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제반의 팔찌
“그래서 지금 저희가 어딜 가는 거라고요?”
“이 유적의 심장부. 보물이 있는 곳.”
요한을 따라 도착한 곳은 굳이 요한의 설명이 없더라도 이 유적에서 가장 중요한 곳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세상에……. 알파 경을 따라다니면서 더 이상 놀랄 건 없을 줄 알았는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블랑카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파지직, 파직!
거대하고 투명한 유리구슬 안에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는 빛이 존재했고 그 주변에는 수많은 유리관들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흐억……!”
블랑카는 호기심을 가지고 유리관 안을 훔쳐보다 저도 모르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유리관 안에 잠들어 있는 것이 다름 아닌 밖에서 질리도록 경험했던 미노타우로스와 웨어울프 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이것들이 여기 왜……?”
블랑카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다시 유리관 안을 살펴보았다.
‘이건 죽은 거야? 살아 있는 거야? 뭐야?’
유리관 안에 잠들어 있는 녀석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구분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그때였다.
“마스터를 뵙습니다.”
“마스터를 뵙습니다.”
“응? 저건 또 뭐지?”
블랑카는 처음 듣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신기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거기에는 뿔부터 전신의 가죽까지 전부 새까만 미노타우로스 한 마리와 눈부시게 새하얀 털을 자랑하는 웨어울프 한 마리가 요한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뭐지?”
“저희는 이 무덤을 지키고 있는 커맨드 가디언입니다. 영광스러운 제반 왕가의 후손께서 돌아오실 그날까지 무덤을 수호하는 것이 저희의 임무입니다.”
‘이 녀석들…… 나를 제반 왕가인지 뭔지 하는 나라의 후손으로 착각하는 건가? 이것도 설마 네가 한 해킹인지 뭔지 그것 때문이야?’
[그렇습니다, 마스터. 현재 저들의 주인은 마스터십니다.]
‘흐음…….’
요한은 턱을 쓰다듬으며 두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녀석들의 모습은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기사 그 자체였다. 문제는 두 녀석에게서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두 커맨드 가디언이 바깥에 있는 개체들과 다르게 완벽한 호문쿨루스이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호문쿨루스? 그게 뭔데?’
[호문쿨루스는 현재 마스터께서 마도 문명이라 알고 계시는 문명 시대에 만들어진 인공 생명체입니다. 목적에 따라 만들어진 그들은 한없이 생명체와 가깝지만, 진짜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에 생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 밖에서 저들끼리 치고받던 미노타우로스랑 웨어울프도 전부 호문쿨루스인지 뭔지 하는 녀석들이라고?”
“예, 마스터.”
대답은 검은 미노타우로스에게서 나왔다. 나노 크리에이터가 편의를 위해 번역 기능을 추가해 두었기 때문에 두 커맨드 가이던과의 소통은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왜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있는 건데?”
“저희는 조물주께서 직접 창조하신 1세대 호문쿨루스입니다. 마력만 보충되면 얼마든지 행동이 가능하지요. 그리고 현재 유리관 안에 잠들어 있는 2세대는 조물주께서 이곳에 잠드시고 난 후, 유적이 직접 남아 있는 재료로 창조한 세대입니다. 그리고 3세대가 밖에서 보신 양산형입니다.”
“양산형?”
“그렇습니다. 육체 개조를 통해 일반적인 개체들보다 훨씬 더 많은 개체의 번식이 가능한 대신, 몬스터의 본능이 상당부분 남아 있어 통제가 어려운 녀석들이죠. 때문에 복잡한 명령은 수행이 불가능하지만 간단한 명령이라면 가능합니다.”
‘그 간단한 명령이 외적의 침입에 대응하는 건가? 그래서 저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다가도 내가 나타나니까 협력해서 싸운 거고.’
미노타우로스와 웨어울프 무리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그럼 녀석들이 전쟁을 치르면서도 이곳을 떠나지 않는 것 또한 같은 이유인가?”
“그렇습니다. 마스터.”
