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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88화 (88/150)

88. 손 안 대고 코 풀기

다비드 국왕을 대면하기로 약속한 그날이 찾아왔다.

요한은 로알드와 함께 왕성으로 향했다.

베시굴드가 성문에서부터는 요한을 마중 나와 안내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알파 경.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베시굴드의 안내를 받아 향한 곳은 귀빈 응접실이 아닌 국왕의 개인 침소였다.

“전하께서 여기로 오라고 했다고? 진짜?”

“소, 송구합니다…….”

베시굴드는 고개 숙여 사과한 후 침소의 문을 열었다. 그 안에서 요한은 하염없이 벽만 바라보고 있는 다비드 국왕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생각한 것보다 상태가 심각한 모양이군.”

“전하,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로한 제국에서 귀빈이 찾아 오셨습니다.”

베시굴드가 요한을 소개하자 힐끔 요한을 쳐다보았던 다비드의 시선이 다시 벽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수조 속의 인어 공주에게 시선을 준 것이지만.

요한은 다비드의 곁으로 걸어가 그가 바라보고 있는 수조 속으로 시선을 주었다.

거기에는 한눈에 봐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인어 공주가 몽롱한 시선으로 헤엄을 치고 있었다.

‘인어 공주의 상태가 이상한데?’

[정확한 상태는 진찰해 봐야 알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약을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인어공주에게서 미약한 저주의 마법이 감지되었습니다.]

‘저주의 마법?’

[‘매혹’의 한 부류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다만 효과가 미미해서 일반적으로 정신이 쇄약하지 않은 이상 걸릴 확률은 상당히 낮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요한은 저번에 베시굴드에게 들었던 다비드 왕에 관한 얘기를 떠올렸다.

다비드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있었다. 부부 사이의 애정은 식을 줄 몰랐고 동생과의 우애도 끈끈하다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비드의 착각일 뿐이었다.

[루갈라스…… 어째서 네가……! 그리고 당신은 왜 루갈라스의 곁에 있는 것이오?]

[미안해요. 여보. 하지만 난…….]

[형님, 형님은 파스칼을 이끌기에 너무나도 여리고 나약하오. 이제 그만 어울리지도 않는 그 자리에서 물러날 시간이오.]

동생의 쿠데타는 기적적으로 막을 수 있었지만 다비드 왕은 자신의 손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동생의 목을 단두대에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다비드 왕이 인어 공주를 만난 건 그로부터 얼마 안 된 일이라고…….

‘한창 마음이 피폐할 시기에 최악의 상대를 만난 셈이군.’

[인어 공주가 자연적으로 발산하는 매혹의 저주는 걸리기는 어려워도 한 번 걸리고 나면 독처럼 서서히 효과가 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 것 같네. 상태가 말이 아니야.’

요한은 인어 공주를 바라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로한 제국의 알파라고 합니다.”

“…….”

“근래에 보기 드문 마물을 손에 넣으셨다더니 과연 전하께서 푹 빠질 만한 미모를 가졌습니다.”

“경이 보기에도 그러한가? 요즘에는 그녀를 보는 낙으로 살아간다네. 내가 직접 이름도 지어 주었지. 프로메사…… 바다의 보석이라는 뜻일세.”

요한이 자기소개를 했을 땐 반응도 안 하던 다비드가 인어 공주를 언급하자 반응을 보였다.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파스칼 왕국의 해역에서 제 상선이 인어족들의 공격을 받아 침몰했습니다. 약 40만 골드 상당의 상품들과 함께 말이죠.”

물론 이건 거짓말이었다. 그저 요한과 로알드가 명분을 챙기기 위해 만든 구실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미 침몰한 배를 확인할 길이 없었던 이들 입장에서는 그게 거짓인지 사실인지를 구분할 방법이 없었다.

애초에 사기라고 몰아가기에는 상대가 다름 아닌 로한 제국의 황자였으니 말이다.

“…….”

