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98화 (98/150)

98. 왕권 강화 계획

“도대체 일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야?”

“그러게요. 소란이 일어났어도 진즉에 일어났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조용한 건지…….”

“안 되겠어요. 잠깐 정찰이라도 다녀올게요!”

“호들갑 떨지 말고 가만히 있어. 괜히 나갔다 잘못 걸리면? 새 시대도 누려보지 못하고 비명횡사할 일 있냐?”

상관의 명령에 결국 젊은 사내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모두 성별도, 나이도, 직업도, 복장도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임페리얼 섀도들에게 충성을 바친 그림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은 왕도 근처 산속에 위치한 가니온의 별장이었다.

규모도 규모일뿐더러 그 근처에 그림자 소속 귀족들의 별장도 제법 많았기 때문에 이들을 수용하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그러나 왕도와의 거리가 먼 것도 아니었기에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절대로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었다.

‘아니,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 정도로 조용한 건 뭔가 이상하지 않아? 아무래도 한번 상황을 살펴보고 오는 게…….’

그때였다.

끼이익…….

별장의 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말한 대로 전부 여기 잘 숨어 있었네. 그래, 귀찮게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가자. 어차피 뒈질 운명인데 아픈 것보다는 곱게 가는 게 너희들도 좋을 거 아냐. 안 그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요한이었다.

“누구야, 저 새끼는?”

“자, 잠깐만! 저 사람은 설마…….”

“누군지 알아?”

요한을 알아본 크림포드 백작가의 하인이 눈을 부릅뜨더니 요한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부들부들 떨었다.

“마, 말도 안 돼! 당신은 죽었잖아! 그런데 어떻게…….”

“뭐, 살다 보면 죽었다 살아나기도 하고 그래.”

“도대체 누군데 그래, 썅!”

“보고도 모르겠어? 크림포드 백작가의 차남 요한 크림포드라고!”

하인이 소리치자 한 시녀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요한 크림포드는 죽었잖아. 죽은 사람이 어떻게 여길 찾아와? 무슨 유령이라도…….”

“맞는데?”

“……?”

“맞다고, 나. 요한 크림포드. 그리고…….”

요한은 녀석들이 알기 쉽게 가져온 알파의 복면을 착용하였다.

“보시는 바와 같은 사람이기도 하고.”

“아, 알파 경?”

“하지만 알파 경은 제국의 전하라고…….”

“멍청아! 저 새끼가 속인 거야! 처음부터 가니온 경의 예상이 맞았던 거라고!”

“자, 잠깐! 그럼 가니온 경은? 저놈과 함께 국왕을 치기로 했잖아! 가니온 경은 어떻게 됐냐고!”

가니온을 애타게 찾는 그들의 모습에 요한은 목걸이에서 가니온을 호출했다.

“가니온, 저 녀석들이 너를 애타게 찾던데?”

-…….

“헉!”

“꺄아아악!”

“저게 무슨……!”

“언데드다! 언데드가 나타났다!”

가니온이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패닉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물론 개중에는 검을 뽑아 들더니 지금 당장이라도 요한을 죽이고 탈출할 기세로 가득 찬 사람들도 많았다.

“당장 그곳에서 비켜!”

쪽수를 믿고 덤비려는 그들의 모습에 요한은 피식 실소를 터트리더니 가니온에게 명령했다.

“가니온, 지금부터 저 녀석들 중에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내딛는 놈들 있으면 발목을 베어 버려.”

-로드의 명을 따릅니다.

“이게 진짜 말이 말 같지가 않나!”

결국 요한의 말을 무시한 사내가 검을 꼬나 쥐며 빠르게 달려들었다. 일견 검술을 상당히 수련한 티가 났지만 그뿐이었다.

서걱.

“헉!”

그가 발을 떼는 순간 앞으로 고꾸라져 넘어졌다.

가니온이 언제 검을 휘둘렀는지도 모르겠는데 발목부터 잘려 나간 그의 발이 피를 쏟으며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크아아아악!”

잘려 나간 발목을 붙잡으며 비명을 지르는 사내를 보고 사람들은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단단히 깨달았다.

