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라마콘 왕국의 침공
요한이 원하던 보물은 투명하고 단단한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상자는 생각보다 단단해서 평범한 방법으로는 쉽게 깨트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거 그냥 깨면 엄청 위험할 것 같은…….”
빠각!
“응? 뭐라고 했어?”
“…….”
어느새 슬금슬금 옆으로 다가온 블랑카는 경고가 무색하게 박살이 나 버린 상자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싱겁기는…….”
요한은 손을 뻗어 상자 안에 들어 있던 보물을 집었다.
파지지지지지지지지직!
“헉! 아, 알파 경!”
그 순간 보안 마법이 발동하면서 엄청난 양의 전격이 요한의 몸에 작렬하자 블랑카가 놀라 나자빠지며 다급하게 그를 외쳐 불렀다.
“으아아악! 사람 살려!”
블랑카는 요한의 몸에서 미친 듯이 뿜어져 나오는 전류에 기겁하며 젖 먹던 힘을 다해 도망쳤다. 그는 저만한 전격이라면 요한이 숯검정도 남지 않았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나쁘지 않은데?”
“알파 경?”
너무나도 멀쩡한 요한의 모습에 블랑카는 고개를 갸웃했다. 숯검정이 되기는커녕 싸우기 전보다 훨씬 팔팔해 보였기 때문이다.
“진짜 괜찮으신 거 맞죠?”
“그렇다니까. 보면 모르겠냐?”
요한은 대꾸하면서 상자에서 꺼낸 보물을 살펴보았다. 그건 작고 투명한 유리구슬 같은 물건이었다.
“이게 뭡니까? 보석?”
어느새 다시 요한의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온 블랑카가 구슬을 보며 물었다. 어지간한 보석들을 육안으로 그 가치를 구분해 낼 수 있는 자신조차 이런 구슬은 처음이었다.
“나노 크리에이터.”
“나노 크리에이터요? 그런 보석도 있었습니까?”
“보석이 아니야. 무구지.”
“네?”
까득.
요한은 엄지손가락을 깨물어 낸 피 한 방울을 구슬에 떨어트린 뒤 자신의 마나를 주입하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구슬이 마치 얼음처럼 녹아내리며 요한의 손을 타고 그의 전신으로 흩어진 것이다.
그 순간.
[새로운 사용자의 언어 체계 스캔 중, 스캔 완료. 새로운 사용자의 신체 정보 스캔 중, 스캔 완료. 새로운 사용자를 등록하시겠습니까?]
‘등록한다.’
[등록되었습니다. 복수 사용자의 등록을 허가하시겠습니까?]
‘불허한다.’
[설정되었습니다.]
‘대체 뭐 하는 거지? 사실 번개 맞고 죽을 것 같은데 일부러 센 척하고 있는 거 아니야?’
아까부터 혼자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있는 요한의 모습을 블랑카는 미심쩍은 눈길로 지켜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자기 혼자서 그 많은 트랩들을 뚫고 도망치는 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요한이 눈을 떴다.
“다 됐다.”
“뭐가 다 됐다는 겁니까? 대체 그게 뭔데요?”
“나노 크리에이터. 고대 마도 문명 시대의 유산이다. 당시 마도 제국의 장군들이 입었던 갑옷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건 나도 잘 몰라.”
“진짜로 그게 마도 문명의 유물이라고요? 근데 갑옷이라는 건 무슨 말입니까? 구슬이었잖아요? 심지어 지금은 녹아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고.”
블랑카가 의문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실제로 요한 역시 이 갑옷을 처음 봤을 때 그 이상으로 놀랐으니까.
“이건 평범한 갑옷이 아니야. 마나를 흡수해서 사용자의 의지에 맞춰 변화하는 갑옷이지.”
요한은 자신이 끼고 있던 장갑을 벗었다. 그러자 그의 맨손이 그대로 드러났지만 사실 그건 맨손이 아니었다.
