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베니스 기사단
“자, 그럼 이 정도면 깜짝 이벤트는 충분한 것 같고……. 슬슬 나도 저녁 먹으러 돌아가 볼까?”
요한이 한 것이라곤 뮤탄 왕국군 진영으로 하늘을 날아와 전날 제로스의 망토에 충전해둔 불화살을 쏟아 내고 불구경 한 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산책과도 같은 일이 빚어낸 결과는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피해 상황은?”
피해 상황 집계가 끝나자 버나드데인이 부관에게 질문했고 부관이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불화살에 직접적으로 당한 병사들은 약 삼백 정도 되고 화재를 진압하려다 화마에 당한 병사들이 약 오백이 좀 넘습니다.”
“그나마 그 상황 속에서도 병사들의 피해가 1천 미만이라는 것은 천만다행이군. 문제는…….”
“현재 식량 막사가 전부 전소된 탓에 남은 식량이 거의 없습니다.”
부관의 표정이 어두운 게 바로 이 탓이었으리라.
“남은 식량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지?”
“그나마 화재 속에서 건져낸 식량들이 조금 있긴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아무리 아껴 먹는다 해도 이틀을 넘기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너무 그렇게 낙심하지 마십쇼, 총사령관 각하. 세상에 그런 식의 기습을 감행해서 식량 막사만 쏙 태워 먹고 갈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안 그런가, 부관?”
“그, 그렇습니다, 각하. 베니스 부사령관님의 말씀처럼 이번 기습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부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버나드데인의 날카로운 시선이 편하게 자리에 앉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베니스를 노려보았다.
“부사령관은 마치 남의 일처럼 얘기하는군.”
“그럴 리가요. 저도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제게 기회가 없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다만 확실한 건, 지금부터 장기전으로 돌입할 경우 우리가 자멸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판단은 총사령관 각하의 몫이지만요.”
‘고얀 여우 새끼 같으니……!’
‘능구렁이 영감탱이가 외통수에 걸렸군. 이 상황을 내 도움 없이 해결할 수 없다는 건 영감탱이가 제일 잘 알고 있겠지.’
베니스의 예상대로였다.
“부관은 지금 당장 본국에 추가 식량과 지원군을 요청하게. 아무리 강병이라 해도 먹지 않고 싸울 수 있는 병사는 없으니.”
“예!”
“그리고 부사령관.”
“하명하십시오, 각하.”
버나드데인은 그를 얇게 노려보며 씹어뱉듯 명령을 내렸다.
“내일은 경의 힘을 빌리도록 하지. 우리 군을 이끌고 저 간악한 무리를 송두리째 뽑아 버리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총사령관 각하의 분부대로…….”
* * *
다음 날. 전쟁은 아침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이게 아침 식사 전부라고?”
한 고참 병사가 식판에 담긴 멀건 스프와 딱딱한 빵 반 조각을 보고 취사병에게 어이없다는 시선을 돌리자 취사병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불평하지 마. 다른 녀석들도 대충 다 비슷하게 받아 갔으니까.”
“에이, 그러지 말고 조금만 더…….”
“자, 다음!”
제대로 저녁을 먹지 못한 병사들은 아침조차 부실하게 해결한 뒤에야 주린 배를 쥐며 무장을 챙겼다.
신체 건장한 남성보다 족히 두 배는 더 먹어도 부족할 사람들이 바로 전쟁 중인 병사들이었다.
그런 병사들이 주린 배를 움켜쥐고 전장에 나섰으니 기세가 살아날 리 없었다.
지휘관들은 그런 병사들을 독려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도 너희들이 배고픈 거 다 안다! 하지만 너희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어제 저녁에 있었던 불의의 기습으로 식량이 전소되었다는 사실을! 너희들이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저 괴물 놈들을 쓰러트리고 제노발 요새를 점령하는 것뿐이다! 아니면 이 전장에서 굶어 죽고 싶은가?”
