신이 이상한 건가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어났으면 가자. 대족장께서 친구를 기다리신다.”

“친구? 누구? 나?”

요한이 멍하게 자신을 가리키자 아둔은 고개를 갸웃하며 주의를 주었다.

“대족장과 친구가 되고 싶어서 전사의 의식까지 치른 놈이 뭘 그렇게 놀라지? 아무튼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거다. 친구를 환대하는 우리 구르칸 오크족의 잔치는 어떤 의미에선 전사의 의식이나 전투보다 더 치열하고 힘들 테니까.”

“그것 참 듣던 중 무시무시한 말이네.”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요한은 아둔의 뒤를 따라 대족장의 움막으로 향했다.

무시무시한 오크족의 잔치란 것을 한껏 기대하면서.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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