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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59화 (59/150)

59. 꼭두각시 국왕

시간을 조금 돌려서 요한이 이제 막 엘프의 숲에 도착했을 무렵, 그와 떨어져 왕도로 향하는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의 정체는 다름 아닌 마자현.

하이든이 준비해 준 가짜 신분증으로 가볍게 라마콘 왕국의 왕도에 입성한 마자현은 해가 저물 때까지 그곳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해가 저물기 시작할 무렵.

‘슬슬 움직여야겠군.’

정체를 숨긴 마자현은 자신의 병기를 챙겨 곧장 왕성으로 향했다.

왕성 근처에 접근하자 주기적으로 순찰하는 백여 명의 순찰병들이 눈에 불을 켜고 마자현을 막아섰다.

“멈춰라! 웬 놈이냐!”

순찰병들의 창끝이 마자현을 겨누었다.

허름한 로브에 후드를 깊이 눌러쓴 정체불명의 사내가 등에 박도를 걸쳐 메고 다가오면 누구라도 긴장하겠지.

하나 순찰병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곳은 라마콘 왕국의 왕성. 어떤 미친놈이 여기서 난동을 부릴 수 있을까?

그런데 오늘, 순찰병들은 그 미친놈의 실체를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스릉…….

“이 상황에서 무기를 꺼내 들었다고?”

“이런 미친! 당장 놈을 체포해!”

후웅!

순찰병들은 눈을 부릅떴다. 뭔가 불꽃이 일렁이는 순간, 그의 모습이 돌연 자신들의 옆을 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왜 내 목이…….”

고개를 돌리려던 병사들의 목이 땅 바닥에 떨어지고, 그 모습을 목격한 동료 병사들과 순찰대장이 경악하며 뿔피리를 불었다.

뿌우우우우!

“놈을 막아!”

초소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비병들까지 우르르 쏟아져 나와 마자현을 막아섰지만 무리였다

화르륵!

마자현의 박도를 휘감은 화염이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며 정문으로 쇄도하였다. 마자현의 독문무공인 화룡진천격이었다.

콰아아앙!

화룡을 형상화한 화염의 오러는 병사들을 휩쓸고 지나가 정문과 충돌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정도로 특수하게 제작한 내성문을 완전히 박살 낼 순 없었다. 그래도 마자현 혼자 통과하기에는 차고 넘치는 구멍이 생겨났다.

마자현은 그 즉시 내성문을 지나 왕성으로 출입했다. 이미 뿔피리 소리를 듣고 병사들이 집결하기 시작했지만 마자현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게 무슨 소란이냐!”

“침입자가 쳐들어왔습니다!”

“몇 명이나?”

“그게……. 보고받은 바로는 한 명입니다.”

“뭐?”

현재 왕성의 수비를 책임지고 있는 제2 왕실근위대 대장 윌븐은 단 한 명의 침입자 때문에 왕성 전체가 발칵 뒤집어 졌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침입자를 확인한 그의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화르륵! 콰콰콰쾅!

“크아악!”

“괴, 괴물이다!”

“괴물이든 뭐든 상관없으니까 놈을 막아!”

“놈이 전하의 침소로 향한다!”

마자현의 주위를 넘실거리는 불길이 그가 휘두르는 박도를 따라 화염을 쏟아 내면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타올랐다.

병삳들의 희생은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나마 오러 유저에 이른 기사들이 조금 발목을 잡긴 했지만 그뿐.

누구도 마자현의 앞을 가로막거나 하물며 그의 목을 칠 수는 없었다.

‘불의 마나? 심지어 저 정도면 아무리 낮게 잡아도 마스터급의 강자다! 도대체 저런 괴물이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지금 당장 전하께 이 사실을 고하고 전하와 왕비 마마, 그리고 왕세자 저하를 대피시켜라! 어서!”

“예!”

윌븐은 자신이 마자현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최소한 시간이라도 벌 수 있다면……!’

“멈춰라! 나는 제2 왕실근위대의 대장, 윌븐 프로젠트다! 네놈의 목적은 무엇이냐! 대관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횡포를 부리느냐!”

하나 윌븐의 혀로는 마자현을 막을 수가 없었다. 윌븐은 자신의 정체를 밝혔음에도 아랑곳 않고 자신에게 돌진하는 마자현을 상대로 검에 오러를 불어 넣었다.

