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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75화 (75/150)

75. 대지의 정령의 도끼

일기의 내용이 횡설수설 하는 것으로 보아 제정신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만큼 어떤 사실에 충격을 받은 모양인데…….

다행히도 충격의 근원지라 할 만한 곳을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흐음……. 딱 봐도 봉인했다 뜯기를 여러 번 반복한 흔적인데?’

지금은 봉인이 풀려 있었지만 석판을 박았다 뜯었던 흔적이 여러 개 살펴볼 수 있었다. 즉, 이곳에 불칸을 미치게 만든 원흉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요한은 문을 열고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은 상당히 깊었고 이 정도로 내려갔으면 열기가 못 견딜 정도로 뜨거워야 하는데도 전혀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노. 혹시 온도 조절 했어?’

[현재 공간의 기온은 섭씨 25도입니다. 마스터가 활동하시기에 쾌적한 온도라 판단되어 따로 조절하지 않았습니다. 조절 하시겠습니까?]

요한은 신기했다. 나노 크리에이터가 온도를 조절하지 않았음에도 이 안이 쾌적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하지만 정말로 신기한 건 따로 있었다.

“이건…….”

계단의 끝. 작은 신전 같기도, 박물관 같기도 한 그곳에서 요한은 중앙에 전시되어 있는 한 자루의 ‘도끼’를 보고 눈을 떼지 못했다.

골드 드래곤을 형상화한 자루에 용이 물고 있는 것은 공기를 빚어놓은 듯 거대하고 투명한 도끼날이었다.

사방에서 투영되는 빛이 굴절되지 않았다면 아마 도끼날의 존재를 알아보지도 못했겠지.

요한은 도끼를 향해 다가가다 그 옆에 거의 다 부스러진 백골 사체 한 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혹시 이자가 불칸인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불칸은 최후의 순간까지 이 신의 걸작과도 같은 무구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 될 터.

요한은 불칸을 이 지경으로 만든 의문의 도끼를 쥐어 들었다.

‘응?’

도끼는 생각보다 무거운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무거웠다.

요한이 빅벤의 반지를 착용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마나를 끌어 올려도 두 손으로 겨우 들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 정도면 들고 나가지 못했을 만도 하군. 아무리 드워프가 장사라도 이건 족히 드워프 열 명은 달려들어야 간신히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니까.’

그리고 도끼에서 느껴지는 굳건하고 강대한 기운은 성질만 다를 뿐 기운 자체는 실피드에서 느껴지던 순수한 기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분석 결과, 도끼의 자루는 오리하르콘을, 날 부분은 다이아몬드를 가공하여 만든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뭐?’

나노 크리에이터의 분석 결과에 요한은 다시 한번 날 부분으로 시선을 주었다.

‘믿을 수 없군. 대체 어떤 기술을 썼길래…….’

빛을 굴절시켜 보지 않고서는 존재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한 이 날이 다른 광석도 아니고 다이아몬드를 가공하여 만들었다는 게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골드 드래곤 형상의 자루 부분도 도저히 오리하르콘을 가공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오리하르콘이란 광석은 결코 이렇게 세련되고 미세하게 가공할 수 있는 광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한은 일단 도끼를 챙겨 들었다. 실피드와 마찬가지로 이 신기가 자신을 받아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실피드도 그렇고, 이 녀석도 그렇고, 분명 무슨 이유가 있으니까 내 눈에 띠인 거겠지.’

그렇게 다시 공방으로 올라온 요한은 불칸이 제작한 무구들에 뇌전의 마나를 불어 넣었다.

파지직!

그러자 뇌전의 마나를 쭉쭉 빨아들인 무기들이 작은 전류를 방출하며 허공에 둥둥 떠올랐다. 그러고는 살아 있는 새처럼 요한의 뒤를 따라 비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없나?’

안타깝게도 다른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들어온 입구는 아직까지 용암 호수가 흘러내리는 상황.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지면 아래에서 솟구쳐 오르는 마그마가 아니라 용암방에 들어 있던 마그마라면 용량이 있겠지. 결국 그 용량이 다 소비되면 마그마 폭포도 그칠 거고.’

요한은 마음 편하게 공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되자 요한의 생각처럼 더 이상 쏟아져 내리는 마그마는 없었고 기존에 쏟아져 내렸던 마그마도 빠르게 굳어 가는 중이었다.

쾅!

