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북쪽에서 온 침략자
“빨리빨리 움직여!”
“손이 보인다, 이 자식들아!”
“전쟁에 지고 나서 피눈물 쏟아 봐야 아무 소용없다! 지금 부지런하게 움직여서 칼 한 자루, 갑옷 한 벌 더 만들면 너희들 가족이 살 수 있다!”
“우오오오오오!”
대장간에서는 밤낮 구분 없이 화로가 끓어올랐고 망치질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장비들은 모두 신병 훈련소로 운반되었다. 아직까지 강제 징집 수준은 아니었지만 모병으로 자원받은 신병들만 하더라도 그 수가 상당히 많았다.
“이번 주에 모집한 신병이 몇이라고?”
“대략 6만이 좀 넘습니다.”
“제대로 훈련시켜서 써 먹으려면 한 달은 걸릴 텐데…… 자네가 보기에 저 삼국이 그 정도의 여유를 줄 것 같은가?”
“아마 어렵지 않을까요?”
훈련 소장과 부소장도 이번 전쟁의 결과를 암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요한이란 인물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으니까.
반면 요한과 함께 군사 계획을 짜고 있던 지휘관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대공?”
“그러니까 이번 방어전에 우리 왕국 정규군을 투입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군대를 투입하지 않고 적군을 어떻게 막는다는 말씀이십니까?”
지휘관들은 요한의 말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기도를 해서 적군을 막겠다는 것도 아닐 테고, 어떻게 군대를 투입하지 않고 침공군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일까?
“뭔가 오해하신 것 같은데 군대를 투입하지 않겠다는 말은 안 했습니다. 우리 정규군을 투입하지 않는다고 했죠. 현재 우리 정규군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당장의 전쟁은 치를 수 있어도 후에는 자국의 치안을 담당할 병력마저 부족할 겁니다. 마치 천 년 전의 트리스탄 제국이 범했던 실수처럼요.”
“그 말씀은 우리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군대가 따로 있다는 얘깁니까?”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십쇼. 이번 전쟁은 우리가 반드시 이길 테니까.”
그날 오후. 뮤탄, 레반돌프, 존타나에서 사신이 찾아왔다.
사신들이 쓸데없는 말을 너무 주저리주저리 늘어놔서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공식으로 사죄를 하시고 그에 합당한 배당금을 지불하신다면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은 다 한 걸로…….”
“하암…… 할 말은 그게 전부냐?”
“예?”
턱을 괴고 심드렁하게 사신들의 얘기를 듣고 있던 포라드는 옥좌에서 일어나 내려가며 옆구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서걱! 툭, 데구르르…….
그리고 망설임 없이 뮤탄 사신의 목을 치자 아무것도 모른 채 어리둥절한 표정 그대로 뮤탄 사신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지, 지금 무슨 짓을……!”
당연히 옆에 있던 사신들도 경악에 차 소리를 쳤지만 포라드는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보아하니 이런 용도로 보낸 선물 같은데 또 과인이 한 번 받은 선물은 거절을 잘 안 하는 성격이라서.”
“이런 미친……!”
서걱!
“사, 살려 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조용히…….”
서걱!
그렇게 세 얼간이의 목을 베어 낸 포라드가 녀석들의 옷으로 검을 닦고 납검하자 기사들이 달려와 사신들의 시신을 치우기 시작했다.
포라드는 이 광경을 지켜보던 요한에게 시선을 돌리며 겸연쩍게 웃었다.
“괜한 짓이라도 좀 봐주게. 더 이상 듣고 있다간 귀가 썩어 버릴 것 같았거든.”
“제가 전하께 서운한 건 제 몫을 남겨주지 않았다는 사실 그 하나뿐입니다.”
피식!
“그런가? 내가 신경을 못 썼구먼. 그나저나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네.”
“애초에 돌아올 수 없는 강이었습니다. 그래서 철저히 준비했던 거고요.”
“자네가 말한 군대는 지금 어디쯤 왔는지 알 수 있겠나?”
“한쪽은 이미 도착했고 다른 한쪽은 내일이면 도착할 예정입니다. 마지막 군대는 부르면 언제든지 소환이 가능하고요.”
“그런가?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얘기하게. 국가 차원에서 내 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동원하여 자네를 돕도록 하지.”
