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43화 (43/150)

43. 역지사지

“놈을 막아!”

“씨발, 보이지도 않는 놈을 무슨 수로……!”

서걱, 촤아악!

번개가 춤을 출 때마다 성벽 위에서는 피바람이 불었다.

아래쪽에서 교대를 기다리던 병사들도 이변을 깨닫고 올라오기 시작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무, 무슨…….”

“그사이에 전멸했다고?”

전력을 다해서 계단을 뛰어온 병사들은 성벽 위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처참한 시체들과 그 사이에서 홀로 고고하게 서 있는 침입자를 흔들리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파지직, 파직……!

“너희가 올래? 내가 갈까?”

“이런 미친……!”

요한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병사들을 상대로 마주 쇄도했다.

계단을 타고 질주하며 양손에 든 쌍검을 휘두르는 요한.

그런데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르고 위협적이었는지 검의 잔상이 여러 개로 보일 정도였다.

그 화려한 칼춤에 병사들의 사지가 어이없이 날아가고, 목이 떨어지고, 찢긴 내장과 핏물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치 갈려나가듯 요한이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그와 마주섰던 병사들은 순식간에 인간에서 인간이었던 고깃덩어리로 변해 쏟아질 뿐이었다.

“미, 밀지 마! 밀지 말라고! 썅!”

“아, 안 돼……!”

성벽 위로 통하는 계단은 폭이 좁고 길었다.

그러다 보니 상황을 모르는 뒤쪽에서는 올라가기 위해 기를 쓰고 앞사람을 밀었다.

반대로 앞쪽에서는 눈앞의 동료가 갈려 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뒤쪽으로 기를 쓰며 도망갔다.

그 결과가 아비규환의 참상이었다.

“으아악!”

더러는 요한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3층 건물의 옥상 높이와 맞먹는 계단에서 뛰어내리는 놈들도 있었다.

운이 좋은 놈들은 두 다리가 부러지는 것으로 끝났지만 가죽 갑옷이라도 무게가 상당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병사들이 머리가 깨지거나 목이 부러져 목숨을 달리했다.

뒤에서 올라오던 병사들은 앞에 있는 동료들이 계단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신들의 코앞에 요한이 다가오면 그들의 행동을 십분 이해하고 따라 했다.

요한의 검에 걸려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느니 깔끔하게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후우…….”

그렇게 계단을 내려와 땅에 도착한 요한이 참았던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지옥의 마왕 그 자체였다.

그가 지나온 성벽 위부터 계단까지는 아직 뜨거운 사람의 피가 흥건히 흘러내리고 있었고, 인간이었을 끔찍한 잔해들이 흥건하게 남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요한의 갑옷은 처음부터 핏빛이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처음의 색을 찾기 어려웠다.

“으으으…….”

“대, 대장! 어떡하죠?”

“어떡하긴 뭘 어떡해? 놈을 죽여야지!”

뒤늦게 도착한 영주와 병사들이 서둘러 요한을 포위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만 봐서는 도대체 누가 누굴 포위한 것인지…….

잔뜩 겁에 질린 병사들과 말뿐인 영주를 가볍게 무시한 요한은 성문의 개폐를 담당하는 병사에게 다가가 한마디를 건넸다.

“열어.”

“예? 그, 그게…….”

촤악!

툭, 데구르르…….

파지직, 파직!

영주의 눈치를 살피던 병사는 그 순간, 요한이 휘두른 수도(手刀)에 머리가 날아가 땅을 뒹굴었다.

“열어.”

“예, 옙!”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옆에 있던 병사에게 똑같은 요구를 하자 병사는 주저 없이 요한에게 거수경례를 올리더니 서둘러 크랭크를 돌리기 시작했다.

“저런 미친! 저 미친놈을 막아!”

영주가 악다구니를 지르자 궁병들이 크랭크를 돌리는 병사를 향해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흐익!”

하지만…….

파지직!