“하면 녀석들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도 있는 거겠지?”
요한의 질문에 하얀 웨어울프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저희의 모든 것은 마스터의 것입니다.”
“그것 참 마음에 드는 대답이네. 그 전에 한 가지 알아볼 게 있다.”
“하명하십시오.”
“밖에 있는 녀석들은 징그럽게 겪어 봤는데 너희 둘의 능력은 아직 미지수란 말이지. 완벽한 호문쿨루스니, 1세대니 거창하게 스스로를 설명한 만큼의 능력은 있겠지?”
“저희의 능력을 어떻게 증명하면 되겠습니까?”
요한은 두 사람에게 손짓하며 미소를 그렸다.
“일단은 둘 이 함께 50%의 능력만 가지고 덤벼 봐. 너희들의 능력은 내가 직접 평가해 주도록 하지.”
“명을 받듭니다.”
사양이나 걱정 따위는 없었다. 감정이 없는 호문쿨루스답게 두 개체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곧바로 요한에게 몸을 날렸다.
쾅! 스팟!
“……!”
두 녀석이 몸을 날리는 순간, 요한의 눈이 커졌다. 분명 명령에 절대복종한다는 놈들이니 명령대로 능력의 절반만 쓴 것일 터였다.
그런데도 놈들의 움직임은 상상을 초월했다.
후웅! 쩌억!
검은 미노타우로스의 주먹을 막아 내는 사이…….
쐐엑! 스카악!
하얀 웨어울프의 손톱이 날카롭게 요한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야말로 군더더기 없는 합공. 요한이 아니었다면 웨어울프의 손톱에…… 아니, 그 이전에 미노타우로스의 주먹을 얻어맞고 곤죽이 되었을 것이다.
‘이거 방심하다간 질 수도 있겠는데?’
미노타우로스의 주먹을 막은 팔이 저릿저릿했다. 요한은 씨익 웃으며 크게 외쳤다.
“능력을 70%까지 올려서 덤벼!”
“예, 마스터.”
요한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 순간…….
우우웅…….
‘얼씨구?’
요한은 녀석들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오러를 보고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익스퍼트 오러까지 쓰는 거냐?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쓸 만하겠는데?’
파지직, 파직!
준비를 마친 녀석들이 망설임 없이 달려들자 요한도 뇌전의 마나를 끌어 올리며 녀석들에게 맞부딪쳤다.
“으아아악!”
멀찍이 떨어져 그 광경을 지켜보던 블랑카의 입에서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전투의 여파가 그가 있는 곳까지 폭풍처럼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요한은 흥분에 찬 목소리로 다시 한번 소리쳤다.
“100%!”
우우우우웅!
요한의 외침에 두 녀석의 안광이 번뜩이더니, 순간 주먹과 손톱에 오러가 압축되며 안정된 빛이 그것들을 감싸 무장했다.
의심할 여지없는 퍼펙트 오러였다.
“좋아! 아주 좋아! 으하하하하!”
요한도 전력을 끌어 올려 두 녀석을 상대하였다.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검은 미노타우로스와 하얀 웨어울프의 공방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었다.
그러다 보니 1+1=2가 아닌 3이 될 수도, 4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녀석들은 몸소 증명해 보였다.
그럼에도 요한이라는 벽은 뛰어넘을 수가 없었다.
하나 바꿔 말하면 요한 정도가 아니라면 녀석들의 합공을 상대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이기도 하였다.
“이쯤 하자. 너희들의 능력은 충분히 알았으니까.”
요한은 흐르는 땀을 닦으며 숨을 골랐다.
“예, 마스터.”
푸쉬이이이…….
과열되었는지 뜨겁게 달아오른 녀석들의 몸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지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인공 생명체라 애초에 체력 같은 건 없다 이건가? 전장에서는 무적에 가까운 강점이구먼.’