요한이 뇌전의 오러가 담긴 오르하르콘 도끼로 입구를 틀어막은 채 굳어 가던 용암 폭포를 후려갈기자 폭포가 부서지며 입구가 개방되었다.

그러자 훅하고 쏟아져 들어오는 열기와 가스에 요한은 숨을 참고 밖으로 뛰어 내렸다.

본래라면 바닥이 없는 이곳에서 지저의 용암 바다까지 낙하해야 정상이겠지만 요한이 착용하고 있는 신기 중 하나가 바로 메르큐리의 신발이지 않은가?

하늘을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는 신발 덕분에 요한은 빠른 속도로 상승할 수 있었다.

‘조금만 정신을 놔도 기대로 기절할 것같이 뜨겁다!’

용암이 굳었다고는 하나 그건 표면일 뿐이고 아직 안쪽은 굳지 않은 마그마들이 펄펄 끓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지금 요한이 비행 중인 공간은 섭씨 수백 도가 넘어가는 작열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공기 중에는 산소 대신 유황가스 같은 유독물질이 가득했기에 숨 쉬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심지어 미로의 입구는 쏟아져 내린 용암 폭포로 인해 수십 미터 두께로 굳어 버린 상황.

탈출은 불가능해 보였…….

‘입구가 없으면 만들면 되지!’

파지직! 콰콰쾅!

요한은 전력을 다해 뇌전의 오러를 끌어 올리며 위로 솟구쳤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용암방이 깨지고 용암이 전부 흘러나온 후라 오히려 위로 뚫고 올라갈 구멍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간다!”

요한은 자신을 따라 비행하던 오리하르콘 무구들에게 더 많은 뇌전의 오러를 불어 넣으며 눈앞으로 날려 보냈다.

무구들은 암석들을 마치 푸딩처럼 썰어 내며 길을 만들었고 요한은 그 뒤를 빠르게 쫓았다.

“으아아아아아!”

그렇게 얼마나 암석을 부수며 솟구쳤을까?

콰르릉! 콰쾅, 콰콰쾅!

엄습해 오는 혹한의 추위에 눈을 떠 보니 새하얀 설원이 눈동자에 비쳤다.

“후아아…… 이제 살겠네.”

푸쉬이이이이…….

차디찬 눈밭에 몸을 뉘이자 수증기가 피어오르면서 뜨겁게 달궈졌던 그의 몸이 빠르게 식어 갔다.

“알파 경!”

“으아앙! 이제 돌아오시면 어떡합니까! 전 알파 경이 죽은 줄 알았다고요!”

“죽더라도 네 돈은 챙겨 주고 죽을 테니까 떨어져라. 콧물 묻는다.”

그렇게 몸을 한차례 식힌 요한이 드월븐 팩토리아로 돌아오자 초조하게 그를 기다리던 일행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다행이다. 이 녀석들도 살아 있어서.’

요한은 블랑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고생했다.”

* * *

“그, 그건…… 설마 압실론이 아닌가?”

“오오……!”

“대지의 은총이시여……!”

드워프 국왕 푸거를 비롯하여 노령의 드워프 장인들은 요한이 가져온 골드 드래곤 도끼…… 압실론을 보고 눈을 부릅뜨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 신기를 대체 어디서 찾은 겐가?”

“라비린스보다 훨씬 아래쪽 지하에 비밀 공방이 있더군요. 불칸이라는 분께서 만들어 사용하셨던데 혹시 아십니까?”

“불칸이라면 나도 들어 본 적은 있네. 마도 문명 시대에 이름을 날렸던 장인이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었다고 알고 있지. 그런데 설마 라비린스의 지하에 그런 공방을 지어놓고 거기서 살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군.”

‘뭐야? 그럼 마도 문명 시대에 죽은 장인의 유골이 아직 남아 있었다는 건가? 신기하네…….’

요한은 도끼를 푸거에게 건네주며 대꾸했다.

“그 비밀 공방 아래쪽에 작은 신전 같은 것이 존재했습니다. 이 신기는 거기서 발견한 거고요. 그러니 본래 주인에게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우리 드워프족을 대표해서 감사를 전하는 바……. 끄응!”

도끼를 건네받은 푸거는 오러를 급하게 끌어 올렸다.

도끼의 무게가 상상을 초월한 탓이었다.

“보, 보기보다 많이 무겁구먼그래. 허허허…….”

“허리 조심하십쇼. 그리고 비밀 공방엣 발견한 무구들 말입니다.”

