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54화 (54/150)

54. 버려진 던전

“어떤 새끼가 겁도 없이…….”

사채업자들의 대장 보보누는 골목 입구를 막아선 채 겁도 없이 자신들을 방해한 사내의 행색을 훑어보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베이지 색 로브에 후드를 깊게 눌러써서 정확히 얼굴을 확인할 순 없었지만 크게 경계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어차피 이 새끼를 찾아오는 놈들이야 빚쟁이 아니면 도박꾼일 게 뻔하지.’

숫자는 자신들이 많다. 보보누는 부하들을 믿고 당당하게 나섰다.

“좋은 말 할 때 갈길 가라. 지금 내가 엄청나게 기분이 안 좋거든?”

“나랑 반대네. 난 지금 엄청나게 기분이 좋거든. 그러니까 특별히 선택지를 줄게. 그냥 꺼질래? 뒈지게 처맞고 꺼질래?”

“저 미친놈이 돌았나? 뭐 해! 저 새끼 당장 내 앞으로 끌고 와.”

“예, 형님!”

보보누의 명령을 받고 깡패들이 요한을 향해 접근했다. 가소로운 살기를 풍기며 날붙이나 몽둥이를 꺼내 위협하는 것이 요한의 눈에는 마냥 귀여울 뿐이었다.

“미친놈은 매가 약이라던데 일단 좀 맞고…….”

퍽!

요한에게 가장 가까이 접근한 깡패가 몽둥이를 휘두르려는 순간, 요한의 주먹이 녀석의 몽둥이보다 한발 앞서 그의 턱을 올려붙였다.

후웅~ 우당탕!

훨훨 날아간 동료가 쓰레기 더미에 처박혀 나뒹굴자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깡패들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한 놈씩 붙지 말고 한꺼번에 덮쳐!”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요한은 달려들던 깡패들을 모조리 왼팔 하나로 개박살을 내 버렸다. 열댓 명의 깡패들이 곡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드러눕기까지 고작 10초가 채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부하들이 모두 한 순간에 당하자 보보누는 품속에서 칼을 꺼내 들며 요한을 위협했지만 덜덜 떨고 있는 몸을 봐선 영 가소롭기만 할 뿐이었다.

“너, 너! 네놈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냐? 날 건드리면 우리 큰형님께서 네놈을 찾아 반드시 복수…….”

“큰형님이라면…… 이거?”

요한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보자기 하나를 그의 앞으로 툭 던졌다.

땅에 떨어진 보자기가 느슨해지며 그 안에서 머리통 하나가 튀어 나오자 보보누가 기겁을 하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흐익!”

“그 녀석이 알려 주더라. 저 녀석이 이쯤 있을 거라고.”

머리통의 주인은 다름 아닌 보보누가 말한 큰형님이었던 것이다.

“사, 살려 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시키는 건 뭐든 다 하겠습니다!”

보보누는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목숨을 구걸했다. 방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말했잖아. 오늘 난 기분이 좋다고. 죽이지는 않을 거야.”

“그, 그럼!”

퍼퍼퍼퍽!

요한은 약속을 지켰다. 대신 보보누는 앞으로 평생 걷는다거나, 손을 쓸 수는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커헉…….”

자신에게는 끔찍한 악마나 다름없었던 보보누가 엉망이 된 몰골로 거품을 물고 쓰러지자 블랑카의 눈에 요한이 구세주처럼 보였다.

“오오! 신사님! 아니, 성자님! 목숨을 구해 주신 은혜, 평생 잊지 않고 성실히 사는 것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넙죽 고개 숙인 블랑카가 종종걸음으로 요한의 곁을 스쳐 지나가자 요한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어디 가려고?”

“네? 그, 그야 집에 가려고…….”

“내 말 못 들었나? 분명 너한테 볼일이 있다고 얘기한 것 같은데.”

‘그럼 그렇지…….’

요한의 말에 블랑카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요한도 빚쟁이나 도박꾼들이 고용한 사람일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저 진짜로 돈 없습니다! 돈이 정말로 있었으면 왜 이런 꼴을 당했겠습니까? 아 몰라, 차라리 그냥 죽이십쇼! 이런 개거지 같은 인생, 더 살아 봐야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진짜?”

