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죠나단의 최후
‘정말로 아바타가 실존했을 줄이야…….’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힘이다!’
“자네들은 이제 되었네. 돌아가서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해 주게나.”
“예? 아, 알겠습니다!”
경비병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저도 모르게 철푸덕 주저앉아 있다가 두나스의 명령이 떨어지자 바람같이 자리를 떠났다.
“우리 경비병들이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군. 이해해 주게.”
“괜찮아. 많이 봐서 익숙하니까.”
“먼저 대장로님과 우리의 동포들을 대신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 자네가 처리해 주었다는 노예 사냥꾼들에 대해서 말일세. 하지만 설마 그에 대한 대가로 정령의 눈물을 원한다고 한다면 미안하지만 정중히 거절하도록 하지.”
도셉이 고개를 숙이자 요한은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피차 바쁜 사람들이니까 재미없게 떠 보는 건 그만하자고. 설마 정말로 내가 그 정도 일에 대한 대가로 숲의 보물을 내놓으라 하겠어? 그건 내가 이곳에 있는 엘프들을 모두 죽인다고 협박하더라도 손에 넣을 수 있는 보물이 아니잖아. 안 그래?”
그 말에 두나스가 안광을 번뜩이며 물었다.
“거기까지 알고 있으면 얘기가 빠르겠군. 숲의 보물을 대가로 자네는 우리에게 어디까지 힘을 빌려줄 수 있겠나?”
“너희의 적은 곧 나의 적이다. 이 정도 각오가 아니었으면 오지도 않았을 거야. 특히 죠나단 그 녀석의 목은 반드시 내 손으로 따서 너희에게 선물하지.”
요한의 달콤한 제안에 혹하지 않고 도셉은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만약 그 대가로 정령의 눈물을 얻게 된다면 그 보물을 어디다 사용할 생각인가?”
“죽은 자를 되살리는 것 말고는 그 어떤 병도 고친다는 전설의 보물이 정령의 눈물이라지? 그걸로 나한테 필요한 사람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치료하고 싶다.”
“그대에게 필요한 사람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이해하기 힘든 대답에 두 사람이 눈살을 찌푸리자 요한이 장담했다.
“걱정 마. 숲의 보물을 사악한 곳에 이용할 생각은 절대로 없으니까. 내 모든 걸 걸고 맹세하지.”
“그러고 보니 아직 통성명도 제대로 하지 않았군. 나는 두나스, 이쪽은 도셉. 이 숲의 장로들이다.”
“알파라고 한다. 지혜롭고 현명한 숲의 현자들을 만나게 돼서 진심으로 영광이다.”
서로가 소개를 마치자 도셉이 물었다.
“하면 알파, 네 제안을 받아들인다 치고 거래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당연히 죠나단을 죽이고 접경 지역에 붙잡혀 있는 노예들의 해방이 우선이지.”
“꽤나 자신 있게 말하는군. 좋다. 이번 일을 그대로 대장로님과 다른 장로들에게 전하도록 하지. 그때까지 불편하지만 이곳에서 기다려 줄 수 있겠나? 아무래도 엘라임의 동포들과 그대를 반대하는 장로들의 이목 때문에 그대와 함께 동행하기는 다소 부담스러워서 말이야.”
“상관없어. 하지만 결정은 빠를수록 좋을 거야. 나한테도, 당신들한테도 말이지.”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인 후에 숲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비교적 빠르게 돌아온 두 사람은 요한에게 회의에 관한 결정을 알려 주었다.
“회의 끝에 장로회에서는 자네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정령의 눈물은 확실히 우리에게 소중하고 고귀한 보물인 건 사실이지. 하지만 그게 이 숲을 살아가는 동포들의 목숨보다 귀한 보물은 아니라는 게 대장로님의 뜻이셨고 많은 장로들이 그 뜻에 동참했다.”
“무릇 진짜 소중한 목숨의 가치를 헤아릴 줄 아는 대장로의 결단에 깊은 존경과 경의를 표하지. 그래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앞서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말이야.”
“말해라.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협력하지.”
* * *
요한은 자리에 편하게 앉아 마나 호흡법으로 전신의 마나를 순환시키면서 생각에 잠겨들었다.
‘죠나단이라……. 그러고 보니 그 녀석, 라마콘 왕국 출신이었다고 했지?’
