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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100화 (100/150)

100. 다시 만난 약혼녀

귀족들이 모이고 대연회가 시작되었다.

대륙의 정황상, 어쩌면 마지막 연회가 될 수도 있는 만큼 참가한 귀족들의 면면도, 인원도 성대하기 그지없었다.

천장에는 10만 골드를 호가하는 거대하고 화려한 샹들리에가 아름다운 빛을 뿌리고 있었고, 그 아래에서는 각종 드레스로 치장한 아름다운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아직 연회가 시작되기도 전인데 사람들이 엄청 몰려드네.”

“그러게. 오늘밤은 정신없이 바빠지겠네.”

“거기 두 사람! 잡담하지 말고 빨리빨리 안 움직여?”

“아, 넵!”

곱게 차려입은 시종들과 시녀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마지막 연회 준비를 서둘렀다.

젊은 남녀 귀족들은 물론이고 평소 연회에는 잘 얼굴을 비추지 않는 노귀족들도 모두 이번 연회에 참석했다.

물론 그 이유가 비단 이번이 전쟁 이전 마지막 연회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요한 크림포드 대공께서 입장하십니다!”

웅성웅성…….

파티장에 요한이 입장하는 순간, 구름 같은 인파가 순식간에 요한의 곁으로 몰려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정반대였다.

모두의 시선은 그를 향하고 있었지만 선뜻 그에게 다가가는 여인들은 없었던 것이다.

“네가 먼저 가 봐. 너는 그래도 그래준 백작님의 딸이잖아.”

“그치만…….”

심지어 가문이 제법 든든한 여성들조차 쉽사리 요한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들이 눈치를 살피고 있던 건 다름 아닌 요한과 함께 입장한 한 사람 때문이었다.

“……너 이러려고 나랑 같이 오자고 한 거냐?”

“뭐, 겸사겸사지. 겪어 보니까 전쟁보다 힘든 게 있더라고.”

“아주 배부른 소리한다.”

요한과 함께 입장한 사람은 다름 아닌 가루칸이었다.

험상궂은 오크족 대전사가 요한의 곁을 떡하니 지키고 있으니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것이다.

가루칸은 자신의 옷을 둘러보며 말했다.

“흐음…… 혹시 이 옷이 별로 안 어울리는 건가? 나름 괜찮은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도 옷은 죄가 없는 것 같긴 해.”

왕실 제단사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블랙 슈트다. 옷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문제는 가루칸의 인상이 옷을 씹어 먹을 정도로 강렬하다는 게 문제였다.

“아무튼 난 간다.”

“뭐? 어딜 가려고?”

“인간들의 연회는 정치의 연장선이라면서? 나름 오크족의 대푠데 지금부터라도 외교 연습을 해 둬야 하지 않겠냐. 그럼 잘해 봐라.”

“야! 가루칸, 야 인마!”

그렇게 가루칸이 손을 흔들며 떠나기가 무섭게 몰려들기 시작하는 여인들.

“안녕하세요, 대공 각하! 도나스 자작가의 루실리엔이라고 해요! 혹시 잠시만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어머, 얘가 왜 이래. 대공 각하는 나와 먼저 선약이 있을 예정이거든? 그렇죠, 각하?”

“아 진짜, 밀지 좀 마! 드레스 구겨지잖아!”

“대공 각하! 저 한 번만 봐 주세요! 이쪽이에요!”

‘차라리 지금 떠날까?’

밀려드는 여인들의 치열한 애정 공세에 요한은 빠르게 진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오며가며 힐끔 쳐다보던 시종들에게는 그야말로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부럽다. 일 년…… 아니, 하루…… 아니, 한 시간 만이라도 좋으니까 나도 저렇게 살아 봤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하니까 꿈 깨시고요. 헛소리 할 시간에 빨리빨리 안 움직여? 접시에 음식 비어 있는 게 걸리면 시종장님한테 깨지는 거 몰라?”

“하아……. 네, 네, 알겠…… 응?”

“뭐야, 또 왜 그래?”

한 시종이 한숨을 내쉬며 문득 고개를 들었다가 선배 시종에게 샹들리에를 가리키며 물었다.

“방금 샹들리에가 흔들린 것 같지 않아요?”

