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죽음의 폭군
끼이익…….
듀라한들을 모두 쓰러트리고 최상층 그랜드 홀의 문을 열며 들어선 요한.
그의 눈앞에 홀로 쓸쓸하게 왕좌를 지키고 있는 고독한 해골왕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앉아서 흉흉한 기운이 감도는 검을 지팡이처럼 짚고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칠흑같이 뻥 뚫린 눈두덩은 요한을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무엇도 보고 있지 않은 것인지 구분조차 불가능했다.
그 순간…….
슈르르륵…….
해골왕을 중심으로 빛바랜 레드 카펫 양쪽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그 안에서 열 구의 해골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데스 나이트…….’
경우에 따라서는 혼자서 도시 하나를 멸망시킬 수 있는 최상급 언데드 몬스터의 등장이었다.
“데스 나이트 열 마리라…… 이건 좀 빡셀 수도…….”
끼릭끼릭…… 팟!
딱딱하게 목을 돌린 데스 나이트 열 마리가 요한을 인식한 순간, 그들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고 느낄 만큼 놈들의 움직임이 너무 빨랐던 것이다.
순식간에 요한에게 쇄도한 녀석들의 검에는 검은 오러가 응축되어 안정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오러 마스터의 증표인 퍼펙트 오러를 죽음의 마나로 펼친 것이다.
즉, 이 자리에 있는 열 마리의 데스 나이트 모두 최소 오러 마스터급 이상의 강자라는 뜻이었다.
‘물론 언데드인 만큼 진짜 오러 마스터보다 훨씬 더 악랄하겠지만!’
요한은 오리하르콘 검을 쌍수로 들고 덮쳐 오는 데스 나이트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데스 나이트의 육체 능력은 듀라한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물론 녀석들이 다루는 죽음의 마나도…….
그렇다 보니 죽음의 마나로 강화된 데스 나이트의 능력은 듀라한과 차원이 달랐다.
정말로 인식을 조금만 늦춰도 놈들의 움직임을 놓칠 수 있었다. 게다가 놈들은 열 마리가 마치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합을 맞춘다.
한 몸처럼 움직이며 합공하는 오러 마스터 열 명이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실은 상상보다 더 끔찍한 법이구먼. 젠장!’
요한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방어는 신경 쓰지 않고 공격에만 전념하는 녀석들 때문에 오히려 반격의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뇌전의 마나의 강점 중 하나인 감전도 놈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놈들이 생명체가 아닌, 언데드인 탓이었다.
‘그나마 나노가 호넷으로 견제해 주 않았다면 상황이 더 어려웠겠어.’
나노 크레에이터가 조종하는 오리하르콘 무구들이 지속적으로 다른 데스 나이트들을 견제 해 준 덕분에 요한은 눈앞에 있는 상대 서넛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데스 나이트들은 그저 평범하게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지능이 높은 만큼 생전에 보유했던 검술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녀석들이었다.
게다가 완벽한 죽음의 마나를 다루는 데스 나이트답게 작은 상처도 곧장 상처 부위가 빠르게 썩어 들어 갈 수 있었다.
즉, 검이 스치는 것만으로 사지를 절단하거나 심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쾅!
요한은 강하게 진각을 구르며 바닥을 밟았다. 그러자 충격을 이기지 못한 바닥이 부서지며 요한과 데스 나이트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물론 이 정도로 데스 나이트는 결코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이보다 더한 상황이라도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는다고 해서 떨어지는 와중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니지!’
파지직, 파직!
순간, 요한이 몸을 뇌전으로 무장하며 나노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노!’
쾅쾅쾅쾅쾅!
그사이, 나노가 조종하는 호넷들이 먼저 데스 나이트를 노려 검격을 휘두르게 만들었다.
과연 오러 마스터 급의 최상급 언데드라 그런지 갑작스러운 호넷의 기습에도 놈들은 당황하지 않고 검을 휘둘러 무구들을 쳐 냈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했듯 놈들이 당황하지 않는 것과 물리법칙은 전혀 상관이 없었다. 낙하하는 와중에 이미 검을 휘둘러 자세마저 완전히 틀어진 상황.