“그 말씀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전하.”
잘려 나간 사신의 모가지는 곱게 포장되어 각 나라로 다시 전해졌다. 물론 이를 꼬투리삼아 분개한 각 나라는 군을 일으켜 곧장 벨로반으로 진군시켰다.
“대공 각하! 정찰 병력들이 전부 귀환하였습니다.”
“고생 많았다고 전해 주시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게 해 주십쇼. 우리는 바로 회의실로 가도록 하죠.”
요한과 지휘관들은 회의실에서 남부 대륙의 지도를 펼쳐 놓고 회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회의 시작 전 요한이 보여 준 신기한 능력에 지휘관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마치 그곳의 지형을 작게 축소해서 재현해 놓은 것 같지 않은가?”
“이, 이게 무엇입니까, 대공 각하?”
“제가 가진 신기의 기능입니다. 자세한 기능은 저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게 평범한 지도보다는 훨씬 괜찮을 겁니다.”
나노는 지도 위에 해당 지역을 3D로 프린트하여 투영하였고 이는 작전을 세우는 데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재 각 왕국에서 출전한 병력은 뮤탄이 대략 35만, 레반돌프에서 27만, 존타나가 30만 정도인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합쳐서 92만인가. 참담하군……”
“왕실군만으로 그만한 숫자를 맞추기는 힘들었을 텐데, 설마 귀족들이 사병을 전부 내놓은 건…….”
“그렇겠지. 그림자들이 선동했다면 귀족들이나 왕족들이나 어차피 한통속이라고 봐야 할 테니까.”
벨로반 왕국의 병력은 귀족들의 사병까지 전부 끌어모으면 70만이 조금 넘는 숫자였다. 네 나라 중에서도 가장 많은 병력을 자랑했던 것이다.
그것이 다른 왕국들이 쉽게 침공할 수 없도록 억제제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문제는 반란군이었다.
반란군이 보유한 15만 명의 병력이 전멸하면서 지금 남아 있는 왕국군은 55만 정도가 한계라는 뜻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왕국이 방어에 탁월한 천혜의 조건을 타고났다는 겁니다. 뮤탄이 침공 중인 북쪽은 구르칸 산맥에서 뻗어 내려온 강이나 지류가 많아 대군이 쉽게 움직이기 힘든 지형이고 서쪽은 반드시 우랄 협곡을 넘어야만 왕국으로 진입할 수 있죠. 이쪽 지형들은 소수 정예들로도 얼마든지 방어가 가능합니다.”
요한은 3D 프린트된 지도를 가리키며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한 지휘관이 남쪽을 가리키며 침음을 흘렸다.
“문제는 남쪽이로군요……. 남쪽은 우리 왕국 최대의 곡창지역이라 평야가 드넓고 대군이 움직이기 쉽습니다. 게다가 평야를 넘어서면 왕도까지도 금방이고요.”
“결국 가장 큰 문제는 남쪽에서 침공하는 존타나 왕국인가…….”
지휘관들의 걱정에 요한은 피식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아뇨, 그 남쪽 평야 말고 이번 전쟁에서 가장 승리가 확실한 땅이 될 겁니다.”
그때였다.
“대, 대공 각하! 도착했습니다! 각하께서 말씀하신 지원군 말입니다!”
병사 한 명이 허겁지겁 달려와 보고하자 지휘관들의 표정이 한순간에 밝아졌다.
“그게 정말인가?
‘드디어 왔나.’
요한은 지휘관들과 함께 지원군들이 도착해 쉬고 있다는 야외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한 지휘관들은 지원군이라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로…….”
“대공 각하, 설마 이것들도 전부 각하께서?”
씨익.
이제 승리의 퍼즐은 전부 맞춰졌다.
* * *
세 왕국의 군대는 비슷한 시간대에 맞춰 벨로반 왕국 국경지대에 도착했다.
먼저 벨로반 왕국 북쪽 접경지역에 도착한 뮤탄 왕국군을 살펴보자면 그들을 이끌고 있는 건 임폐리얼 섀도 버나드데인 공작과 부사령관 베니스였다.
“이것 참…… 전쟁하기 딱 좋은 날씨 아닙니까? 공작 각하.”
