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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86화 (86/150)

86. 해상왕국 파스칼

요한이 로알드의 저택을 찾아가기 일주일 전.

“잘 있었나, 가니온 공작?”

-전하께서도 옥체 만강하신 듯하여 소신은 기쁘기 그지없사옵니다. 원하시던 계획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감히 여쭤도 되겠습니까?

요한이 가지고 다니는 휴대용 통신 구슬 속에서 가니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요한은 아버지와 가니온, 두 사람과 통신할 수 있는 구슬을 각각 소지하고 다녔던 것이다.

“아주 만족스럽게 진행 중이지. 이제 그것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가니온, 한데 그 소식은 들었느냐?”

-어떤 소식 말씀이신지…….

“헥토르 형님이 형제들 몰래 암흑신과의 의식을 진행 중이셨다고 하더군.”

-…….

구슬 너머에서는 정적이 흘렀다. 얼굴을 볼 수 없는 구슬이라 가니온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썩 유쾌한 표정은 아닐 터였다.

“혹시 알고 있었느냐?”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나 의식이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나도 정확한 시기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내 수족들이 가져온 정보에 의하면 족히 1년은 넘은 것 같다고 예상되는구나.”

-1년이 넘었다고 하시면 대제께서 이루신 무위가 아닌지요?

요한은 일부러 진실 속에 거짓을 숨겨서 말했다. 사실을 말하면 지레 겁을 먹고 발을 뺄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겠지. 한데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 처음부터 황위는 결정된 싸움이었단 뜻이다. 나를 비롯한 형제들은 결국 형님의 들러리였을 뿐이란 말이겠지.”

-전하…….

“풀 죽을 거 없다. 아직 의식은 끝나지 않았고 나 역시 마지막 신기를 갖출 수만 있다면 형님과 동등…… 어쩌면 그 이상의 힘을 손에 넣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내가 형님을 무릎 꿇리고 황좌에 앉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가니온.”

-무엇이든 분부하십시오, 전하. 제 신명을 걸고 전하를 보필하겠나이다!

요한이 가니온에게 부탁한 것은 한 통의 편지였다. 대상은 로알드 모르칸타 공작. 파스칼 왕국의 그림자인 그에게 요한의 보필을 부탁한 것이다.

남부 왕국에 소속된 파스칼 왕국이었기에 당연히 로알드는 가니온의 청을 들어줄 터였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지.’

* * *

요한은 릴리안, 라거와 함께 파스칼 항구로 향했다.

평소라면 남부 대륙에서 가장 활기가 넘쳐야 할 이곳에는 웬일인지 정막만이 가득했다.

요한은 부둣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곰방대를 뻑뻑 피우고 있던 노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말씀 좀 물읍시다, 영감님.”

“응? 무슨 일이시오?”

“이 근처에서 혹시 배를 구할 곳이 있겠습니까?”

“배?”

배를 구한다는 요한의 말에 노인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 배 띄우는 건 자살행위요. 국왕 전하가 미쳐 돌아 가지고 인어족의 공주를 납치해 버렸거든. 그 때문에 인어족들이 배만 보이면 그게 상선이든 어선이든 함선이든 못 부숴서 안달이라오. 부두의 꼬락서니를 보면 모르겠소?”

“상관없습니다. 제가 구하는 건 작은 배 한 척이면 충분하니까요. 선원도 필요 없습니다.”

“그런 거라면 뭐…… 따라오시오.”

노인은 부두 한구석으로 향하더니 부둣가에 정박해 있는 작은 어선 한 척을 가리키며 물었다.

“내가 쓰던 배요. 물때는 좀 많이 끼었지만 지금까지 사고 한 번 없었소. 이거라도 가져가시겠소?”

“영감님의 배라면서요? 괜찮은 겁니까?”

“자식들이랑 손주들이 굶고 있는데 고기를 못 잡는 어부한테 배가 다 무슨 소용이요. 바라는 게 있다면 값이나 넉넉히 주시오. 삯을 더 쳐준다면 내가 직접 배를 몰아 주겠소.”