2층에서 그 상황을 살펴보던 사람들은 정면으로 도망치는 건 무리라고 판단하고는 2층 창문을 통해서 탈출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거기서 뛰어내리려고? 잘못하면 발목 부러져. 그냥 현관으로 나오지?”

요한이 2층을 향해 소리쳤다. 아닌 게 아니라 운이 좋아서 발목 멀쩡하게 착지한다 하더라도 문제였다.

하늘을 날아서 도망치지 않는 이상, 저택 인근에 깔려 있는 병사들을 피해서 달아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

“놈의 말대로 어차피 붙잡혀도 뒈지는 건 마찬가지야! 여기서 포기하지 마!”

“일단 도망치고 생각하자고!”

다만 일부 객기를 부리는 녀석들이 문제였다.

“뒈진다는 것만 똑똑히 듣고 어떻게 뒈지는가에 대해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나 보네.”

“덮쳐!”

죽음을 각오한 그들은 결국 쪽수를 믿고 요한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의 앞에는 가니온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가니온, 머리랑 몸뚱이만 놔두고 사지를 잘라 버려.”

우웅!

요한의 명령을 받은 가니온의 붉은 눈동자가 스산하게 빛을 뿜는 순간, 눈앞에 지옥도가 펼쳐졌다.

“으아아악!”

“내 팔이……!”

“다리, 내 다리가……!”

“사, 살려 주세요! 제발 목숨만은…….”

사방팔방에 잘려 나간 팔과 다리가 핏물과 어우러지며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수십 명이 그렇게 팔다리를 잃은 병신이 되어 비명만 지르는 꼴을 보고 있자니 다른 그림자들은 그저 입을 닥치고 순순히 포박에 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별장에 숨어 있던 그림자들까지 모두 체포하고 난 뒤에야 요한은 떳떳하게 가족들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 * *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요한을 그의 어머니 아네트가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 진짜 요한이니? 아니면 내가 너를 너무 보고 싶어서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니?”

“어머니…… 저 진짜 요한 맞아요. 보고 싶었습니다.”

“아…….”

털썩.

미리 그녀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하이든은 이마를 짚으며 쓰러지는 아내를 능숙하게 안아 들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네 엄마에게 이 사실은 한꺼번에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로구나.”

“어쩔 수 없죠. 차근차근 설명해 가는 수밖에요.”

요한은 잠도 안 자고 침대의 누워 있는 아네트의 곁을 지켰다.

그러다 아네트가 정신을 차리자 오랜만에 상봉한 모자는 시간도 잊은 채 그동안의 그리움을 천천히 나누었다.

* * *

공식 연회가 있기 전, 요한은 하이든과 함께 국왕 포라드와 비밀 면담을 가졌다.

“그 능력 좋은 알파 경이 실은 백작의 개차반 차남이었다니…… 아, 이건 실례되는 얘긴가? 아무튼 놀랍기 그지없군.”

“전하께서 하신 말씀 또한 사실이니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한때는 정말로 세상물정 모르고 막 나가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그런 친구가 어쩌다 개과천선하고 이렇게 큰 사람이 된 건가? 방법이 있다면 좀 가르쳐 주게.”

포라드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하자 요한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없습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가족들의 진심이 마음속에 와닿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변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전하.”

요한은 일부러 회귀에 대한 사실은 숨겨 두었다. 진실보다 때론 거짓이 더 설득력을 갖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군. 가족들의 지극정성이라……. 하기야, 진심만큼 사람을 감동시키는 게 없는 법이지. 그래, 본론으로 넘어가서…… 과인에게 사적인 면담을 제안한 이유가 무엇인가?”

“전하께서 반드시 해 주셔야만 하는 일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전하와 국민을 위해서요.”

“나와 국민들을 위해서?”

포라드의 얼굴에 의문만 깊어져 갔다.

* * *

다음 날.

크림포드 백작가에서부터 시작된 행진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선두에 선 요한을 구경했다.

사람들은 요한을 쳐다보며 저마다 수군거렸다.

