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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95화 (95/150)

95. 부활

내전이 시작될 경우, 그림자들의 임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내전을 승리하여 왕좌를 탈환할 것. 이것이 사실상 그림자들이나 제국의 입장에서 가장 베스트 시나리오였다.

그러다 첫 번째 임무가 실패할 경우 내전을 최대한 오래 끌어서 왕국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 두 번째 임무였다.

“네가 회귀하기 전에 가니온은 어떻게 했느냐?”

아버지 하이든의 질문에 요한은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큰 피해를 입긴 했지만 결국 녀석은 왕국을 장악했습니다. 우리 왕국 유일의 소드 마스터가 바로 그 녀석이니까요. 그렇게 우리 왕국을 장악한 가니온은 우리 왕국과 인접한 왕국들 중에서 그림자들의 뜻대로 잘 풀리지 않는 왕국들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남부 왕국들의 파멸이 놈의 손에서 시작된 것이나 진배없구나.”

“하지만 이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죠. 준비는 어떻게 됐습니까?”

“물론 잘 진행되고 있지. 나와 가니온이 함께 간언한 덕분에 전하께서도 흔쾌히 수락을 해 주시더구나.”

하이든의 간언이란 국경 수비대의 병력 보충을 얘기했다.

최근에 인접 왕국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여기저기서 내전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고, 실제로 전쟁을 벌이는 왕국들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벨로반 왕국은 등 뒤로 구르칸 산맥을 등지고 있으니 전방의 국경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도 외적을 방어하는 데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하이든의 말이었던 것이다.

이 얘기를 먼저 꺼낸 사람은 다름 아닌 하이든이었다. 그리고 하이든의 간언을 가니온이 지지했다.

‘전하께서 말씀하신 계획이 바로 이것이로구나!’

가니온은 사전에 요한이 하이든을 이용해서 왕도의 수비군을 이동시킬 계획을 준비 중이라는 언질을 받은 적이 있었다.

수도 방위군만 줄어들어도 입성은 훨씬 쉬워진다. 그뿐인가? 아군의 희생도 최소화 할 수 있었으니 쿠데타를 일이키는 입장에선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렇게 국왕파, 귀족파의 수장들이 적극적으로 찬성하자 결국 국왕도 두 사람의 제안을 수락한 것이다.

그렇게 수도 방위군이 출정식을 마치고 국경으로 떠난 그날 밤. 요한이 가니온의 저택을 찾아왔다.

“준비는 끝난 거겠지?”

“예, 전하. 속하를 비롯한 임페리엘 섀도의 사병 총 15만이 왕도 밖에서 대기 중이옵니다.”

“일어나지. 빨리 용사들의 얼굴을 보고 싶군.”

“제가 모시겠습니다. 전하!”

자리에서 일어난 두 사람은 왕도 밖에서 군사들이 대기중인 곳으로 조용히 자리를 이동했다.

왕도 밖, 서쪽 평야. 그곳에는 갑옷에 검은 칠을 한 15만의 대군이 어둠속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위장을 했다고는 해도 군대가 너무 크다 보니 정찰병이나 망루 위에서 살펴보면 금방 들킬 수준의 규모였다.

하지만 정찰병이나 경비병들의 종이 울리는 일은 없었다.

거사를 대비하여 오늘 성문의 정찰과 경비를 맡은 병사들 모두 그림자들의 끄나풀로 채워 두었기 때문이다.

그들 앞에 요한과 가니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병사들과 기사,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귀족들의 눈빛에 열망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요한은 그들의 면면을 살폈다.

‘아는 얼굴들도 많고, 모르는 얼굴들도 많네.’

이 자리에 모인 귀족들은 의심할 여지없는 그림자들이었다.

그들의 소속은 국왕파와 귀족파를 가리지 않았다. 국왕파 귀족 중에는 국왕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라서 그림자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사람들까지 있었다.

풋!

요한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배신감을 삼키며 허탈함에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왜 그러십니까? 전하.”

“아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야. 이렇게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거든.”

“아…… 이 모든 것이 전하의 공로가 아니겠사옵니까.”

진심을 말해 줘도 제 멋대로 착각하는 가니온을 보며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아마 가니온이 생각하는 대상은 자신들이 아니라 왕일 터였다.