[하지만 두 개체의 경우는 마도 문명 시대에도 제작 난이도가 지극히 높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마나 호문쿨루스 제작에 뛰어난 제반 왕국만이 몇 기의 기체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겠지. 저런 괴물들을 쉽게 제작할 수 있었으면 애초에 제반 왕국인지 뭔지가 대륙을 통일했을 테니까.’
인간이 퍼펙트 오러를 사용해도 초인을 능가하는데 그걸 사용하는 게 미노타우로스와 웨어울프의 호문쿨루스라면 그 강함은 몇 배나 된다.
게다가 체력조차 존재하지 않는 괴물이라니…… 적으로 만난다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놈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괴물들이 바로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온 것이다.
‘잠깐,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은 거대 골렘과 다르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헥토르 그 놈은 손에 넣지 못한 건가? 나노, 혹시 네가 해킹하는 것 말고 이 녀석들을 수족으로 부릴 방법은 없는 거야?’
[마스터의 두뇌를 검색하여 파악한 이 세계의 문명 기준으로 봤을 때는 그렇습니다.]
검은 숲의 유적이 관광지로 개방되었을 때도 미노타우로스나 웨어울프의 흔적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결국 헥토르조차 이 녀석들과의 마찰을 피하지 못했다는 뜻일 터였다. 헥토르가 칠신기 중에서 나노 크리에이터를 손에 넣은 건 가장 마지막이었으니까.
‘아쉽군. 차라리 그때 뒈졌다면 좋았을 텐데…….’
“아, 그러고 보니 너희들의 이름을 아직 듣지 못했군. 이름이 뭐지?”
“제 코드네임은 BLST-34M1…….”
“그런 복잡한 거 말고 이름 말이야. 혹시 없어?”
“코드네임 이외에 특별한 명칭은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그럼 너는 지금부터 블랙, 그리고 너는 화이트라 부르겠다. 마음에 안 들면 지금 말해. 나중에 가서 투덜거려 봤자 바꿔 줄 생각 없으니까.”
두 개체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숙였고 요한은 블랙과 화이트의 곁을 지나 이 유적지의 핵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유리구슬 앞으로 다가갔다.
‘어마어마한 마나다.’
유리구슬 안에서는 막대한 양의 마나가 분출되고 있었다. 정확히는 유리구슬에 연결된 관을 통해 구슬 속의 무언가가 외부에서 마나를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나노, 이 안에서 안전하게 핵을 꺼내고 싶다. 방법이 있을까?’
[마나 흡수 장치의 가동을 중단하겠습니다.]
요한의 요구에 나노 크리에이터가 장치를 중단하고 유리구슬을 개방하자 마나를 빨아들이던 핵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것은 보기만 해도 빨려들어 갈 것 같은 영롱한 검은빛의 구슬이었다.
“이게 제반의 팔찌……!”
요한이 검은 구슬을 팔찌라 부른 이유는 헥토르가 처음 이 구슬을 소유했을 당시, 팔찌에 구슬을 박아 착용하면서 세간에 이름이 그렇게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제반의 팔찌의 진짜 핵심은 바로 이 구슬이었던 것이다.
요한은 천천히 손에 떨어져 내리는 구슬을 손바닥 위로 받아 들었다.
[마나 흡수 장치의 핵을 본 나노 크리에이터에 등록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예스지. 바로 시작해 줘.’
[마나 흡수 장치의 핵을 나노 크리에이터와 융합합니다.]
융합이 시작되자 나노 크리에이터가 핵을 감쌌다.
이내 핵이 요한의 가슴 어림으로 이동하더니 씻은 듯이 사라졌다.
정말로 사라진 것은 아니고 나노 크리에이터가 핵을 보이지 않게 위장했을 뿐, 융합에 완벽히 성공한 것이다.
그 순간!
“흡……!”
요한은 방금 전의 전투로 소모했던 마나가 순식간에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환희에 찬 미소를 그렸다.
지금까지 요한이 마나 호흡법을 통해서 흡수했던 마나가 강물이라면, 제반의 구슬을 통해서 흘러들어오는 마나는 해일과 같았던 것이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