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지옥의 아가리
“감히 겁도 없이 뭐가 왔다고? 침입자? 몇 명이나?”
“그게…… 인간 두 명에 하얀 늑대 하나, 검은 소 대가리에 덩치가 큰 몬스터 하나였다고 합니다.
“당장 애들 모아!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잘됐다.”
침입자가 나타났단 소식을 듣고 산적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침입자를 어떻게 죽일까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등장했던 산적들은 곧 침입자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저, 저게 뭐야…….”
“겁먹지 마! 숫자는 우리가 더 많다!”
미노타우로스를 처음 본 산적들은 곧 자신들의 숫자를 믿고 달려들기 시작했지만 그게 잘못된 판단이었단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후웅…… 콰아앙!
블랙이 몰려드는 산적들을 향해서 시원하게 주먹을 날리자 무슨 벽력 터지는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분해되어 폭발했다.
그 후로는 그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무우우우우!
블랙은 길게 포효하며 산적들 사이로 거칠게 몸을 날렸다. 산적들이 던진 투창과 화살이 블랙의 몸에 명중했지만 상처는커녕 생채기조차 생기지 않았다.
그에 반해 블랙이 휘두른 주먹은 칼이면 칼, 창이면 창, 방패면 방패, 그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분쇄하며 산적들의 몸을 박살 내 버렸다.
전황이 이렇다 보니 나중에 지원군으로 도착한 산적들도 겁을 먹고 도망치기 바빴다.
“그렇게는 안 되지.”
파지직…… 쒜에엑!
그 순간, 요한의 품속에서 빠져나온 열 자루의 플라잉 나이프들이 강한 전류를 방출하더니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도망치는 도적들을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화이트, 도망치는 놈들은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사냥해라.”
“예, 마스터.”
요한과 블랑카가 등에서 내리자 웨어울프의 형태로 돌아간 화이트가 순식간에 두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썬더 호넷의 범위 밖으로 도망친 도적들을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아래쪽에서 발생한 큰 소란은 이내 산적들의 우두머리인 바란체의 귀에도 들어갔다.
“뭐? 괴물이 쳐들어와서 날뛰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두목!”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고?”
“예?”
퍽!
여자들을 품고 있던 바란체의 서슬퍼런 안광이 번뜩였다. 순간, 그가 던진 술잔이 보고를 하던 산적의 머리에 명중하면서 산적의 머리가 박살이 났다.
여자들은 눈앞에서 고문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끔찍한 비명와 몰골에 한껏 공포에 질려 있었다.
바란체는 그렇게 겁에 질린 여자들을 안는 걸 누구보다 좋아하는 변태였다. 그리고 이 시간을 방해하는 사람을 누구보다 경멸했다.
‘그러게 내가 뭐랬냐고…….’
죽은 산적 동료를 말렸던 바란체의 오른팔, 조룬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바란체는 조룬에게 명령했다.
“시끄러운 파리들은 네가 처리해라, 조룬. 만약 이번 일로 한 번만 더 내 흥을 깨면 그때는 다 죽을 줄 알아. 알았어?”
“예, 두목. 대신 전사들 좀 데려가도 되죠?”
전사란 바란체에게 전투력을 인정받은 바란체 직속부대를 일컫는 말이었다.
“알아서 하고 꺼져!”
바란체의 축객령에 두목의 천막을 나온 조룬은 전사들을 이끌고 침입자들을 처리하기 위해 밑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야, 이게 산적 소굴이야, 귀족들 휴양지야? 보기보다 때깔이 좋네.”
“……!”
꺄아악……!
밖에서 울려 퍼지는 낯선 목소리에 바란체는 눈살을 찌푸리며 여자들을 거칠게 팽개치더니 무기를 들고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왔다.
“어떤 미친놈들이 겁도 없이 함부로 여길 쳐들어와? 어?”
거칠게 소리치는 바란체의 모습을 쳐다보던 요한의 시선이 발가벗은 그의 가랑이 사이로 향했다.
요한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몸뚱이는 곰탱이 같은 게 거기는 쥐새끼가 따로 없네. 거기로 갈 양분까지 근육에 몰빵한 거냐? 뭘 자랑하겠다고 발가벗고 나섰는지, 원…… 쯧쯧!”
“……!”
요한의 말에 그를 경계하던 산적들이 눈을 부릅뜨고선 바란체의 눈치를 살폈다. 심지어 그들의 이마에서는 어느새 식은땀마저 흐르고 있었다.
