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57화 (57/150)

57. 제국의 기사단

철컥 철컥…….

둔탁한 무쇠 발소리가 무겁게 울려 퍼졌다. 한눈에 보기에도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워 보일 것 같은 검은 갑옷을 입고 기사들은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쒜엑!

엘프들의 화살이 갑옷 기사들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어지간한 판금 갑옷도 단숨에 꿰뚫어 버릴 수 있는 것이 엘프 전사들의 화살이다.

괜히 라마콘 왕국에서 쉽게 침략을 시도하지 못한 게 아닌 것이다.

그러나…….

텅!

화살이 검은 갑옷에 부딪히는 순간, 놀랍게도 화살은 날아왔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주인에게 돌아갔다.

“피해!”

“……!”

푹!

화살을 날렸던 엘프 전사는 눈을 부릅뜨며 자신의 화살이 관통한 가슴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내려다보다 끝내 숨을 거두며 나무에서 떨어졌다.

심지어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검은 갑주의 기사들에게 쏜 화살은 갑옷에 부딪힌 이후, 반드시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주인에게 돌아왔다.

돌아온다는 걸 알고 대비해도 피하기 힘들 정도로 화살은 강력했다.

“젠장!”

그러다 보니 엘프 전사들도 검은 갑주의 기사들에게 화살을 쏘는 걸 꺼렸다. 하지만 그대로 두고 볼 수도 없었다.

그들이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행선지가 바로 엘라임이었기 때문이다.

“겨우 악마를 처리했다고 안심했더니, 저런 괴물들은 또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아무래도 왕국군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장. 저런 흉악한 놈들을 지금까지 내버려 뒀을 리가 없을 테니까요.”

“그나저나 어떡하죠? 이대로 두면 놈들이…….”

부하들의 말처럼 10만이라는 병사는 화살로 일일이 쏴 죽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죽이는 숫자보다 전진하는 병사들의 숫자가 훨씬 많았으니까.

게다가 그 사이사이에 섞여 있는 검은 갑주의 기사들까지…….

에드뮈엘은 전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제2 방어선까지 후퇴한다!”

“대장님의 명령이다! 제2 방어선까지 퇴각하라!”

“빨리 움직여!”

전사들이 빠른 속도로 퇴각하기 시작하자 검은 갑주의 기사 중 한 명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보아하니 그냥 도망치는 건 아닌 것 같군.”

“그래 봤자지. 놈들의 화살이 아무리 강력해도 이 리플렉션 아머에는 무용지물이니까.”

“그러게. 설마 이렇게까지 효과가 대단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말이야. 크하하하!”

검은 갑주의 기사들이 의기양양하게 웃음을 터트리자 가장 선두에서 기사단을 이끌던 단장, 발란이 근엄하게 꾸짖었다.

“긴장을 늦추지 마라. 방심이야말로 우리 제국군 최대의 적임을 벌써 망각했는가? 게다가 엘프 놈들의 뒤에 숨어 있는 의문의 협력자는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놈을 끌어내 처단하는 게 바로 우리의 임무다. 폐하의 명령을 완수할 때까지 우리는 뭐지?”

“죽은 자들입니다!”

“그래. 우리는 폐하의 명령에 죽고 사는 자들임을 명심해라.”

그렇게 군기를 다잡은 검은 기사들이 엘프들의 제2 방어선에 도착했다.

* * *

“설마 로한 제국에서 먼저 원군 요청을 꺼낼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게다가 원군으로 온 자들이 그 악명 높은 다크 나이트 기사단 한 부대가 아닙니까?”

“전원이 오러 유저로 구성된 기사단이라니……. 크! 역시 로한 제국 정도 되면 기사단의 클래스마저 수준이 다르군요. 부럽다. 부러워.”

“그러게 말입니다. 엘프들만 불쌍하게 됐지요, 뭐. 크하하하!”

관문 영주성에 모인 귀족들은 이 전쟁의 책임자로 국왕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사람들이었다.

하나 이들 사이에 전쟁의 긴장감 같은 건 눈곱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주변에 보이는 것도 춤추는 무용수들과 오케스트라, 그리고 술과 음식뿐…….

