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64화 (64/150)

64. 아다만티움

“거기 딱 안 서냐? 이 쓰레기들아.”

“뭐냐, 저 새낀.”

“용사님!”

루이스의 곁으로 다가 선 블랑카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무서웠을 텐데 울지도 않고. 장하다. 루이스. 이제는 이 용사 블랑카 님에게 맡기고 엄마랑 같이 집으로 들어가 있어. 할아버지는 내가 모시고 갈 테니까.”

“응!”

루이스는 희망에 가득 찬 미소로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의 얼굴에서는 이제 가족들이 무사할 거란 안도감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이 블랑카의 책임감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이제 진짜 어떡하냐. 이제 와서 도망갈 수도 없고…….’

그때였다. 뎀의 이죽이는 목소리가 들려온 건…….

“하, 나 참……. 나도 우습게 보인 모양이네. 어이, 용사 블랑카 님이라고 했던가?”

“그, 그렇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돌아가면 목숨만은 살려 주마! 어때?”

“내가 너 같은 사기꾼 새끼들을 너무 많이 봐서 이제는 얼굴만 봐도 각이 나오거든? 이 마을에 뭘 등쳐먹으려고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콘셉트 잘못 잡았다. 뭐 해? 저 새끼 내 앞으로 끌고 와.”

뎀의 명령을 받은 산적들이 건들거리며 블랑카에게 다가왔다. 그들에게서 블랑카에 대한 긴장감이나 두려움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알파 경! 나서려면 지금입니다! 진짜 영웅이 누군지 보여 주세요!’

블랑카는 식은땀을 흘리며 촌장의 집을 힐끔거렸지만 요한이 나설 기색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산적들.

‘알파 경?’

이제는 요한이 나서도 늦었다. 그가 구해 주는 것보다 산적들의 주먹이 자신의 얼굴에 꽂히는 게 더 빠를 테니까.

“이 꽉 깨물어라. 혀 씹는다.”

‘이런 씨부레!’

블랑카는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싸움이라곤 어릴 적에 동네 친구들과 투닥거렸던 게 전부인 그가 살인을 밥 먹듯이 하는 산적들의 주먹을 피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자비 없는 산적의 주먹이 블랑카의 안면에 정확히 틀어박히는 순간…….

콰직!

‘응? 콰직?’

“크아악!”

블랑카는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분명 맞은 건 자신인데 비명을 지른 건 주먹을 휘두른 산적이었기 때문이다.

녀석은 부서진 뼛조각이 튀어 나와 피가 흐르는 주먹을 감싸 쥐고 식은땀을 흘리며 비명을 질렀다.

‘뭐, 뭐야? 나는 아무런 느낌도 안 났는데……?’

그러나 눈앞의 상황은 현실이었다. 그렇게 블랑카도, 산적들도 혼란스러워하는 가운데 요한의 텔레파시가 블랑카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몸에 힘 빼라. 허풍을 사실로 만들어 줄 테니까.

‘네?’

“이 새끼가!”

그 순간, 다른 산적 하나가 단검을 꺼내 죽일 기세로 블랑카에게 달려들었다.

블랑카가 너무 놀라 힘이 쭉 빠지자 그 덕분에 요한이 원거리로 그를 조종하기가 더 편해졌다.

정확히는 그의 몸을 코팅하고 있는 나노 크리에이터를 원격조종 하는 것이었지만.

덥석, 빠드득!

“……!”

돌연 손을 내밀어 단검을 맨손으로 쥔 블랑카가 손아귀에 힘을 주자 검이 그대로 산산조각 나며 땅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산적 놈의 머리를 덥석 그러쥔 블랑카는 곧장 머리를 땅에 박아 버렸고…….

퍽퍽퍽퍽퍽퍽!

산적들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순식간에 뎀을 제외한 산적들 전부를 깔끔하게 처리해 버렸다.

“이, 이게 대체……?”

블랑카는 쳐다보는 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고 심장은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다.

자신이 보기에 블랑카는 영락없는 사기꾼이었다. 설령 사기꾼이 아니더라도 싸움은 전혀 할 줄 모르는 약골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이 틀렸다. 상대는 자신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괴물이었던 것이다.