‘나 역시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에 오른 몸! 그리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을…….’

팟!

윌븐에게 접근한 마자현이 녀석의 목을 향해서 박도를 휘둘렀다. 그걸로 끝이었다.

화르륵! 서걱…….

“이런 미친…….”

뜨거운 화염이 넘실거리는 마자현의 퍼펙트 오러에 윌븐의 익스퍼트 오러로 무장된 검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몸통과 함께 댕강 베어 버린 것이다.

‘이런 개자식이…….’

윌븐에게 있어 죽음보다 비참했던 건 마자현의 눈빛이었다. 자신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길가의 잡초를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그의 눈빛이 그를 참담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윌븐마저 해치운 마자현은 빠른 속도로 복도를 내달렸다. 이미 왕성에 대한 구조는 머릿속에 외워 두었기 때문에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앞을 가로막는 피라미들이 거슬릴 뿐.

“놈을 막아!”

“여기서 놈을 막지 못하면 전하께서 위험하시다!”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병사들과 기사들을 거침없이 썰어 넘기면서 끝내 왕의 처소에 도착한 마자현.

“전하! 서두르셔야 합니다!”

“나도 알고 있네! 자, 어서, 들어가! 어서!”

때마침 왕은 침입자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는 소식을 접하고 부랴부랴 가족들과 함께 비밀 통로를 통해서 도망을 치려던 참이었다.

“거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걸 추천하지.”

화르륵! 콰우우우……!

라마콘 왕국의 국왕 루스웜프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열기에 움찔하며 석상처럼 굳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왕비와 왕자, 공주들 또한 울먹이는 얼굴로 마자현을 돌아보며 절망했던 것이다.

“전하! 어서 움직이십시오! 소신이 여기서 시간을 벌도록 하겠나이다! 어서!”

“조랄드!”

국왕의 충직한 기사이자 제1 왕실근위대장인 조랄드와 근위기사들이 국왕 일가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마자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나 그뿐이었다.

후웅! 화르륵!

눈이 시리도록 붉게 달아오른 박도를 휘두르는 순간, 노도와 같은 화염이 쏟아져 나오며 왕실근위대를 순식간에 집어삼킨 것이다.

“으아악!”

“사, 살려 줘!”

“너무 뜨거워!”

마자현의 앞에서 병기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을 보호해야 할 전신 판금 갑옷은 마자현의 불꽃에 뜨겁게 달아올라 되레 주인을 고문하는 최악의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전하…… 부디 옥체를 보존하소서…….”

“아, 아…….”

순식간에 숯덩이가 되어 나뒹구는 수십 구의 시체들, 불타는 침소. 그 가운데서 고고하게 자신들을 노려보는 악마의 모습에 루스웜프 국왕은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사태가 이렇게 된 이유는 물론 마자현의 차원이 다른 강함이 가장 컸지만 그보다는 국왕 직속 상주군의 부재가 결정적이었다.

설마 이런 식의 기습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탓에 국왕이 자신의 병력을 아낌없이 침공군으로 포함시킨 게 크나큰 패착이었던 것이다.

국왕은 장담했다.

고작 단 한 명에게 국왕과 국왕 일가가 인질로 잡힌 오늘이 라마콘 왕국 건국 이래 최악의 역사가 될 것이라고…….

* * *

“어떻게 합니까? 정말 이대로 돌아가실 겁니까? 이대로 밀고 들어가기만 해도 엘프들이 우리 손아귀에 떨어지는데요?”

“그럼? 전하께서 옥쇄까지 찍어서 보낸 명령을 무시할까? 자네 반역죄로 가문이 몰락하고 싶은 게야?”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다만…….”

아쉬움을 토로하던 귀족의 시선이 엘프의 숲으로 향했다.

수많은 엘프 노예들을 손에 넣을 욕망으로 꿈에 부풀어 있던 그에게는 국왕의 명령이 한없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일단 어명대로 병력은 이곳에 대기시켜 둔다. 엘프 놈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먼저 우리 군을 건드릴 생각은 못 하겠지. 우리는 전하의 어명을 받들어 관문성으로 돌아간다.”