요한이 순식간에 그의 앞을 가로막고 뇌전의 마나를 끌어 올리자 날아오던 화살들이 그의 주변에서 거짓말처럼 멈춰 섰다.

“저, 저게 무슨…….”

“화살이 허공에서 멈췄다고?”

영주와 병사들이 믿지 못할 사실에 기겁하며 입을 벌리는 사이, 요한은 병사를 슬쩍 돌아보며 자연스럽게 명령했다.

“뭐 해. 계속 돌려.”

“아, 옙!”

병사는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다시 크랭크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사이, 요한은 자신이 받은 선물을 다시 그들에게 돌려주었다.

푸푸푸푸푹!

“커억!”

“으아악!”

“저, 저런 괴물을 어떻게 상대하라고…….”

스윽…….

병사들은 영주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눈앞의 괴물을 이길 만한 가능성이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불충한! 감히 적을 눈앞에 두고 도망치는 병사가 있다면 가장 먼저 죽을 것이다!”

“아…….”

기사 하나가 슬금슬금 도망치던 병사 한 명을 골라 무섭게 소리치며 검을 내리쳤다.

그렇게 도망치려던 병사가 목숨을 잃자 결국 진퇴양난에 빠진 그들은 눈을 질끈 감고 요한을 향해 달려드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한의 검에 자비는 없었다.

자신에게 무기를 들고 덤비는 적들은, 병사가 되었든 기사가 되었든 남김없이 도륙했다.

파지직, 콰릉!

푸른 번개가 사방을 활보하자 병사들의 비명 소리와 기사들의 사지가 허공을 유영했다.

그 자리에 드리운 짙은 죽음의 그림자와 절망이 점점 더 영주를 잠식했다.

“이,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이럴 수는 없어. 제발 꿈이라면 깨어 다오! 제발……!”

영주는 기사들과 병사들이 순식간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현실을 부정했다.

이건 악몽이라고, 꿈일 거라고…….

하지만 자신의 목에 차갑고 날카로운 칼날의 감촉이 느껴졌을 때, 그는 현실을 받아들이고는 무릎을 꿇고 요한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사, 살려 주시오! 내가…… 내가 어리석었소! 목숨만 살려 준다면…….”

서걱.

목숨을 구걸하는 영주의 목을 간단히 그어 버린 요한이 마지막으로 크랭크를 돌리던 병사까지 처리했다.

이것으로 자신을 직접 목격한 적들은 모두 죽인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임무를 마친 요한이 고개를 돌리자 때마침 완전히 개방된 성문을 통해서 무장한 엘프의 전사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전사들은 흩어져 동포들을 해방하라!”

“이변을 눈치채고 도망치려는 놈들도 있을 것이다! 한 놈도 놓치지 말고 가능한 많은 동포들을 구해 내는 거다!”

“예!”

전력을 온존한 엘프 전사들이 사방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고생하셨습니다, 알파 경.”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는데 설마 이렇게 완벽히 성공할 거라고는…….”

요한을 발견하고 그에게 달려 온 두나스와 도셉의 얼굴에 어울리지 않은 홍조가 피어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들뜨고 흥분된 기분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한 탓이겠지.

평소 어떤 일에도 엄격하고 진지한 그들이었기에 두 사람을 알고 있는 지인들이 봤다면 눈을 의심했을 지도 모르겠다.

“말했잖아. 이 정도 능력도 없이 숲의 보물을 얻기 위해 찾아오지는 않았을 거라고. 그나저나 전사들은 괜찮겠어? 서비스 차원에서 조금 더 힘을 보태 줘도 상관없는데 말이야.”

“충분하오. 이 뒤는 우리에게 맡겨 주시오. 전사들도 그간의 분노와 설움을 쏟아 낼 기회가 필요하니 말이오.”

두나스의 말처럼 노예 상단을 습격한 엘프 전사들은 지난날의 모든 감정을 남김없이 살대에 걸어 쏘아 내며 노예 상인들과 사냥꾼들을 역으로 사냥했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큰일 났습니다, 단주님! 엘프들이 습격했습니다!”

