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엘프들의 장로 회의
“어, 언제……!”
요한은 자신을 보며 당황하는 마르코와 경기를 일으키는 그의 동료들을 스윽 훑어보았다.
“잠깐만! 엘프들을 독점하는 게 목적이라면 좋아! 우리가 도와줄게. 솔직히 너 혼자 그 많은 엘프들을 끌고 가는 건 힘들잖아! 안 그래? 아니, 이참에 동업을 합시다! 당신이 9를 가지고 우리가 1을 나눠 가질게! 당신 정도의 능력이라면 죠나단 경이 대수겠어? 우리가 손잡으면 호수를 돈으로 채울 수도 있다고요!”
마르코가 진땀을 흘리며 요한을 설득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똥 씹은 사람처럼 썩어 들어갔다.
요한이 자신의 품에서 꺼낸 스로잉 나이프가 눈에 익었던 것이다.
“이런 씨…….”
서걱!
“폴레트!”
도망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도망치지 못했다.
소리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암기를…… 그것도 자동으로 추적해서 날아오는 사기급 암기를 대체 무슨 수로 피해서 도망친단 말인가?
정확히는 요한이 뇌전의 마나로 무선 조종을 하는 것이었지만 결과만 보면 그들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결국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하는 것뿐이었다.
“제, 제발 시키시는 건 뭐든 다 하겠습니다! 그러니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가지고 있는 거 전부 드리겠습니다! 비록 얼마 안 되지만…….”
서걱! 촤악!
“에이 씨발! 그냥 죽여!”
“사, 사람 살려……!”
푹! 스핏!
무릎을 꿇고 빌던 놈들도, 미쳐 버린 탓에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들던 놈들도,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던 놈들도 결과는 모두 평등했다.
“아아…….”
마르코는 전부 죽어 버린 동료들의 시신을 둘러보며 다리를 떨었다.
그때였다.
말 한마디 없던 요한이 그에게 말을 건넨 것은.
“말해 봐. 이제 여기 네 편은 누가 있지?”
“그, 그게 무슨…… 아.”
-신참께서 자신감이 대단한데? 지금부터 앞뒤로 조심해야 할 거야. 여기서 네 편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마르코는 떠올렸다.
요한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했을 때 그에게 했던 위협을…….
‘아, 이 병신 새끼! 어쩌자고 이딴 괴물한테……!’
그러나 시간을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마르코는 여기서 살아 돌아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아…… 그, 그걸 신경 쓰고 있었어요? 당연히 농담이죠! 그때도 말했잖아요. 당신이 강해 보였다고. 물론 이 정도로 터무니없이 강할 줄은 몰랐지만요. 그런 당신이 내 제안을 거절하니까 뿔이 나서 심통 좀 부려 본 건데 기분이 많이 상했나 봐요. 내가 미쳤지.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사과할게요.”
그 말을 듣고 요한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치 악수를 청하는 듯한 제스쳐에 마르코는 반색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이건 기회다!’
마르코는 요한이 자신의 사과를 받아 주었다고 생각했다.
하기야, 현명하게 생각한다면 혼자서 그 많은 엘프들을 끌고 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요한과 손을 잡으면 돈 방석에 앉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겠지.
그는 벌써부터 부자가 된 기분으로 요한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고마워요! 그럼 우리 돌아가서…….”
지지지지지지지직!
“그그그그그그그극……!”
그러나 요한은 그의 사과를 받아 줄 마음도 없었고, 그와 손을 잡을 생각은 더 더욱 없었던 모양이다.
푸쉬이이이…….
결국 까맣게 재가 된 마르코는 요한이 손을 놓자 그 자리에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요한은 쓰러져 죽은 마르코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 * *
“이게 대체…….”
뒤늦게 도착한 엘프 경비대의 새로운 대장, 에드뮈엘은 대원들과 함께 처참하게 죽어 있는 노예 사냥꾼들의 시신을 발견하고 충격에 휩싸였다.
“대장님!”
그때 마침 엘프 정찰대원 한 명이 에드뮈엘에게 다급히 달려와 경례를 올렸다.
풀피리로 경비대를 호출한 바로 그 대원이었다.
대원은 에드뮈엘에게 자신이 보고 겪은 모든 상황들을 자세히 보고했다.