“……살려 주십쇼. 제가 잠시 정신이 나갔던 모양입니다.”

요한이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주워 들자 그 자리에 허물어지듯 무릎을 꿇은 블랑카가 두 손을 싹싹 빌며 목숨을 구걸했다.

‘젠장, 보아하니 강짜가 통할 타입은 아닌 것 같고…….’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따라와. 나랑 같이 할 일이 있다.”

“예? 제가 할 줄 알는 거라곤 도박이랑 무덤 파는 것밖에 없는데요…….”

“그래, 그거.”

“……?”

블랑카의 얼굴에 의문이 생겼다. 자신이 보기에 요한은 도박과도, 도굴꾼과도 연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일이 성공한다면 네 빚을 모두 갚고도 남을 보수를 약속하지. 대신 도망치려 한다면 네 녀석의 다리를 분지른 다음, 널 찾는 도박꾼들이랑 빚쟁이들한테 넘길 테니까 그렇게 알아.”

“하아……. 넵.”

블랑카는 한숨을 쉬며 요한의 뒤를 따랐다. 아무래도 선택권은 없는 모양이었으니까.

* * *

“저기…….”

“알파다.”

“예. 알파 경, 혹시 도굴해 보신 경험은 있으십니까?”

“아니.”

용병 상점에서 도굴에 필요한 장비들과 비상용품 등을 신중하게 구입하던 블랑카의 질문에 요한이 답하자 블랑카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도굴이라는 게 말입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도박이랑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거든요. 도박도 패를 까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듯이, 도굴도 직접 무덤에 들어가 보기 전까지는 거기가 보물창고인지 먼지 구덩이인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저 같은 프로 중의 프로 도굴꾼이라도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어디서 좋은 정보를 듣고 저를 찾아오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보물창고임이 확실한 무덤은 없다는 말입니다. 아니, 애초에 그런 무덤이 있으면 지들이 갔지, 남을 주겠습니까? 제 말은, 만약 혹시라도 사기를 당하셨다면 그건 제 책임이 아니니 약속하신 보수는…….”

보수를 언급할 때 블랑카는 마치 고양이 앞에 쥐처럼 요한의 안색을 살폈다.

그 모습에 피식 실소를 터트린 요한이 그가 고른 장비들을 계산하며 대답했다.

“걱정 말고 네 일이나 잘해. 자식아.”

* * *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친 요한과 블랑카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던전이었다.

“여긴…….”

블랑카가 놀란 건 요한이 자신을 던전으로 데려와서가 아니었다. 도굴꾼이 무덤을 발굴하다 보니 그곳이 던전이었던 경우는 차고 넘쳤으니까.

아니, 애초에 무덤과 던전을 따로 구분하는 것도 일반인들의 개념이었지, 도굴꾼들에게 무덤과 던전은 같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긴 이미 개방된 던전이잖아요? 그것도 쓸 만한 건 먼지 한 톨까지 싹싹 쓸어 간 던전요.”

블랑카의 말대로 이곳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던전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발견되어 가치가 있는 유물은 모두 털려 버린 버려진 던전이었다.

“설마 여기서 지내시려고요? 그래서 절 청소나 시키려고 데려오신 건…….”

“넌 꼭 쓸데없이 한마디가 많아.”

꿍.

“커헉……!”

머리에 불룩한 혹을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거리는 블랑카를 두고 요한이 먼저 던전으로 들어섰다.

“드, 들어가시게요? 예감이 안 좋은데…… 진짜 엄청 안 좋은데!”

요한이 말없이 던전 안으로 들어가자 주변을 살피던 블랑카가 하는 수 없이 요한의 뒤를 쫓았다.

“에이 씨…… 같이 가요!”

바깥은 해가 쨍쨍한데 던전 안쪽은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그나마 블랑카가 들고 있는 횃불이 주변을 힘겹게 밝히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너머의 어둠을 더욱 부각시킬 뿐이었다.

“헉!”

“왜?”

“뭐, 뭔가 예감이 심상찮아서요. 더 들어가면 굉장히 위험할 것 같은…….”

