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45화 (45/150)

45. 지하 콜로세움

“바람 좋다.”

범선의 키를 잡고 능숙하게 조종하던 요한을 옆에서 윌라드가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범선을 조종하는 기술은 또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이거? 하다 보니 되던데?”

“그게 하다 보니 될 만한 기술이…… 아니, 됐습니다. 이제는 놀라는 것도 지칩니다.”

“이 몸이 좀 놀랄 게 많긴 하지.”

회귀 전, 제국의 영웅이었을 때는 군의 여러 인사들과 교류가 있었다.

제국 해군 기지에 방문했을 때 여러모로 배운 기술을 지금 써먹고 있는 것이었다.

‘심심풀이로 배웠던 건데 설마 이렇게 써먹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 하기야, 그때도 내 배움이 빠르다고 해군 제독이 기겁하긴 했지. 하여간 너무 유능해도 탈이라니까.’

“으하하하하!”

부족한 인력도 건장한 남성들을 이용하니 뱃멀미 때문에 써먹기는 힘들어도 어찌어찌 항해는 순조롭게 이어져 나갔다.

그렇게 며칠에 걸려 항해를 마친 범선은 드디어 목적지였던 드오드난 항구에 정박할 수 있었다.

“여기는…….”

“드오드난 항구라고, 벨로반 왕국 크림포드 백작가가 소유한 개인 섬이다. 애초에 휴양지로 써먹을 생각이었지만 어영부영 개발이 늦어지는 바람에 방치된 곳이지. 그래서 내가 백작가로부터 이 섬을 구입했고. 이제부터 이곳이 너희가 살아갈 곳이다.”

“섬은 제법 큰 것 같지만 나무랑 돌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요?”

한 사내가 불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의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비슷한 표정을 한 채 요한을 바라보았다.

“지금 당장은 그렇지. 난 여기에 대장간 단지를 만들 생각이다.”

“대장간 단지요?”

“그래, 대장간 단지를 만들면 꽤나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겠지. 난 너희에게 그 일을 부탁할 생각이다. 물론 임금은 제대로 지불하마. 또한 대장장이도 섭외할 생각이다. 너희는 그들로부터 기술을 배워라. 범선은 주말마다 한 번씩 운항할 생각이다.”

주말마다 배를 운항한다는 얘기에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게다가 대장간 단지가 조성되기만 한다면 일자리도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배를 타고 외출을 해도 좋고, 대장간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돈을 모아 떠나도 상관없다. 누누이 얘기하지만 너희는 이제 노예가 아니다. 떠나고 싶은 자, 남고 싶은 자, 너희의 의지로 생각해서 행동해라.”

와아아아아아!

사람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곁에 있던 윌라드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미소를 그렸다.

“이 모습을 가주님께서 직접 보셨다면 분명 도련님을 자랑스럽게 여기셨을 겁니다.”

“이 정도로 뭘. 이제 시작일 뿐인데.”

“그런데 만약 이곳 대장간에서 무기가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림자들에게 알려진다면 과연 피해가 없겠습니까? 저는 그게 걱정입니다.”

윌라드의 걱정도 일리는 있었지만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계획대로 진행된다고 해도 이곳이 제 기능을 하는 건 좀 더 미래의 일이야. 그리고 그때쯤이면 이미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 있을 테니까 알아도 상관없어.”

“그렇군요.”

“그러니까 당분간 이 사람들을 부탁할게, 윌라드.”

“당분간 허리 두들길 틈도 없겠군요. 허허허!”

윌라드는 기분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 * *

윌라드에게 뒷일을 맡기고 구르칸 산맥으로 돌아온 요한이 가루칸과 재회했다.

“그래, 필요하다던 준비물은 잘 챙겨 왔고?”

“물론.”

요한은 품속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 가루칸에게 보여 주었다.

상자의 내용물을 확인한 가루칸이 코를 벌름거리더니 군침을 삼켰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먹음직스러운 냄새구먼. 그런데 대체 이게 뭔데?”