그 시간은 불과 1초도 되지 않았지만 요한에게는 충분했다.
콰릉!
천둥을 터트리며 요한의 몸이 공간을 관통했다. 얼마나 그 속도가 빨랐는지 그가 지나가는 궤적을 따라 번개의 꼬리가 길게 늘어날 정도였다.
그 스피드를 유지하며 데스 나이트들을 일격에 일도양단 시작하는 요한,
아무리 데스 나이트라도 뇌전의 퍼펙트 오러가 무장된 오리하르콘 검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후두두둑…….
열 마리의 데스 나이트 중에서 거의 반 이상이 추락하는 도중에 소멸하고 말았다.
열 마리가 덤볐을 때도 백중지세를 유지했던 요한이다. 그런데 적의 전력이 반으로 줄어드니 더 이상 데스 나이트들은 요한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파지직, 콰릉!
번쩍!
호넷이 셋을 완벽하게 틀어막아 주는 사이, 요한의 검이 뇌전을 터트리며 두 마리의 데스 나이트를 양단했다.
남은 것은 셋.
호넷이 둘을 압도적으로 막아 주는 사이에 요한이 하나를 가볍게 처리하고 남은 둘은 요한과 호넷이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후우…….”
요한은 소매로 이마를 훔쳤다. 땀이 소매를 흥건하게 적신 게 보였다. 사실 데스 나이트는 절대로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그것도 숫자가 열 마리라면 더더욱.
만약 바닥을 무너트려 놈들을 무력화시킨다는 기지를 발휘하지 못했더라면 결국 당하는 것은 요한이었을 것이다.
백중지세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불리해지는 건 체력의 한계가 있는 요한일 테니까.
하지만 마냥 상황이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생각보다 체력의 소비가 훨씬 심했어. 뭐, 데스 나이트 열 마리를 상대로 살아남은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긴 하지만…….’
요한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해골왕은 데스 나이트가 전멸할 때까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바닥이 무너졌을 때야 그렇다 치더라도 남은 녀석들은 충분히 도와줄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단순히 언데드 간의 동료 의식이 없어서 그런 거라면 차라리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만약 그런 게 아니라면…….’
요한은 육포를 씹으며 천천히 윗층을 향해 비행했다.
해골왕이 있는 그랜드 홀에 다시 도착하자 해골왕은 처음 봤던 자세 그대로 역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저게 장식이 아닐까 싶은 의문이 들 때 즈음, 장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놈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환영한다, 친애하는 나의 적이여. 이번에야말로 영면을 허락받을 수 있기를…….
‘……!’
언데드가 말도 한다는 사실에 놀랄 겨를도 없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죽음의 마나에 요한이 눈을 부릅뜨는 순간.
콰우우우우우!
그가 내민 손바닥 안에서 검붉은 불길이 무서운 기세로 요한을 향해 뿜어져 나왔다.
파직!
요한이 빠르게 피하자 불길은 그대로 성문과 성벽을 녹여 내리더니 그 기세 그대로 밖으로 뿜어져 날아가다 사라져 버렸다.
‘방금 그건…….’
[6서클 흑마법 데몬 플레어로 추정. 제 추측이 맞다는 가정하에 상대는 데스 나이트 상위종, 데스 캘러미티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데스 캘러미티? 데스 나이트의 상위종이라고?’
[데스 캘러미티는 창조 가능한 언데드종 중에 가장 강력한 몬스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6서클 이하의 흑마법을 사용할 수 있고 그랜드 오러 마스터급의 죽음의 마나를 다룰 수 있습니다.]
‘잠깐! 방금 뭐라고? 그랜드 오러 마스터급? 그게 무슨…….’
그 순간, 요한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녀석이 앉아 있을 때 지팡이처럼 짚고 있던 검.
그 검에서 완벽한 형태의 퍼펙트 오러와 함께 검 주변의 공간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퍼펙트 오러를 능가하는 너무나도 강력한 위력 때문에 오러 주변의 공간이 왜곡되는 현상.
그 현상이야말로 그랜드 오러 마스터의 증거인 ‘앱솔루트 오러’의 참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퓻.
