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번개의 화살
발란은 날아오는 번개를 극도로 경계하며 검을 들었다.
하지만 번개의 목표는 자신이 아니었다.
“피……!”
콰릉!
피하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표물을 관통한 번개 줄기.
“……미친.”
자신의 뻥 뚫린 가슴에서 피를 보며 다크 나이트 기사단원 하나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번쩍!
이제 다크 나이트 기사단원 전원은 화살의 먹잇감이 자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마나를 리플렉션 아머에 불어 넣어 최대한도 활성화 시켰다.
“어떤 원거리 무기라도 이 갑옷 앞에서는 무용지물……!”
콰릉! 털썩…….
갑옷의 성능에 자신하던 기사 한 명이 스스로의 목숨으로 그것이 의미 없음을 증명하고는 숨을 거두었다.
갑옷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 올려도 날아오는 번개는 우습게 그들의 갑옷과 몸통을 관통해 버린 것이다.
그 모습을 수백 미터 멀리서 지켜보던 요한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짝퉁으로는 어림도 없지. 내 화살을 막고 싶으면 ‘진짜’ 리플렉션 아머라도 가져오라고.”
요한은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시위는 부드럽게 화살을 품은 상태로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 순간.
파지직, 파직!
화살에 뇌전이 흐르기 시작하며 거친 전류가 사납게 방전하기 시작했다. 화살에 뇌전의 퍼펙트 오러를 입힌 것이다.
보통의 활이라면 이것만으로도 시위가 녹아서 끊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요한이 들고 있는 활은 달랐다.
나노 크리에이터를 이용해 만든 활은 뇌전의 마나가 내뿜는 열기를 가볍게 견뎌 내며 발사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요한이 시위를 놓는 순간.
번쩍! 콰릉!
도저히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라곤 상상할 수 없는 굉음이 터져 나오며 한 줄기 벼락이 공간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 불운하게 서 있던 다크 나이트 기사 한 명이 또 다시 명을 달리했다.
털썩…….
“산개!”
발란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사단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무너진 목책을 은폐물 삼아 몸을 숨겼지만 소용없었다.
리플렉션 아머조차 관통한 번개의 화살이 고착 목책 더미를 관통하지 못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콰릉! 콰릉! 콰릉!
목책 뒤에 숨어 있든, 아름드리나무 뒤에 숨어 있든, 바위 뒤에 숨어 있건 한 발의 화살은 정확하게 한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대로는 당한다!’
“화살은 북서쪽 감마 방향에서 날아왔다! 다크 나이트 기사단 전원 돌격하라!”
가만히 있으면 꼼짝없이 당할 수 있다는 위기심에 발란은 화살이 날아온 위치고 검극을 가리키며 목청껏 외쳤다.
그에 다크 나이트 기사단은 전력을 다해서 숲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전신 판금 갑옷을 착용하고도 바람처럼 내달리는 그들의 움직임은 가히 발군이었다. 전원이 오러 유저로 구성된 기사단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던 것이다.
하지만…….
콰릉! 콰릉!
그때까지도 번개의 화살은 여지없이 날아와 꾸준히 기사단의 숫자를 줄였다. 그러나 기사단원들은 쓰러져 가는 동료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오히려 질주에 박차를 가했다.
그들의 희생 덕분에 자신들이 원흉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느껴진다! 놈은 저기에 있다!’
발란의 기감에 무시할 수 없이 강력한 마나의 기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발란은 두렵지 않았다. 자신 역시 오러 마스터의 강자였고 대원들의 조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놈을 잡아 죽일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착각하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놈이 보인다!”
“당장 저 새끼를 포위해! 놈을 가두기만 하면 이쪽의 승리다!”
요한이 많고 많은 병기들 중에 주 병기를 활로 선택해서 수련한 이유.
그것은…….
“열심히 달려왔는데 미안해서 어쩌냐.”
파지직, 파직! 콰릉!
“이런 미친!”
“사라졌어…….”