“푸흐흐흐…… 크하하하! 봤냐? 이 용사 블랑카 님의 저력을? 후회해도 늦었다. 그러길래 기회를 줬을 때…….”

-시끄럽다. 지금 나노랑 연결되어 있어서 네 목소리 다 들리거든?

“넵.”

‘뭐야? 저 새끼는? 왜 혼자 지랄하다 혼자 대답하고 아가리를 다무는 거지?’

처음부터 끝까지 알 수 없는 놈이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놈이 터무니없이 강하다는 것.

하지만 뎀에게도 선택권이 없었다.

‘어차피 부하들도 잃고 빈손으로 돌아가 봤자 난 죽은 목숨이다. 이렇게 된 거…….’

“네놈을 길동무로 삼아 주마!”

뎀은 등 뒤에 매고 있던 철퇴를 꺼내 사납게 달려들었다. 철퇴를 막고 가볍게 반격해서 끝내려고 했던 요한은…….

쩌엉!

“우왁!”

‘응?’

철퇴를 막았던 블랑카의 왼팔이 튕기는 것을 보고 눈빛을 번뜩였다. 평범한 철퇴로는 절대로 나노 크리에이터 아머를 입고 있는 블랑카의 팔을 튕겨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다!’

“죽어라!”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뎀은 곧바로 철퇴를 다시 휘둘러 블랑카의 머리를 노렸다. 하지만 기적은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불리는 법이다.

퍼억!

고개를 틀어 철퇴를 가볍게 피하는 것과 동시에 짧게 주먹을 내질러 뎀의 얼굴을 함몰시킨 블랑카.

털썩…….

이내 생기를 잃은 뎀의 육체가 무너지듯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이겼다!”

블랑카는 환호성을 내지르며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어라?’

당연히 자신보다 마을사람들이 더 크게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오히려 사색이 된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마침 집을 나선 요한이 블랑카의 곁으로 다가와 쪼그려 앉았다. 요한은 뎀의 철퇴를 살펴보며 블랑카에게 말했다.

“설마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나쁜 악당들을 쓰러트렸으니 더 나쁜 악당들이 쳐들어올 건 당연한 일이잖아. 안 그래?”

“아…….”

탄식한 블랑카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어느새 정신을 차린 촌장이 부축을 받으며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저분의 말씀이 맞습니다. 용사님의 배려는 감사하지만 더 큰 화가 찾아오기 전에 두 분께서는 마을을 떠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블랑카가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자 촌장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다니요. 저희를 도와주신 은인을 원망할 만큼 저희는 막돼먹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저희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저 속 시원하게 녀석들을 밟아 준 용사님의 모습에 마지막으로 큰 위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용사님…….”

“저는…….”

자신은 용사가 아니라고, 그저 허풍이었을 뿐이라는 말이 저도 모르게 블랑카의 입에서 튀어나오려는 순간.

“걱정 마십쇼. 이 마을은 앞으로도 평화롭고 행복하게 잘 살 테니까요. 안 그래요, 용사님?”

“알파 경?”

블랑카는 경악한 얼굴로 요한을 쳐다보았다.

* * *

요한이 블랑카와 함께 화이트를 타고 산적의 본거지로 찾아가는 길. 화이트의 후각 덕분에 녀석들이 남긴 냄새를 뒤쫓아 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게 아다만티움인가 뭔가 하는 초희귀 금속이라고요? 으윽!”

블랑카는 요한이 건네준 뎀의 철퇴를 받아 들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보기보다 상당히 무거웠기 때문이었다.

뎀의 철퇴는 어른 주먹만 한 검은 바위에 대충 손잡이를 녹여서 붙인 것 같은 엉성한 모양새였다.

“더럽게 무겁네. 근데 초희귀 금속이라면 엄청 비쌀 것 같은데 저는 왜 이런 금속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몰랐을까요?”