현장 귀족들은 병력을 주둔지에 대기시키고 그대로 관문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성에 도착하자 후방 지원을 위해서 관문성에 남아 있던 귀족들 역시 마땅찮은 표정으로 그들을 반겨 주었다.

“어서 오시오들. 전하의 이해 못 할 어명 때문에 기운이 많이 빠지시겠구려.”

“듣자 하니 정벌이 코앞이라던데. 대업의 완수를 코앞에 두고 이게 참 무슨 해괴한 짓인지…….”

“어허! 말을 삼가시오! 아무리 답답해도 그렇지, 어명에 대고 해괴한 짓이라니, 경을 치고 싶은 것이오?”

“아니, 내 말은 그냥…….”

어명이었기 때문에 귀족들끼리 서로 울분도 토해 내지 못하고 그저 답답한 심정을 꾹 참고 있던 차에 그들의 가장 큰 궁금증은 단 한 가지였다.

“그런데 왜 전하께서는 이곳으로 정벌군에 소속된 모든 귀족들을 소환할 걸까요? 무슨 작전의 변경이라도 있는 걸까요?”

“글쎄요. 그게 저도 잘…….”

그때였다.

“오, 다들 예쁘게 모여 있었네.”

“……!”

귀족들은 정체불명의 복면인이 몸에 잔뜩 피를 뒤집어쓰고 대회의장으로 들어서자 경악한 몰골로 그를 쳐다보았다.

밖에는 수많은 병사들이 성문과 회의실을 지키고 있을 터인데 그 정도라면 누구도 자신들의 허락 없이 이곳으로 들어올 수 없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네놈은 누구냐! 여긴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올 곳이 아니다! 썩 꺼지거라!”

누군가 요한을 향해 무게감을 담아 소리치자 요한은 자신의 모습을 스윽 훑어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이 모습을 보고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네. 자기소개는 건너뛰고 본론으로 들어갈게.”

쒜에엑!

요한의 품속에서 빠져나온 썬더 호넷 하나가 공간을 꿰뚫었다.

“어……?”

갑자기 가슴에서 따끔거리는 통증을 느낀 귀족 하나가 고개를 내렸다가 눈을 부릅떴다.

심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었기 때문이다.

털썩…….

“이, 이게 무슨……?”

귀족들이 경악에 물든 눈으로 요한을 쳐다보자 요한이 씨익 웃었다.

“다 여기서 죽어 줄래?”

그 순간, 요한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썬더 호넷들이 공간을 종횡무진 베어 갈랐다.

* * *

“이럴 수가…….”

털썩…….

루스웜프 국왕은 왕성으로 귀환한 침공군 귀족들의 상태에 침음을 흘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돌아오긴 했는데 그들의 머리만 돌아왔기 때문이다.

승리가 확정적인 이번 전장에 참전하지 않은 귀족은 정말로 연줄이 없는 말단 귀족들뿐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라마콘 왕국의 실세 귀족들은 전원 목숨을 잃은 셈이었다.

‘아마 라마콘 왕국의 그림자들은 싹 다 이걸로 처리가 됐겠지.’

“참담한 심정 이해해. 전하, 그러니까 어쩌자고 이런 대책 없는 짓을 저지른 거야. 감당 못 할 욕심은 부리지 말았어야지, 쯧.”

요한은 루스웜프 국왕의 목에 어깨동무를 두르며 혀를 찼다.

누가 봐도 무례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지만 문제는 그의 무례를 지적할 귀족들이 이제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어쩌길 바라오?”

“목숨값은 목숨으로 책임을 져야지. 본인들도 목숨을 뺏길 각오가 되어 있으니까 엘프의 숲을 침공해서 수많은 목숨을 빼앗은 거잖아. 안 그래?”

“…….”

결국 모든 왕족들이 보는 앞에서 요한은 루스웜프와 국왕의 직계 가족들을 단두대로 참하고 방계 왕족 중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이를 왕으로 추대했다.

그야말로 폭거의 극치였지만 누구도 요한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말릴 수도 없었다.

또한 새롭게 즉위한 왕은 지지 기반이 전혀 없었다.

요한 이외에는…….

그러다 보니 새로운 라마콘 국왕에게 요한은 자신의 목숨 줄이었고 당연히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즉, 요한은 자신의 꼭두각시가 될 만한 인간을 라마콘 왕국의 새로운 왕으로 세운 것이었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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