요한의 몸에서 장난치듯 방전하던 뇌전이 사방으로 터져 나오는 순간,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적어도 기사단이 느끼기에는 그러했다.
하지만 발란은 알 수 있었다.
“사라진 게 아니야. 너무 빨라서 그렇게 보인 거지…….”
“단장님?”
발란의 허탈한 중얼거림에 주변에 있던 기사들의 가슴 속에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요한이 활을 택한 이유. 그것은 뇌전의 마나에게 활만큼 궁합이 좋은 무기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번쩍!
다시 한번 빛이 터지며 벼락 한 줄기가 기사단의 몸통을 꿰뚫었다. 발란이 아니면 반응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번개의 화살이었다.
“저쪽이다!”
“젠장!”
기사단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필사적으로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되짚어 추격하는 것뿐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요한을 말이다.
파지직! 파직!
“저기……!”
“뭐야, 없잖아?”
운이 좋아야 요한의 그림자라도 볼 수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도 번개의 화살은 끊임없이 날아와 기사들의 숨통을 끊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엘프 전사들은 전율을 느꼈다.
“저게 아바타…….”
“확실히…… 신의 대리자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군.”
압도적인 유린.
이건 전투조차 아니었다. 그저 요한이라는 사냥꾼이 검은 갑주의 기사단이라는 사냥감을 사냥하는 사냥 놀이일 뿐이었다.
그들조차도 요한의 모습은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빠르게 쓰러져 가는 기사단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으로 요한이 싸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와라! 나와서 그 가증스러운 얼굴을 보이란 말이다. 이 개자식아! 오호라, 이제 보니 내가 무서운 게로구나. 이 겁쟁이 같은 놈! 너 같은 버러지들은 내가 잘 알지. 어딘가에 숨어서 낄낄거리며 음침하게 즐기고 있겠지? 너 같은 건 기사가 아니라 쓰레기다! 그냥 겁쟁이에 버러지일 뿐이라고!”
어느 순간 부하들을 모두 잃고 혼자 남은 발란이 주변을 휘저으며 소리쳤다. 요한의 기척이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마음은 앞서는데 흥분하면 언어가 그걸 못 따라가는 게 흠이긴 했지. 그런데 그건 어떻게 시간이 지나도 안 고쳐지냐, 발란.”
“……!”
발란은 경악했다. 상대가 자신의 이름과 특징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흥분하면 언어 구사력이 떨어진다는 건 가까운 지인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놈! 자신 있으면 나와라! 나와서 기사답게 승부를 보자! 비겁하게 숨어서 활이나 쏘지 말고 나와 1 : 1로 겨뤄 보자는 말이다!”
“음…… 응, 안 해.”
콰릉!
“……!”
콰앙!
한 발의 번개가 날아오는 걸 가까스로 쳐 내자, 다음 화살이 날아왔다.
극한으로 기감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대응조차 불가능한 번개의 화살 때문에 발란의 신경은 화살을 막을 때마다 뭉텅이로 깎여 나갔다.
“역시 발란. 오러 마스터다운 실력이네. 그럼 우리 페이스 좀 올려 볼까?”
“……!”
발란은 방금 전보다 더 빠른 간격으로 날아오는 화살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결국 두 번째 화살까진 어떻게 막아 냈지만 세 번째 화살을 아슬아슬하게 놓친 것이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왼쪽 다리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으니까.
순간 다리를 잃고 중심을 잃은 발란에게 화살 한 발이 날아왔다.
오러 마스터의 초인적인 반사 신경과 퍼펙트 오러로 간신이 쳐 내긴 했지만 뒤이어 날아온 화살에 허무하게 왼팔을 잃고 말았다.
“커헉!”
털썩…….
결국 균형을 잃고 쓰러진 발란의 머리를 또 한 발의 화살이 날아와 박살 내면서 그렇게 엘프의 숲을 침공했던 다크 나이트 기사단원들은 전멸했다.
“이걸로 대충 위험한 놈들은 정리가 끝난 것 같네.”
“알파 경!”
