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구제불능의 개망나니
그날 밤.
“윌라드, 계획은 알고 있지?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있어. 나머지는 아버지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실 테니까.”
“걱정 마시고 어서 가십쇼, 도련님. 이러다 전령이 먼저 도착하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자, 어서요.”
요한은 윌라드에게 자신의 가면을 넘겨주었다.
다행히도 윌라드의 신체적 조건이 자신과 비슷해서 가면을 쓰면 겉으로 구분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터였다.
“고마워. 그럼 부탁할게.”
윌라드에게 자신의 대역을 맡긴 요한은 복면으로 자신의 정체를 감춘 후, 가주만이 알고 있는 특수한 비밀 통로를 통해 저택을 빠져나왔다.
‘지금부터 쉬지 않고 전력으로 달린다면…….’
파지직, 파직!
요한이 마나를 끌어 올리자 그의 몸을 전류가 휘감더니 사납게 방전하기 시작했다.
‘내일 아침까지는 충분히 전령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다!’
팟!
요한이 땅을 박차는 순간,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그가 서 있던 자리에 불꽃처럼 번개가 피어오르며 한순간에 사라졌다.
슈웅!
뇌전의 꼬리를 늘어트리며 전력으로 질주하는 요한.
그의 모습은 마치 지상을 미끄러져 달리는 번개와도 같았다.
인기척이 드문 관도를 피해 주로 산길을 질주하는 요한이었지만 그 속도는 정돈된 관도를 타고 달리는 말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따금 요한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깜짝 놀란 야생동물들이 잠에서 깨어나 주변을 살펴보기도 하였지만 녀석들은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녀석들이 놀라 잠에서 깼을 때 요한은 이미 수백 미터 앞을 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쉬지 않고 질주한 끝에 요한은 아침 해가 뜨기 직전, 가까스로 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련님!”
“오랜만이다. 잘 있었어?”
보초를 서고 있던 병사들의 시선을 피해 조용히 2층 창문을 통해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요한을 보고 요안나가 반색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금세 표정이 어두워지는 요안나를 보고 요한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구나.”
“그게…….”
요안나는 망설이다 자신을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요한의 시선에 결국 실토하였다.
“어제 저녁, 제가 퇴근하는 길에 이상한 사람들이 절 찾아왔어요. 도련님의 상태와 근황을 알려 주면 큰돈을 주고 거부하거나 이번 일을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면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더라고요. 오늘 출근해서 다른 애들의 모습을 보니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았어요.”
‘그림자 놈들…… 벌써 냄새를 맡고 움직이기 시작한 건가?’
“그래, 고생이 많았다. 걱정 마. 너와 다른 녀석들의 가족이 해코지당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시녀들한테 접촉했다면 내가 잠깐 변했었다는 사실도 알겠군. 하기야 이것도 오래 버틴 거지. 언제까지고 녀석들의 눈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니까.’
요안나의 말이 사실이라면 놈들이 눈치는 챘어도 아직 알파와 자신의 관계를 확신하고 있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만약 확신했다면 직접적인 행동에 나섰을 놈들이다. 다행이야. 어제 아버지와 계획을 세워 두길 잘했군.’
만약 조금만 더 대비가 늦었더라면 알파의 정체도 들키고, 요한 자신도 끊임없이 그림자들의 감시를 받아 손발이 묶였을 것이다.
“요안나, 내가 미리 부탁한 거 있지?”
“아, 네!”
요안나는 자신 있게 요한을 욕실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그녀가 비밀리에 모아둔 술이 마치 목욕물처럼 욕조 가득 찰랑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걸로 뭘 하시려고…….”
“후읍!”
풍덩!
“도, 도련님?”
요안나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별안간 요한이 욕조에 머리를 박고 미친 듯이 술을 흡입했기 때문이다.
꿀꺽, 꿀꺽…….
요한의 목젖이 꿀렁일 때마다 수면이 부지런하게 눈에 띄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대략 2/3 이상을 먹어치웠을 무렵, 바가지로 술을 퍼서 머리 위에 그대로 부어 버렸다.
촤악!
당연히 머리부터 시작해서 입고 있는 옷에도 술이 배어들었다.
그러나 요한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요안나, 지금 바로 술을 퍼서 방 전체에 뿌려. 술 냄새가 아주 진동을 할 수 있게.”
“네!”
왜 그러는지 의문을 가질 법도 하건만, 요안나는 요한의 지시가 떨어지자 망설임 없이 욕조에 남은 술을 퍼서 방 안 곳곳에 뿌려 버렸다.
