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34화 (34/150)

34. 교역로 시동!

뇌전의 마나는 아주 강력한 힘이면서 동시에 신비한 힘이기도 했다.

요한도 뇌전의 마나를 오랜 시간 다루었지만 그조차 힘이 가진 능력의 반도 깨닫지 못했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그 중에서도 이 힘의 가장 특별한 능력은 바로 독립성이었다.

뇌전의 마나 주인이 오러 마스터급 이상의 능력자일 경우, 조건에 따라 마나가 프로그래밍한 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명령을 입력해 둘 수 있었던 것이다.

화르륵!

시간을 살짝 돌려 화장터 가마에 불이 붙는 순간, 어마어마한 열기가 순식간에 요한의 몸을 집어삼켰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주인이 심정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열기가 느껴지면 움직이도록 사전에 명령을 받은 뇌전의 마나가 스스로 움직이며 전신을 빠르게 순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뇌전의 마나는 일차적으로 오러를 발산하여 불길로부터 전신을 보호했다.

그 과정에서 강력한 전류가 방전되었지만 가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불길이 그 빛을 삼켜 주었다.

동시에 미리 설치해 두었던 지지대가 불에 타 사라지면서 요한이 누워 있던 자리가 반 바퀴 회전하였다.

이 장치 역시 요한이 미친 척 연기를 하는 동안, 하이든이 은밀하게 준비해 둔 것이었다.

그렇게 자리가 회전하자 요한이 있던 자리와 미리 준비해 둔 사형당한 이름 모를 사형수의 시신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사형수의 시신은 빠르게 불에 타 재가 되었고, 요한은 준비되어 있던 구덩이 속으로 안전하게 떨어져 내렸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뇌전의 마나는 행동을 멈춘 요한의 심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전기 충격을 반복적으로 주면서 멈춘 심장을 계속해 자극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커헉!”

더 이상 충격을 추면 심장이 타 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 때쯤, 다행스럽게도 요한은 답답한 숨과 함께 핏물을 토해 내며 눈을 떴다.

주변은 칠흑 같은 암흑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고, 타오르는 가마 때문에 구덩이는 숨이 턱 막힐 만큼 뜨거웠지만 당장 움직일 수는 없었다.

‘사약 한번 더럽게도 독한 걸 썼네.’

요한의 몸에 남은 사약의 독기는 이미 골수까지 치민 상태였다.

따라서 기적적으로 부활했다 하더라도 다시 죽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인 상황.

‘지금부터가 진짜다. 집중하자…….’

요한은 스스로의 의지로 뇌전의 마나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명령을 내려 두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게 그의 마나가 전신을 순환하기 시작했다.

뇌전의 마나는 오장육부와 혈관, 골수까지 치민 독기들을 찾아내 빠르게 태워 버리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거무죽죽한 요한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크으윽!”

물론 뇌전의 마나를 골수까치 침투시켜 독기를 태워 버리는 고통은 평범한 사람들이 맨 정신으로 견뎌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마치 불에 달군 꼬챙이를 그대로 허리나 무릎에 쑤셔 박아 헤집어 대는 것 같은 그 고통은 마약성 진통제를 잔뜩 먹고도 목이 쉬도록 비명을 터져 나올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요한은 이마에 핏대를 세워 가며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면서 고통을 감내했다.

만에 하나라도 비명을 질렀다가 그 소리가 자칫 밖으로 세어나간다면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아, 일단 고비는 넘겼다…….’

가까스로 독기를 모두 태워 버린 요한은 그 길로 비밀 통로를 통해 저택 내부로 이어지는 길을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 * *

“요한이 사형을 당했다고?”

가니온 유스터프 공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수정 구슬 속 그림자의 보고 때문이었다.

“그게 사실이냐?”

-요한에게 먹인 사약은 극독 중의 극독이었습니다. 심장이 멈춘 것도 제가 직접 진맥하여 확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마 속에서 뼛가루만 남은 것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알파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 알았다.”

수정 구슬이 꺼지자 가니온의 미간이 한층 더 좁아졌다.

‘그림자들의 진술이 하나같이 일관되는 것을 보면 요한이 죽은 건 확실한 것 같은데…….’

별장에서 요한을 직접 본가까지 끌고 온 그림자도 그가 마약과 술에 중독되어 있음을 증명했고, 본가에서 그가 미쳐 발작하는 모습을 확인한 그림자가 한둘이 아니다.

방금 보고를 한 신관 역시 본인이 직접 죽은 요한의 맥을 짚었다 했고.

게다가 화장을 당하는 모습은 공통적인 사항이었으니 요한의 죽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알파는 요한이 아니라는 뜻인가?’

요한이 죽은 건 이쯤 되면 확실한 사실이다.

그러나 가니온의 마음에 걸리는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2년 전부터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성격이 바뀌었다는 시종들의 진술과 알파의 출현 시기가 겹치는 게 그저 우연이었다고? 게다가 놈은 계집들을 안기 위해서 몸을 단련했다고 말했지만 시종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건 결코 관계를 가지기 위한 단련이 아니었을 텐데…….’

사형식에 알파가 참석했다는 공통된 증언도 있었지만 알파야 항상 가면을 쓰고 다녔으니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알파로 위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죽어 버리면 위장이고 나발이고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흐음…… 아쉽군. 요한 그 녀석이 분명 알파라고 확신했었는데 말이지.’

