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47화 (47/150)

47. 번개 VS 불

“너 뭐야.”

요한이 딸을 언급한 순간, 사내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그것만으로도 태산보다 무거운 기세가 요한의 어깨를 짓눌렀다.

하지만…….

“분위기 살벌하구먼. 걱정 마. 네 딸, 마소연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얘길 하려고 찾아온 거니까.”

가볍게 자신의 기세를 흘려 넘기는 요한의 모습에 사내의 눈매가 좁아졌다.

게다가 정체불명의 인물이 딸의 이름뿐만 아니라 딸의 병까지 알고 있자 사내의 경계심이 한층 더 강해졌다.

“평범한 놈이 아니구나. 내 딸의 이름과 병에 대해서는 어디서 들었지?”

“어차피 사실대로 얘기해 봤자 믿어 주지도 않을 거 아냐. 아무튼 내가 얘기해 줄 수 있는 건 한 가지다. 지금 그대로 네 딸을 방치해 두면 마소연은 틀림없이 죽어. 지금 네가 딸을 위해 이런 쇼를 하면서까지 의탁하고 있는 압둘라는 분명 능력 있는 사람이지만 마소연의 병을 고쳐 줄 순 없다는 얘기다.”

압둘라는 이곳 지하 콜로세움의 주인이자 이테란의 지도자였다.

자신이 그에게 의탁한 이유도, 콜로세움의 투기자로 싸우는 이유도 모두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라는 사실은 자신과 압둘라를 제외하면 극소수만의 비밀이었다.

사내의 시선이 슬쩍 주최석에 앉아 있는 압둘라에게 향했다.

압둘라는 그의 시선이 느껴지자 그가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미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하긴, 압둘라가 이런 짓을 벌여서 얻을 이득이 없지. 그렇다면…….’

“난 그것보다 내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는 네놈의 가면 속 얼굴이 더 궁금하군.”

말을 하는 도중에도 사내의 기세가 거침없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괴물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한계를 모르고 뿜어져 나오는 기세에 요한도 질릴 정도였다.

요한은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하아…… 그렇겠지? 하기야, 내가 너라도 갑자기 나타나 이런 얘길 하는 나를 믿어 주진 않겠지.”

“걱정 마라. 네놈의 진짜 속셈이 무엇인지 알아낼 방법은 무궁무진하게 많으니까.”

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내의 신형이 화염을 분출하며 엄청난 속도로 요한과의 거리를 지워 버렸다.

요한과의 거리를 좁힌 사내는 곧장 그의 복부를 향해서 주먹을 올려붙였다.

그때까지 요한은 반응조차 없었다.

‘죽지는 않겠지만 죽을 만큼 고통스러울…….’

파지직.

“……!”

쩌엉!

엄청난 굉음이 터지고…… 관객들이 부릅뜬 눈으로 경기장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개중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벌어진 입에서 침을 흘리는 자들도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마왕이…….”

“그보다 저건 뭐지?”

어느새 요한과 십수 미터나 떨어진 곳에 쓰러져 있던 사내는 자신의 왼쪽 뺨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통증과 함께 상체를 일으켜 요한을 쳐다보았다.

파지직, 파직!

사람들과 사내의 눈에 푸른 뇌전이 감돌고 있는 요한의 모습이 보였다.

화염이 몸을 감싸는 사내의 모습도 신비롭고 놀라웠지만, 뇌전이 거칠게 감싸 안은 요한의 모습은 그 이상의 신비와 전율이 느껴졌다.

‘설마…… 뇌기(雷氣)인가?’

사내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서대륙에서 뇌전의 마나라 불리는 뇌기는 동대륙에서도 결코 흔하게 볼 수 있는 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4대 사조이신 뇌천마성께서 뇌기를 다루어 천하를 발아래에 두셨다지. 설마 그 힘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이렇게 보니 자신이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반격을 당한 것도 수긍이 갔다.

뇌기를 다루는 자의 움직임이라면 그야말로 이해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군. 뇌기를 다루는 자였나? 하면 나 역시 조금 더 진심으로 임하도록 하지.”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그 순간, 엄청난 폭염을 동반하며 쇄도한 사내의 주먹이 요한에게 뻗어 나갔다.