노인의 사정이나 다른 어부들의 사정이나 상황은 비슷비슷했을 것이다.

“여기 있습니다. 운항은 필요 없으니 배만 가져갈게요.”

“어이쿠, 이렇게나 많이…….”

요한은 노인이 제시한 가격보다 더 후하게 돈이 든 주머니를 건넸다. 어차피 돈이라면 창고 안에도 썩어날 만큼 차고 넘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노인의 배웅을 받으며 일행들을 배에 태우고 출항하자 배가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며 바다로 나아갔다.

“고마워, 릴리안. 바람의 마나가 이럴 때도 큰 도움이 되네.”

“별말씀을…….”

릴리안이 바람의 마나를 활용해 돛에 바람을 불어 넣자 배가 시원하게 바다를 질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다는 금세 항구를 벗어나 먼 바다로 나아갔다.

헤엄쳐서는 도저히 살아 나갈 수 없는 망망대해까지.

“그런데 저희는 어디로 가는 거예요?”

“딱히 목적지는 없어. 그쪽에서 찾아올 거거든.”

“네?”

“아무래도 알파 경이 말한 손님들이 찾아온 것 같구먼.”

릴리안이 의아해하는 순간, 라거가 바다를 노려보며 도끼를 꼬나 쥐었다.

바다 아래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살의를 감지한 것이다.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알파 경?”

풍덩!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바다로 뛰어든 요한.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검은 심해의 밑바닥에서부터 무언가 무시무시한 적의들이 상어 떼처럼 이곳을 향해 몰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나노, 초음파 모드로 통역 부탁해.’

[알겠습니다. 마스터.]

“들어라! 나는 너희들의 납치당한 공주를 구하기 위해 너희에게 거래를 제안하고자 한다! 거래에 응할 마음이 있다면 대표자 한 사람만 나를 찾아오도록!”

요한의 외침은 초음파로 변해 인어족의 언어로 통역되어 바닷속에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하지만 허사였다. 몰려드는 살의들은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 처음부터 말로 통할 거라고는 바라지도 않았지.’

첫 번째 단계로 자신의 의사를 먼저 전달했으니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갈 차례였다.

그것은 바로 힘의 증명이었다.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깨달아야 비로소 협상 테이블에 앉을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파앙!

메르큐리의 신발로 하늘을 비행하듯, 수중을 비행하는 방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저항력뿐.

공기와 다르게 물의 저항력은 엄청나서 일반적으로 하늘을 비행하듯, 똑같이 수중을 비행하면 몸이 버티지 못하고 금방 압사해 버린다.

하지만 요한은 나노 크리에이터의 내구력과 초인을 능가하는 자신의 육체, 그리고 빅벤의 반지를 통한 육체 내구도의 상승으로 이를 가볍게 극복했다.

결과…….

콰앙!

“……!”

“피해!”

요한은 그 어떤 물고기보다 헤엄이 빠르다는 인어족들을 상대로 오히려 스피드 면에서 압도하며 몰려드는 인어족들에게 먼저 달려들었다.

몸의 자유를 억압하는 물의 저항력 역시 별다른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요한이 주먹을 휘두르면 오히려 공기의 벽보다 강하고 진한 물의 파동이 터져 나가면서 수십 마리의 인어족 전사들을 휩쓸어 버렸으니까.

“저게 무슨…….”

“저것도 인간인가?”

인어족들이 당황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설령 오러 마스터라 한들 바닷속에서는 자신들의 적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눈앞의 인간은 무엇인가? 자신들을 상대로 오히려 바닷속에서 종횡무진하며 활개를 치고 있지 않은가?

그 많던 전사들이 삽시간에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충격파로 기절만 시켰을 뿐,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바닷속에서 인간이 인어족을 상대로 자비를 베푼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니 인어족들도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어족들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인간인 이상 바닷속에서 오랫동안 숨을 참지는 못할 것이다! 함부로 접근하지 말고 놈을 묶어 두면서 견제하란 말이다!”

