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53화 (53/150)

53. 프로 도굴꾼

“그런데 속하는 황자 전하들 중에 뇌전의 마나의 주인…… 아바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절대 전하의 정체가 궁금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만한 힘을 가진 전하께서 왜 이런 수고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바타라면 황제 폐하께서도 귀히 쓰실 텐데요?”

“적당히 강한 힘이었다면 나도 그랬을 거다. 하지만 이 힘은 강해도 너무 강해. 그리고 쓸데없이 강한 힘은 쓸데없는 적을 만드는 법이지. 나처럼 정실이 아닌 측실의 소생은 괜히 밉보였다간 한순간에 저승길이란 말이지.”

“아…….”

가니온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튀어나온 돌이 정 맞는다.

이 말은 알고 있으면서도 지키기가 굉장히 어렵다. 뛰어난 재능일수록 사람은 그것을 드러내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분은 다르다!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고, 송곳니를 숨기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분이시다! 목소리만 들어 보면 아직 스무 살이 조금 넘은 정도지만 그 재목은 황제의 그릇이 틀림없어!’

“가니온 네가 생각하기에 현재 황위에 가장 가까운 소드 아너는 누구라고 생각하나? 기탄없이 말해도 좋다.”

“그것이……. 아무래도 황실근위대장직을 맡고 계신 소드 아너 전하가 아닐는지요?”

“헥토르 형님 말이지?”

“그, 그건……!”

실명을 언급하자 크게 당황하는 가니온의 모습에 요한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저었다.

“괜찮아. 괜찮아. 다른 소드 아너는 몰라도 황실근위대장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리고 내 생각도 그래. 특히 형님은 자신이 모르는 원소의 마나 사용자들을 누구보다 탐내고 계시지.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든 자신의 사람으로 회유해. 무슨 수를 써서든 말이야.”

요한은 등받이에 몸을 깊이 묻으며 말을 이었다.

“만약 원소의 마나를 다루는 강자들만으로 이루어진 부대가 형님 산하에 탄생하게 된다면…… 거의 황위는 확정이라고 봐야겠지.”

“만약 전하의 존재가 헥토르 전하께 드러나게 된다면 헥토르 전하께서 전하를 포섭하려 들겠군요.”

“그렇겠지. 그게 안 되면 죽이려고 무슨 수든 쓸 사람이고.”

“그래서 이곳에서도 되도록 스스로의 능력을 숨기신 것이로군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전하께 민폐만 되는 행동을 했으니…….”

가니온이 후회하자 요한이 피식 웃었다.

“그 민폐가 결과적으로 너를 살리고 네 능력을 나에게 증명하는 셈이었으니 독이 약이 된 셈이라고 해야겠지. 아무튼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가니온.”

“교역로에 관한 건 말씀이시지요?”

“믿어도 되겠지?”

“염려 마십시오, 전하. 제 모든 걸 걸고서라도 반드시……!”

스르릉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빼 들더니 기사 서임식을 흉내 내듯 검면으로 그의 양쪽 어깨를 살짝 가져다 댔다.

“지금부터 너와 나는 한 배를 탄 동지다. 내 성공이 곧 너와 네 가족들의 성공임을 명심하도록.”

“물론입니다. 전하! 속하, 전하의 수족이 되어 어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렇게 요한이 조용히 사라지자 가니온은 그 즉시 귀족파 귀족들에게 소집령을 내렸다.

* * *

다음 날.

“뭐라? 알파의 구르칸 산맥 영주 인정을 허가해 달라고? 지금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구스터프 경?”

“어찌 전하의 어전에서 농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진심으로 드리는 간청이오니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허 참…….”

국왕 포라드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요한의 영토 인정을 가장 반대해야 할 파벌의 우두머리가 직접 찬성을 하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있나?

그 상황에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하이든도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걱정 마세요. 영지 인정에 관해서는 가니온 유스터프 공작과 합의를 봤으니까.]

늦은 밤, 외출을 다녀온 요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요한의 말이 사실인 것 정도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다만 그 방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지만…….

“경들의 생각도 가니온 경과 같은가?”

포라드의 시선이 귀족파 귀족들에게 향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통행세 감면 혜택을 왕국에 속한 모든 상단이 받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사옵니다. 전하.”

