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37화 (37/150)

37. 엘프의 숲으로

쒜엑!

화살 한 발이 무서운 속도로 공간을 가로질렀다.

화살의 속도는 강궁으로 유명한 엘프들의 화살보다 족히 배는 빠른 속도였다.

그 화살은 노예 사냥꾼의 정면이 아닌, 뒤에서 날아와 사냥꾼들을 가로질러 엘프들에게 향했다.

그러나 명중률 자체는 고려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대로 간다면 화살은 엘프들을 스치지도 못하고 허공으로 날아갈 듯이 보였다.

그런데…….

휘릭. 푹!

“리두로!”

돌연 화살촉이 머리를 돌리더니 화살이 부드럽게 선회하면서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경비대 한 명의 관자놀이를 그대로 관통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쿵!

죽음을 맞이한 엘프의 시신이 나무 위에서 떨어지자 동료들이 눈을 부릅떴다.

“이 화살은……!”

“악마다! 그 악마 놈이 이곳에 온 거야!”

한편, 노예 사냥꾼 측에서도 별안간 화살에 맞아 죽은 엘프의 시신이 떨어지자 사태를 파악하고는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죠나단 경이다! 죠나단 경께서 오셨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시 한번 노예 사냥꾼들의 아득한 뒤쪽에서 화살 한 발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왔다.

“산개!”

에흐라데의 지시에 경비대가 빠르게 흩어졌지만 소용없었다.

화살은 마치 눈이 달린 새처럼 숲속을 자유롭게 비행하며 먹잇감의 심장을 또다시 꿰뚫었던 것이다.

푹!

그렇게 또 한 명의 엘프가 여지없이 목숨을 빼앗기자 경비대의 경각심이 최고조를 넘어섰다.

“대장!”

“너희는 먼저 후퇴해! 천천히 후퇴하면서 최대한 녀석들의 발목을 잡아라! 우리가 죽어도 동족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승리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함께 가야죠!”

자신을 걱정해 주는 수하의 외침에 에흐라데는 수하를 돌아보며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화답했다.

“걱정 마라. 저 악마 놈의 머리를 가지고 돌아갈 테니까.”

“대장!”

말을 마친 에흐라데가 무서운 속도로 나무 사이를 질주하기 시작하자 그를 걱정하던 수하가 서둘러 그의 뒤를 따르려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잡으며 그를 만류했다.

“그만 둬. 여기서 우리까지 당하면 남은 동족들은 누가 지켜 준대?”

“하지만……!”

“가자. 대장이 약속했잖아. 악마 놈의 머리를 가지고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하는 거야.”

결국 남은 수하들은 눈물을 머금으며 조금씩 후퇴하기 시작했다.

한편 죠나단을 죽이기 위해 전력으로 나무 사이를 질주하던 에흐라데는 기어코 죠나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기 있다!’

놀랍게도 만 번을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악마는 자신을 보며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쫘아악……!

그 장난스러운 표정에 에흐라데는 자신과 동족들의 분노와 원한을 담아 시위를 당겼다.

“죽어라!”

퓽!

시위를 떠난 화살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정확하게 죠나단의 머리를 향해서 날아갔다.

죠나단이 어떤 식으로 대응하건 이미 피하거나 막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푹!

화살은 어이없게도 죠나단의 코앞에서 부드럽게 선회하더니 그의 발치에 꽂혀 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 안 돼…….”

푹!

그 순간, 멀리 돌고 돌아 찾아온 죠나단의 화살이 에흐라데의 관자놀이를 그대로 관통하며 그의 숨을 앗아 갔다.

눈물 젖은 그의 눈동자는 자신을 비웃는 죠나단의 얼굴을 끝으로 생기를 잃어버렸다.

“어이가 없군. 이런 놈들을 상대로 애를 먹어? 하여간 꿀 냄새 맡고 몰려든 파리 새끼들은 하등 도움이 안 돼요. 안 그래, 길튼?”

“지당하신 말씀입죠, 죠나단 경. 뭣들 하느냐. 죠다난 경께서 사냥을 시작하시는데 서둘러 준비하지 않고!”

“예!”

길튼의 명령으로 기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죠나단이 씨익 웃으며 활을 들었다.

“읏차!”

길튼은 화살 통에 가득한 화살을 허공에 뿌렸다.

그 순간, 죠나단이 가진 바람의 마나가 허공에 뿌려진 화살들을 휘감더니 그가 시위를 당기는 방향으로 화살들을 정렬시켰다.