다만, 지금 내뻗는 주먹은 미노타우로스나 방금 전에 보여 주었던 평범한 주먹질이 아니었다.

화르륵!

주먹을 겉돌던 화염이 순식간에 주먹을 감싸 회전하며 응축되었다.

그 파괴력은 성벽도 일격에 부순다고 해서 화폭벽쇄권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초절정의 무공을 펼친 것이다.

하지만!

콰앙! 파지직, 콰릉!

“전 마교 소교주인 마자현이 괴물같이 강하단 것 정도는 알고 있다고. 그러니까 이쯤에서 그만하면 안 될까?”

“8할 공력의 화폭벽쇄권을 단순한 주먹질로 상쇄해 버리는 놈이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화르륵! 파지직!

요한과 마자현의 맞닿은 주먹에서는 폭염과 뇌전이 미친 듯이 뿜어져 나오며 서로의 기세를 먹어치웠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콰아아아!

마자현이 불의 마나를 쏟아내며 폭염과 함께 쇄도하면 요한도 마찬가지로 뇌전을 방출하며 마자현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의 공방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말로도 표현이 부족했다.

마자현의 불은 거친 파도였다.

그가 주먹을 휘두르고 일장을 내밀 때마다 불의 파도가 휘몰아치며 요한을 집어삼켰다.

그에 대응하는 요한은 번개의 작살이었다.

뇌전을 갑옷처럼 몸에 두르고 거칠게 휘몰아치는 불의 파도를 창처럼 돌진하여 부수며 마자현에게 무서운 속도로 쇄도하였다.

파지직! 콰릉, 콰콰쾅!

관객들이 보기에는 불바다 속에서 미친 듯이 번개가 치며 수십이 넘는 요한의 잔상이 아른거리는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게 관객들의 한계였다.

“으아악! 여, 여러분! 대피하십쇼! 하지만 저는 남겠습니다! 왜냐고요? 이건 목숨이 열 개 있어도 전부 걸 가치가 있는 신들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미노타우로스도 낑낑대던 20m 깊이의 경기장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뇌전과 폭염은 당장이라도 끓어 넘칠 것 같은 냄비처럼 한계 상황에 다다라 있었다.

이대로 두 사람의 기운이 넘친다면 관객들은 불에 타 죽거나, 번개에 타서 죽게 되겠지.

그러나 도망치는 관객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모두가 이 초인들의 싸움에 빠져 혼이 나간 것이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신들의 싸움도 끝은 다가오고 있었다.

후웅! 콰우우우우!

마자현이 내지른 주먹에서 발출된 오러가 요한을 크게 빗겨나며 벽을 때렸다.

오러에 적중당한 벽은 폭발하며 흐물흐물 녹아 내렸지만 요한에게는 어떤 타격도 없었다.

파지직!

“왜 그래? 처음보다 많이 느려진 것 같은데.”

콰우우우우!

뒤에서 들려온 요한의 목소리에 마자현이 빠르게 선회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의 주먹을 타고 넘실거리는 화염이 요한을 습격했지만 이미 요한은 그 자리에 없었다.

“혹시 몸이 저릿저릿하고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아서 그래?”

후웅!

마자현은 다시 한번 요한의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무공을 펼쳤다.

하지만 뇌전의 마나가 압축된 요한의 주먹은 마자현의 속도와 파괴력을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쩌엉!

결국 자신보다 먼저 날아오는 요한의 주먹을 가까스로 방어한 마자현.

그 순간, 그의 인상이 구겨졌다.

파지직, 파직!

‘칫……!’

요한의 주먹을 타고 몸속으로 침투하는 뇌기가 또다시 마자현의 몸속에 축적되었다.

사실 운기행공 한 번이면 어렵지 않게 걸러 낼 수 있었지만 문제는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럴 여유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거 계속 쌓이면 골치 아플걸.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크윽……!”

