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91화 (91/150)

91. 구르칸 교역로의 변신

“이런 미친……!”

“와…….”

벨로반 왕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다만티움 공동을 들러 그곳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라거와 릴리안의 반응이었다.

“어때? 가능하겠어?”

요한의 질문에 라거는 그 어느 때보다 흥분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가능하겠냐고? 그걸 말이라고 하나? 이런 보물 창고를 눈앞에 두고 불가능을 논하는 드워프가 있다면 그 새끼는 망치를 놔야 할 걸세!”

과연, 드워프 전사이면서 동시에 장인이기도 한 라거다운 반응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 생각이 이 공동은 아다만티움 기둥이 받쳐준 덕분에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만약 원석 채광이 가능하다고 해도 채굴하는 순간 무너질 걱정은 없겠어?”

“우리가 채광을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다 방법이 있으니 걱정 하지를 말게. 그나저나 채광부터 가공을 전부 이곳에서 해결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이곳은 자네가 속한 왕국이 아니라지?”

“지금은 아니지만 조간만 내 손에 들어올 땅이긴 하지.”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군.”

라거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만한 아다만티움 원석을 넘겨준다면 자네의 요구 조건을 모두 들어주는 건 일도 아니지. 걱정 말게. 이제부터 자네의 군대는 전부 드워프제 최고의 무구들을 쓰게 될 테니까.”

“그건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라거는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잠깐 드월븐 팩토리아에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그럼 다녀오지.”

“조심히 가라.”

그렇게 요한과 릴리안 두 사람만이 요한의 그리운 고향, 벨로반 왕국으로 무사 귀환하였다.

* * *

“그동안 무탈하셨습니까, 아버지.”

“고생 많았다, 요한. 그래, 원하던 목적은 전부 이루었느냐?”

하이든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요한을 가볍게 안아 주며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아무렴요. 저조차 생각했던 것 이상의 수확을 얻을 수 있어서 지금도 얼떨떨한걸요. 드릴 말씀이 정말 많습니다, 아버지.”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니 분명 작은 성과는 아니겠구나. 그래, 일단 식사 먼저 하고 자세한 얘기를 들어 보자꾸나.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누구시냐?”

하이든이 릴리안에게 관심을 가지자 로브와 후드로 자신을 가리고 있던 그녀가 요한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에 요한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그녀는 후드를 벗으며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다.

“에, 엘프?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엘프와는 분위기라든지 모습이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제가 대신 소개할게요. 이쪽은 릴리안, 엘븐 포레스트의 하이 엘프이자 숲의 여왕인 데메테리안의 따님이시죠. 그러니까 엘프족 공주님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겠네요.”

“엘프족 공주님? 소, 송구합니다! 이런 결례를……!”

엘프족 공주라는 말에 하이든이 그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자 릴리안이 당황하면서 그런 하이든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쌜쭉한 표정으로 요한을 쳐다보는 릴리안.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신 거예요, 스승님.”

“그냥 사실대로 말씀드렸을 뿐인데? 네가 엘프족의 공주님이라고.”

“지금은 잠시 그 신분을 벗어 두기로 약속하지 않았던가요?”

“거짓말은 아니잖아. 안 그래?”

요한의 장난기 섞인 웃음에 릴리안은 한숨을 내쉬며 하이든에게 이러지 말라고 얘기했지만 하이든은 고개만 갸웃거릴 뿐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옆에서 요한이 그녀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지금 릴리안은 공주의 신분을 잠시 접어 두고 한 사람의 전사로서 수행하고 있을 뿐이니 너무 격식을 차리지 않으셔도 된다고 하네요.”

“그렇구나. 그런데 네가 어떻게 이런 귀한 분과 함께 있는 게야?”

“그래서 말씀드렸잖아요. 드릴 말씀이 정말 많다고.”

식사를 마치고 요한은 하이든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역동적으로 설명하며 얘기해 주었다.

“그러니까 엄청 거대한 황금 뱀이 나타났는데 그 크기가 어느 정도냐면 놀라지 마세요. 우리 저택 정도는 그냥 한 입에 꿀꺽할 정도였다니까요?”