인재 수집이 취미인 헥토르의 눈에 띄어 그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요한 자신과 비슷한 경우였지만, 둘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요한이 나라가 망한 이후였다면 죠나단은 나라가 망하기 전…… 즉, 멀쩡한 조국을 배신하고 헥토르의 편에 섰다는 사실이었다.
그게 요한이 죠나단을 경멸하는 이유였다.
녀석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조국도, 가족도, 친구나 연인도 모두 팔아치울 수 있는 인간이었으니까.
가루칸과 달리 녀석은 제거할 수 있을 때 제거해 두는 게 좋은 인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명상에 열중하고 있었을까?
요한은 자신을 향해서 다급히 찾아오는 인기척이 느꼈다.
“알파 경! 놈이 나타났습니다!”
번쩍! 파지직……!
그 순간, 요한이 눈을 뜨자 푸른 뇌전이 안광처럼 터져 나왔다.
* * *
“오늘은 또 얼마나 잡아갈 수 있을까? 기대되지 않나, 길튼?”
“아이고, 그러믄입죠! 요새 귀찮은 경비대의 숫자도 많이 줄어들었으니 조금만 더 있으면 죠나단 경을 방해하는 녀석은 완전히 사라질 겁니다요. 그러면 지금까지 고기 방패로 써먹었던 노예 사냥꾼 놈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통제하고 경께서 이 숲을 완전히 가지실 테니 어찌 소인이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크흠! 그 마음은 이해하네만 목소리가 너무 큰 게 아닌가? 아직까지는 먼 훗날의 일이니 그때까지는 자중하게, 길튼. 으하하하!”
“아이고! 주책맞게 소인이 방정을 부렸나 봅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그게 사실인 것을요. 죠나단 경의 앞날은 저 태양보다 밝게 빛날 것입니다요. 헤헤헤!”
길튼은 죠나단에게 화살을 건네며 아첨을 떨었다.
죠나단도 길튼의 아첨이 싫지 않았는지 빙그레 웃으며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푸슝!
그러자 그의 악마 같은 성격에 버금가는 악마 같은 능력이 담긴 화살이 무서운 속도로 숲을 가로질렀다.
어지럽게 서 있는 초목도, 바위도, 사람들도 그에게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엘프들의 눈이 닿지 않는 먼 거리에서 쏘아 보낸 화살은 마치 살아 있는 새처럼 자유롭게 비행하여 노예 사냥꾼들과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 경비대원을 노렸다.
‘끝났군.’
그는 자신이 날려 보낸 화살이 목표로 했던 경비대원의 목을 향해서 빨려들어 가는 걸 보고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자신의 화살이 코앞까지 날아왔다는 사실을 눈치조차 채지 못한 그가 화살을 피하거나 막아 낼 확률은 0%였다.
그 순간!
콰릉!
“흐엑!”
“뭐, 뭐야?”
대관절 마른하늘에 갑작스러운 번개가 내리치면서 천둥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자 길튼이 깜짝 놀라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 오늘 마른하늘에 번개가 자주 치네요? 방금 전에 천둥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수림이 우거져 있어 번개는 보지 못했지만 천둥소리는 몇 차례나 들었기에 하는 말이었다.
다만 지금처럼 번개와 천둥이 목격될 만큼 가까운 곳에 내리친 건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죠, 죠나단 경?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죠나단을 올려다보는 길튼의 표정에 의아함이 가득했다.
정색한 그의 표정이 단단히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죠나단의 화살에서 엘프 경비대원의 목숨을 구한 요한은…….
“괜찮아? 계속 싸울 수 있겠어?”
-혹시라도 벼락과 함께 인간이 나타나면 그를 적대하지 말고 그의 지시를 따라라. 그 인간은 우리 편이다.
그에게 목숨 빚을 진 엘프는 순간적으로 상대가 인간이라는 사실에 경계하다가 상부의 지시를 떠올리며 대답하였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의미는 알겠소. 나는 싸울 수 있으니 당신은 당신 일을 보시오.”
알 수 없는 엘프어로 대꾸한 그가 다시 노예 사냥꾼들을 향해 활을 들었다.
“뭐, 뭘 멍청하게 서 있어?”
“사람이 벼락이랑 같이 떨어진 거 처음 보냐고!”
“엘프들을 쫓아가! 어서!”
그때까지 요한의 출현과 함께 떨어진 번개 때문에 넋을 놓고 있었던 노예 사냥꾼들도 다시 전투를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씨익 웃은 요한은 이곳의 전투를 경비대에게 맡긴 후, 자신은 죠나단을 추적하여 몸을 날렸다.