덕분에 술 냄새가 진동하는 방은 숨만 쉬어도 취할 수준이 되었다.
“요안나, 너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본가에서 사자가 찾아오면 내 방으로 안내해 줘. 최대한 겁에 질린 모습을 연기해 주면 좋겠는데 할 수 있겠어?”
“예전 도련님을 대할 때처럼 하면 된다는 말씀이시죠?”
“그, 그렇지…….”
“맡겨만 주세요! 겁에 질린 연기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까!”
요안나는 순수한 의도로 자신감 넘치게 대답하며 의욕을 불태웠지만 듣고 있는 요한은 숙연해지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렇게 요안나가 밖으로 나가자 요한은 침대에 누워서 요안나가 미리 준비해 둔 마약 봉투를 여기저기 흩어 놓았다.
내용물은 당연히 잘 처리했지만 문제는 요한이 마약에 찌들었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안색이 좋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편하게 침대에 누운 요한이 마나를 끌어 올려 전신에 순환시켰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활용방법이 조금 달랐다.
뇌전의 마나는 모든 원소의 마나 중에서도 가장 변화무쌍하고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 힘은 양날의 검이었다.
제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가 되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실수한다면 그 칼날이 자신의 목숨을 앗아 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한은 지금 뇌전의 마나를 마나 로드에 따라 순환시키고만 있을 뿐, 통제하지는 않았다.
뇌전의 마나가 야생마처럼 날뛰는 대로 그냥 두었던 것이다.
당연히 몸은 빠른 속도로 상하기 시작했다.
피와 수분이 증발하자 몸은 빠르게 수축되었고 세포가 파괴되면서 피부는 거무죽죽하게 변하고 생기를 잃어버렸다.
눈두덩은 금세 움푹 들어가 퀭하게 변했고, 윤기가 넘치던 머리카락도 푸석푸석할 풀떼기처럼 말라 버린 것이다.
치이익……!
“크윽!”
으드득!
악 다문 요한의 치아 사이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고통은 말 그대로 전기 고문을 당하는 것만큼 끔찍했다.
하지만 요한은 이를 악 물고 끝까지 참아 냈다.
여기서 놈들을 완벽하게 속이지 못하면 앞으로가 더 더욱 힘들어질 것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계시오? 백작가에서 찾아온 전령이오. 가주님의 명령을 받고 요한 도련님을 모셔가기 위해 왔소!”
전령이 방문했다는 소식에 요안나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녀의 왼쪽 뺨과 왼쪽 눈은 퉁퉁 부어올라 있었는데 이는 그녀가 남몰래 이를 악물고 직접 자신의 얼굴을 때린 결과였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짐작할 리 없는 전령은 당연히 요한이 그녀를 폭행했을 거라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배, 백작님께서 보, 보내신 분이시라고요?”
“그렇다. 요한 도련님은 지금 어디 계시지?”
“따, 따라오세요…….”
요한에게 벌레 비슷한 취급을 당하며 멸시 받던 그때 그 모습을 그대로 재연하는 요안나의 연기력은 훌륭한 수준을 넘어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전령을 멀찍이서 구경하는 다른 시녀들의 모습도 마찬가지.
아무것도 모른 채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 건 정말로 그녀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전령도 아무런 의심 없이 요안나의 뒤를 따랐다.
똑똑똑.
“도, 도련님…… 가주님께서 보내신 전령이…….”
“꺼져! 들어오면 다 죽여 버린다! 빨리 가서 술이랑 약이나 가져오라고!”
“비켜서거라.”
요안나가 감히 문을 열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전령이 그녀를 옆으로 비켜 세우고는 자신이 직접 문을 열었다.
“요한 도련님, 실례 하겠습니다.”
후웅!
실례를 무릅쓰고 허락 없이 문을 열자 돌아온 것은 반가운 인사가 아니라 빈 술병이었다.
챙그랑!
“꺄악!”
전령이 여유 있게 고개를 틀어 날아온 술병을 피하자 벽에 부딪힌 술병이 박살 나며 바닥에 떨어졌다.
동시에 요안나 역시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지르며 땅에 주저앉아 바들바들 떨었다.
“야, 이 개새끼야! 누가 주인 허락도 없이 감히 멋대로 들어오래? 어?”
씩씩거리며 분을 토해 내는 요한의 모습에 전령의 미간이 좁아졌다.
방 안 가득 풍겨오는 술 냄새 사이에 섞인 묘한 지린내의 정체는 요한이 이불에 휘갈긴 오물 때문이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오물이 아니었다.