“뭐? 그게 무슨 개소리야? 여기가 어딘데 엘프들이 쳐들어와?”

노예 상인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제야 그는 눈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밤하늘을 새처럼 누비는 엘프들과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화살 세례…….

노예 사냥꾼들과 용병들은 아비규환이었고 미처 대응을 하기도 전에 죽어나기 바쁜 모습들이었다.

“당장 놈들을 잡아! 놈들이 더 날뛰기 전에 잡으란…….”

퍽!

“단주님! 단주님이 당했다!”

현실을 부정하던 어느 노예 상단의 주인은 엘프의 화살이 이마에 박히고 나서야 비로소 현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반격해!”

“제 발로 찾아온 엘프 놈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마라!”

감이 좋았던 노예 상단에서는 늦게나마 노예 사냥꾼들과 용병들을 이용해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대는 노예 사냥꾼들과의 전투에 이골이 날대로 이골이 난 베테랑 전사들이었다.

아드레날린이 머릿속에서 마구 분출되는 탓인지, 그들은 그간의 피로도 모두 잊어버린 듯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빠르게 날아다니면서 노예 사냥꾼들과 상인들을 사냥했다.

“사냥이 끝났으면 서둘러 동포들을 해방하라!”

“해방된 동포들을 빨리 숲으로 대피시켜!”

섬멸이 끝난 노예 상단에서는 엘프들이 분주하게 감옥을 찾아다니며 노예들을 해방시켰다.

“엄마!”

“아가!”

평생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가족들, 친구들, 연인들과 재회한 엘프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오열하며 감정을 분출하였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여기서 이럴 시간이 없다. 감동의 재회는 숲으로 돌아간 뒤에 충분히 만끽하도록. 지금은 서둘러 움직여!”

“아, 네!”

해방된 엘프들은 전사들의 호위를 받아 빠르게 관문을 탈출하여 숲으로 도망쳤다.

그렇게 해방된 엘프 노예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숲으로 이어졌다.

한편, 텅 빈 노예 상단을 찾은 요한은…….

“이야, 징글징글하게도 쌓아 놨네.”

요한의 눈이 금빛으로 반짝였다.

그의 눈동자가 금이 된 것이 아니라 창고마다 가득 쌓여 있는 금은보화가 그의 눈동자에 반사된 탓이었다.

주인 잃은 노예 상단의 재물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화려하게 발산하며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 그럼…….”

요한은 감옥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엘프 노예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예 상인만큼 당연히 인간을 비롯한 소수의 아인종 노예들도 감옥에 갇혀 있었다.

“지금부터 너희를 해방시켜 주도록 하겠다. 돌아갈 곳이 있는 녀석들은 돌아가고, 돌아갈 곳마저 없는 녀석들은 나를 따라와라. 풍족하게 살 수는 없어도 부족함 없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마.”

해방된 노예들은 요한의 말에 따라 돌아갈 자들이 있는 노예들은 요한에게 감사를 표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예들이 이 자리에 남았다.

돌아갈 고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노예 사냥꾼들이 마을을 습격하여 사람들을 납치하는 과정 중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고향을 불태우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도망쳐도 돌아갈 곳이 없게끔 만들어 아예 도망칠 의지를 꺾어 버리는 것이다.

“저, 정말 저희들을 사람처럼 살 수 있게 해 주는 건가요?”

빠캉!

“……!”

발에 족쇄를 찬 어느 여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요한은 그녀의 족쇄를 부수면서 대답했다.

“물론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너희는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원한다면 언제든지 떠나도 좋다. 내 모든 걸 걸고 맹세하지.”

“와아아아!”

족쇄를 벗고 노예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며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요한은 이들을 동원해서 텅 빈 노예 상단을 순회함과 동시에 빠르게 재산들을 챙기며 노예들을 해방시켰다.

“가자!”

그렇게 요한은 천문학적인 재물을 마차와 수레에 가득 싣고 노예들과 함께 엘프의 숲으로 귀환하였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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