이제는 그 달콤한 꿈에서 일어나 현실을 직시해야 할 시간이었다.

요한은 검을 뽑아 들며 귀족들을 향해 힘차게 소리쳤다.

“너희는 들어라! 지금부터 나는 내 손으로 잘못된 역사를 바꿀 것이다! 하지만……!”

번쩍!

푸욱!

그 순간, 요한을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의 눈이 찢어질듯 커지며 기함을 삼켰다. 요한의 검이 빛을 뿜으며 한 순간에 가니온의 가슴을 관통했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심장은 피했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심장과 이어진 혈관들이 뭉텅이로 잘려 나갈 수 있으니까.”

“저, 전하? 이, 이게 어찌…….”

쿨럭…….

당연히 이 상황에 가장 놀란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가니온이었다.

그는 자신의 가슴에 꽂힌 검을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내려다보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요한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말했잖아. 잘못된 역사를 바꿀 거라고.”

요한은 남은 손을 자신의 복면으로 가져가더니 복면을 벗어던졌다.

찰랑거리는 금발머리, 백옥 같은 피부, 사파이어를 연상시키는 푸른 눈동자까지……. 요한의 얼굴을 확인한 가니온의 눈동자가 점점 더 커졌다.

“네, 네놈은 설마……!”

“어후, 이제야 살 것 같네. 사실 복면을 쓰고 사는 게 생각보다 귀찮고 답답한 일이라서 말이야.”

“그, 그럴 리가 없다! 네놈은 죽었다! 분명 죽었다고!”

“그럼 네 눈앞에 있는 나는 유령이게?”

요한은 피식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가니온에게 이죽거렸다. 그런 그가 제로스의 망토 속에서 꺼낸 것은 다름 아닌 그란체스카의 라이프 베슬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냐?”

-대상의 심장을 꺼내고 그 위치에 이 구슬을 박아 넣어라.

“그건 쉽지.”

으드득 으득!

“크아아아아악!”

오리하르콘 검은 오러의 도움 없이도 가니온의 심장을 마치 푸딩처럼 도려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니온도 결코 호락호락한 작자는 아니었다.

“크흡!”

쒜엑!

그는 성난 아귀와 같은 표정으로 자신의 모든 마나를 끌어 올려 검에 담았다. 퍼펙트 오러가 피어오른 그의 검이 짧은 호선을 그리며 요한의 목을 노렸다.

‘네놈도 길동무로 삼아 주마, 놈!’

동귀어진의 각오로 휘두른 가니온의 검은 정확히 요한의 목을 쳤다.

아니, 쳤다고 생각했다.

“나쁘지 않은 시도였어. 마지막 발악치고는 말이지.”

어느새 가니온의 검은 요한의 손에 잡혀 꼼짝도 하지 못했다.

벨 수 없는 게 없다고 전해지는 퍼펙트 오러조차도 뇌전의 마나가 방전하는 요한의 손안에서는 그저 쥐덫에 걸린 쥐와 다르지 않았다.

와장창!

그러다 요한이 손아귀에 힘을 주자 검은 맥없이 유리처럼 부서지며 바닥에 흩어져 내렸다.

“네놈…… 처음부터 이러려고 자신의 죽음까지 위장해서 내게 접근한 것이냐……!”

“그럼? 내가 설마 나라 팔아먹으려고 너한테 접근했겠어?”

“어째서냐? 네놈 정도의 능력이라면 설령 진짜 황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귀하게 쓰임받았을 것이다!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신분에 올라 네놈이 상상도 못 했던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었을 것인데 대체 왜……!”

“해 봤어.”

“……뭐?”

상대가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자 요한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게 해 봤는데 말년이 안 좋더라고. 그래서 이번에는 좀 다르게 살아 보려고. 자, 이제 작별할 시간이야. 그동안 고생 많았다, 가니온 발코르 트리스탄.”

크크큭!

“지옥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가니온이 요한에게 저주를 남기며 결국 고개를 떨궜다.

요한은 그의 심장을 도려낸 자리에 라이프 베슬을 박아 넣었다.

“크으으으으으……!”