“지랄,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저거 무게만 3톤이 넘는데 저게 흔들린다고? 네가 가서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밀어봐라. 저게 꼼짝이나 하나. 너 자꾸 헛소리 하면서 뺑이칠래?”

“아니면 아닌 거지 화는……. 아, 간다고요!”

그는 미처 보지 못했다, 2층에서 자신들과 같은 복장을 하고 있어도 전혀 다른 눈빛을 가진 무리를…….

* * *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네요.”

“…….”

클레번과 함께 파티장에 뒤늦게 입장한 리리아는 벌써 사람들 속에 거의 갇히다시피 한 요한을 보며 표정이 어두워졌다.

시간이 지나자 여인들뿐만 아니라 요한과 어떻게든 인맥을 대고 싶어 하는 젊은 남성 귀족들까지 모여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것이다.

“아마 이쪽에서 목이 터져라 소리쳐도 안 들리실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번에 사과드리기는 좀 힘들 것 같은데요. 어쩌죠?”

“어쩌긴. 나중에 서신으로 전해 드리든가 해야지. 바쁘신 분인데 나 같은 게 일부러 시간 뺏을 수는 없잖아.”

“사실 시간을 허락해 주실지도 미지수윽…….”

“넌 꼭 한마디가 많더라.”

리리아는 클레번의 뺨을 잡아당기며 쌜쭉하게 눈을 흘겼다. 그러면서 리리아는 지금 당장 요한에 대한 생각을 애써 접었다. 신경 쓸수록 자신만 손해였으니까.

그렇게 요한에 대한 생각을 접자 점점 파티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화려한 조명, 분위기 있는 음악, 맛있는 음식들,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평소 검만 잡아 왔던 그녀에게 이런 파티장은 생소하고 맞지 않는 옷처럼 거북하게 느껴져 피해 왔던 곳이었다.

하지만

‘…….’

그녀의 머릿속에 문득 요한…… 그러니까 알파로 위장하고 있던 요한과 춤을 추었던 그때가 떠올랐다.

그때 처음 그녀는 연회가 즐겁다고…… 춤추는 것이 행복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응? 왜 그러세요, 아가씨?”

“그만 먹고 우리도 춤이나 추자.”

“네?”

리리아의 춤 신청에 클레번은 하마터면 먹고 있던 음식을 뿜을 뻔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리리아가 먼저 춤을 신청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클레번은 얼떨결에 리리아의 손을 붙잡고 스테이지로 나갔다.

물론 당연히 잘 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클레번은 그녀의 호위 기사였고 연회장에서도 그녀를 지키느라 춤 같은 건 배운 적도, 출 기회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괜히 힘주지 말고 내 스텝에 맞춰.”

“아가씨, 언제 춤을 배우신 거예요?”

“그냥…… 뭐, 시간 있을 때 어쩌다 한 번씩?”

‘이건 어쩌다 한 번씩 배운 솜씨가 아닌데…….’

자신을 리드하는 리리아의 춤 솜씨는 하루 이틀 배운 솜씨가 결코 아니었다. 아마 숨어서 검술 연습만큼이나 춤 연습에도 노력을 기울였겠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클레번은 괜히 리리아가 더 안타까웠다.

그런데…….

한 곡이 끝나고 클레번과 인사를 나눈 리리아는 자신을 찾아온 한 남자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 세자 저하?”

그녀에게 춤을 신청한 사람은 다름 아닌 왕세자 카일이었던 것이다.

“괜찮다면 나와도 한 곡 출 수 있겠는가? 지켜보기만 하기에는 그대의 춤사위가 너무 애처롭고 위태로워 보여서 말일세.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잠시나마 그대를 위로해 주고 싶네만.”

“분에 넘치는 영광이옵니다.”

애초에 왕세자가 먼저 춤을 신청하는데 남작가의 여식이 거절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리리아는 카일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그 모습을 수많은 여인들이 질투와 선망이 섞인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오늘의 주역이 요한이라 그렇지, 카일 또한 미혼이다. 왕국 신랑감 랭킹을 세운다면 언제나 1순위에 꼽힐 정도로 능력과 외모 또한 출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음 연주가 시작되고, 리리아와 카일이 춤을 추기 시작하자 주변 사람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두 사람 다 외모가 화려하고 춤 실력도 수준급이었으니 시선을 빼앗기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으니까.