‘저 정도면 치료는 꿈도 못 꾸겠군. 저걸 치료하느니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게 훨씬 빠르겠어.’
전령은 마약에 중독된 자들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요한을 찾아온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으니까.
“아빠…… 잘못했어요! 내가 잘할 테니까…… 내가 열심히 할 테니까 씨발 약 좀 가지고 오라고!”
전령은 자신에게 무릎 꿇고 기어와 눈물까지 흘리며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사정하다가, 갑자기 격노하며 떼를 쓰는 요한을 차가운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지금 요한의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마약 중독자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극심한 중독자 말이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퍽!
“커헉!”
털썩…….
전령은 요한의 뒷덜미에 강한 충격을 가하여 그를 강제로 기절시켰다.
그러고는 쓰러진 요한을 등에 업더니 방을 빠져나와 요안나에게 설명했다.
“가주께서 도련님을 본가로 데려오라는 분부가 계셨다. 요한 도련님은 내가 데려가도록 하지.”
“네? 하, 하지만…….”
전령은 그녀에게 품속에서 백작가의 인장이 찍힌 서신을 보여 주었다.
물론 글을 읽지 못하는 요안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서신에 찍힌 인장만큼은 확실히 알아보고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전령은 요한을 구속하여 함께 떠났고, 요안나는 멀어지는 요한의 모습을 보며 두 손 모아 기도했다.
‘부디 도련님께서 무사하시길…….’
* * *
“이거 풀어! 내가 누군 줄 알아? 당장 이거 풀라고! 이것만 풀어 봐……! 여기 있는 새끼들 다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거야! 으아아아아!”
저택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마차에서 탈출한 요한.
그는 구속당한 상태로 몸부림을 치며 악다구니를 질렀다.
덕분에 저택의 종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그런 요한의 모습을 구경하였다.
요한을 걱정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분일 뿐, 대부분의 시선에는 경멸이 가득했고, 조롱과 환멸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런 미친놈……!”
뜻밖의 소동에 하이든과 아네트조차 놀라서 요한을 찾아왔다.
아네트는 폐인이 된 모습으로 부모도 못 알아보고 욕설과 악을 쓰는 아들의 모습에 놀라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놔! 건드리지 마! 건드리면 다 죽여 버릴 거야! 아버지 저예요. 요한이에요! 사탕 사 주기로 약속하셨잖아요. 오늘은 뭐 하고 놀 거예요? 엄마는 어디 갔어요? 형은? 형 어디 있어? 하워드 나와! 이 개자식 죽여 버릴 거야! 놀아 달라고, 형! 으아아아!”
“요한아, 제발……!”
“진정하시오, 부인. 뭣들 하느냐! 저 미친놈을 당장 제 방에 가둬 두지 않고!”
하이든은 아내를 품에 안아 다독이며 병사들에게 미쳐 발광하는 요한을 가두라 명령했다.
그리고 무서운 눈빛으로 요한을 노려보았다.
요한을 노려보는 그의 마음속에선 피눈물이 흘렀다.
‘이런 심정이었느냐?’
하이든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들이 느끼는 고통은 이 정도가 아닐 것이다.
자신의 백 배, 천 배 이상으로 요한은 더 괴롭고 아플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괜찮다고, 이제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여 주며 안아 주고 싶었다.
아네트에게도 사실대로 말해 줘서 그녀의 걱정을 풀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정계에서 닳고 닳아 연기와 거짓말에 익숙한 자신과는 달리 아네트는 아무리 노력해도 금방 티가 나기 때문이었다.
요한이 말한 그림자의 능력이 반만 사실이라 하더라도 아네트의 어색한 연기는 여기 어딘가에서 태연자약하게 지켜보고 있을 놈들에게 바로 들통나 버리겠지.
그럼 자신들이 준비한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더불어 요한이 자신의 모든 걸 포기하면서까지 이루려는 목적들까지도…….
‘이 못난 아비가 해 줄 수 있는 게 이런 것뿐이라 미안하구나, 요한…….’
그러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했다.
하이든은 일말의 자비심도 버리고 요한을 마치 벌레 보듯, 버린 자식처럼 대하며 매정하게 몸을 돌려 돌아갔다.
‘그거면 됩니다, 아버지……. 이 못난 아들을 대신해서 어머니를 잘 부탁드립니다.’
끌려가는 도중, 한순간에 스쳐 지나간 요한의 서글픈 미소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