마치 승전 축하연을 미리 앞당겨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를 말입니까? 10만의 우리 병사들과 1천이 넘는 기사들, 그리고 백 명의 다크 나이트 기사단까지 쳐들어간 마당에 엘프의 숲이고 나발이고 끝난 거나 다름없지요. 자, 우리는 다가올 승전보를 기다리며 건배나 합시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라마콘 왕국의 번영을 위하여! 그리고 영원한 우방국인 로한 제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짠.

한편 같은 시각.

그들의 예상처럼 침공군은 파죽지세로 제2 방어선을 밀어붙이는 중이었다.

“전진 요새를 흉내 낸 건가? 기본적인 토대는 짜임새가 살아 있군, 전체적인 모양새는 엉성하기 짝이 없지만.”

전진 요새의 구상은 요한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었다. 물론 시간이 짧아서 완벽하게 도와주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엘프 녀석들의 궁술이 더해지면 이런 허접한 요새도 무시무시한 철벽이 된다.”

요새가 세워진 길목 자체가 절묘했다. 다른 곳은 늪지나 절벽이나 지면에 드러난 나무뿌리가 억세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 대군이 빠른 속도로 통과하기에 무리가 많았다.

게다가 요새에 붙을 수 있는 병사들의 숫자가 한정적이다 보니 10만의 병력이 밀어붙여도 막상 요새를 공격할 수 있는 인원수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머리 위에서는 엘프들의 화살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으니…… 요새 앞에 병사들의 시체가 쌓여 가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어쩔 수 없지.”

발란은 앞으로 나서더니 짜증 가득한 시선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침공군의 책임자, 노하트 백작에게 다가갔다.

“노하트 경, 군사들을 물려 주시오. 이 요새는 우리가 함락하리다.”

“저, 정말로 그래 주시겠소?”

목에서 튀어나오려는 부탁을 애써 참고 있었는데 상대가 먼저 꺼내 주니 노하트의 눈에 생기가 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길을 터라!”

“병사들은 옆으로 물러서라!”

지휘관들의 외침으로 병사들이 조금씩 옆으로 물러서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길이 생기며 다크 나이트 기사단이 요새로 접근했다.

“놈들이 온다!”

“투석 준비!”

간이 투석기가 준비되자 전사들이 서둘러 바위를 싣기 시작했다. 공성 병기용 투석기보다는 작지만 대인용으로는 차고 넘치는 위력의 투석기였다.

‘성인의 몸통만큼 큰 바위들이다! 화살은 어떻게 되돌려 보냈는지 몰라도 이걸 되돌려 보내지는 못하겠지!’

“쏴라!”

훙훙훙훙훙훙!

에드뮈엘의 명령이 터져 나오자 바위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정확히 기사들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쿵쿵쿵쿵쿵쿵!

“이럴 수가…….”

“이것도 안 통한다고?”

바위는 명중했다. 하지만 누구도 죽거나 부상을 당하기는커녕 그들의 전진을 멈추지도 못했다.

그들은 갑옷의 능력을 정면이 아닌, 측면 반사로 반사의 방향을 틀어 버리며 바위의 위력을 옆으로 흘려 버렸던 것이다.

바위를 다시 요새로 날려 보내기 위해서 100의 마나가 필요하다면 옆으로 흘려보내는 건 10의 마나만 써도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끓는 기름! 어서 끓는 기름을 가져와!”

기사단이 접근하자 에드뮈엘은 끓는 기름을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설마 액체까지 반사할까 싶었지만 그조차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 주면 우리야 고맙지.”

치이익!

“크아악!”

“으악!”

쏟아지는 기름을 반사하는 건 화살을 반사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었다. 에드뮈엘의 실책에 몇몇 엘프 전사들이 끓는 기름을 뒤집어쓰고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목책 아래로 떨어졌다.

그사이, 검을 뽑아 든 발란이 검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우우웅!

“세상에…….”

“혹시 저게…….”

“퍼펙트 오러다!”

병사들은 넋이 빠져 입을 벌리고, 왕국의 기사들조차 경악을 금치 못하는 그것.

발란의 검을 휘황찬란하게 감싸고 있는 빛은 의심할 여지없는 오러 마스터의 퍼펙트 오러 블레이드였다.

