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왕가의 피라미드
“여기 고대 유적이 어디 있는지 혹시 알려 줄 녀석?”
모습을 드러낸 요한은 미노타우로스와 웨어울프 무리에게 신사적으로 질문을 던졌지만 돌아온 대답은 상당히 야성적이었다.
무오오오오!
아우우우우!
“쉽게 알려 줄 생각은 역시 없는 거지?”
녀석들은 사납게 하울링을 하더니 방금 전까지 죽일 기세로 싸우던 모습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요한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흐익! 아, 알파 경!”
파도처럼 덮쳐오는 위험 시그널에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블랑카가 소리치자 요한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걱정 마. 이 정도는 위험 축에도 못 끼니까.”
파지직, 파직!
번개의 오라를 몸에 두르고 몸을 날린 요한이 가장 선두에서 달려들던 웨어울프 세 마리의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무오오!
그 뒤를 쫓던 미노타우로스가 괴성을 지르며 요한을 향해 거대한 주먹을 망치처럼 내리쳤다.
녀석의 망치 주먹은 판금 갑옷 따위 종잇장처럼 구겨 버릴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쿵!
무?
“이게 전부야?”
쩌엉!
요한은 녀석의 망치 주먹을 한 손으로 막아 내고는 역으로 녀석의 턱에 어퍼컷을 먹여 주었다.
그렇게 뒤로 훨훨 날아가는 녀석을 지나쳐 말 그대로 개떼와 소떼처럼 달려드는 수많은 미노타우로스와 웨어울프들의 모습이 징그럽게 펼쳐졌다.
녀석들의 모습에서 두려움이나 공포의 그림자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역시…….’
“저, 저놈들은 뭐죠? 보통 이 정도면 쫄아서 도망가는 게 몬스터들 아닙니까? 사냥감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포기하고 도망치는 게 몬스터들이잖아요?”
뒤에서 지켜보던 블랑카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몬스터의 상식에 비추어 봤을 때, 눈앞의 녀석들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한 요한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렇게 프로그래밍된 녀석들이니까.”
“네? 그게 무슨…….”
“자세한 건 이따 설명해 줄게.”
파지직, 콰릉!
말을 마친 요한은 다시 전광석화처럼 전장을 누비며 녀석들을 때려눕히기 시작했다.
바깥에서는 공포의 대상으로 불리는 몬스터들일지 몰라도 지금의 요한에게는 적당한 몸 풀기 상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수를 헤아릴 수 없었던 웨어울프와 미노타우로스 들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두 다리로 서 있는 녀석을 찾아볼 수 없었다.
블랑카는 처참하게 널브러진 녀석들의 시체 사이를 조심스럽게 지나면서 요한에게 물었다.
“도대체 이 녀석들은 뭡니까? 저들끼리 피 터지게 치고받고 싸우다 갑자기 왜 똘똘 뭉쳐서 우릴 공격한 거냐고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냐? 아무튼 순순히 보내 줄 것 같지는 않으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따라와.”
그 뒤로 숱한 전투가 이어졌다. 앞서 쓰러트린 만큼의 수인족들을 쓰러트리고 나면, 그 이상의 숫자가 나타나 요한의 앞길을 가로 막았다.
“너는 빨리 이 근방에서 가장 위험할 것 같은 장소가 있는 곳을 파악해. 거기가 우리 목적지니까.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내가 먼저 쓰러질지, 네가 먼저 알아낼지의 시간 싸움 말이야.”
안쪽까지는 바람의 흐름을 타고 어찌어찌 들어올 수 있었지만 유적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건 블랑카의 몫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길은 제대로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요한은 꾸역꾸역 몰려드는 호문쿨루스들을 노려보며 쓰게 웃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던 탓이다.
요한의 이마에서 식은땀 한 방울이 흘렀다.
상대가 허접한 졸병들도 아니고…… 미노타우로스와 웨어울프 무리이다 보니 아무래도 체력과 마나의 소모가 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직이야?”