“정말로 잘 어울리는군.”

“그러게 말입니다.”

“아반가르디 남작가의 외동딸이라지요? 그것 참 남작이 여식을 잘 키운 것 같습니다.”

모두가 두 사람을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카일은 리리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서글픈 미소를 그렸다.

“보아하니 마음속에 품은 남자가 있구나. 그가 너를 돌아보지 않아 슬픈 게냐?”

“저, 저하……! 갑자기 그런 말씀은…….”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만나다 보니 사람의 표정을 보고 마음을 읽는 방법을 조금 터득했다. 물론 완벽한 건 아니니 내 말이 틀렸다면 너무 상처받지 말거라. 사과하마.”

“…….”

리리아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다고 대답할 수도, 아니라고 거짓말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카일은 그런 리리아의 솔직한 반응이 귀여웠다. 거짓과 정략이 난무하는 연회장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순수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매서운 눈빛으로 쳐다보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카일이 등장한 이후부터 2층 위에서 줄곧 그를 감시하고 있던 시종이었다.

그렇게 카일이 리리아와 춤을 추기 시작한 순간, 정확히는 춤을 추기 위해 샹들리에 밑 스테이지로 향하는 순간, 그의 눈이 번뜩인 것이다.

‘지금!’

그는 품속에 숨겨 두었던 미스릴 단검을 꺼내 전력으로 마나를 불어 넣었다. 보통의 단검이라면 오러를 버티지 못하고 깨질 만한 힘이었으나 미스릴 단검이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쒜엑!

그 결과, 엄청난 위력을 담은 미스릴 단검이 무서운 속도로 공간을 가로질렀다. 단검이 노리는 대상은 카일이 아니었다.

카일의 머리 위 샹들리에, 그 샹들리에를 붙잡고 있는 중앙의 거대한 쇠사슬이었다.

빠캉!

아무리 쇠사슬이 두껍고 단단하다 해도 오러로 무장된 미스릴 단검을 버틸 수는 없었다.

결국 단검이 베고 지나간 쇠사슬 마디 하나가 잘려 나가면서 가장 하중을 크게 견뎌 내야 할 메인 사슬이 잘려 나가고 말았다.

당연히 보조 사슬만으로는 3톤이 넘는 샹들리에를 버티기는 무리였고 그 결과…….

티잉, 티잉!

보조 사슬과 와이어들이 빠른 속도로 끊어지며 순식간에 샹들리에가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3톤짜리 샹들리에의 추락 속도는 사람들의 인지를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그 증거로 사람들은 샹들리에게 추락하는 그 순간까지도 사태를 파악하지 못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파지직! 콰릉!

콰아아아아아앙!

“꺄악!”

“무, 무슨 일이야?”

“샹들리에가 추락했다!”

“세, 세자 저하! 세자 저하는?”

연회장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특히, 왕세자 카일이 샹들리에 밑에 깔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귀족들의 등허리는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그런데…….

“저, 저기 봐!”

“세상에…….”

“요한 대공?”

샹들리에가 떨어진 충격으로 발생한 먼지구름이 걷히자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놀랍게도 샹들리에를 받치고 있던 요한의 모습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저하?”

“대, 대공 덕분에 무사하오. 다른 이들은?”

“저희도 괜찮습니다!”

요한이 카일의 안위를 살피자 카일이 대답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스테이지 위에서 춤을 추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큰 문제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샹들리에가 갑자기 왜…….”

“지금 제 수하가 범인을 추격하고 있으니 금방 잡힐 겁니다. 저하. 먼저 샹들리에 밖으로 빠져나가시지요.”

“하지만…….”

“신하들의 걱정이 많습니다. 나가셔서 건재한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게 빨리 소란을 잠재울 수 있지 않을까요?”

“……알았소. 내 대공의 말대로 하리다.”

카일은 쓰러진 리리아를 살피다 요한의 말에 설득당해 결국 샹들리에 밖으로 걸어 나갔다.

요한은 쓰러져 있는 리리아에게 시선을 돌리며 싱긋 웃었다.

“오랜만이네요, 리리아 아가씨.”

“그렇네요. 알파…… 아니, 요한 대공 각하…….”

리리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요한과 인사를 나누었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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