“하하하! 그러냐. 그것 참 엄청나게 큰 뱀이로구나. 그런데 요한 네 몸이 점점 투명해지는 게, 너 설마……!”

“아버지!”

“농담이다, 농담. 하하하하!”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과장된 몸짓과 더불어 얘기하는 아들과, 그런 아들의 모습을 대견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버지…….

그 모습은 지금까지 두 사람 사이에 없었던 너무나도 다정한 부자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흥미진진했던 모험담이 끝나자 남은 건 현실적인 미래의 얘기였다.

“그래, 네가 말했던 전쟁의 서막이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구나.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 남은 건 준비한 대로 상황에 맞춰 나가는 수밖에 없죠. 여기서부터는 제가 모르는 미래가 될 테니까요.”

“그 미래의 끝에 희망이 있겠느냐?”

“있을 겁니다. 없으면 만들 거고요. 제 손으로 반드시.”

“그것 참…… 든든한 대답이구나. 이 아비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맡겨 다오.”

요한과 하이든은 술잔을 부딪쳤다. 요한은 독한 데킬라를 한 번에 비운 뒤에 씨익 웃으며 하이든에게 부탁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아버지, 곧바로 해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 * *

다음 날.

요한과 릴리안은 오랜만에 도모스 히로벤칼 자작령을 찾아갔다.

요한의 본거지가 그곳이라 그가 히로벤칼 자작령을 찾아가는 걸 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셨습니까, 알파 경.”

성에 도착하자 겔러핀이 반갑게 요한을 맞이해 주었다.

“그래, 고생이 많네. 오는 길에 보니까 백성들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하던데? 하여간 내가 사람 하나는 잘 골랐단 말이야.”

“하하하! 과찬이십니다. 이게 모두 알파 경이 힘써 주신 덕분 아닙니까. 저는 그저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이죠, 뭐.”

“그새 아부도 많이 늘은 것 같고. 다른 어려운 사항들은 없고? 도모스는? 요새 좀 잠잠한가?”

도모스의 근황에 대해서 묻자 겔러핀은 피식 웃으며 요한에게 제안했다.

“저를 따라 오시겠습니까? 아무래도 백번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

요한은 의문을 가지고 겔러핀을 따라갔다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게 대체…….”

“저도 처음에는 깜짝 놀랐습니다. 설마 도모스한테 이런 재주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거든요. 게다가 본인도 상당히 만족해하는 것 같고요.”

눈앞에 펼쳐진 드넓은 농지에는 구슬땀을 흘리며 농사를 짓고 있는 도모스가 있었던 것이다.

“오, 알파 경! 오셨습니까? 하하하!”

“그, 그래.”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드는 도모스의 모습에 요한도 어색한 미소를 그리며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세상 참 신기하네…….”

“그러게 말입니다.”

영주성으로 돌아온 요한은 벽에 걸린 구르칸 산맥의 지도를 살펴보며 교역로에 대해서 물었다.

“그나저나 교역로는? 지금 어떻게 돼 가고 있지?”

“그 역시 직접 가서 확인하시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요? 아마 실망하시진 않을 겁니다.”

“그래?”

“빅스.”

겔러핀이 빅스를 호출하자 빅스가 똥 씹은 표정으로 슬금슬금 자리에 나타났다.

그가 나타나자 요한이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오, 노예 1호! 잘 지냈냐?”

“알파 경께서도 여전하신 모양이라 다행입니다. 하하하……. 그런데 대장, 저는 무슨 일로…….”

“알파 경과 함께 교역로로 가서 변한 부분들을 좀 설명해 드리게. 어차피 지금 당장 하는 일도 없지 않은가?”

“윽!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렇게 요한과 빅스 릴리안 세 사람이 함께 구르칸 산맥으로 향했다.

“확실히 잘 정비했네. 예전보다 훨씬 길도 넓어지고 깔끔해졌어.”

“대장이 여유 자금이 생길 때마다 교역로 공사에 자금을 아낌없이 쓰셨거든요. 지금도 제가 보기엔 완벽한데 아직도 공사 중이라고 하네요.”