그때, 그란체스카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싶은 순간, 어느새 요한과의 거리를 지워 버린 녀석이 요한의 눈앞에 나타나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이런……!’
콰아아아앙!
요한과 그란체스카의 검이 충돌하자 엄청난 충격파가 터져 나오며 충격파를 견디지 못한 성의 측면이 그대로 폭발해 날아가 버렸다.
덕분에 잿빛 하늘과 자욱한 안개가 그대로 한눈에 보였지만 요한은 거기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오러를 최대한으로 끌어 올렸음에도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빅벤의 반지가 아니었다면 이미 힘에서 밀려 정신없이 튕겨져 날아갔거나 팔이 부러졌겠지.
오러도 마찬가지다. 오리하르콘 검을 뇌전의 퍼펙트 오러로 무장했음에도 검이 지르는 비명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앱솔루트 오러…… 그것도 죽음의 마나로 완성한 앱솔루트 오러의 위력은 여기서 조금만 요한이 힘을 빼도 그대로 검과 함께 두 동강이 날 터였다.
‘칫! 왜 항상 빌어먹을 예감은 틀리질 않는 걸가?’
언데드의 유대감이 없어서 나서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가장 우려했던 이유…….
즉, 나설 필요가 없어서 나서지 않았다는 게 이번 일격에 증명되었다. 녀석은 혼자서도 차고 넘칠 만큼 강했으니까.
-이게 그대의 전부가 아니길 진심으로 바라노라.
“보통 그런 말을 할 때는 뒤에 ‘부탁합니다’를 붙여서 말해야 되는 거다. 이 싹퉁머리 없는 해골 대가리야!”
쾅!
요한은 검을 튕기며 전력으로 뇌전의 오러를 끌어 올렸다.
그에 따른 격통이 전신을 엄습했지만 그 덕분에 요한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파지직, 콰릉! 콰콰쾅!
요한의 뇌전의 마나 특유의 빠른 스피드와 묵직한 파괴력으로 그란체스카를 압박했다. 문제는 그란체스카의 스피드와 파워 역시 요한에게 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푸른빛과 검은빛의 두 줄기 빛이 부딪히고 반발하며 싸우기 시작하자 그 거대한 성이 비명을 지르며 삽시간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성이 무너져 내린 뒤에도 두 사람은 잿빛 하늘을 누비며 전투를 이어 나갔다.
푸른 번개가 긴 꼬리를 그리며 검은 빛으로 쇄도해 충돌하면 수백 미터 밖에서도 귀를 막을 정도로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의 공방은 정신없이 이어졌고 덕분에 하늘에서는 때 아닌 푸른빛과 검은빛의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설마 알파 경?”
“저게 대체…….”
언데드 무리를 겨우겨우 밀어내고 한숨을 돌리던 찰나, 하늘에서 펼쳐지는 진풍경에 라거와 릴리안은 입을 벌린 채로 두 사람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 * *
“후욱, 후욱…….”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요한의 입에서 단내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빅벤의 반지 덕분에 체력이 무식하게 늘어났다지만 거기에도 한계는 있었다.
10만의 언데드 병사들을 상대하고, 오십이 넘는 듀라한을 쓰러트리고, 열 마리의 데스 나이트를 상대하느라 체력이 꽤나 많이 소비 된 것이다.
게다가 마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반의 팔찌로 열심히 수급하고는 있다지만 신체 능력을 한계까지 강화시키면서 퍼펙트 오러를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은 엄청난 마나를 필요로 했다.
심지어 뇌전의 마나로 신체를 강화시키는 건 효과는 뛰어났지만 체력과 마나, 양쪽의 소모가 매우 심한 축에 속했다.
그에 반해서 상대는 처음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언데드. 무한대의 체력에 넘쳐 나는 죽음의 마나를 실시간으로 흡수하는 녀석은 무적에 가까웠다.
오히려 죽음의 땅에서 데스 캘러미티를 1 : 1로 상대하면서 여기까지 버틸 수 있었던 요한이 대단한 거라 칭찬받아 마땅할 정도였다.
그런데…….
‘준비는…… 끝났다!’
불리한 게 명백해 보이는 요한의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