“정령의 눈물이라고. 엘프들의 보물이다. 정령수에서 천 년에 한 번 열리는 열매인데 죽은 사람만 아니라면 이걸 먹여서 전부 고칠 수 있지.”

“만병통치약이라는 건가? 고집스러운 엘프 놈들이 쉽게 그걸 내줬을 리는 없을 거고…….”

“그래서 고생깨나 했지.”

말과 상반되는 요한의 표정에 가루칸이 피식 웃었다.

“야, 이 자식들아. 내가 없는 동안 사고 치다 걸리면 돌아와서 뒈질 줄 알아. 교역로 주변 몬스터들 관리 똑바로 하고. 알겠냐!”

“예! 대족장! 걱정 말고 다녀오십쇼!”

“그래, 다녀오마.”

그렇게 요한과 가루칸은 오크 전사들의 배웅을 받으며 이테란으로 향했다.

* * *

아무리 엄격하고 대단한 도시라도 사람 사는 곳이라면 빛과 어둠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테란도 똑같았다.

일반적으로 수많은 양지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검문소가 있다면, 반대로 음지에서밖에 살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검문소 역시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저기가 그 범죄자 전용 검문소라고?”

“그래.”

가루칸이 가리킨 곳은 ‘13’이라는 숫자가 적힌 하수처리장의 입구였다.

이테란은 하수도 시설이 완비된 첨단 사막 도시로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동서부의 무역 거점지였던 것이다.

그 때문에 하수처리장의 입구에는 이곳을 통해 밀입국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적발하기 위해서 병사들을 세워 두었다.

물론 처음에는 본래의 뜻처럼 기능을 하였으나 돈 앞에 장사 없다고…… 결국 이런 식으로 변질된 것이었다.

“멈춰라!”

거대한 덩치를 가진 가루칸과 요한이 펑퍼짐한 로브에 후드를 눌러쓰고 얼굴에 면갑까지 착용한 상태로 다가오자 당연히 병사들이 그들을 멈춰 세웠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경계는 없었다.

오히려 물욕의 젖은 눈빛만이 번들거릴 뿐이었다.

“이곳은 일반인이 접근해도 될 곳이 아니다! 썩 꺼져라.”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러니 한번만 눈감아 주시오. 이렇게 부탁하리다.”

요한이 슬쩍 접근하여 묵직한 주머니를 건네자 두 사람의 경비병 중 상관으로 보이는 이가 주머니를 슬쩍 받아 확인하였다.

“크흠!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다음부터는 제대로 된 검역소를 통해 입국하도록. 그리고 만약 이 사실을 발설할 시에는 네놈들도 무사할 테니 그리 알고.”

“여부가 있겠소이까. 고맙소이다.”

요한은 경비병이 건네준 종이를 받아 그들이 열어 준 문을 통해 하수도로 들어섰다.

“그건 뭐냐?”

“하수도 지도.”

요한이 건네받은 것은 하수도 지도였다.

거기에는 13번 하수도 출구에서 비밀 입구로 이어지는 길이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하여간 인간 놈들이란……. 돈이면 다 되는구먼?”

“오크들이라고 별수 있을 거 같냐? 세상에 나와서 1년만 살아 봐라. 다 똑같은 놈들이지.”

“그런가?”

“그런 거다. 자아와 지혜를 가진 존재라면 종족을 막론하고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게 욕심이니까. 그 욕심의 상징 같은 게 바로 돈이고.”

두 사람은 지도를 의지하여 하수도를 걸었다.

하수도 자체는 미로처럼 복잡하고 어지러워서 지도에 의지해도 제대로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제대로 된 지도라기보다는 약도에 가까웠으니까.

“우라질! 언제까지 더 가야 되냐? 이러다 내 코가 먼저 썩겠네!”

“좀만 참아. 거의 다 왔으니까. 아, 여기다.”

요한은 지도에 표시된 곳에 도착하여 적혀 있는 대로 오른쪽에 살짝 색이 짙은 블록을 꾸욱 눌렀다.