인어족 전사의 명령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물속에서 숨을 못 쉬는 게 당연한 일이고 요한 역시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가 가지고 있는 신기들이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수중 호흡 시스템 작동. 바닷물을 여과해서 산소만 통과시키겠습니다.]

‘땡큐!’

나노의 여과 기능 덕분에 요한은 바닷속에서도 마치 지상에서처럼 자유롭게 호흡이 가능했다.

물속에서 이렇게 편하게 숨을 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요한에게는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문제는 요한을 상대하는 인어족들에게 유일하게 믿는 구석이 박살 났다는 사실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요한이 괴로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바다 전투에 적응된 듯 더 미쳐 날뛰는 모습을 보이자 인어족들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괴로워하기는커녕 더 미쳐 날뛰는 것 같은데요?”

“그, 그럴 리가! 어떻게…….”

그때였다.

촤아악!

뭔가 거대하고 날카로운 기세를 가진 물의 흐름이 순식간에 요한에게 쇄도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치명상을 피하지 못할 것 같은 순간.

서걱!

요한은 뒤를 돌며 다가오던 흐름을 깔끔하게 베어 내며 시선을 집중했다. 그것은 다른 인어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르달로스 님!”

새로 등장한 인어족 전사는 딱 봐도 다른 인어족 전사들과 확연히 구분될 만큼 특성이 달랐다.

먼저 몸집이 다른 전사들보다 두 배는 더 거대했고, 하반신은 마치 범고래의 그것과 같았으며, 상어 같은 노란 눈동자에 푸른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가 들고 있는 삼지창은 한눈에 봐도 평범한 무기가 아님을 알아볼 수 있었다.

‘저건…… 해신의 트라이던트인가? 저 녀석이 가지고 있던 걸 뺏은 모양이군.’

요한은 다르달로스가 들고 있는 무기를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다른 이가 사용하는 모습을 본 것이지만…….

저 무기 역시 물의 정령왕의 힘이 깃든 무기로 선택받은 주인이 아니면 그 위력을 제대로 낼 수 없는 무기였다.

물론 물의 마나 사용자라면 어느 정도 그 힘의 일부를 다룰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일곱 신기에 대적할 만큼 굉장한 무기인 건 사실이었다.

“전사들을 물려라. 너희들이 감당할 수 있는 적이 아니다.”

“하지만……!”

“물러서라고 했다.”

“……물러서라! 전사들은 간격을 두고 놈에게서 떨어져라!

다르달로스가 단호하게 명령하자 그 많은 전사들이 그의 명령을 순순히 복종했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위치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내가 말했던 협상할 녀석이 너냐? 범고래.”

“더러운 인간 따위와 협상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네놈들이 할 수 있는 건 공주님을 풀어주고 상응하는 죗값을 치르는 것뿐.”

다르달로스가 창을 휘두르자 방금 전과 같은 사납고 거대한 물의 흐름이 요한을 향해 빠른 속도로 쇄도했다.

요한은 검을 휘둘러 순식간에 흐름을 베어냈다.

그런데…….

“휘감아 삼켜라.”

“……!”

막아 낸 줄 알았던 물의 흐름이 갑자기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요한을 집어 삼키며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 냈다.

어선도, 군함도, 해저산도 분쇄해 버리는 소용돌이의 위력을 다르달로스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설령 이걸로 끝내지는 못한다 해도 치명상 정도는…….’

서걱!

그러나…….

금빛 실선이 소용돌이를 반으로 쪼개면서 모습을 드러낸 요한의 모습은 처음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놀랍게도 소용돌이로는 요한에게 생체기 하나 줄 수 없었던 것이다.

요한은 눈을 부릅뜬 다르달로스를 쳐다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게 끝이야? 그럼 너무 실망인데…….”

“걱정 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니까.”

다르달로스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화답했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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