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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84화 (84/150)

84. 의식 속의 존재

뇌전의 마나는 신의 마나라 불릴 만큼 강하다.

하지만 뇌전의 마나를 다루는 아바타가 신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사용자가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반사 신경, 사고력, 판단력, 육체능력의 한계. 그것들이 신의 힘이라 불리는 뇌전의 마나를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 내리는 족쇄였다.

그래서 요한은 생각했다.

그 족쇄들을 벗어 던지면 그 순간만큼은 ‘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에서 출발해 만들어 낸 기술이 바로 하늘과 번개의 신의 이름을 딴 ‘쥬피터’였다.

‘준비는 끝났다!’

요한은 그란체스카를 상대하면서 녀석을 철저하게 관찰하고 또 관찰했다. 심지어 나노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녀석의 전투 방식을 끊임없이 분석했다.

공세를 펼치는 녀석의 움직임은 솔직히 말해서 변수가 너무 많고 다양했다.

흑마법까지 곁들여 밀어붙이는 통에 녀석의 움직임을 계산해서 대처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방어패턴은 단순하단 말이지!’

애초에 방어 기술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언데드가 되고 난 이후로 방어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상관없었다.

뇌전의 퍼펙트 오러로 무장된 오리하르콘 검은 분명 녀석에게도 치명적이었다. 검을 맞고 부서진 뼈가 쉽게 회복되지 않는 걸 보면.

‘아니, 애초에 죽여 달라는 새끼가 방어는 왜 하는 건데?’

아무튼 그란체스카를 쓰러트릴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만약 이대로 지구전에 돌입한다면 요한의 승기는 한없이 0%에 가까워질 테니까.

‘기회는 단 한 번!’

요한은 녀석의 공세를 끊임없이 받아 넘겼다.

녀석이 왼손을 뿌리자 세 마리의 검붉은 뱀이 튀어나오며 사슬처럼 요한의 몸을 속박하려 했다. 만약 녀석의 송곳니에 물린다면 그대로 이승을 하직하게 되겠지.

파지직, 콰릉!

요한은 검을 휘둘러 뱀을 공격함과 동시에 녀석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반격을 예상한 것인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공세를 펼치기 시작하는 그란체스카.

한 번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무려 수십 자루의 검영이 폭풍처럼 얽히고설키며 쇄도했다.

‘이것만 넘기면!’

요한은 이를 악 물고 죽을 각오로 검격을 받아 넘겼다.

여기서 뒤로 물러서면서 검격을 흘리면 더 쉽게 방어가 가능하겠지만 일부러 죽을 각오를 굳히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덕분에 검격의 위력은 더욱 강해지고 요한의 손도 덩달아 어지러워졌지만…….

‘뚫었다!’

검격을 뚫은 순간, 찰나지만 녀석의 빈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이다!’

순간, 요한의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물들며 그의 눈동자에서 감정의 빛이 사라졌다. 황금 뱀과 싸울 때 보여 주었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물론 상대의 모습이 달라졌다고 해서 언데드인 그란체스카가 당황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촤악!

그란체스카가 요한의 일격을 쳐 내려는 순간, 녀석의 검은 허공을 가르고 대신 검을 글고 있던 그란체스카의 팔이 날아가 버렸다.

단 0.001초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움직임에 그란체스카조차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 녀석의 팔 한쪽을 가볍게 날려 버렸음에도 기뻐하는 기색 없이 요한은 매섭게 그란체스카를 몰아붙였다.

이미 검을 들고 있던 팔 한 짝이 날아간 후라 그란체스카의 방어는 더욱 어색해 질 수밖에 없었다.

하나 요한의 움직임은 마치 그것까지 예상하고 계산한 것처럼 프로그래밍된 대로 철저하게 움직였다.

그란체스카는 인간의 반응속도와 반사 신경을 아득히 초월하는 요한의 움직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가 대등하게 싸웠던 건 인간 요한이지, 뇌전의 마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데스 캘러미티가 최상위 언데드라 하더라도 번개 그 자체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게 승리가 코앞에 다가오던 바로 그 순간!

-좋다. 좋구나! 친애하는 나의 적이여!

우우우우웅……!

그러나 기뻐하는 녀석의 말과는 반대로 한쪽밖에 남아 있지 않던 녀석의 팔에서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죽음의 마나가 응축되고 있었다.

콰우우우우우!