“그래?”

구르칸 산맥은 초입부터 포장된 도로가 널찍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새롭게 변모되었다. 초반에 엉성했던 입구를 생각하면 전혀 다른 길이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응? 이중으로 길을 만들고 있는 건가?”

처음 구르칸 산맥 교역로는 외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길이 좌우로 나뉘어 공사가 한창 진행 중에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역로는 산맥을 넘나드는 상단들로 지금도 넘쳐 나고 있었다.

“네, 처음에는 통행량도 얼마 되지 않아서 외길로 상행과 하행이 감당 되었지만 입소문이 퍼지고 통행량이 많아지자 기존의 외길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더군요. 그래서 상행선과 하행선을 구분해서 도로를 만들고 더 여유가 되면 이용료가 가장 비싸지만 최단거리로 주파할 수 있는 터널도 뚫을 계획입니다.”

“그렇군. 그건 전부 대장이 혼자 생각한 건가?”

“아뇨, 가루칸 대족장과 함께 의논해서 결정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놀라시기는 이릅니다. 아직 진짜 놀랄 만한 게 남아 있거든요.”

“그래?”

요한은 괜히 빅스가 유난을 떠는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일단을 그를 믿고 따라갔다.

“이쪽입니다.”

“이 길은……?”

“관리자용 길입니다. 교역로는 언제나 사람이 넘치기 때문에 빠른 이동이 불가능하잖아요. 해서 좁고 험한 탓에 상행은 불가능한 관리자용 길을 따로 만든 거죠.”

세 사람이 이용한 길은 바로 그 관리자용 길이었다. 곳곳에 오크 전사들의 초소가 있어 허가받지 못한 사람은 이 길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수고하십니다.”

“수고.”

“그래. 수고…… 응? 아, 알파 님이잖아?”

“알파 님이 돌아오셨구나!”

간단하게 초소를 지키던 오크와 오크어로 인사를 나누던 도중, 요한을 발견한 오크들이 흥분하며 요한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만큼 요한은 오크들에게 친숙한 존재이자 경외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자주 본 사람은 저인데 어째 알파 경이 더 환대받는 느낌입니다?”

“기분 탓이겠지.”

그렇게 오크들의 환대를 받으며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시, 시장?”

“제가 말씀드렸죠? 분명히 놀라실 거라고.”

괜히 자기 일처럼 뿌듯해하는 빅스에게 요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정말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장의 규모는 생각보다 컸다. 그리고 시장 상인들은 대부분이 오크 부녀자들이었고 손님은 인간 상단이었다.

하행로와 상행로가 가장 가까워지는 구간에 만들어진 이 시장은 상행 하행을 이용하는 모든 손님들이 들리는 탓에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설마 이 시장도 기획한 거야?”

“그건 아니고…… 인간들이 많이 지나다니다 보니까 인간들에게 익숙해진 오크 부녀자들 몇몇이 음식을 만들어서 가져와 팔기 시작한 게 시초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오크들 음식 기가 막힌 거.”

“그게 입소문이 퍼져서 지금의 시장이 된 거다?”

“그렇죠. 상인들 입장에서야 식당 하나 없는 교역로에서 유일하게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곳이고, 오크들도 경계 근무하는 오크 전사들과 별개로 부녀자들까지 돈을 벌 수 있게 됐으니까요. 게다가 지금은 야영지와 숙박 시설도 운영 중인데 이게 또 호응이 장난 아닙니다. 아, 참고로 야영지랑 숙박 시설에 대한 아이디어는 헨더슨이 냈습니다.”

“헨더슨이? 별일이네. 그 단세포가…….”

“저도 좀 놀랐습니다. 아무튼 그 이후로 시장이 자연스럽게 커지다 보니 이제는 구르칸 산맥의 명물처럼 돼 버린 거죠.”

요한은 빙그레 미소를 그렸다.

이제 명실상부 최고의 교역로 중 하나로 급부상하고 있는 구르칸 교역로는 그야말로 돈을 쓸어 담는 자루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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