“겉보기에는 맨손 같지만 지금 나노 크리에이터 아머가 피부를 아주 얇게 코팅한 상태다. 그리고 외부의 변화에 따라 감촉이나 충격, 통각, 열기나 냉기 등을 차단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지.”
파지직, 파직.
그러면서 요한은 자신의 손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그러자 손에서 푸른빛이 감돌며 옅은 뇌전이 방전했다.
“마나를 주입하지 않은 기본적인 상태에서도 그 방어력은 판금 갑옷의 십수 배에 달하지만 마나를 주입해서 강화시키면 그 능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해져. 예를 들어 아주 약간의 마나만 불어 넣어도…….”
쿵!
요한은 제자리에 쪼그려 앉아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아주 가볍게 내리쳤을 뿐인데 그의 팔은 팔꿈치까지 바닥을 가볍게 뚫고 들어갔다.
“이런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세상에…….”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지.”
땅에서 팔을 끄집어 낸 요한의 손에 난데없이 검이 생기더니, 검은 활이나 창 등, 다양한 형태의 무기로 변형되었다.
“이, 이것도 그 나노 뭐시기인가 하는 그걸로 만든 겁니까?”
“맞아. 대신 아머 코팅의 일부를 가져다 쓰는 거라 방어력이 많이 낮아지지만 급할 때는 상당히 유용한 능력이지. 물론 만들 수 있는 건 내가 알고 있는 어떤 형태든 상관없고.”
“진짜로 마도 문명의 유물이 존재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직접 보니 말도 안 되긴 하네요. 무슨 신들의 무구도 아니고…….”
“앞으로 여섯 개 남았다.”
“뭐가요? 서, 설마 터무니없는 유물이 여섯 개나 더 남았다는 건 아니죠?”
요한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노 크리에이터 아머는 마도 문명의 유물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유물이다. 그래서 제일 처음 이곳을 찾았던 거고. 하지만 다른 유물들도 충분히 지금 시대에서 보면 사기적인 능력을 가진 건 맞아.”
블랑카는 정말로 마도 문명의 유산이 존재했고 그게 이런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보물이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마 암시장 경매에 내놓으면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겠지. 하지만 블랑카는 차마 욕심을 내지 않았다.
방금 전, 그가 유물에 욕심을 낸 순간 느꼈던 위기감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었던 부류의 위험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래…… 내 팔자에 무슨 마도 문명의 유산이냐. 송충이는 솔잎이나 먹는 거지, 뭐…….’
블랑카의 한숨만 깊어지는 날이었다.
* * *
그날 밤.
첫 번째 유적 탐사를 마치고 여관 침대에 누워 쉬고 있던 요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통신 구슬에서 신호가 온 탓이다.
이 통신 구슬은 가니온에게 받은 것으로 이 통신 구슬 또한 마도 문명의 유산 중 하나를 제국이 양산한 것이었다.
다만 최근에 개발된 휴대용 통신 구슬의 경우, 사용 시간이 짧고 상대방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휴대가 간편해서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백작님.”
-진짜로 알파 경인가? 이것 참 신기하군. 여기서 네 목소리가 들리다니……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구슬 너머에서 하이든의 목소리가 들렸다. 요한이 가지고 있는 구슬과 짝이 되는 구슬을 하이든에게 선물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하이든과 요한이 마음 놓고 통화할 수 있었던 것도 이제 백작가의 저택에 그림자나 도청 장치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요한이 하이든을 감시하는 건, 곧 자신을 감시하는 것이라고 가니온에게 엄포를 놓자 가니온이 화들짝 놀라며 백작가에서 모든 그림자들을 철수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만에 하나를 기해 호칭은 서로가 약속된 호칭을 사용했다.
-오늘 아침, 경의 말대로 요정의 숲에서 내 앞으로 서신이 왔네.
“……!”
요한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당연히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라마콘 왕국의 움직임이 빨랐던 것이다.