응축된 죽음의 마나는 일정한 형태 없이 그대로 방출되었다. 하나 그렇기 때문에 위력에만 집중한 녀석의 공격은 그 자체로 지금까지 그 어떤 공격보다 강대했다.

하지만…….

슉! 콰르릉!

아무리 강대한 공격이라도 맞아야 의미가 있는 법.

요한은 그대로 녀석의 포격을 피하면서 동시에 그란체스카의 머리와 사지를 그대로 날려 버렸다.

슈웅…… 쿵!

그렇게 힘을 잃고 하늘에서 추락한 그란체스카의 몸뚱이가 지상에 떨어졌다.

[마스터의 정신을 자극합니다. 실패. 마스터의 정신을 자극합니다. 실패. 마스터의…….]

전투가 끝나자 마치 실 끊어진 연처럼 허공에 둥둥 떠 있던 요한의 눈은 초점을 잃은 채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

현재 그의 의식은 한없이 깊은 어둠 속으로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아, 젠장……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그래서 내가 쥬피터만큼은 쓰고 싶지 않았던 건데…….’

처음 쥬피터를 썼을 때는 그저 잠깐 의식이 나갔다 돌아온 정도라 크게 부작용을 의식하지도 않았다.

그에 반해 효과는 확실하다 보니 솔직히 전투가 조금만 힘들어져도 쥬피터를 남발하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기술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의식이 회복되는 속도가 점점 더 느려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니, 처음에는 발목정도 차오르던 어둠이 언젠가부터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을 만큼 깊어졌다고나 할까?

이제 와서는 거의 자력으로 되돌아오는 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거의 봉인한 기술이나 마찬가지였는데…….

황금 뱀이나 그란체스카 같은 규격 외의 존재들과 싸울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특히 황금 뱀 때는 운이 좋게 녀석이 구해 준 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혹시라도 나노라면 자신을 외부에서 깨워 줄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불가능했던 모양이네.’

어느 순간부터 손이 닿지 않던 어둠은 밑바닥이 헤아려지지 않는 무저갱으로 변해 있었다.

그렇게 요한은 끊임없이 추락하였다.

그런데…….

‘뭐지? 이건…… 머릿속에 뭔가…….’

점점 더 깊이 추락할수록 머릿속에 어떤 기억들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보는 장소, 처음 만난 사람들, 처음 겪는 전투, 처음 느끼는 감정들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자 자신이 겪고 느낀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뭐지 이 사람들은? 아니, 애초에 사람이 맞는 건가? 이건 뭐…….’

달음질 한 번에 대륙을 넘나들고, 손짓 한 번에 바다가 갈라지며, 검을 휘두르면 산이 쪼개졌다.

이형의 존재들과 신들의 전투는 땅과 하늘이 좁게 느껴질 정도였고, 그 아래에서 인간들과 아인종들은 미물에 불과했다.

한데 그런 신들 중에서도 눈에 띄는 존재가 있었다.

미의 신이 공들여 빚은 것 같은 육신에는 흉터가 가득했고, 눈은 마주볼 수 없을 정도로 안광이 번뜩였다.

그의 주변에는 언제나 먹구름이 가득했으며 천둥과 뇌성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상징하는 건 그가 양손에 들고 있는 ‘번개’였다.

“크하하하하!”

마치 전투가 즐겁다는 듯이 광기 어린 웃음을 터트리며 벼락을 내던질 때마다 이형의 존재들이 무참히 박살 나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 어떤 이형의 존재들도 번개를 다루는 신의 적이 되지 못했다. 그 자신감이, 그 거대한 힘이, 마치 요한 자신이 느끼는 것처럼 와닿았다.

‘크윽……!’

주체할 수 없는 힘의 격류에 당장이라도 의식이 날아갈 것만 같아 의식을 붙잡는 것만으로도 필사적이었다.

그런데…….

‘날 쳐다보고 있다!’

번개의 신은 자신을 쳐다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녀석은 자신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요한의 본능은 그 손을 잡지 말라고 소리치는데, 그의 의식은 신이 뻗은 손을 향해 천천히 빨려 들어갔다.

그 순간!

[……터. ……스터.]

어렴풋이 와 닿는 나노 크리에이터의 음성에 요한은 마치 실낱같은 동아줄을 붙잡는 것처럼 목소리에 집중했다.

‘여기서 나가야……!’

죽을 기세로 의식에 집중하자 그 순간, 번개의 신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약간의 불쾌함이 섞인 것이다.