죠나단의 방해만 없으면 숲에서 노예 사냥꾼들 따위에게 당할 엘프 경비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파지직, 파직!
‘온다!’
팟!
“죠나단 경!”
푸른 뇌전을 방전하며 무서운 속도로 접근하기 시작하는 요한을 감지한 죠나단이 길튼을 놔두고 서둘러 후방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바람이 그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 도약을 보조하자 마치 범에 날개를 단듯 엄청난 스피드로 물러서는 죠나단.
하지만…….
파직!
“오랜만이다, 죠나단. 아니, 여기서는 ‘처음뵙겠습니다.’인가?”
“……!”
바람의 마나를 각성한 이후로 스피드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내 스피드를 이렇게 간단히 따라잡았다고? 도대체 이놈은 뭐야? 그리고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 푸른 번개는 또 뭐고?’
면갑을 착용하고 있어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죠나단은 자신을 비웃고 있는 요한의 표정이 손에 잡힐 듯이 보였다.
“이런 개 같은……!”
슝슝슝슝!
죠나단은 요한을 향해서 빠르게 화살을 연사하였다.
그 먼 거리에서 엘프조차 피하지 못하고 당하는 화살이다.
코앞에 있는 목표물 따위, 눈을 감고도…….
“뭐 하냐? 제대로 안 쏠래? 하나도 안 맞았잖아.”
“……!”
맞추지 못했다.
네 발의 화살 중, 한 발도 명중은커녕 스치지도 못했다.
정확히는 요한이 그 모든 화살들을 터무니없는 속도로 순식간에 피해 버린 것이었지만.
하지만!
‘그게 전부인 줄 아느냐, 놈!’
죠나단은 속으로 웃었다.
빗나간 그의 화살들이 새처럼 허공을 선회하여 요한의 후방을 노렸다.
죠나단의 화살이 가진 진짜 무서움은 바로 이것이었다.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는, 상대를 죽을 때까지 쫓아다니는 추적 화살 말이다.
그 순간.
턱.
요한은 손을 뻗어 죠나단의 얼굴을 한 손으로 덥석 그러쥐었다.
전광석화와도 같은 스피드에 죠나단은 별다른 대응조차 해 보지 못하고 요한에게 얼굴을 내주고 말았다.
“크아악!”
요한이 힘을 주자 부서질 것 같은 격통에 죠나단은 본능적으로 활과 화살을 버리고 두 손으로 요한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때였다, 요한이 웃으며 죠나단을 이죽인 건…….
“왜, 내가 화살보다 느릴까 봐? 그럼 한번 시험해 볼까? 네가 쏜 화살이랑 나, 누가 더 빠른지.”
“……!”
파지직, 콰릉!
요한과 죠나단을 품을 번개 줄기가 긴 꼬리를 그리며 숲을 질주했다.
그리고 그 뒤를 네 발의 화살들이 안간힘을 쓰며 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리는 점점 벌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 이외에 공격할 수단이 남지 않은 결국 죠나단은 한 발의 화살에 모든 힘을 집중하여 조종했다.
‘이거라면……!’
그 순간!
씨익.
요한은 면갑 안에서 입꼬리를 말아 올리더니 그대로 죠나단을 자신의 뒤쪽으로 던져 버렸다.
“아, 안…….”
푹!
그렇게 죠나단은 요한의 뒤를 쫓아오던 자신의 화살에 그대로 배가 관통되어 땅바닥을 볼썽사납게 나뒹굴었다.
“커헉! 사, 살려 줘! 제발…….”
죠나단은 요한이 다가오자 엉금엉금 기어서 그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얼마나 구멍이 크게 뚫렸는지 그가 기어온 자리로 피와 짓이겨진 내장 조각들이 흘러 나왔다.
요한은 그런 죠나단의 앞에 쭈그려 앉더니 그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너는 참 한결같은 놈이다. 허접한 실력도 그렇고 쓰레기 같은 실력도 그렇고 어떻게 지금이랑 그때랑 변함이 없냐? 운 좋게 바람의 마나를 각성했다고 거기서 안주하고 게으름을 피우니까 이 꼴이 나는 거 아니야, 이 멍청한 새끼야.”
“너, 너…… 도대체 누구…….”
“나?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악마다, 새끼야.”
서걱!
요한은 그렇게 죠나단의 수급을 챙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