“솔직히 저는 전하와 인어 공주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신경 쓸 여유도 없습니다. 저는 제 배상만 받고 돌아가면 되니까요. 그런데 신하들에게 듣자 하니 이 인어 공주를 납치한 사건 때문에 분노한 인어족들이 해상을 틀어막았고, 그에 자금줄이 말라 버린 탓에 저에 대한 배상이 어렵다고 하더군요. 이게 사실입니까, 전하?”

“그래서 뭔가? 설마 프로메사를 내 달라고 협박이라도 할 생각인가?”

요한을 노려보는 다비드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농담이라도 그렇다고 말하면 당장 목이라도 물어뜯어 죽일 기센데?’

“그럴 리가요. 저는 배상만 받으면 그만입니다. 그녀는 전하의 말씀처럼 바다의 보석 같은 존재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원하는 400만 골드의 가치는 없어 보이는군요.”

“무슨 헛소리! 어찌 프로메사의 가치를 돈으로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저는 배상만 해 주시면 이번 일을 제국 차원에서 문제 삼지 않고 개인적으로 해결한 뒤 조용히 떠날 생각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전하?”

“마음대로 하게. 단 프로메사에게 손끝 하나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이야.”

다비드는 단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결단을 내렸다.

인어 공주를 내주고 경제를 회복하는 것보다, 400만 골드를 내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순간, 요한과 로알드의 입꼬리가 의미심장하게 말려 올라갔다.

쿵!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현재 우리 왕국은 해상로가 막혀 국고가 바닥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옵니다! 여기서 400만 골드라는 거금을 배상한다면 백성들의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을 것이옵니다!”

국왕의 결단에 베시굴드가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재고를 부탁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백성들의 고통이 어떻든 간에, 인어 공주를 뺏기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라라도 팔아넘길 작정인 듯 보였다.

“……뭐, 저는 그런 줄 알고 물러나겠습니다, 전하.”

여기서 요한이 왈가왈부하면 그건 내정간섭이 된다.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이미 도미노는 넘어지기 시작했으니까.

* * *

그날 밤.

“베시굴드 경께서 이 시간에 소집을?”

“어지간히도 급한 일이 있나 보군.”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제국에서 찾아온 귀빈이 전하를 알현했다고 하던데 혹시 그것과 관련된 문제가 아닐는지…….”

베시굴드의 소집령을 받고 파스칼 왕국의 귀족들이 그의 저택으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 베시굴드와 함께 있었다.

“로알드 경?”

“경께서 왜 이곳에…….”

“왜? 내가 못 올 곳에라도 온 건가?”

“아, 아뇨. 그게 아니라…….”

베시굴드와 로알드가 견원지간이라는 건 귀족들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이 어색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 역시 베시굴드 경의 초대를 받고 찾아 온 것일세. 아무래도 오늘 중대한 국사를 논해야 할 듯싶으니 말이야.”

“중대한 국사라니요? 왕성이 아닌 이곳에서 말입니까?”

귀족들은 당황스러워했지만 곧 왕성이 아닌 사택에서 귀족들끼리 은밀하게 의논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전하를 두고 볼 수만은 없을 것 같네. 이것이 나와 로알드 경의 공통된 의견일세.”

“그게 무슨……. 설마 반역이라도 일으키자는 말씀이십니까?”

“반역이 아닐세. 왕좌에 합당한 왕가의 후손으로 다시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자는 말일세.”

한 귀족이 놀라 소리치자 로알드가 베시굴드의 의견에 힘을 실어 주었다.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으나 전하께서 더 이상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할 수 없는 게 현실일세. 나는 오늘 그 사실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네. 내가 전하께 충성을 맹세한 이유는 그것이 파스칼 왕국을 위한 최선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야. 하지만…….”

“하면 보위에 누굴 올린다는 말씀이십니까?”

새로 왕비를 맞아들이긴 했지만 그때는 국왕이 이미 인어 공주에게 빠진 후라 제대로 후사 계획을 가졌을 리도 없었다.