그러자 놀랍게도 살짝 들어갔던 블록이 제자리를 찾으면서 천장에 구멍이 생기며 줄사다리가 내려오는 게 아닌가?

휙! 후웅!

하지만 두 사람은 내려온 줄사다리가 무색하게 제자리에서 가볍게 점프하는 것만으로 천장의 구멍을 가볍게 통과할 수 있었…….

“응……?”

“뭐 하냐?”

“아, 잠깐만 있어 봐. 구멍이 너무 작은 걸 나더러 어떡하라고? 끄응!”

꾸드득, 콰직!

덩치가 너무 컸던 탓에 구멍에 끼인 가루칸이 바닥에 손을 짚고 힘을 주자 바닥이 뜯어지면서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

덕분에 가루칸의 허리에는 뜻밖의 허리띠가 생겨났지만.

“뭐야, 이건.”

허리를 옥죈 바닥의 일부를 손으로 뜯어 낸 가루칸은 그제야 주변에서 놀라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는 의문의 복면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는 또 집안이네? 위장 아지트 같은 건가?”

“그렇겠지. 길거리 한복판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면 사람들도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요한의 시선이 2층에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던 의문의 사내에게 향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나 태연한 분위기를 보았을 때 상당한 실력을 가진 인물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은 보통 현장 책임자인 경우가 많았다.

“하나만 물어보자. 여기서 지하 콜로세움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지하 콜로세움? 보아하니 손님처럼 보이지는 않고…… 투사가 목적인가? 그런 거라면 내가 적당한 중개인을 소개해 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

“됐으니까 어디 있는지나 말해.”

“때마침 오늘이 경기 날이네.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가. 그곳이 지하 콜로세움이니까.”

그의 말처럼 민가로 위장한 아지트를 벗어나자마자 어딘가로 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보였다.

“진짜네? 무슨 강물도 아니고…….”

“따라가자.”

두 사람은 행렬에 몸을 맡기며 조용히 지하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 * *

“오늘도 태양신 라스의 축제에 참여해 주신 신도님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오늘의 메인이벤트에 앞서 엄정한 과정을 거쳐 선발된 투사들의 배틀 로열을 시작하겠습니다!”

지하 콜로세움의 위치는 놀랍게도 태양신 라스의 신전 바로 아래였다.

지하 콜로세움에는 이테란의 백성들 외에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시작 전부터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가루칸은 입구 한쪽에 기대어 서서 콜로세움 경기장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여기 신은 저렇게 비리비리한 놈들을 가둬 놓고 서로 죽이는 걸 좋아하나? 취향 참 특이하네…….”

“이건 신의 취향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취향이겠지. 신은 허울 좋은 변명 같은 거고.”

“그럼 신의 이름을 모독하는 거라고? 이런 천벌받을 것들!”

스스로가 대전사임과 동시에 오르크를 섬기는 대족장이기도 한 가루칸에게는 그야말로 천인공노할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와아아아아아!

그사이, 배틀 로열이 시작되자 관객들의 함성이 경기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경기가 시작되고, 족쇄가 해제되자 마치 미친개들처럼 투사들이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한 번에 죽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투구와 급소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방어구만 제외하면 거의 알몸이나 다름없는 투사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그저 검을 휘둘러 상대방의 몸을 베고 피를 뿌리는 것만이 지상 과제인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피가 낭자하며 잘려 나가는 투사들의 팔다리를 볼 때마다 더욱 더 큰 환호성을 내지르며 열광했지만 가루칸은 아니었다.

“이런 미친 잡놈들이……! 저건 투사도 뭣도 아니다! 약으로 정신을 조종해 놓고 싸움도 모르는 애송이들에게 검을 쥐여 준 것뿐이지 않은가!”

“그게 이 지하 콜로세움이다, 가루칸. 그걸 보고 싶어서 이 많은 사람들이 여기 모인 거고.”

“그걸 말이라고……!”

소리치던 가루칸은 요한의 모습을 보고 말을 삼켰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차갑게 타오르고 있는 요한의 분노가 그에게도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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