요한의 경고에 마자현이 이를 깨물었다. 사실 자신의 화기(火氣) 또한 직접적인 피해 외에도 상대방의 살과 뼈를 태울 수 있었지만 요한에게는 효과가 없었다.

뇌전의 마나가 불의 마나의 열기를 상쇄시켰던 탓이다.

‘자연지기의 으뜸이라 칭해지는 오행기(五行氣)의 왕이 뇌기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군. 아니, 그 능력만큼이나 다루기 어려운 뇌기를 제 수족처럼 다루는 이 사내가 순수하게 강한 것이다!’

“이쯤 했으면 움직이고 싶어도 못 움직이겠지. 그러니까 잘 들어. 난 딱히 죽고 죽이고 싶은 싸움을 하기 위해서 온 게 아니야. 아까 얘기했다시피 네 딸, 마소연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치료제를 내가 가지고 있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지? 설마 아픈 딸을 데리고 정체도 모르는 네놈에게 무릎을 꿇으라는 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도 없는 치료제란 걸 믿고?”

그 말에 요한은 피식 웃더니 품속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들었다.

상자를 오러로 보호하고 있는 덕분에 다행히 불에 타지 않았다.

“이 안에 내가 말한 치료제가 그 안에 들어 있다. 네 딸의 불치병조차 고칠 수 있는 만병통치약 말이야.”

“그게…….”

그제야 상자를 보고 눈에 띄게 동공이 흔들리는 마자현에게 요한이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이 약으로 네 딸이 깨끗하게 낫는다면 그때 내 밑으로 들어와라. 마자현, 그 약속만 해 준다면 이 약은 네 것이다.”

“구두로 한 약속만 믿고 그 귀한 약을 먼저 주겠다는 말인가?”

요한의 제안에 마자현의 미간이 좁아졌다.

요한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구하기 힘든 귀한 치료제일 텐데, 구두 계약만 믿고 넘겨 준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한은 이에 대해 자신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 미친 제안은 생각도 안 했을 거야. 하지만 딸을 지키겠다는 아내와의 약속을 위해서 권력도, 지위도, 명예도, 재산도, 모든 걸 포기한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남자의 약속이라면 얘기는 다르지.”

“……!”

마자현은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 요한이 한 얘기는 압둘라도 모르는 자신의 속사정이었다. 심지어 딸아이조차도…….

적어도 이 대륙에서 저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자신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지금 그게 중요하냐? 중요한 건 네 딸을 살릴지 말지 아니야?”

“…….”

깊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딸아이였다.

‘그 아이를 고칠 수만 있다면…….’

“좋다. 소연이의 미소만 되찾을 수 있다면 네가 악마든 악귀든 뭐가 됐든 상관없겠지. 내 모든 충심을 너에게 바칠 것을 맹세하마.”

“소연이의 미소를 되찾게 된 걸 미리 축하하지.”

요한은 상자를 던져 주며 말을 이었다.

“그 안에 든 하얀 사과 같은 걸 전부 소연이한테 먹여. 갈아서 먹여도 상관은 없지만 하나를 통째로 먹여야 효과가 나오니까 명심하고. 그리고 소연이가 완전히 회복되면 아이와 함께 크림포드 백작가의 상단을 찾아가. 미리 얘기는 해 뒀으니까 소연이는 백작가에서 책임지고 잘 돌봐줄 거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은?”

“나 대신 그림자 속에 숨어서 내 가족들을 지켜 줘. 네가 지켜 준다면 나도 가족 걱정 안 하고 제대로 한판 벌려 볼 수 있을 것 같거든.”

한편, 두 사람의 모습을 관전하던 관객들과 사회자는 대체 무슨 상황이 일어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마자현이 만들어 놓은 불구덩이 때문에 두 사람의 목소리는 고사하고 모습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번쩍!

“어이쿠야! 갑자기 경기장에서 빛이……!”

불구덩이 속에서 번쩍하고 터져 나온 빛은 긴 꼬리를 그리며 순식간에 경기장을 벗어났고 뒤늦게 사람들의 멍한 시선이 그 뒤를 좇았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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