그러자 죽은 줄 알았던 가니온 공작이 갑자기 고개를 하늘 높이 치켜들더니 발광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이제 죽은 자의 영혼을 흡수해서 마력을 채우면 된다. 나는 그동안 이자의 영혼 속에 내가 가진 지식들을 전부 전수하도록 하지.

“그렇단 말이지?”

요한의 눈이 병사들에게 향했다.

“저, 저놈은 요한 크림포드가 아닌가?”

“백작가의 개망나니? 그놈은 마약과 술에 찌들어서 결국 지 애비 손에 죽은 놈이 아닌가? 그놈이 여기엔 어떻게…….”

“뻔하지 않은가! 유령이 아니면 우리가 모두 놈에게 속은 거지!”

약 15만 명 중에서 지금 이 사태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요한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속출하기 시작하자 사태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놈이 가니온 경을 참살했다!”

“저놈은 제국의 황자가 아니다! 놈을 죽여라!”

“놈을 죽이고 벨로반 왕국을 손에 넣자!”

“어차피 상대는 한 명이다! 겁먹을 거 없다!”

가니온의 뒤를 잇는 귀족들이 나서서 병사들을 부추겼다.

“궁수 부대 준비!”

“발사!”

앞으로 나선 궁병들이 당겼던 시위를 놓자 수천, 수만 발의 화살이 마치 장대비처럼 요한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나야 고맙지.”

요한은 쏟아지던 화살들을 올려다보며 미소를 그리더니 두 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앞에 제로스의 망토가 형성한 아공간 창고가 개방되었다.

원거리 특화 방어 능력, 아이기스의 방패였다.

쏟아지던 화살들은 일정 공간을 경계선으로 더 이상 넘어오지 못하고 마치 잔잔한 호수에 쏟아지는 빗물처럼 수많은 파문만 형성한 채 아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저게 대체 무슨……!”

“화살들이 전부 사라졌다고?”

“허공 나타났던 파문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어찌 이리 해괴한 일이…….”

귀족들과 지휘관들, 병사들이 아이기스의 방패를 보고 경악하는 사이, 요한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화살 선물에 대한 답례를 준비했다.

“돌려줄게.”

제로스의 망토 세 번째 능력, 아펠로의 창이 개방되자 지금까지 흡수했던 화살들을 그 위력 그대로 아공간 창고에서 쏟아 내기 시작했다.

즉, 요한에게 날아왔던 수천, 수만 발의 화살들 중 수백발만 남기고 대부분이 역으로 놈들에게 날아갔던 것이다.

“방패 올려!”

“화살을 막아라!”

병사들이 서둘러 방패를 머리 위로 올려서 화살을 방어하는 사이, 요한은 제로스의 망토에서 오리하르콘 활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화살 한 발을 꺼내 시위에 걸더니 그대로 시위를 잡아 당겼다.

목표는 눈앞에 있는 적군 전부!

그가 시위를 놓는 순간…….

파지직, 파직!

쒜엑!

화살은 푸른 번개를 휘감고 날아가 직선상에 위치한 수십 명의 병사들을 단숨에 꿰뚫어 버렸다.

“뇌전의 마나!”

“이런 미친……!”

“겁먹지 마라! 어차피 놈은 한 명이다! 숫자로 밀고 들어가면 놈이라도 당해 낼 수 없을 거다! 우린 15만이 넘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그 외침에 요한은 피식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외쳤다.

“누가 혼자래?”

그때였다.

뿌우우우우……!

숫자로 밀고 들어가면 된다던 그림자 지휘관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어디선가 웅혼한 뿔피리 소리가 나직하게…… 그러나 위엄 있게 울려 퍼졌던 것이다.

“이, 이 뿔피리 소리는……!”

“수도 방위군…….”

“말도 안 돼! 수도 방위군은 국경 지대로 떠났잖습니까?”

“그것마저도 속은 거지. 왜 우리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은 거요?”

“가니온 경이 직접 추진한 일이잖소! 의심할 요소가 하나라도 있었소?”

국경 지대로 향한 수도 방위군의 숫자는 무려 30만. 그 전군이 모두 회군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자신들과의 전력 차이는 두 배에 달했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아우우우우~!

취익! 취익!

늑대들의 울음소리와 오크 전사들이 거칠게 콧김을 내뿜는 소리가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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