“한 번이라고는 해도 엄연히 희생자 없이 교역로를 운영한 것은 사실. 이는 분명 중하게 여겨보아야 할 점이라 사료되옵니다. 전하.”

“만약 교역로의 가치를 알아본 다른 왕국이 교역로를 알파 경의 영지로 인정하였을 때, 저희만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부끄러운 일이 아닐런지요, 전하.”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사실 물어보나 마나였다. 가니온이 결정했다는 건즉, 귀족파 전원의 결정이라고 봐도 무관했으니까.

다만 손바닥 뒤집듯이 거품을 물고 반대하던 어제와는 전혀 다른 귀족들의 모습에 포라드는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을 뿐이었다.

‘대체 어떤 마법을 쓴 건지 원…….’

“좋다. 하면 구르칸 산맥에서 우리 벨로반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토를 알파 경의 영지로 하사하겠노라. 다만 영지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정식 귀족으로 봉작하지는 않으나 명예 대공직에 그를 위임하노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명예 대공.

명예직이기 때문에 귀족으로서의 의무나 권한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대공이라는 직함 자체는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

짝짝짝짝짝……!

다만 하이든의 왕족파와 가니온의 귀족파 모두 요한의 명예 대공 위임을 축하하는 흔치 않은 진풍경을 끝으로 어전 조례는 파하였다.

가니온은 하이든과 함께 돌아가는 요한을 일별하며 어젯밤 일을 떠올렸다.

[한데 왜 하필이면 크림포드 백작입니까? 전하, 간과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그자는 자칫 제국의 암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는 인물입니다. 하루 속히 처리하시는 게…….]

[유연하게 생각하게, 공작. 제거하고 말살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야. 구르칸 오크 놈들처럼 적이라도 이용해 먹을 수 있는 건 최대한 이용해 먹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백작가의 신뢰를 얻어 놈들의 유통망을 내 손안에 독점한다면 그 가치가 어느 정도라 생각하나?]

가니온이 보기에 요한은 직계 황족들 중에서 가장 실리주의적인 황자가 아닐까 싶었다.

물론 그게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뇌전의 마나와 더불어 가장 큰 무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요한에 대한 가니온의 충성심은 더욱 깊어졌다.

* * *

그날 밤에도 요한은 가니온을 찾아갔다.

“잠시 자리를 비워야겠다.”

“좋은 일이신가 봅니다. 어쩐지 전하의 목소리가 들떠 있으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주제넘은 참견이라면 죄송합니다, 전하.”

가니온은 상석에 앉은 요한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어앉으며 고개를 조아리자 요한이 피식 웃었다.

“눈치가 빠르군. 내가 찾던 보물들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보고받았다. 찾기는 찾았지만 아무래도 그것들을 손에 넣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 말이지. 그동안 네가 해 줘야 할 일들이 있다.”

“어떤…….”

“뮤탄 왕국의 돌로레스 후작, 바그나 왕국의 모르갈 공작, 죤타나 왕국의 빈센트 백작 등, 현재 구르칸 산맥에 국경을 걸친 남부 왕국의 그림자들을 움직여 여론을 조성해라. 내가 구르칸 산맥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말이야. 통행세 감면에 대한 조건은 이 나라와 똑같이 맞춘다 하고.”

지금 요한의 입에서 나온 이름들 모두 각 나라에서 최고 요직을 차지한 그림자들의 이름이었다.

물론 가니온도 그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들 역시 가니온을 알고 있었다. 간부급 그림자들은 서로를 감시하기 위해 서로의 정체를 파악하고 주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녀석들이 전하의 뜻대로 움직이겠습니까? 자칫 잘못하면…….”

“그 정도 리스크도 없이 대업을 이룰 생각이었나? 녀석들에게 전해. 통일 제국을 이룬 뒤, 각 나라의 제후가 되고 싶다면 나를 지지하라고. 남부 왕국의 방계 혈족은 어차피 방계 중에서도 세가 약한 녀석들이다. 권력의 중추에 설 수 있다는 제안을 거절할 놈은 아마 없을 거다.”

“하지만 전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애초에 제후 직은 직계 황족들의 자리인데 남부 왕국의 제후 자리를 모두 방계로 임명한다면 큰 반발이…….”