-엘프들이 은밀하게 정찰한 결과, 관문과 그 인근 영지에 벌써 10만이 넘는 병사들이 집결했다고 하더구나. 10만이라면 국왕의 직속군 외에도 귀족들의 사병까지 추가가 돼야 모집할 수 있는 숫자인데 이렇게 빠르게 모을 수 있었다는 건…….
“라마콘 왕국에 숨어 있는 그림자들의 입김이 컸겠죠. 아인종이라면 치를 떠는 제국이 이 기회를 그냥 놓칠 리는 없을 테니까요.”
귀족들에게 사병은 자신의 권력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나라의 존망이 걸린 일이 아니고서야 귀족들이 자신의 힘을 줄여 가면서까지 왕에게 사병을 지원하는 경우는 정말로 흔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 같은 경우, 라마콘 왕국의 그림자들이 대동단결하여 여론을 조성하자 금세 귀족들이 사병을 내놓은 것이다.
모두가 똑같이 같은 비율의 사병을 지원한다면 힘의 차이는 발생하지 않을 테니까.
-어떻게 할 생각인가? 지금 경이 하고 있는 일도 매우 중요한 것으로 알고 있네만.
“당장은 그렇지만 앞으로를 생각하면 그들의 존재는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마자현을 이쪽으로 보내 주십시오.”
어둠 속에서 백작가를 호위하고 있는 마자현이었지만 지금 당장 백작가나 하워드에게 큰 위험은 없을 터였다.
* * *
며칠 뒤.
“왔나. 생각보다 일찍 왔네.”
“주군을 뵙습니다.”
요한은 자신을 찾아온 누더기 로브의 사내가 한쪽 무릎을 꿇고 포권을 취하자 그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이분은 또 누구십니까?”
때마침 요한의 부름으로 그의 방을 찾아온 블랑카가 마자현에 대해 물었다.
“내 오른팔.”
“오른팔요?”
“당분간 던전 탐사는 중단한다. 그보다 급하게 꺼야 할 불이 생겨 버렸거든.”
“어이쿠! 그거 어떡합니까? 보아하니 무력이 필요한 일 같은데, 하면 싸움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저는 여기서 두 분의 무사 귀환을 간절히 기도…….”
‘급하게 꺼야 할 불’이라는 말에 블랑카의 위기 감지 센서가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지만 소용없었다.
“자현, 그 녀석 챙겨. 지금 즉시 라마콘 왕국으로 간다.”
“예, 주군.”
“아 참, 가기 전에 할 얘기가 있는데 소연이를 고친 그 약 말이야. 정령의 눈물이라고, 내가 엘프족들과 거래해서 손에 넣은 거거든. 지금 라마콘 왕국이 그 엘프족들을 몰살 시키려 하는 거고. 그냥 참고하라고.”
“그렇군요. 저를 호출하신 이유를 잘 알겠습니다, 주군.”
라마콘 왕국을 떠올리는 마자현의 눈빛이 사나워지는 순간이었다.
* * *
와아아아아아아!
“진격하라!”
“동포들을 죽이고 우리들의 나라를 약탈한 더러운 엘프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줘라!”
아무리 실력 좋은 장인이라도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을 수 없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무려 10만의 병사들이 헤일처럼 밀려드니 엘프 전사들조차 속수무책이었다.
물론 당하는 병사들은 라마콘 왕국 측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인간 병사 백여 명이 죽어 나갈 때쯤 엘프 전사 한 명이 죽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타격이 달랐다. 라마콘 왕국에게 병사 100명이 당하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쉬운 엘프들에게 전사 한 명의 희생은 치명적이었던 것이다.
“젠장, 죠나단 그 악마 놈만 아니었어도……!”
“불평은 전쟁에서 이기고 난 후에 해! 지금은 한 놈이라도 더 많이 죽이는 거다!”
죠나단의 손에 죽은 엘프 전사들의 희생이 너무 큰 타격이었다.
길게 잡아도 6개월이면 양산할 수 있는 왕국의 병사들과는 달리 엘프 전사 한 명을 육성하는 데에는 굉장히 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