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28화 (28/150)

28. 친선 대련

“저 친구가 유독 눈에 잘 들어오는군. 기사나 검술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뛰어나다는 걸 한눈에 알아보겠어.”

“역시 도모스 경께서는 안목이 탁월하십니다. 저 친구가 바로 저희 가문의 기사단을 책임지고 있는 클레도르 단장이지요. 저 친구를 영입하려고 들인 시간과 정성과 자금이 어마어마하지만 조금도 후회되지 않는 실력자입니다. 하하하하!”

“그렇게 좋은가? 누가 보면 숨겨 둔 아들인지 알겠네.”

클레도르가 칭찬받는 모습에 다른 자리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리리아.

그녀는 자신의 뒤에 서 있던 클레번을 팔꿈치로 쿡쿡 찌르며 이죽거렸다.

“그렇다는데? 좋겠다. 저런 훌륭한 형을 둬서.”

“그러게나 말입니다. 뛰어나도 너무 뛰어난 형을 둔 덕분에 동생은 죽을 맛이네요.”

클레도르는 훈련의 시작부터 끝까지, 남작가의 기사단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유난히 수준 높은 기사단원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활약을 보여 주었다.

그렇게 훈련이 모두 종료되고…….

기사단을 사열시킨 클레도르는 선두에 서서 기사단을 대표로 예가르에게 검례를 올리며 충성을 증명했다.

“그래, 고생이 많았네, 클레도르 단장. 히로벤칼 자작님께서도 매우 흡족해하시니 내가 다 뿌듯하군. 기사단원 전체가 모이는 합동 훈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아주 훌륭히 잘해 냈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주군.”

“아닐세. 충분히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야. 그렇지 않습니까? 도모스 경.”

“그럼, 그럼! 아주 재밌었네. 사실 이런 걸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오늘은 시간 가는 줄도 몰랐군.”

짝짝짝짝!

도모스가 직접 박수를 보내자 클레도르는 목례로 감사를 표했다.

“이렇게 기사들이 고생했는데 그냥 돌려보내는 건 주군의 덕목이 아니지. 그래, 원하는 포상을 말하게. 내 오늘은 곳간을 열어서라도 그대들의 노고를 치하해 줄 터이니.”

“하면 청이 하나 있습니다.”

“그래, 무엇인가?”

클레도르는 마치 약속한 것처럼 예가르가 아닌 도모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구르칸 산맥과 그곳의 지배자라 알려진 구르칸 오크의 악명은 저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로벤칼 자작님의 옆에 계신 자작님의 대리인, 알파 경이 그 악명 높은 오크들을 혼자서 찾아간 것도 모자라 교역로 건설에 대한 협상까지 해내신 것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사실이지. 그런데 그게 왜?”

도모스가 반문하자 클레도르가 고개 숙여 부탁했다.

“그만한 위업을 이루신 강자를 만나 도전하고 제 실력의 한계를 시험할 수 있다는 건 평생을 기다려도 오지 않을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 부디 그 소중한 기회를 제가 허락해 주시길 간청드립니다.”

“…….”

요한은 자신을 돌아보는 도모스의 시선에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훈련장 밖을 둘러 선 기사들의 강렬한 눈빛을 받으며 요한은 훈련장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알파 경.”

“이렇게 멋진 합동 훈련의 대한 보답으로 이게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군요.”

“차고 넘칩니다. 그런데…….”

클레도르가 허전한 요한의 옆구리와 손을 가리키며 물었다.

“주로 사용하는 무기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신다면 최대한 양질의 것으로…….”

“배려는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이 내게 무기를 들어야 할 만한 강자라고 인식된다면 그때 다시 부탁하도록 하죠.”

“…….”

클레도르는 자신감 넘치는 요한의 모습에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합동 훈련을 통해 자신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건 상대도 알아봤을 터.

“방금 전까지 보신 게 제 전부라고 생각하셨다면 큰코다치실 겁니다, 알파 경.”

“오히려 그게 전부였다면 크게 실망했을 겁니다. 언제든지 들어오세요.”

팟!

요한이 허락하며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전신의 근육을 이완하며 자연스럽게 힘을 뺀 클레도르의 신형이 정면으로 쇄도했다.

“빠르다!”