“아닙니다!”
병사들에게 전쟁에 승리해야 할 동기를 부여하자 그들의 눈에 조금이나마 전의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기세를 끌어 올리긴 했지만 이게 얼마나 갈지…….”
“이번 기회에 괴물들을 처리하는 건 물론이고 제노발 요새까지 확실하게 함락하지 않으면 더 힘들어질 겁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베니스 부사령관님께서 직접 나서 주신다니 말입니다.”
“누가 아니랍니까? 그분과 그분께서 이끄시는 베니스 기사단만 있으면 우리 군은 천하무적이지요.”
지휘관들은 안도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들 역시 버나드데인과 베니스의 알력다툼을 모를 수가 없었다. 때문에 군의 최고 전력이라 할 수 있는 베니스와 그의 기사단이 나서지 못한다는 것도…….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끝이었다.
“왕국 내에서도 대적할 자가 없다는 괴물 기사단이 나섰으니 설령 상대가 진짜 괴물들이라 해도 이긴 것이나 다름없지.”
“그러게 말입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어제의 전장에 도착하자 아니나 다를까, 어제와 똑같이 미노타우로스와 웨어 울프 무리가 득달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나 어제와 다른 점은 그들을 맞이한 쪽이 바로 베니스와 그의 기사단이라는 사실이었다.
“전원 발검.”
스릉, 스릉, 스릉…….
베니스의 명령에 따라 검을 뽑은 기사단원들이 절도 있게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베니스는 달려오는 몬스터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그렸다.
“지금부터 눈앞에 있는 괴물 놈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도륙한다.”
“단장님의 명을 받듭니다!”
“가자.”
파앗!
베니스가 먼저 몸을 날리자 단원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말도 타지 않고 두 발로 뛰는 그들의 속도가 말을 탄 기마대보다 빨랐다.
순식간에 중간 지점에서 충돌하는 두 무리.
그런데…….
콰아앙!
어제와는 첫 양상부터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충돌 직후에 먼저 우세를 가져간 쪽은 다름 아닌 베니스 기사단이었다.
무오오오!
“어딜……!”
베니스는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거대한 양손 도끼를 올려다보며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미소와 함께 휘두른 검에는 오러 마스터의 상징인 퍼펙트 오러가 빛을 뿜었고, 검은 마치 나뭇가지처럼 양손 도끼를 가볍게 베어 버렸다.
서걱!
그리고 이어서 휘두른 연격에 미노타우로스의 모가지가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기사들조차 손도 발도 쓰지 못한 미노타우로스 한 마리가 베니스의 손에 가볍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것은 다른 기사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쒜엑! 서걱! 촤악!
전원이 오러 엑스퍼트 이상의 오러 유저로 구성된 베니스 기사단원 백 명은 베니스가 특별히 재능 있는 아이들을 모집하여 길러 낸 자신만의 기사단이었다.
그들의 능력은 가히 대단했다.
병사들은 허무하게 죽임당할 수밖에 없었던 웨어 울프들을 상대로 오히려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엑스퍼트 오러를 사용하는 그들의 신체 능력은 결코 미노타우로스의 아래가 아니었다.
게다가 갈고닦은 검술과 체술은 미노타우로스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니 단원 혼자서 세 마리의 웨어 울프를 상대로 압도하는 일도 가능했던 것이다.
“과연 왕국 제일의 기사단!”
“설마 걱정하고 계셨던 겁니까?”
“그럴 리가요. 베니스 기사단이 직접 나서는데 저런 괴물들이 걱정이겠습니까? 하하하하!”
뮤탄 왕국군의 지휘관들은 베니스 기사단의 활약을 뒤에서 지켜보며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설마설마했던 긴장감도 그들의 선전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후웅…… 콰앙!
“크윽……!”
미노타우로스를 학살하던 베니스가 순간 빠르게 튕겨 나가며 바닥에 처박혔다.