“드워프들한테나 보물 같은 금속이지, 인간한테는 무거운 돌덩이에 불과하니까. 들어 봐서 알겠지만 같은 부피의 돌덩이보다 열 배정도 무겁거든. 애초에 그걸 가공할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이 있었다면 얘기는 달라졌겠지만.”

“드워프들은 이걸 가공할 수 있다고요?”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모든 드워프는 아니고, 일부 드워프들이 그 기술과 능력을 마도 문명 시대 때부터 전수받아 보존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 드워프들한테는 그 돌덩이가 같은 무게의 금과 맞먹는 값어치를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가, 같은 무게의 금이라고요?”

블랑카는 눈을 크게 뜨고 철퇴를 내려다보았다. 요 어른 주먹만 한 검은 돌덩이가 드워프들에게는 10킬로그램의 금과 맞먹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아다만티움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고 무거운 광물이다. 또한 마나 전도율이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진 미스릴보다 훨씬 높은 마나 전도율을 가지고 있지. 아다만티움 이상의 강도와 마나 전도율을 가진 광물이라면 오리하르콘 정도가 있지만 신의 선물이라고 불릴 만큼 보기 힘들어서 사실상 아다만티움을 최강의 금속이라 봐야겠지.”

“그런 최강의 금속을 어떻게 산적 나부랭이 놈들이 가지고 있던 걸까요?”

“글쎄. 물어보면 알겠지.”

요한과 블랑카가 도착한 곳은 인근 사람들이 바울산이라 부르는 높고 험준한 산이었다.

이곳의 지배자는 산적 바란체였다.

인근의 도적들과 산적들을 모두 힘으로 규합하여 바울산으로 불러들인 바란테에게, 바울산은 그야말로 산적들의 왕국이자 요새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무슨 군사 기지도 아니고, 산 초입부터 산적들이 아주 가관이구먼. 인근 영주들이 전혀 신경을 안 쓰는 건가?”

“그만큼 돈을 뿌리는 거겠죠. 돈 앞에 장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돈 주고 더러운 일도 맡아서 처리해 주면 굳이 자기들 피 흘려가며 고생할 이유도 없으니까요.”

“하여간 쓰레기 같은 새끼들……. 쯧쯧.”

산을 진입하자마자 길목을 떡하니 틀어막고 있는 목책 관문을 보고 요한이 혀를 찼다.

목책 위에서 졸고 있던 산적들도 요한과 블랑카의 대화를 듣고 화들짝 놀라 일어나더니 두 사람에게 활을 겨누며 소리쳤다.

“이 새끼들 뭐야? 신분과 목적을 밝혀라!”

“신분과 목적이라……. 용사 블랑카와 그의 동료. 목적은 산적들의 궤멸. 뭐, 이 정도면 되려나?”

“뭐? 저런 미친 새끼가…….

파지직!

그 순간, 요한이 품속에서 두 개의 플라잉 나이프가 저절로 빠져나오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스피피피피핏!

목책 위로 생겨난 실선들이 어지럽게 산적들을 덮어 버린 순간, 실선들이 사라지자 실선을 따라 조각난 산적들의 육편이 목책 아래로 후드득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뭐, 뭡니까, 그건 또?”

블랑카의 요한의 곁으로 날아온 두 자루의 플라잉 나이프를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있어. 생각보다 편한 기술. 쓸데없이 마나를 많이 잡아먹는 게 단점이었는데 이제 두 자루 정도로는 마나가 소모되는 것보다 차오르는 게 더 빠르네.”

본래 전투 중에 마나를 회복한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제반의 팔찌 덕분에 그 꿈같은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블랙.”

요한의 부름에 그의 그림자에 숨어 대기하고 있던 검은 미노타우로스, 블랙이 그림자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저 거치적거리는 것 좀 치워 버려.”

후웅!

요한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목책을 향해서 돌진한 블랙이 그대로 목책을 들이받아 버렸다.

콰아앙!

단 일격에 공성추를 써도 한두 방은 너끈히 버틸 수 있는 목책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나며 무너져 내리자 화이트를 타고 있던 요한이 나직하게 명령을 내렸다.

“가자, 보물 찾으러.”

바울산에 지옥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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