“여기서는 공작 각하가 아니라 총사령관님이라 똑바로 호칭하도록, 베니스 부사령관.”
“아이고, 이거 실례가 많았습니다. 전 설마 총사령관께서 뮤탄 왕국이 씌워 준 감투를 그렇게 신경 쓰시는지 몰랐습니다.”
능글능글한 베니스의 이죽임에 버나드데인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감투를 신경 쓰는 게 아니라 전쟁을 신경 쓰는 것일세. 만약 우리 쪽에 가니온이 얘기한 아바타가 출전했다면…….”
“높은 확률로 우리는 전멸하겠죠. 하지만 놈은 한 명입니다.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을 수는 없는 법. 우리가 높은 확률로 전멸하는 대신 다른 쪽에서 놈들을 멸망시킬 확률은 확정이 아니겠습니까?”
“……자네는 마치 그 괴물이 이쪽으로 오길 바라는 것처럼 보이는군.”
“그럴 리가요. 저도 죽는 건 무섭습니다.”
‘거짓말을 하려거든 표정이라도 좀 바꾸든가. 이 싸움에만 미친 작자 같으니……!’
버나드데인은 베니스의 거짓말을 믿지 않았고 베니스도 그가 자신의 말을 믿어 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실상 믿건 말건 상관없었다.
‘가니온이 당할 정도라면 분명 엄청나게 강한 녀석이겠지? 얼마나 강한 걸까? 그 아바타라는 괴물은…… 아, 제발 이쪽으로 와 주었으면 좋겠군.’
“총사령관님, 예정했던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좋다. 병사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며 다음 명령에 대기하라.”
“예!”
1차 목적지에 도착하자 버나드데인은 병사들에게 잠시 휴식을 허락한 후, 휴대용 통신 구슬을 들어 레반돌프와 존타나 쪽 사령관들과 통신을 시도했다.
“버나드데인이다. 다른 쪽은 무사히 도착했나?”
-레반돌프도 도착했다.
-존타나도 예정지에 도착을 완료했다. 혹시 아바타의 모습을 확인한 사람 있나?
“아직은 없다. 전투가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
-그렇군. 오늘은 휴식을 취하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전투를 시작하도록 하자고.
-나는 찬성이다.
“좋아. 무운을 빈다. 제국의 영광을 위해서.”
-제국의 영광을 위해서.
-제국의 영광을 위해서.
* * *
다음 날.
“자, 진군이다!”
뿌우우우우우!
진군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고, 뮤탄 왕국이 천천히 왕국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는 길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왼쪽의 구르칸 산맥 지류, 오른쪽의 우랄 협곡 사이의 좁은 소로를 쭉 따라가면 벨로반 왕국의 첫 방어선인 제노발 요새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암, 이쪽에서 찾아가는 것보다 차라리 그쪽에서 찾아와주면 더 좋을 텐데. 빨리 죽이고 빨리 끝내면 빨리 돌아갈 수 있잖아.”
“그러게 말이다. 크크큭!”
“거기, 잡담은 금지다.”
병사들은 서로 잡담을 떠들었지만 지휘관들도 가볍게 주의만 줄 뿐 크게 혼을 내지는 않았다.
그만큼 이 전쟁이 압도적으로 자신들이 이길 거라는 걸 병사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응? 저 앞에 뭐가 있는데?”
“병사들인가?”
“설마 정말로 마중 나와 준 건가?”
“그럴 리가 있겠냐?”
“잠깐, 실루엣이 뭔가 이상한데?”
병사들이 발견한 것을 선두에서 군을 이끌던 버나드데인이 발견하지 못했을 리 없다. 실루엣과의 거리가 좀 더 좁혀지자 그는 실루엣의 정체를 알고 크게 경악하였다.
“뭐, 뭐야 저것들은? 미노타우로스와 웨어 울프라고?”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닙니다! 저 정도 무리면 아무리 못해도 족히 1만이 넘습니다!”
무오오오오오!
아우우우우우……!
각 개체의 전투력이 오러 엑스퍼트와 맞먹는다는 미노타우로스와 개체가 오러 유저와 맞먹는 전투력을 가진 웨어 울프 무리…….
그런 괴물들 1만 명이 모여 자신들을 향해서 포효하는 모습에 버나드데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갔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