블랑카의 말에 요한이 피식 웃었다.

‘확실히 감 하나는 쓸데없이 좋은 녀석이군.’

기감을 읽어 적을 감지한다는 건 혹독한 수련을 거친 무인이라 할지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물론 블랑카는 그런 무인이 아니었다. 다만 타고난 위기 감지 능력이 쓸데없이 높을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키아악! 캬악!

“흐억!”

어둠 속에서 다짜고짜 기습을 감행해 오는 고블린의 무리! 몸집도 잡고, 민첩하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감행하는 녀석들의 기습은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을 만큼 위험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사람의 접근이 뜸하고, 비바람을 피할 수 있으며, 요새로 쓰기 적당한 폐허.

고블린들이 둥지로 선호하는 곳이 바로 이런 던전이나 동굴이었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고블린을 허접한 몬스터라고 무시하거나 얕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약한 것과 위험하지 않은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초보 용병이나 도굴꾼들의 가장 큰 사망 이유가 고블린일 만큼 고블린은 무시할 만한 몬스터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빠각! 퍼걱! 쩌엉! 콰직!

이미 기감으로 녀석들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던 요한에게 기습은 그저 목숨을 헌납하는 행위에 불과했다.

게다가 상대는 고블린…… 무기나 뇌전의 마나를 사용할 것도 없이 주먹질만으로도 대여섯 마리의 고블린들을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버렸다.

애초에 요한의 육체 자체가 어지간한 판금 갑옷 이상의 내구력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뭐 해? 가자.”

“아, 예!”

엉덩방아를 찧었던 블랑카는 서둘러 일어나 요한을 쫓았다. 그렇게 던전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고블린들의 기습도 잦아지고 숫자도 많아졌다.

“생각보다 고블린 무리의 규모가 상당한데요? 아무래도 마지막 토벌 이후로 한 번도 청소를 안 한 것 같습니다.”

“쓸모없는 던전에 누가 돈까지 들여 가며 몬스터를 토벌하겠어. 주변에 민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겠죠? 이 정도 규모라면 홉도 있을 것 같은데…….”

홉고블린은 고블린의 상위종이었다. 몸집이 더욱 크고 강한 것은 물론이고 지능도 발달해서 쉬운 주술이나 인간의 기술을 따라할 수 있는 종도 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하여간 이놈의 주둥아리가 웬수지, 웬수야!”

던전 가장 안쪽에서 홉과 함께 모여 있는 오십여 마리의 고블린 무리를 발견한 블랑카가 자신의 입을 찰싹찰싹 때렸다.

‘아무리 알파 경이라 홉을 포함한 고블린 오십 마리를 상대로는 힘들지…….’

“아무래도 이건 힘들겠네.”

요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망칠 준비를 마친 블랑카의 미소가 만개했다.

“그, 그렇죠? 그럼 얼른 도망을…….”

“맨손으로는 힘들겠다고.”

그러면서 요한은 단검 두 자루를 꺼내 양손에 하나씩 쥐고 고블린 무리로 뛰어들었다.

블랑카는 그 모습을 넋 놓고 지켜보았다.

‘세상에…….’

혼자서 홉고블린을 포함한 오십여 마리의 고블린을 일방적으로 살육하는 요한의 모습은 마치 양 떼에 뛰어든 굶주린 늑대와 같았다.

오죽했으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고블린들이 불쌍해 보였을까?

‘응? 도망? 잠깐, 입구는 여기 하나뿐…….’

“으아악! 잠깐, 오지 마!”

블랑카는 자신을 향해…… 정확히는 자신이 서 있는 하나뿐인 입구를 향해 죽기 살기로 도망치는 고블린들을 피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잠시후…….

“허억, 허억……!”

전멸한 고블린 무리를 확인한 블랑카가 식은땀을 닦으며 요한의 곁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아직 살아 있는 놈들은 없겠죠?”

“이제부터 네 차례다.”

“제 차례요? 여기서 제가 뭘…… 설마 고블린 시체라도 수거하라는 말씀은……?”

“여기에 분명 숨은 통로가 있을 거야. 네가 할 일은 그 통로를 찾아내는 거고.”

“예?”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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