파지직, 파직!

그 순간, 요한은 자신의 손에서 뇌전을 피워 올리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때는 어차피 내가 황제에 오른 후다. 이 힘과 황제의 권력 앞에서 다른 형제들이 아무리 짖어 봤자 결국 개 짖는 소리일 뿐. 나는 나를 적대하는 형제들보다 나에게 충성하는 수하들이 수백 배는 더 소중하다. 가니온.”

“옳으신 말씀이옵니다! 신 가니온, 전하의 명령을 반드시 수행하겠나이다. 만약 그럼에도 거절하는 놈이 있다면…….”

“놔 둬. 어차피 보고해 봤자 제 명을 단축하는 일이란 걸 자신들도 잘 알 테니 살고 싶다면 함구할 것이다. 다만 내가 황위에 오르면 그놈들부터 척결할 거란 것도 확실히 전하도록.”

“명을 받들겠습니다!”

* * *

사람들로 활기가 가득 찬 어느 시장에 때 아닌 소동이 일었다.

“거기 서!”

“너희 같으면 서겠냐? 븅딱들아!”

“이 개새끼가……! 잡히면 가죽을 벗겨 버린다!”

꺄아악!

한 남자가 일단의 무리에게 쫓기고 있었다.

남자는 시장에 몰린 구름 같은 인파를 억지로 비집고 헤쳐 가며 전력을 다해 도망치고 있었다.

말은 능구렁이처럼 해도 절박한 그의 표정은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증명해 주고 있었다.

‘카닐라, 이 빌어먹을 년이……!’

불안한 느낌에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깬 남자. 달콤한 하룻밤을 함께 보냈던 여인은 어디 가고, 눈을 떠 보니 징그러운 빚쟁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것도 모두 그의 귀신같은 위기 감지 능력 덕분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쯤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고 있었겠지.

하지만 그 운도 여기까지였던 모양이다.

‘개새끼들! 진짜 작정하고 왔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위기 감지 능력을 사용해 빚쟁이들이 매복하고 있는 곳을 미리 파악하고 그곳만 피해 도망쳐 다니는 것으로 지금까지 버텨왔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이었다.

엄청난 수의 빚쟁이들이 동료를 끌고 와 도주로란 도주로는 꽉 막고 있었던 것이다.

시선이 가는 곳마다 그의 감각이 경고를 외치고 있었으니 남자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미친 듯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에이, 씨부레!”

결국 남자는 경고가 그나마 약한 곳을 향해 전력으로 내달렸다. 그 정도라면 자신의 무력으로 충분히…….

퍽퍼퍼퍼퍽!

……해결하지 못했다.

빚쟁이들의 손에 붙잡혀 피가 떡이 되도록 처맞은 남자의 앞에 고리대금업자가 나타나 비열한 미소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어우, 이 미꾸라지 같은 새끼. 드디어 잡았네. 내가 말했지? 내 손에 잡히면 가죽 벗겨 버릴 거라고.”

“아휴, 형님. 성격도 급하시지. 제가 누굽니까. 저 프로 도굴꾼 블랑캅니다! 그깟 빚 정도는 왕릉 몇 개 발견해서 도굴하면 이자까지 몽땅 갚을 수 있다니까요?”

“그 프로 도굴꾼이었냐? 난 또 프로 노름꾼인 줄 알았지. 아니, 노름은 또 더럽게 못 하니 프로라고 하기는 그런가? 잔말 말고 혀 잘리기 싫으면 닥치고 있어. 이제부터 찬찬히 네놈 가죽을 벗겨 줄 테니까.”

“아니, 진짜 형님. 한 번만 믿어 주십쇼! 요새 쓸 만한 정보 하나가 들어와서 거기만 파 보고 아니면 그때 가죽 벗겨 가시라니까요? 형님! 형님!”

“뭐 하냐. 꽉 잡아라. 미꾸라지 놓칠라.”

“예, 형님!”

사채업자가 날카롭게 번뜩이는 단도를 가지고 블랑카에게 다가갔다.

따끔.

“흐익……!”

그의 단도가 블랑카의 살갗에 닿는 순간.

“그 손 좀 놔줄래? 내가 그 녀석한테 볼일이 있거든.”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