이렇게 되면 알파에 대해서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들은 거의 다 백지나 다름없었다.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출신도, 정체도 불분명한 상대의 목적을 읽고 미리 대응하여 움직이는 건 말 그대로 귀신의 속내를 읽어 내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일단 파악된 바로 알파의 행동 목적은 구르칸 교역로를 통한 무역업의 확장이다. 망국의 귀족이라면 그 돈으로 가문을 재건할 것이고, 몰락한 상인이라면 상단의 부활을 꿈꾸겠지. 어느 쪽이건 조금 더 지켜본 이후에 녀석의 목적이 뚜렷해질 때쯤 녀석의 처우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겠지.’

* * *

“그래, 일단은 네가 원하는 대로 된 것 같구나.”

하이든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가면의 사내, 알파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정체가 실은 죽은 것으로 알려진 자신의 둘째 아들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자신을 포함하여 극소수에 불과했다.

“어머니께서는 좀 어떠십니까?”

“어떨 것 같으냐?”

“……제가 괜한 질문을 드렸네요.”

요한이 씁쓸하게 웃었다.

가면을 쓰고 있음에도 하이든은 그런 아들의 얼굴이 손에 잡힐 듯 보이는 것 같았다.

“어쩌겠느냐. 못난 자식이라고 마음속에서 놔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을…… 지금도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정신만 차리면 너를 찾다가 기절해 버린다고 하더구나. 그게 걱정돼서 찾아갔더니 나더러 아들 죽인 살인마라고 아주 눈도 안 마주치는데…… 당분간 네 엄마랑 겸상하는 건 힘들 것 같구나.”

“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혼자서 밥 먹는 게 조금 쓸쓸하긴 하지만 네가 느끼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니. 그리고 네 엄마 덕분에 그림자라는 녀석들도 네 죽음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지 않을 테니, 지금부터는 너는 요한이 아니라 알파라는 이름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게다.”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이든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 역시 모두 아버지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만 고개를 들거라. 가족과 나라를 위해 제 한 몸 희생하겠다는 자식새끼를 고작 이 정도밖에 돕지 못하는 아비다. 욕을 먹었으면 먹었지 감사받을 일은 없다. 게다가 네 형도 아직 남아 있지 않느냐.”

“형이 이 사실을 알면…… 많이 화낼까요?”

요한이 조심스럽게 묻자 하이든은 턱을 쓰다듬으며 짐짓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내 남자다운 얼굴만큼 지랄맞은 성격도 빼다 박은 게 네 형 아니냐. 녀석이 돌아오면 당분간 집안에 폭풍이 불겠지. 그 전에 너는 서둘러 떠나거라. 그나저나…… 네 형에게도 이 사실을 감출 생각이냐?”

“당분간은요. 형이 제 정체를 알게 되면 싫어도 의식을 하게 될 겁니다. 그 미묘한 차이를 놈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어요. 형은 형대로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저 역시 뒤에서 조용히 형을 도울게요.”

“그래, 네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려무나.”

거기까지 말을 마친 하이든이 진지하게 물었다.

“그런데 넌 지금부터 무엇을 할 계획이냐, 요한?”

“해야 할 일은 많지만 일단 구르칸 교역로를 통해 자금을 확보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구르칸 교역로를 포함한 구르칸 산맥 일대를 제 영토로 인정받을 생각입니다.”

“그 말은 구르칸 산맥의 영주가 되겠다는 뜻이냐?”

요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하이든이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일 게다. 구르칸 산맥은 우리 벨로반 왕국을 포함하여 몇 개의 나라에 국경을 걸치고 있는 중립 지역이다. 그런 곳에 깃발을 꽂는 걸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겠지. 그게 구르칸 산맥이 지금껏 중립 지역으로 남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 그 일에 관해서는 굉장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게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무엇보다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해야 할 일?”

* * *

계약이 무사히 성사되고 그 즈음하여 구르칸 협곡과 히로벤칼 자작령을 이어 주는 대교 역시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그 소식이 알려지자 요한과 계약을 맺은 아반가르디 상단이 상품을 준비하여 다리 앞으로 집결하였다.

꿀꺽…….

“괜히 들어갔다가 몬스터 만나서 뒈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다른 곳도 아닌 구르칸 산맥이잖아. 몬스터들의 천국 말이야! 애초에 살아서 돌아오는 걸 기대하는 게 잘못 아닐까?”

구르칸 대교 앞에서 마지막으로 상단을 점검하던 도중, 상인들과 짐꾼들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구르칸 산맥에 대한 공포로 분위기가 술렁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곁을 지나가던 몇몇 늙은 상인들이 불안해하는 상인들을 비웃듯 콧방귀를 뀌며 한 소리 뱉었다.

“그렇게 잘 아는 새끼들이 여긴 뭣 하러 왔냐? 너희도 평소 상행보다 몇 배나 되는 보수를 약속받고 제 발로 참가한 놈들이잖아. 그럼 돈값을 하라고. 애들처럼 찡찡거리지 말고.”

“하여간 요즘 젊은 것들은……. 에잉!”

“저것들 보내고 내가 대신 더 일하면 안 되나?”

그렇게 베테랑 상인들이 진두지휘하기 시작하자 불안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게다가…….

“저기 봐! 크림포드 상단이 온다!”

“세상에…… 저 물량은 도대체 뭐야?”

“족히 수십만 골드는 되겠는데?”

뒤늦게 참가한 크림포드 상단의 규모를 보면서 사람들은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반가르디 상단에서 준비한 물품의 규모도 역대급이었지만 크림포드 상단이 이번 상행에 준비한 규모는 그 열 배가 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상단을 호송하는 병력들의 숫자나 질적인 부분에서도 남작가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상단의 주인, 하워드가 있었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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