“그럼, 지금부터 제대로 사냥을 시작해 볼까?”

* * *

북동부 라마콘 왕국, 엘프의 숲 접경지역에 도착한 요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도 슬슬 조짐이 보이는구나. 지금도 내 기억속의 모습과 꽤나 비슷한 분위기인 것 같은데…….’

엘프의 숲은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엘프들의 왕국이자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엘븐 글로리아가 머나먼 북쪽 땅 끝에 존재했으니까.

또한 이곳과 비슷한 규모의 엘프의 숲도 적지는 않았지만 이곳만큼 끊임없이 노략질을 당한 숲은 없었다.

그 이유는 다른 숲들과 다르게 이곳의 엘프의 숲이 엘븐 글로리아와 완전히 단절된 외딴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그들이 이런 외딴 숲에 터전을 만들고 이런 수모를 겪어 가면서도 끝까지 숲을 떠나지 않는지 요한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때문에 이곳은 다른 엘프의 숲 접경 지역보다 훨씬 많은 엘프 노예들을 취급하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엄마…… 보고 싶어…….”

“어이, 형씨. 안 살 거면 부정 타니까 꺼지라고.”

감옥에 갇혀 울고 있던 한 엘프 소녀를 가만히 서서 쳐다보고 있던 요한에게 노예 상인이 다가와 사나운 표정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낡고 허름한 철갑옷에 때가 낀 투구, 광택대신 흙먼지로 너저분한 코팅 등, 지금의 요한에게 엘프 노예를 살 수 있을 만큼 큰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투구와 면갑 때문에 얼굴도 알아볼 수 없었으니 상인 입장에서는 더욱 기분 나쁠 수밖에…….

“…….”

요한은 상인을 잠시 쳐다보다 가게를 떠났다.

그러자 잠깐 그 자리에 멍청하게 서 있던 상인은 식은땀을 흘리며 자리에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괜찮으십니까, 형님?”

“뭐, 뭐야, 그 새끼는? 죽는 줄 알았네…….”

솔직히 말해서 요한은 엘프들에게 딱히 악감정도, 호감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회귀 전에도 개망나니 시절에는 볼 기회가 없었고, 노예가 된 후로는 제 살기 바빴으며, 전쟁 영웅이 된 이후 만난 엘프들은 거의 전부가 노예였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있어 엘프라는 아인종은 단순히 인간이 가지고 놀기 좋은 노예 종족이라는 게 전부였다.

가루칸이나 구르칸 오크들과 마음을 터놓기 전까지는…….

‘표정이 보인다는 게 이렇게까지 괴로운 일일 줄은 몰랐네.’

요한은 애써 시선을 돌린 뒤, 담담히 노예 사냥꾼을 구인중인 노예상을 찾아갔다.

“이름은?”

상인은 요한의 위아래를 대충 훑어보더니 무미건조하게 이름을 물었다.

“반.”

“그래, 반. 우리는 뒈진 놈 몫은 안 챙겨 주니까 요령껏 살아남는 게 좋을 거야. 물론 목숨 아낀다고 대주 명령을 어겨도 그 자리에서 즉결 처분이니까 알아서 처신 잘하라고.”

상인은 하이든이 요한의 가짜 신분을 위해 준비해 준 용병패를 확인하고는 다시 요한에게 돌려주었다.

“잡은 노예의 숫자와 등급에 따라 분배되는 보상이 달라지니까 죽기 살기로 잡아라.”

요한은 한 번 고개를 끄덕인 뒤 용병패를 받고 대기했다.

딱히 보상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노예상에 참가한 것도 눈에 띄지 않고 숲으로 들어가기 위함이었으니까.

요한 이후로도 전문 노예 사냥꾼들이나 용병 등이 꼬리를 물고 찾아온 덕분에 머릿수를 채우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개문!”

문이 열리고 되가브 노예상과 노예 사냥꾼들이 엘프의 숲으로 향했다.

관문과 숲 사이의 들판을 지나 우거진 숲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긴장감도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무슨 나무들이 이 따위로 크대? 장정 열댓 명이 둘러서도 다 못 두르겠네.”

“높기는 또 얼마나 높고. 올려다봐도 나무의 끝이 안 보이네.”

“거기! 잡담은 금지다. 엘프들은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보다 발소리가 작다. 집중하지 않으면 가장 먼저 너희 같은 시끄러운 놈들이 당한다는 소리다.”

중간 간부의 주의에 잡담을 나누던 용병들이 움찔하며 곧장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요한의 옆에서 같이 걷고 있던 노예 사냥꾼이 피식 웃으며 요한의 어깨를 다독였다.