“단장, 아무래도 진심인 모양인데?”

“그게 무슨 소리야? 상대는 맨손이라고.”

“그거야 자기가 자처한 거고.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클레도르 단장을 상대로 맨손이라니…… 죽으려고 작정한 거지.”

다른 기사단보다 강하다고 자부하는 자신들조차 전력으로 무리지어 덤벼도 클레도르의 웃음기 하나 지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기사단원들은 상대가 아무리 대단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의 단장을 무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팟! 파밧! 슈슈슈슉!

“세상에……. 내 눈에는 뭐가 뭔지 하나도 보이지 않는구먼. 예가르 경은 저게 보이는가?”

“사실은 저도 잘……. 하하하!”

클레도르의 움직임은 기사들조차 눈으로 쫓기 힘들 만큼 빨랐다.

당연히 관전하고 있던 도모스나 예가르 등, 수련을 하지 않은 귀족들은 두 사람의 움직임이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심각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는 이들도 있었으니…… 리리아와 클레번도 그에 포함되어 있었다.

“설마 두 사람 다 오러를 쓰고 있는 건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형…… 아니, 단장님은 아직 오러를 쓰지 않고 계신 것 같은데요. 오러를 사용하면 뭐랄까, 주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단장님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그나저나…….”

리리아의 놀란 눈빛이 클레도르에게서 요한으로 옮겨졌다.

‘내가 저곳에 서 있었다면 진심 어린 단장님의 공격을 한 번이라도 피하거나 막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을 거야. 하지만 알파 경은 그런 단장님의 공세를 여유 있게 피하거나 흘리고 있어. 저건 단장님의 움직임을 미리 읽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일 텐데…….’

리리아는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요한이 얼마나 많은 전장을 경험했는지도, 그 속에서 셀 수도 없는 전투를 치르며 거듭 승리하였다는 사실도 말이다.

그 경험은 지금의 요한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져 있었다.

덕분에 지금의 요한은 상대의 기수식만 보고도 상대의 스타일을 대충 파악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나머지는 직접 부딪쳐 보고 상대의 전투 스타일을 확실하게 파악하여 그에 맞춘 대응을 하는 것뿐이었다.

일견 복잡하게 보이는 스타일이라도 잔가지를 모두 자르고 나면 기본 뼈대가 되는 검술들은 몇 가지 없었기 때문이다.

‘이쯤 했으면…….’

요한은 상대의 공세를 피하다 여의치 않으면 검면을 손바닥이나 손등으로 때려 검로를 바꾸는 방식으로 공격을 흘렸다.

보통 이쯤 됐으면 부아가 치민 상대가 자제력을 잃고 자세를 흐트러트리기 마련인데…….

‘이 정도로는 턱도 없다 이건가?’

오히려 더 눈을 반짝이며 덤벼드는 클레도르의 모습에 요한은 속으로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클레도르는 그런 요한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즐거워 죽겠다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공세에 더더욱 박차를 가했다.

‘강하다! 마주섰을 때도 느꼈지만 지금은 확신할 수 있다! 이자는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강자라는 걸……!’

분명 상대가 눈앞에 있음에도 마치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공허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검에 요한이 당하는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움직임을 미리 읽고 대비하는 것처럼 그렇게 빠르지도 않은 움직임으로 자신의 공격을 속속들이 파헤쳤다.

덕분에 클레도르는 정말 마음껏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상대가 자신의 검에 크게 다칠까 우려하지 않고 진심으로 검을 휘둘러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순간!

텁. 휙!

후웅!

‘어? 왜 하늘이 발밑에…….’

클레도르는 당황했다.

다음 스텝을 밟는 순간, 디딤 발의 중심이 어긋나더니 하늘과 땅의 위치가 갑자기 역전되었기 때문이다.

쿵!

“……!”

동시에 전신을 덮쳐오는 강한 충격에 클레도르는 자칫 정신을 잃을 뻔하였다.

“단장님!”

“설마 쓰러지신 건 아니겠지?”

놀란 사람들은 엉거주춤하게 일어서서 대(大)자로 쓰러진 클레도르를 경악에 찬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설마 방금…… 단장님이 알파 경에게 업어치기를 당한 거야?”