“글쎄 요한 도련님의 정체가 실은 국왕 전하께서 키우신 비밀 병기였다지 뭔가?”

“비밀 병기? 개망나니가 아니라?”

괜히 한 소리 얹었던 사내의 옆에 있던 사람이 그를 꾸짖었다.

“예끼, 이 사람아! 그런 소리하다 경을 치네. 세상 어떤 개망나니가 반란군으로부터 나라를 구한단 말인가?”

“그것도 반란군 주동자가 가니온 유스터프 공작…… 아니, 가니온 그 개새끼였다지?”

“어떻게 국왕의 신뢰를 받는 왕국의 검이라는 작자가 쯧쯧…….”

“그놈 말고도 왕국에 숨어 있던 스파이들이 상상을 초월했다지?”

“지금도 처형장 근처에서는 피비린내와 비명이 끊이질 않는다던데…… 세상 참 말세다, 말세야.”

사람들이 현실에 한탄하자 방금 꾸중을 들어 의기소침해진 사내가 은근히 물어 왔다.

“그럼 이제까지 요한 도련님이 보여 준 모습들은 다 뭔가? 그것도 다 가짜란 말인가?”

“당연하지, 이 사람아! 도처에 스파이가 쫙 깔렸는데 대놓고 스파이를 처단하겠다고 움직이는 멍청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 역시 국왕 전하의 지모가 빛을 발한 덕분이지.”

“국왕 전하의 지모도 지모지만, 난 요한 도련님도 대단하네.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남들에게 미움받을 용기를 감수하면서까지 완벽하게 개망나니를 연기할 수 있었냐는 말이지. 막말로 그 덕분에 첩자들도 요한 도련님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거고. 그 덕분에 나라까지 구했으니 말이야.”

“두 분 다 대단하신 거지. 우리 같은 아랫것들은 상상도 못 할 일이야.”

다른 사람들도 아닌 듯하면서 귀를 쫑긋 열어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의 모습에 요한은 방금 전까지 떠들어 대던 사내들과 스쳐 지나가듯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들의 정체는 바람잡이였다.

이들의 역할은 지금처럼 떠들고 다닌 얘기들을 널리널리 퍼트리는 것.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실추된 왕권을 회복하는 것.

‘반역은 성공을 하든 안 하든, 시도했다는 그 자체로 왕권을 크게 실추시킨다. 백성들로 하여금 얼마나 왕이 형편없고 얕보였으면 신하된 자가 쿠데타를 일으키느냐는 인상을 심어 주기 때문이지. 차라리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시간을 들여 차분히 왕권을 회복하는 게 가장 베스트지만…….’

두 번째 이유 때문에 그건 불가능했다.

‘대륙 전쟁이 발발한다면 백성들은 십중팔구 대공황에 빠질 수 있다. 그때 왕권이 실추된 상황이라면 백성들을 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야. 최악의 경우, 민중 봉기나 반란 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요한인 지금과 같은 책략을 내놓은 것이다.

물론 자신의 공로를 모두 왕에게 돌려 버린 탓에 요한이 얻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포라드에게 유능한 왕, 지혜로운 왕, 미래를 대비할 줄 아는 왕이라는 이미지를 백성들에게 심어 줄 수 있었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다는 게 이런 것일까?

자칫 왕권이 약화될 뻔했던 큰 문제를 역으로 왕권 강화의 발판으로 삼아 버리고 백성들에게 믿음을 준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설령 대륙 전쟁이 발발해도 국민들은 포라드 왕을 믿고 따라 줄 것이다. 국내가 안정된다는 건 그만큼 바깥일에 더 신경을 많이 쓸 수 있다는 뜻이고.’

뭐, 겸사겸사 요한의 과거도 어느 정도 세탁이 되긴 했지만, 요한은 자신의 지난 잘못을 이대로 넘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무리지만 전쟁만 잘 마무리되면 제대로 사죄를 해야겠지.’

자신의 개망나니 짓을 포장한 건 어디까지나 국왕의 대의명분을 위해서였지 끔찍한 잘못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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