요한은 자신을 건너뛰고 블랑카에게 달려드는 녀석들을 빠르게 쓰러트리며 다급하게 물었다.
“자, 잠시만요! 조금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블랑카는 최선을 다해 가장 위기감이 느껴지는 장소를 감지하려 애를 썼다. 지쳐 가는 요한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입장이다 보니 더욱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더 시간이 걸렸을까?
요한이 무리해서 수인족들을 쓰러트리며 조금 더 전진한 결과, 블랑카가 눈을 부릅뜨며 다급하게 외쳤다.
“찾았습니다! 저쪽이요 저쪽!”
그 순간, 수인족들과 싸우던 요한은 순식간에 블랑카의 곁으로 후퇴하더니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지금 뭐 하는…….”
콰릉!
요한의 의지에 따라 나노 크리에이터가 블랑카의 몸을 코팅했다. 그에 요한은 바로 블랑카를 어깨에 걸쳐 메더니 뇌전의 마나를 최대치로 끌어 올리며 몸을 날렸다.
파지직, 콰릉!
요한이 블랑카의 몸을 코팅한 이유는 자신의 마나와 공기 저항에서 그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그 정도로 요한의 질주는 상상을 초월했다.
당연히 수인족들은 요한을 쫓았지만 곧 그들의 경계 반경에서 요한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녀석들은 요한의 추격을 멈추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기들끼리 피 터지게 치고받고 싸우기 시작했다.
* * *
“얀마, 정신 차려.”
짝!
“으헤헤, 여기 맥주 한 잔 더…….”
“맥주 같은 소리하네. 죽을래? 얼른 안 일어나?”
짝!
“흐억!”
경기를 일으키며 일어난 블랑카는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자신의 두 뺨을 어루만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도착했다.”
요한이 횃불을 가리키자 블랑카의 눈에도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건축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견 사각뿔처럼 솟아 있는 그것은 언뜻 보면 언덕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유적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예술은 오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시간으로도 결코 감출 수 없었다.
“세상에……. 이건 뭐, 겉에만 조금 벗겨 가도 벼락부자가 되겠네.”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 없다. 조금 있으면 그 녀석들이 우르르 몰려들 테니까.”
“히끅!”
유적의 벽면을 훑어보며 눈을 금빛으로 반짝이던 블랑카는 요한의 재촉에 서둘러 유적 안으로 통하는 입구를 찾기 시작했다.
“찾았습니다!”
“여기가 정말 입구라고? 저기 저 문처럼 생긴 게 아니라?”
요한은 피라미드형 유적과 한참 떨어진 곳에서 블랑카가 발견한 비밀 입구를 확인하고는 유적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에 블랑카가 고개를 저었다.
“저건 함정입니다. 문을 만지니까 죽음의 냄새가 풀풀 풍기더라고요.”
“그래서, 여기는 어떻게 여는데?”
“그게…… 사실은 거기서부터 막히거든요. 시간을 들여서 조사해 보면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겠지만…….”
요한은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서부터 호문쿨루스 무리가 빠르게 이쪽으로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그럴 시간은 없을 것 같은데.”
“알파 경!”
그때였다. 입구 주변을 수색하다 무언가를 발견한 블랑카가 다급히 요한을 부르자 요한이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가 발견한 것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가 새겨진 버튼들이었다.
“이게 뭐지?”
“모르긴 몰라도 저 입구로 출입하는 것과 뭔가 연관이 되어 있는 게 아닐까요?”
요한은 호기심을 가지고 숫자 패드에 손을 댔다.
그 순간.
[패스워드가 걸린 도어록 시스템을 감지했습니다. 해킹하시겠습니까?]
나노 크리에이터의 기계적인 목소리라는 것만 빼면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이었지만 요한은 무조건 수락했다.
‘뭐가 됐든 빨리 좀 부탁할게.’
[소유자의 수락을 확인했습니다. 해킹을 시작합니다.]
요한의 손을 타고 도어록 시스템으로 흘러 들어간 나노 크리에이터.