“그게 사실이냐? 인간 한 명이 별안간 노예 사냥꾼들을 학살했다고?”
“예!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혼란스러워하는 에드뮈엘에게 그의 부관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내분이라도 일어난 걸까요?”
“글쎄.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군. 그래서, 그 인간은 어디로 갔나?”
“선두를 쫓아서 마을 쪽으로 향했습니다! 한순간에 눈앞에서 사라질 정도로 빨랐으니 아마 금방 따라잡았을 겁니다.”
엘프들은 눈이 인간들보다 몇 배나 좋다.
엘프 정찰대원들은 그런 동족들 중에서도 특히 눈이 좋은 엘프들을 선발하여 훈련시킨 부대다.
그런 정찰대원의 시야에서 한순간에 사라질 정도라니…….
‘도대체 목적이 뭐지? 설마…….’
“우리도 서두르자!”
“예!”
경비대는 전력을 다해서 요한이 지나갔던 길을 쫓기 시작했다.
그렇게 요한의 뒤를 쫓는 에드뮈엘의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초조해졌다.
‘저만한 숫자의 노예 사냥꾼들을 혼자서 학살할 정도의 괴물이라면……!’
정찰대원의 설명이 맞는다면 상대는 아무리 약해도 죠나단의 아래는 아닐 터였다.
하지만 지금 에드뮈엘의 마음속에는 요한에 대한 두려움보다 요한에게 쫓기고 있을 마을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더욱 컸다.
“속도를 올린다!”
에드뮈엘의 명령에 따라 더욱 더 다리에 힘을 불어넣는 경비대원들.
그렇게 쉼 없이 달려 나간 끝에, 그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거참 새끼들, 빨리도 오네. 멀뚱히 서서 보고만 있지 말고 좀 도와주지? 아, 엘프들은 인간의 말을 못 알아들으려나.”
요한은 죽은 노예 사냥꾼들의 시체를 한곳으로 모으는 와중에 도착한 경비대원들을 보고 소리쳤다.
그들이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한의 고함에 정신을 차린 것인지 그들은 빠르게 요한을 포위하며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지금 여기서 뭐 하는 짓이지?”
에드뮈엘은 적개심 가득한 표정으로 요한이 하는 행동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요한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눈꼬리를 씰룩였다.
“얼레? 이 새끼가…….”
바로 그 순간!
파지직!
요한의 모습이 스파크와 함께 사라지자 그를 포위하고 있던 엘프들이 놀라 눈을 부릅떴다.
어디에서도 요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사이, 사라진 요한은 어느새 에드뮈엘의 앞에 나타나 주먹으로 그의 머리를 후려갈기고 있었다.
빡!
“아악!”
“너 우리 말 할 줄 알지? 그런데도 내 말을 듣고도 지금 가만히 있던 거였어? 뒤질래? 지금 내가 누구 때문에 개고생 중인데. 팍 씨, 빨리 와서 안 치워?”
머리를 부여잡고 눈물을 찔끔 흘리는 에드뮈엘.
요한은 손을 털면서 다시 작업을 시작했고 에드뮈엘과 다른 엘프들은 그런 요한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뭐, 뭐지, 저 미친놈은?’
미친놈도 보통 미친놈이 아니었다.
특히 방금 그 움직임은 요한이 눈앞에 나타날 때까지도 전혀 반응하지 못했으니까.
만약 요한이 그럴 마음만 있었다면 이 자리에 있는 엘프들 전원, 지금쯤 살아 있는 목숨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치우고 있는 노예 사냥꾼들의 시체처럼 말이다.
“아직도 손이 논다. 그치? 한 대 더 처맞고 시작할래?”
“이, 일단 주변 경계 인원만 남기고 나머지는 청소를 시작한다!”
“예!”
요한이 주먹을 들어 보이자 에드뮈엘이 서둘러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그의 말대로 처참하게 죽은 노예 사냥꾼들의 시체를 계속 방치해 두는 건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체를 청소하면서 에드뮈엘은 요한에게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이 노예 사냥꾼들 모두 당신이 해치운 것이오?”
“그래서 불만이면 너도 상대해 줄까?”
“그게 아니라 왜 그랬는지 궁금해서 묻는 것이오. 이들처럼 동족들을 납치하여 노예로 팔아넘기는 게 목적이었다면 여기서 이러고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이 정도 성의 표시는 해 줘야 지금처럼 대화가 통할 테니까.”