‘그건 두목이 제일 신경 쓰는 최악의 콤플렉슨데…….’
‘저거 곱게 죽기는 글렀네. 쯧쯧…….’
아니나 다를까, 얼굴뿐만 아니라 온몸이 붉게 달아올라 빗대까지 꿈틀거리는 바란체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너 이 새끼……!”
우우웅……!
그 순간, 바란체가 들고 있던 무기…… 정확히는 길쭉하고 뭉툭하게 생긴 검은 몽둥이에서 익스퍼트 오러가 흘러나왔다.
‘저건……!’
놀랍게도 바란체는 산적 두목이기 이전에 오러 익스퍼트 유저였던 것이다. 하지만 요한이 정말로 놀란 건 산적 두목이 오러 익스퍼트라서가 아니었다.
‘설마 저 몽둥이가 통짜 아다만티움이라고?’
모양새를 보아하니 가공한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온 파편을 우연히 주워서 사용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그 파편은 어떤 무기보다 위력적이고 파괴적이었다.
“편하게 죽을 생각은 버려라.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슉!
녀석은 그 무거운 통짜 아다만티움 몽둥이를 두 손으로 들고도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빠르게 몸을 날려 요한에게 접근했다.
산적들은 바란체가 참극을 보여 줄 거란 것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금까지 바란체가 저 몽둥이로 깨부수지 못한 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콰앙!
“뭐냐, 넌 또?”
바란체와 요한의 사이에 블랙이 끼어들었다.
그에 바란체는 몽둥이를 힘껏 휘둘러 블랙을 공격하자 블랙은 오른손을 들어 방패처럼 녀석의 몽둥이를 막았다.
그러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터지면서 블랙 정도의 거구가 순식간에 몇 미터나 뒤로 밀려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 과연 아다만티움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리 오러를 쓰지 않았다지만 고작 익스퍼트 오러 따위로 너한테 이 정도까지 대미지를 줄 수 있구나.”
“죄송합니다, 마스터.”
부러져 덜렁거리는 블랙의 오른팔을 보고 요한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블랙의 몸뚱이가 얼마나 무식하게 단단하고 질긴지는 직접 붙어 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익스퍼트 오러로 무장된 쇠몽둥이 정도로는 타격은 줄 수 있어도 지금처럼 간단하게 부러트릴 수는 없었을 터였다.
“아니야. 오러를 쓰지 말라고 한 건 나였으니까. 저 녀석의 성능을 시험해 보고 싶었거든.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블랙, 제대로 상대해 줘.”
“분부를 받듭니다.”
“무슨 개짓거리들이냐! 죽기 전에 기도라도 하려고?”
바란체가 다시 달려들자 블랙은 오른팔을 들어 다시 녀석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멍청한 새끼, 멀쩡한 팔로도 못 막았는데 부러진 팔로 잘도 막겠다. 이대로 네놈의 머리통까지 부숴 주마!’
그 순간!
꽈드득, 꽈득! 콰앙!
부러진 오른팔이 순식간에 재생되더니 이번에는 바란체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 낸 것이 아니겠는가?
“이, 이게 대체……!”
바란체는 찢어질 것처럼 눈을 부릅뜨며 블랙의 오른팔을 응시하였다.
거기에는 자신이 평생을 원해도 손에 넣을 수 없었던 퍼펙트 오러가 영롱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아니야! 나도 이르지 못한 퍼펙트 오러를 저딴 괴물이……! 이건 말도 안 돼!”
바란체는 악을 쓰며 블랙에게 달려들었다. 한계 이상의 저력을 끌어 올린 탓에 바란체의 육체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대신 한계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쾅쾅쾅쾅쾅쾅쾅!
바란체가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에 맞춰 블랙이 퍼펙트 오러로 무장된 주먹을 마주 휘둘러 부딪쳤다.
주먹과 몽둥이가 부딪칠 때마다 천둥 울리는 소리가 정신없이 터져 나왔다. 거듭되는 충격파를 견디지 못한 땅에 조금씩 균열이 생겨나기도 했다.
산적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자신들의 두목인 바란체에게 적수 따윈 없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바란체는 누가 봐도 열세인 상황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주먹과 몽둥이가 부딪힐 때마다 바란체의 걸음이 조금씩 뒤로 가고 있었고, 공세도 점점 블랙의 주먹을 막아 내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콰아앙!
“크윽……!”
푹!