리리아가 놀라서 묻자 클레번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평범한 업어치기가 아닙니다. 형은 풀 플레이트 아머 때문에 무게가 20kg은 더 나가는 데다 철로 만든 판금 갑옷이 충격을 내부로 반사시킨 탓에 더 큰 대미지를 입었을 테니까요. 게다가 제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알파 경은 교묘하게 형이 스텝을 밟아 가속하는 순간을 역이용하여 형을 넘겼습니다. 아마 충격은 2층 건물 이상에서 무방비하게 떨어진 것과 맞먹을 테죠.”

“그럼 단장님이…….”

“괜찮습니다. 형이 이 정도로 쓰러질 사람은 아니니까요.”

클레번은 자신 있게 웃으며 확신했다.

그의 말처럼 클레도르는 쓰러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머리를 부여잡고는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대로 누워 있는 게 좋을 텐데요. 아마 당분간은 땅과 하늘을 구분하기 어려울 겁니다. 지금도 속에서 올라오는 걸 참느라 필사적일 텐데요. 아닌가요?”

“하아, 하아……!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어디 가서 알파 경만한 강자를 만나 마음껏 싸워 볼 수 있겠습니까? 기회란 찾아왔을 때 최선을 다해서 붙잡는 것이라고 예가르 경께 배웠거든요.”

그 순간.

우우우우우웅……!

클레도르의 몸 안에서 끓어오른 마나가 주변과 공명하기 시작하며 묘한 기류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 공명은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간접적으로 느껴질 수준이었다.

“단장님이 마나를 끌어 올렸다!”

“이거 진짜냐?”

“단장님의 전력이라니…… 처음 보는 거 아니야?”

기사들의 웅성거림처럼 클레도르가 전력을 다 한다는 건 좀처럼 쉽게 볼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었다.

요한 역시 웃음기가 사라졌다.

‘역시…….’

클레도르의 검술 실력은 까놓고 말해서 겔러핀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요한은 어쩌면 오러 유저로서의 경지는 겔러핀보다 그가 더 우위에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훈련 도중에도, 그리고 대련 중에도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움직임에 맞춰 흘러나오는 마나가 그것을 반증했기 때문이다.

‘겔러핀이 오러 비기너 중급이라면, 클레도르는 비기너에서 상급 정도가 되겠군. 물론 클레도르의 나이가 훨씬 더 젊다는 걸 생각하면 그 차이는 앞으로 훨씬 더 벌어지겠지.’

애초에 오러 유저가 고작 남작가 기사단이라는 것만으로도 놀라 까무러칠 일이기는 했다.

오러 비기너의 유저라면 겔러핀처럼 중급이라도 최소 영지를 보유한 자작가의 기사단장 정도는 너끈히 임명될 수 있는 강자였기 때문이다.

도모스도 그 사실이 꽤나 놀란 모양이었다.

“예, 예가르 경? 클레도르 단장이 오러 유저였다는 사실을 왜 말해 주지 않은 건가?”

“크게 자랑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어 말씀드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클레도르 단장도 아직 본인의 실력에 만족을 못 한 모양이고요.”

대답을 마친 예가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친선 대련은 이쯤이면 충분할 것 같군. 서로 죽고 살기로 싸울 게 아니면 이쯤에서 자리를 정리할까 하는데 알파 경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저는 클레도르 경의 의견을 존중하도록 하죠.”

“그렇다면 단장의 생각은 어떠한가? 나 역시 자네의 의견을 존중하도록 하지.”

예가르의 질문에 클레도르는 뿜어져 나오는 마나를 조용히 갈무리하며 납검했다.

“제가 너무 흥분했던 모양이군요. 실례 많았습니다. 주군의 말씀처럼 서로 목숨을 빼앗아야만 하는 상황도 아니고, 쓸데없는 부상으로 서로가 난처해지는 일은 피해야겠지요. 오늘 받은 가르침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알파 경, 감사합니다.”

클레도르이 결정은 요한에게도 나쁘지 않았다.

이곳에서 뇌전의 마나를 드러내도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숨길 수 있다면 좀 더 감추는 쪽이 나았기 때문이다.

“저 역시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그땐 아쉬움을 남기지 않도록 하죠.”

“그때는 반드시 알파 경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만큼 저 역시 강해져 있을 겁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누며 친선 대련을 마무리했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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