“흡!”

콰앙!

발란이 짧은 기합과 함께 검을 사선으로 힘껏 가르자 그토록 단단하던 목책이 단 일격에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퇴각하라!”

“어서 후퇴를…….”

그 순간.

팟!

“술래잡기는 여기까지만 하지.”

“엘프 사냥이다!”

결국 다크 나이트 기사단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에 대응하여 곧바로 사격을 시작하는 엘프들.

오러를 끌어 올려 강화시킨 신체는 엘프들을 가볍게 상회했고 반대로 엘프들의 화살은 그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결국…….

“이런 젠장!”

활을 버리고 검을 빼든 엘프 전사들이 기사단에게 필사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지만 무리였다.

엘프들의 검술도 확실히 대단하지만 검술만 따지면 다크 나이트 기사단에게 한없이 못 미쳤던 것이다.

결국 삽시간에 전황이 뒤집히며 전사들의 숫자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개자식들이!”

“대장! 안 됩니다! 후퇴해야 돼요!”

에드뮈엘은 쓰러져 가는 동료들의 비명에 결국 전장으로 몸을 돌렸다.

‘어차피 여기서 전사들이 쓰러지면 3진에서 방어하는 의미가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들을 이곳에서 막아야 해!’

에드뮈엘 역시 활을 버리고 검을 뽑았다.

그의 검술은 엘프 전사들 중에서도 비할 바가 없을 정도였다. 그것을 증명하듯 혼자서 다크 나이트 기사단 셋을 상대하는 위엄을 보여 주었다.

“오호라…….”

그런 에드뮈엘을 흥미롭다는 듯이 지켜보던 발란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다름 아닌 에드뮈엘의 정면이었다.

챙!

에드뮈엘의 검을 막아서며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발란.

“재미있어 보이는 녀석이로구나.”

“이놈!”

눈앞의 기사가 목책을 단칼에 무너트린 원흉임을 알아본 에드뮈엘의 검이 날카롭게 발란을 노렸다.

순식간에 네다섯 개의 잔상이 발란을 노리는 순간, 발란의 검은 단칼에 모든 잔상들을 베어 버리며 동시에 에드뮈엘을 노렸다.

에드뮈엘은 검에 전력으로 오러를 불어 넣으며 발란의 반격을 방어했다.

하지만…….

서걱!

‘크윽……!’

애초에 익스퍼트 오러로 퍼펙트 오러를 정면에서 막는다는 건 무리였다.

검이 깨지면서 어깨에 깊은 부상을 입은 에드뮈엘이 본능적으로 한 걸음 후퇴했다.

“반응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군. 팔 한쪽은 가져갈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네놈들은 악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를 핍박하는 것이냐! 우리는 그저 네놈들에게 빼앗긴 동포들을 구출하고 싶었을 뿐이거늘!”

“그게 잘못되었다는 거다. 너희는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다. 죄인이면 죄인답게 평생 죗값을 치르면서 살면 되는 거다.”

슉.

“그것이 하늘의 뜻이다.”

어느새 눈앞에 나타난 발란의 검이 벼락처럼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자 에드뮈엘을 입술을 깨물면서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발란을 노려보았다.

살아서 그들을 처단하지 못한다면 유령이 되어 그들을 저주해 죽이리라.

그 순간.

번쩍!

비유가 아닌, 진짜 한 줄기 벼락이 숲을 가로질렀다.

“……!”

발란은 검로를 억지로 틀어 날아오는 번개를 그대로 후려갈겼다. 아니, 번개가 날아온다는 말도 웃기지만 마땅한 표현이 정말로 그것밖에 없었다.

콰앙!

“크윽!”

화살과 검이 충돌하자 엄청난 폭발이 터져 나오며 에드뮈엘이 정신없이 뒤로 날아갔다.

하지만 발란은 그런 에드뮈엘을 쫓을 수가 없었다.

그 역시 충격을 해소하기 위해서 몇 발자국이나 뒤로 물러났으며 검도 튕겨져 나가기 직전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누가…….’

그러나 깊이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번쩍!

또 다시 벼락 한 줄기가 자신들을 향해 쏘아져 날아왔기 때문이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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