그 불쾌함을 반증이라도 하듯, 뻗어 나오는 녀석의 팔이 조금 더 빨라졌다.

‘으아아아아아! 젠장, 여기서 나가야 된다고! 내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 사람인데! 여기서 이렇게…….’

* * *

“……끝날까 보냐!”

폐부를 쥐어 짜낸 듯한 외침이 터져 나오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요한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허억, 허억……! 여긴……?”

주변을 둘러보니 방금 전까지 그란체스카와 싸웠던 바로 그 하늘이었다.

요한은 따사로운 햇살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잿빛 먹구름으로 태양을 볼 수 없었던 하늘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방금 그 녀석의 마지막 공격 때문에 생긴 구멍인가?’

“내가 확실히 돌아오긴 돌아온 모양이네. 나노, 고맙다.”

[귀환을 축하드립니다, 마스터.]

“그런데 혹시 나를 몇 번이나 불렀어?”

[15,396,998회 회복 시그널을 요청했습니다.]

‘…….’

진짜 죽다 살아났다는 말이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녀석은 도대체 뭐지? 혹시 그때 그 뱀 자식이 말했던 유피테르인지 뭔지랑 관련이 있는 놈인가?’

만약 녀석이 유피테르 본인이라면 황금 뱀은 사람을 확실히 잘못 본 게 분명했다.

같은 번개라도 녀석이 지배하던 번개에 비하면 자신이 사용하는 번개는 정전기 수준에 불과했으니까.

‘아무튼 이 기술은 다시는 쓰지 말자. 그놈 손아귀에 붙잡히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

블랑카만큼은 아니지만 요한의 본능도 죽음보다 그쪽이 더 끔찍할 거라 호소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쥬피터는 영원히 봉인해 둬야 할 듯싶었다.

다음에 또 쥬피터를 사용한다면 그때는 정말로 돌아올 수 없을 테니까.

그렇게 지상으로 착지한 요한의 눈에 머리와 사지를 모두 잃고 몸뚱이만 남은 그란체스카의 모습이 보였다.

-왔는가, 나의 친애하는 적이여.

“머리도 없는데 잘도 씨부리네. 됐고, 리치킹의 목걸이는 어디 있지? 너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아티팩트 말이야.”

-그것은 내 심장 깊숙한 곳, 라이프 배슬 안쪽에 봉인되어 있다. 배슬을 파괴한다면 목걸이가 소멸할 것이고, 드디어 영원한 안식을 맞이할 수 있게 되겠지.

“잠깐, 배슬을 파괴하면 목걸이도 파괴된다고? 난 그 목걸이를 구하러 온 건데?”

-그게 무슨…… 그대의 목적은 내 성 지하 창고에 잠들어 있는 보물이 아니었단 말인가?

“응. 전혀 아닌데?”

-…….

머리가 날아가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왠지 절망한 그란체스카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부탁한다, 나의 친애하는 적이여. 제발 나를 불멸의 형벌에서 구원해 다오! 더 이상 이 지옥 같은 영겁의 삶을 견딜 수가 없구나!

“그렇게 괴로웠으면 스스로 죽든가 밖에 나가서 깽판을 부렸으면 될 일 아니야? 왜 나한테 그런 부탁을 하는 건데?”

-그것이 내가 선택한 저주였다. 내 조국을 지킬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악마에게 팔 수 있었지. 그때 마침 리치가 나를 찾아왔고 나는 그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대가는 참혹했다. 놈은 나에게 힘을 빌려준 대신 자신의 실험을 위해 우리 왕국민들을 전부 언데드로 만든 것이다.

요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그것 참 개새끼에 천하에 다시없을 악독한 놈이네. 근데 그거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인간의 염원은 저주의 훌륭한 원동력이 된다더군. 놈은 내 유일한 염원인 조국을 지키고자 하는 염원에 저주를 걸었다. 그 때문에 나는 이곳에서 죽지도, 벗어나지도 못하는 대신 내 나라 안에서는 무적에 가까운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란체스카의 고저 없는 목소리에는 회한이 가득했다.

-하지만 지키고자 했던 백성들이 모두 언데드가 되고 난 이후에도 나는 이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멍청하고 미련한 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 합당한 벌은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나를 풀어 다오. 제발 부탁하마…….

너무나도 간절한 그란체스카의 부탁에 요한은 씨익 미소를 그렸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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