전 왕비와의 사이에서도 공주만 둘이 태어났기 때문에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정통 왕세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부터 찾아봐야지요. 하여 임시로 제가 국정을 맡고 베시굴드 경이 보위에 합당한 왕위 계승권을 가진 왕족을 찾아보기로 합의하였소.”

“그, 그게 사실입니까?”

귀족들의 시선이 베시굴드에게 향하자 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통제가 안 되는 전하를 제외하면 군권을 쥐고 있는 가장 강력한 인물이 로알드이다. 만약 그를 제치고 다른 인물을 세운다면 이자가 어떻게 이빨을 드러낼지 아무도 모를 일. 그렇다면 차라리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자리에 앉혀 두는 수밖에…….’

그런 의미에서는 자신도 논외였다.

왕의 최측근인 자신이 왕의 대리를 맡는다면 귀족들이 반발할 테니까.

“당분간만이요. 후계를 찾을 때까지만 임시로 맡는 것이니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오.”

그렇게 계획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갔다.

* * *

다음 날이 되자 수많은 병사들이 내딛는 군홧발 소리가 왕성을 향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외성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열렸고 병사들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왕성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국왕의 실권을 바라는 가운데 단 한 사람. 근위대장 르폴트만이 수만 병사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물러서시오, 르폴트 경. 이미 대세는 기울었소.”

“나도 알고 있소. 그대들의 결단이 옳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주군께서 잘못된 길을 가고 계시다는 것도. 그대들은 그대들의 일을 하시오. 나도 나의 일을 하는 것뿐이니.”

“하아…….”

로알드는 그런 르폴트가 너무 아까웠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고지식할 정도로 우직한 그의 충심이 자신을 향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안타까움도 있었던 것이다.

“정중하게 모시거라.”

하나 르폴트도 수만 군사들을 상대로 혼자 대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분명 선전을 하긴 했지만 그는 결국 숨을 거두었고 그렇게 마지막 장벽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전하, 뫼시러 왔습니다.”

“…….”

심지어 무장한 병사들이 침소를 덮쳤음에도 다비드는 여전히 인어 공주를 바라볼 뿐이었다.

“뫼시거라.”

로알드의 명령에 다비드를 구속하려는 병사들이 접근하자 그제야 발악하며 날뛰는 다비드. 다른 게 아니라 병사들이 시야를 가린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전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퍽!

“커헉……!”

로알드가 직접 다비드의 뒤덜미를 쳐서 기절시켰다. 눈을 까뒤집고 쓰러지는 다비드. 그런 왕을 곁눈질로 내려다보는 로알드의 시선에는 경멸과 역겨움으로 가득했다.

“전하를 빨리 뫼시도록.”

“예!”

그렇게 병사들이 떠나자 누군가가 로알드의 곁으로 다가왔다.

“제법 일처리가 빠르더구나, 로알드.”

“이게 모두 알파 경께서 신경 써 주신 덕분입니다. 과연 황자 전하의 지모…… 저 같은 건 그저 우러러볼 따름입니다.”

로알드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린 상대는 다름 아닌 요한이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혹시라도 다른 누가 보면 어쩌려고?”

“상관없습니다. 전하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이제 이 나라는 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앞으로 더욱 더 충심을 다해 전하를 보필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하께서 황위를 차지하는 그 날까지…….”

“하하하! 그것 참 시원시원하니 마음에 드는 대답이로군. 그나저나 가니온으로부터 얘기는 들었겠지?”

“예, 이 인어 공주를 이용해 해저 신전에 잠들어 있는 마지막 신기를 구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즉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지.”

“당연히 해야 할 일일 뿐입니다, 전하!”

요한은 로알드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고 그에 로알드는 마치 세상을 가진 것처럼 크게 기뻐하며 대답했다.

‘쉽네. 쉬워.’

손 안 대고 코를 푼다는 말이 있듯, 요한은 자신이 위장한 제국 황자…… 소드 아너의 신분을 이용하여 무사히 인어 공주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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