“하여간 저 새끼는 쓸데없이 겁주는 데 뭐 있다니까. 너무 쫄지는 마라, 신참. 어차피 숲 입구부터 중간까지는 우리들이 먹어서 엘프들도 얼씬도 못 하거든. 뭐, 그 탓에 × 같은 산책을 오래 해야 한다는 게 흠이지만. 난 마르코다. 사냥꾼 짬밥만 10년 넘게 먹은 베테랑 중에 베테랑이지. 반갑다.”

베테랑답게 마르코의 말은 사실이었다.

과거에는 숲의 초입부터 엘프들의 마을도 있었고 당연히 마을을 지키기 위한 경비대들도 항시 순찰 중이라 숲 근처에만 가도 벌집이 되곤 했지만…….

이제는 조금씩 밀리고 밀려서 어느덧 숲 안쪽까지 엘프들의 세력권이 후퇴하게 된 것이다.

“이게 전부 위대하신 죠나단 경 덕분이지. 덕분에 우리 같은 놈들도 천금보다 귀하다는 엘프를 맛볼 수 있게 된 거고. 어때? 보아하니 실력에 자신 있어 보이는데 내 밑으로 들어오지 않을래? 내 말만 잘 듣는다면 상품으로 판매되기 전에 맛은 보여 줄 수 있는데 말이야.”

그에 대한 요한의 대답은 간단했다.

“꺼져.”

설마 면전에서 그런 말을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 했던 마르코는 살벌한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요한에게 경고했다.

“신참께서 자신감이 대단하네. 그래 좋아. 하지만 지금부터는 앞뿐만 아니라 뒤도 조심해야 할 거야. 여기서 네 편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말을 마친 마르코가 자신의 무리로 돌아갔다.

스카우트의 결과를 무리에게 설명했는지 무리의 살기가 요한의 등을 찔렀지만 요한은 가볍게 무시하며 동행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숲 안쪽으로 진입했을까?

숲의 안쪽으로 상당히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엘프 정찰병들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요한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 상황에 속으로 쓴웃음을 그렸다.

요한은 엘프들을 도와 노예 사냥꾼들을 쓰러트린 후에 호의적으로 그들에게 접근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정찰대가 이들을 발견하기 전에 먼저 이들이 엘프들의 마을을 발견할 판이었다.

그런데 나쁜 예감은 왜 이리도 잘 들어맞는 것인지…….

“신호가 올라왔다! 정찰대가 엘프의 마을을 발견했다!”

“지금부터는 속도전이다! 전원 전속력으로 돌진하라!”

“엘프들은 최대한 상처 하나 없이 포획하도록! 만약 병신이 되거나 죽이기라도 한다면 그 새끼는 사지를 잘라 버릴 테니까 명심하고!”

노예 사냥꾼들은 엘프들을 팔아 떼돈을 벌 욕심으로 두 눈이 번들거렸다.

그들은 전력을 다해 신호가 보이는 곳으로 빠르게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비켜, 이 새끼들아! 내가 먼저 잡을 거야!”

“미쳤냐? 엘프 한 마리만 잡아도 어지간한 저택 한 채 값인데!”

“얼빠진 새끼들, 너희 같은 놈들한테 잘도 잡혀 주겠다. 나 먼저 간다!”

노련한 베테랑 노예 사냥꾼들이 앞으로 쭉쭉 치고 나가는 모습을 확인한 요한의 시선이 모로 향했다.

그곳에는 지금 막 도착한 엘프 정찰병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무리를 확인한 참이었다.

삐이이익!

정찰병은 인간들이 듣기 힘든 고주파수의 특수한 풀피리를 힘껏 불었다.

아마 전사들을 호출하기 위한 용도겠지.

하지만…….

‘이미 늦었어!’

요한은 확신했다.

이대로 전사들이 도착했을 때쯤엔 잿더미가 된 마을과 납치당한 엘프들의 흔적들만 남아 있을 것이라고…….

‘하는 수 없지. 기왕 서비스해 주는 거, 오늘 아주 화끈하게 해 주마!’

파지직, 파직!

“응? 뭐, 뭐야. 이 새끼? 왜 갑자기 왜 이래?”

요한의 옆을 스쳐 지나가던 한 노예 사냥꾼이 돌연 요한의 몸에서 방전하는 스파크를 확인하고 눈을 부릅떴다.

태어나서 듣도 보도 못한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놀랄 일은 지금부터였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