블랙의 주먹질에 거대한 굉음이 터지면서 몽둥이가 바란체의 손을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허공을 잠깐 유영하더니 바닥에 깊숙이 틀어 박혔다.
“이건 쓸 만하네. 블랙, 너 가져라.”
싸움이 정리되자 요한은 땅에 깊숙이 박힌 아다만티움 몽둥이를 쑥 뽑아내더니 블랙에게 던져 주었다.
“감사합니다. 마스터.”
후웅!
몽둥이를 받아든 블랙은 한 손으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오러도 사용하지 않고 가볍게 휘둘렀을 뿐인데 엄청난 풍압이 주변을 휩쓸었다.
그렇게 무기까지 알뜰하게 챙긴 블랙이 자신의 그림자로 돌아오자 요한이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는 바란체에게 다가가 질문을 던졌다.
“너희들이 쓰고 있는 아다만티움은 어디서 구했냐?”
“아다만티움?”
“저 몽둥이랑 너희들이 사용하는 무겁고 까만 돌들 말이야.”
요한의 질문에 바란체는 피식 실소를 터트리더니 중지 손가락을 펼치며 대꾸했다.
“×까, 개새끼들아. 내가 그걸 왜 네놈한테…….”
서걱.
그 순간, 바란체의 중지 손가락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라 플라잉 나이프에 순식간에 잘려 나간 것이었다.
요한은 바란체의 주먹을 감싸 쥐고는 마나를 끌어 올렸다. 단지 그뿐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끔찍했다.
파지직, 파직!
“크아아아아악!”
머리털이 바짝 곤두 선 바란체가 지옥의 명부에서 끌어 오르는 듯한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푸쉬이이…….
요한은 전신에서 김을 모락모락 피우는 바란체를 내려다보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아직도 대답할 생각 없지?”
“…….”
대답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 같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럼 됐어. 어차피 입은 많으니까.”
파지지지지지지직!
엄청난 뇌격이 바란체의 몸에 작렬하였다.
순식간에 숯이 되어 버린 바란체는 끔찍한 모습으로 목숨을 잃었고 그 광경은 수많은 산적들이 목격하였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해 주는 한 놈 빼고는 전부 이렇게 죽일 거야.”
요한이 히죽 웃으며 선고하자 산적들이 앞다퉈 요한의 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 * *
“이, 이곳입니다!”
“흐음…….”
요한은 산적들 중에 자신의 안내를 맡은 마지막 생존자를 따라 어느 동굴 앞에 도착했다.
동굴 주변에는 동굴에서 시작되는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개울 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아다만티움 조각으로 보이는 검고 무거운 광석들이 조금씩 보였다.
‘아무래도 여기가 맞는 것 같긴 한데…….’
“저희는 이곳은 지옥의 아가리라 부릅니다.”
“지옥의 아가리?”
“네……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을…….”
훙.
요한은 산적의 뒷덜미를 들어 동굴 안쪽으로 던지고선 귀를 기울였다. 산적의 비명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지만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는 끝까지 들리지 않았다.
“진짜 깊기는 오지게 깊은 모양이네. 근데 넌 사람을 왜 그렇게 보냐?”
“아뇨, 뭐…… 딴 건 아니고 방금 그 친구는 살려 주기로 한 게 아니었습니까?”
블랑카가 요한을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묻자 요한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전기로 지져 죽이지 않는다고 했지 살려 준다는 말은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아,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그런데 이렇게 깊은 동굴을 어떻게 내려가죠? 내려가기에 적당한 밧줄도 없을 것 같은데…….”
“다 방법이 있지. 화이트.”
“예, 마스터.”
펄럭!
그 순간, 늑대 버전의 화이트의 몸통에서 순백의 날개 한 쌍이 돋아났다. 그에 요한이 은근슬쩍 블랑카의 눈치를 살폈다.
예상외로 블랑카는 날개가 생긴 화이트의 모습을 심드렁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별로 안 놀라네?”
“알파 경이 하는 일에 일일이 놀랐다가는 심장마비로 제 명에 못 살 거 같았어요. 경과 관련된 일에는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와도 그러려니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 블랙 너는 이 녀석 잘 지키고 있고. 그럼 다녀온다.”
“잠깐만요. 근데 어째서 실망하는 목소리인 겁니까? 알파 경? 알파 경!”
요한은 화이트를 타고 지옥의 아가리라 불리는 구멍으로 천천히 하강하였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