그러자 숫자 버튼 위에 공란에서 미친 듯이 숫자가 요동을 치더니, 어느 순간 ‘Open’이란 문자가 떠올랐다.
철컥.
드드드득…….
동시에 굳게 닫혀 있던 비밀 입구가 오랜 세월의 침묵을 깨고 요한에게 그 길을 허락해 주었다.
“어, 어떻게 하신 거예요?”
“…….”
블랑카가 놀라서 묻자 요한은 말없이 서둘러 열린 입구를 통해 내부로 진입하였다. 그리고 블랑카까지 서둘러 들어오자…….
[입구를 닫으시겠습니까?]
‘어.’
나노 크리에이터의 요청을 요한이 수락하자 자신들이 들어왔던 입구가 자동으로 닫히며 봉인되었다.
“지금 문을 닫은 것도 알파 경이 하신 겁니까?”
“그런 것 같네.”
요한은 나노 크리에이터의 숨겨진 기능에 감탄하면서 자리에 앉아 마나 호흡법에 집중하였다.
어떤 함정이 나오든 대비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그런 요한의 예상은 한참 빗나갔다. 두 사람에게 아주 좋은 쪽으로…….
“어째 조용하네요.”
“감각에 걸리는 것도 없고?”
“예. 아무런 위기 신호도 느껴지지 않는데요? 그래서 오히려 더 불안한 것 같기도 하고…….”
블랑카는 다리를 들어 괜히 멀쩡한 복도를 쿡쿡 찔러 보거나 벽면을 자세하게 살펴보는 등, 긴장하며 유적을 살펴봤지만 역시나 함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입구부터 함정을 설치해 놓은 유적이 이 정도로 조용하다고? 설마 함정이 존재하지 않는 건…….’
그때였다.
[현재 시스템에 등록된 유적. MXV-37 제반 왕가의 피라미드는 본 나노 시스템이 장악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소유주의 안전에 해를 가하지 못하도록 왕가의 피라미드 사용 권한을 소유자로 임시 등록해 두었습니다. 트랩의 발동을 원하신다면 소유 권한을 해제해 주십시오. 해제하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왕가의 피라미드인지 뭔지 하는 유적의 소유권을 네가 빼앗아 내 앞으로 등록해 뒀다는 말이지? 그 때문에 나를 주인으로 인식한 이 유적이 함정을 발동시키지 않는 거고.’
[그렇습니다.]
‘설정 그대로 유지해 둬. 그리고 혹시 이 유적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알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해당 나노 시스템과 소유자의 신경을 연결해야 합니다. 승인하시겠습니까?]
‘어.’
[나노 시스템과 소유자의 신경을 연결합니다. 연결 확인. 소유자의 시야 비전으로 맵을 출력합니다.]
“이런 미친…….”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
“응? 넌 이게 안 보이냐?”
“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요한은 자신의 눈앞에 둥둥 떠 있는 유적의 설계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지만 블랑카는 고개를 갸웃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마치 허공에 대고 무슨 뚱딴지같은 짓이냐며 되물어 보듯이…….
‘설마 나노 크리에이터에 이런 기능이 숨어 있을 줄은…… 헥토르 그 자식, 이런 얘기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하던 요한은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자신이 헥토르였어도 그런 얘기는 숨겼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기능이 이 녀석에게 더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겠군.’
헥토르는 나노 크리에이터를 가장 마지막에 발견했다. 하지만 요한은 나노 크리에이터를 가장 처음에 찾아 나섰다.
그 이유는 단순히 나노 크리에이터가 다른 신기들을 포용하는 그릇이란 걸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나노 크리에이터를 처음부터 찾아 나선 것이지 설마 이런 숨겨진 기능들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그였다.
“지금 뭐가 보이시는 겁니까, 알파 경?”
“따라와. 지금부터는 내가 안내해 줄 테니까.”
“예? 아, 같이 가요!”
그렇게 요한은 왕가의 피라미드를 마치 제집 안방처럼 누비기 시작했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