“아, 자네가 가져왔던 오리하르콘제 무구들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장인들이 감탄을 금치 못하더군. 지금의 자신들로는 흉내도 내지 못할 솜씨라면서 탄식하던 게 어찌나 안쓰럽던지…….”

“그 무구들을 제가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요한의 직설적인 요구에 푸거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왜 내 허락을 받나? 당연히 자네 것이지. 애초에 자네가 아니었으면 존재 자체도 몰랐을 무구들이 아닌가?”

“그렇긴 한데 그래도 드워프 장인분들의 선조가 만드신 건데 형식적인 허락이라도 필요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하하하! 전혀 신경 쓰지 말게. 탐이 안 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렇게 잃어버렸던 신기까지 되찾아 준 은인에게 그런 염치없는 부탁을 할 정도로 못난 녀석들은 아니거든.”

“감사합니다.”

쿵!

푸거는 압실론을 땅바닥에 박아 놓고는 두 팔을 활짝 피며 크게 소리쳤다.

“오늘 밤! 귀빈을 환송하는 연회를 성대하게 개최할 것이다! 각 대소신료들은 차질 없이 연회를 준비하도록!”

“예. 전하!”

신하들이 깊게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 * *

연회가 끝난 다음 날.

아침 일찍 동맹에 관해서 필요한 행정들을 빠르게 끝낸 요한과 일행들은 드워프들의 성대한 환송을 받으며 왕국을 떠났다.

“확실히 드워프들이 화끈하긴 화끈하네. 동맹에 관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요한이 기분 좋게 웃으며 얘기하자 뒤에서 화통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연하지! 우리 드워프들은 친구와 가족이 다르지 않다! 가족이 도와달라는데 그걸 반대할 녀석이 있을까? 물론 그걸 악용하는 인간 놈들 때문에 피를 많이 보긴 했지만.”

“그런 분께서 인간 세상에 같이 가셔도 되는 겁니까? 가면 진짜 볼 꼴, 못 볼 꼴, 다 보실 텐데.”

블랑카가 돌아보며 말을 건네는 대상은 다름 아닌 라거였다. 블랑카의 얘기에 라거는 어깨를 펼치며 콧김을 내뿜었다.

“상관없다! 우리는 그동안 인간들과의 교류가 너무 적었다. 적을 모른다는 뜻이다! 이참에 적들에 대해 더 배우고, 더 싸우면서 성장할 좋은 기회가 되겠지. 게다가 엘프 공주도 하는 일을 나라고 왜 못할까? 아니면 너는 내가 동행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나?”

“아뇨. 그게 아니라…….”

“감시하는 눈이 많아지는 게 싫은 거겠지. 기회를 봐서 튀어야 되는데 눈이 많아지면 힘들어지잖아.”

요한이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블랑카가 발끈했다.

“지금까지 어떤 개고생을 거치며 살아남았는데 이제 와서 도망칩니까? 이제는 내쫓아도 못 나가니까 그리 아십쇼. 흥!”

블랑카의 반응에 요한은 피식 웃으며 길을 재촉했다. 그러자 릴리안이 요한에게 물었다.

“그런데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루다프로스크.”

요한의 대답에 블랑카가 환희에 가득 찬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반면 그곳이 어딘지 아는 것 같은 릴리안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네? 진짜 루다프로스크로 간다고요? 진짜요?”

“루다프로스크가 어딘데 그래?”

그러자 루다프로스크가 어딘지 모르는 라거가 블랑카에게 다시 물었고, 블랑카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대답했다.

“루다프로스크는 환락과 도박, 그리고 남자의 도시라 할 수 있죠. 돈만 있으면 국왕 부럽지 않은 호사를 누릴 수 있다던데……. 역시 알파 경도 남자네요. 그렇죠. 이렇게 죽을 고비만 넘길 게 아니라 좀 쉬는 시간도 있어야죠.”

“환락과 도박의 도시라……. 엘프 공주의 표정을 보아하니 대충 그 도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같은데…… 환락과 도박이 전부는 아닌 모양이군. 안 그런가?”

“…….”

릴리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엘프 전사들의 무리였다면 당연히 자신의 목적을 위해 움직였겠지만 현재 릴리안은 요한의 제자이자 부하로서 일행에 참가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곳에서 찾아야 할 건 아공간 주머니, 제로스의 망토다. 그걸 손에 넣을 때까지는 절대로 경거망동하지 말도록. 누군지 말 안 해도 잘 알지?”

“알겠어요.”

릴리안이 무겁게 대답했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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