발란의 주검을 확인하던 요한의 곁으로 에드뮈엘을 포함한 엘프 전사들이 집결했다.
“도대체 어떻게 여길…….”
“대장로의 편지를 받았다.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얘기하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 일찍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군. 고생이 많았다. 그런데 공용어가 많이 늘었다?”
“두나스 장로님께 배웠습니다. 그리고 고생은 저희보다 알파 경께서 하셨죠. 설마 이 괴물 같은 놈들을 마치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실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잔뜩 흥분한 에드뮈엘의 모습에 요한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상황이 좋았지. 좋은 무구도 손에 넣은 참이고, 전장도 나한테 유리한 조건인 데다 상대가 다크 나이트 기사단 중에서는 가장 낮게 평가받는 5기사단의 발란이었으니까. 뭐, 그런 걸 다 제외하고서라도 내가 이기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튼 이렇게 수다 떨고 있을 시간은 없을 거 같은데?”
“남은 병력을 제3 전진 요새에 배치해 두었습니다. 이 녀석들만 없으면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래, 수비에 투입된 병력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부 나를 따라와라.”
요한은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지금부터 반격 시작이다.”
* * *
슉슉슉슉!
요한과 엄선된 엘프 전사들은 나무 위를 자유롭게 누비며 목표물을 좁혔다.
“비록 막강한 동맹군은 전멸했지만 그럼에도 숫자는 우리가 훨씬 더 많다! 겁먹지 말고 전진…….”
쒜엑…… 퍽!
병사들을 독려하던 기사 한 명이 머리에 화살을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방패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는 엘프들의 강궁을 막을 수가 없었다.
요한도 마찬가지였다.
주로 중간 지휘관인 기사들을 저격하며 지휘 체계를 흔들었다.
“아무리 몸집이 커도 몸을 움직이는 건 머리다! 머리만 제거하면 놈들의 진격을 멈출 수 있다!”
“지휘관들을 저격해라!”
요한의 외침을 에드뮈엘이 그대로 번역하여 전사들에게 전달했다.
발란의 기사단이 전멸하고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던 엘프 전사들은 그야말로 날아다니며 기사들만 족족 사냥하였다.
“쏴라! 보고만 있지 말고 쏘란 말이다!”
반면, 아래쪽에서도 엘프들을 노린 수많은 화살들이 쏟아져 날아왔지만 오히려 그건 엘프들에게 부족한 화살만 보충해 주는 꼴이었다.
그러다 보니 강력한 우군의 전멸과, 지휘관들의 급속한 사망으로 병사들의 지휘 체계에 혼란이 생기며 조금씩 행동이 굼뜨고 엉키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전열이 제3 요새에 도착하자 죽고 싶지 않았던 병사들은 지휘관이 없으니 서로 눈치를 살피며 접근을 꺼려했다.
“병사들의 진군이 멈췄습니다! 알파 경!”
“방심하지 말고 끝까지 지휘관들을 잘라 내. 마지막 전진 요새라고 완벽한 건 아니다. 자신들이 숫자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걸 병사들이 깨닫게 되면 그땐 막고 싶어도 못 막는다고.”
숫자가 깡패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10만이라는 병력은 그만큼 두려운 숫자였던 것이다.
하나 요한과 엘프들의 활약으로 지휘관들의 숫자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줄어 가자 후방에서 대기 중이던 기사들과 귀족들도 섣불리 전방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전열은 어느덧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요새에서도 요한의 명령에 의해 별다른 반격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밤이 찾아왔다.
밤의 숲에서 싸우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침공군도 야영을 준비하며 경계만 강화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뭐, 뭐라고? 다시 말해 봐! 방금 뭐라고 했어?”
“그, 그것이…… 전 병력은 전투를 멈추고 현장 대기 후, 현장 지휘관들은 관문성으로 귀환하라는 어명이십니다…….”
엘프의 숲 정벌을 코앞에 두고 믿을 수 없는 국왕의 명령이 침공군 귀족들을 경악시켰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