“그게 무슨……?”
요한은 마지막 남은 시체 하나를 구덩이에 던져 놓고 불을 질렀다.
“너희 엘프들과 거래를 하고 싶어서 찾아왔다.”
* * *
“정말 이게 맞는 걸까요, 대장?”
“판단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다. 윗분들이 하시는 거지.”
에드뮈엘은 요한이 건네준 서신을 가지고 엘프들의 마을, 엘라임으로 돌아왔다.
마을로 돌아온 그가 곧바로 찾아간 곳은 엘라임을 다스리는 하이 엘프 대장로, 루비리드의 거처였다.
하지만 루비리드의 거처에 당사자는 없었다.
에드뮈엘은 그녀의 거처를 지키고 있는 경비병의 얘기를 듣고 그녀가 있다는 곳을 찾아갔다.
“으아악! 팔이…… 내 팔이……!”
“우웨엑!”
“조금만 참아요.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여기 약초랑 붕대 좀 더 가져다주세요! 빨리요!”
노예 사냥꾼들에게 부상을 입은 수많은 환자들 사이에서 대장로 루비리드가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환자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있었다.
“대장로님!”
“에드뮈엘?”
자신을 찾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루비리드는 이쪽을 쳐다보는 에드뮈엘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그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죠, 에드뮈엘 경비대장?”
“죄송합니다. 대장로께서 급히 확인해 보셔야 할 게 있어서…….”
에드뮈엘은 품속에서 서신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루비리드는 서신을 받으려다 문득 피고름이 잔뜩 묻은 자신의 손을 보고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옷에 닦았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옷에도 환자들의 피고름으로 가득해서 사실상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에드뮈엘은 그런 대장로에게 진심 어린 존경을 느꼈다.
“이건…….”
서신의 내용을 확인한 루비리드의 안색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그녀 역시 인간의 언어와 문자에 대해 공부하여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글을 읽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가 있다면 내용이겠지.
“경비대장은 이 서신을 어디서 누구에게 부탁받은 거죠?”
“오델 마을 쪽에서 습격을 받았다는 신호를 받고 도착했을 때, 노예 사냥꾼들을 혼자서 도륙한 인간에게 받은 것입니다.”
“노예 사냥꾼들을 도륙한 인간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정찰대원 넬사가 그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증언했습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대장로님?”
그때였다. 그녀를 도와서 환자들을 돌보던 백발이 성성한 늙은 엘프가 찾아와 묻자 루비리드가 두 사람에게 명령했다.
“두나스 장로는 지금 즉시 장로 회의를 준비해 주세요. 에드뮈엘 경비대장에게도 회의에 참석할 것을 명합니다.”
그렇게 장로들이 긴급 소집되고, 헐레벌떡 뛰어온 장로들이 회의장에 전부 참석하자 궁금증을 참지 못한 두나스 장로가 그녀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로 이리도 급하게 장로 회의를 소집하신 겁니까? 대장로, 혹시 에드뮈엘 경비대장에게 받은 서신이 뭔가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루비리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 서신은 오델 마을을 습격하려던 노예 사냥꾼들을 혼자서 전멸시킨 인간이 저에게 보낸 서신이에요. 그 숫자가 무려 육백여 명에 달했다고 하더군요.”
“육백여 명의 노예 사냥꾼을 혼자서 전멸시킨 인간요? 아니 대체 왜……. 내분이라도 일어난 건가?”
“보면 모르겠나? 혼자서 우리 동족들을 노예로 팔아먹으려고 욕심을 부린 게지. 인간이 생각하는 거야 뻔하지 않겠어?”
“그런 자가 왜 대장로님께 서신을 보낸단 말인가?”
“그나저나 큰일이구먼. 그 말이 사실이라면 상대는 죠나단 그 악마 못지않은 괴물이란 뜻이니까. 이 판국에 그런 괴물이 하나 더 늘어나다니…….”
“자 자, 진정들 하고 대장로님의 말씀을 좀 들어 보세.”
그렇게 장로들의 이목이 루비리드에게 집중되자 그녀는 서신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자는 우리와 거래를 하고 싶다는군요.”
“……!”
루비리드의 입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 나오자 장로들의 표정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