다행히 빠르게 일어나 더 이상의 타격은 허용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이 바뀌기엔 충분한 일격이었다.
‘방금 그건 뭐지?’
빠르게 다가오는 위협에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러 막긴 했지만 결코 약한 위력은 아니었다. 그런데 자신이 튕겨 나간 걸로도 모자라 검은 완전히 박살 나 있었고 팔도 덜덜 떨렸다.
베니스는 예비용 검을 꺼내 들며 자신을 기습한 상대를 확인하였다.
전신이 칠흑처럼 새까만 미노타우로스는 자신처럼 까맣고 거대한 몽둥이를 들고서 자신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호오, 너는 딴 녀석들이랑 좀 다른 모양이다?”
“지금부터 너를 1급 위험인자라 판단하고 제거하겠다.”
“그래? 그게 쉽지는 않을 건데?”
쒜엑!
그 순간, 블랙의 근처에 있다가 베니스의 눈치를 받은 기사단원들이 발 빠르게 블랙을 향해서 기습을 감행했다.
그들 모두 오러 엑스퍼트의 강자들. 설령 대비를 했다고 해도 피하는 게 결코 쉽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런데…….
촤아악!
“……!”
한차례 날카로운 칼바람이 어지럽게 공간을 할퀴고 지나가자 조각난 육편과 내장 파편이 피와 버무려져 허공에 흩날렸다.
문제는 그 조각의 주인이 블랙이 아닌, 그에게 협공을 가했던 단원들이란 사실이었다.
“저것들은 뭐야?”
베니스는 새로 나타난 웨어 울프 무리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놈들은 다른 웨어 울프들과 달리 몸에 이상한 문신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움직임이나 파괴력이 다른 웨어 울프와 수준이 달랐기 때문이다.
“오, 제대로 잘 움직이네. 그런데 저것도 전력이 아니라고?”
[2세대 호문쿨루스들의 가동 능력치는 현재 75%입니다. 가동 능력치를 최대 한도로 끌어 올릴 수는 있지만 해당 개체의 상당한 손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가동 능력치를 올리시겠습니까?]
“아냐. 이대로도 충분한 것 같으니까 일단 지켜보자고.”
하늘에서 편한 자세로 전장을 내려다보던 요한이 가지고 온 과자를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현재 뮤탄 왕국이 존망을 내건 이번 전쟁은 그에게 있어 하나의 테스트에 지나지 않았다. 호문쿨루스들의 전투력을 측정하는 테스트 말이다.
콰앙!
“다시 시작했네?”
그 순간, 아래쪽에서 터져 나오는 굉음에 요한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어느새 블랙과 베니스가 다시 붙어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과연 오러 마스터답게 베니스의 움직임은 상상을 초월했다. 설령 오러 엑스퍼트라 해도 그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였다.
하지만 블랙은 그런 베니스의 움직임을 여유롭게 따라갔다.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도 그의 움직임을 따라잡고, 최소한의 오러 만으로 퍼펙트 오러를 방어했다.
그것은 전부 그의 몽둥이가 통짜 아다만티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개 같은……!”
베니스의 검술에 어느 순간부터 여유가 사라졌다.
그에 반해서 베니스의 움직임을 파악할수록 블랙의 대응은 더욱 더 견고해져만 갔다. 아무리 오러 마스터라고 해도 움직임이 계속 천변만화일 수는 없는 법.
주로 사용하는 투로가 읽히고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하면 대응도 그만큼 편해지는 것이다.
“뒈져라!”
끝내 조바심을 참지 못한 베니스가 전력이 담긴 검을 휘둘러 블랙의 목을 노렸다. 한순간에 파고든 그의 검 끝은 섬전과 같았지만…….
콰앙!
블랙이 휘두른 몽둥이 앞에서 검은 산산이 부서져 내릴 뿐이었다.
“이런 × 같은…….”
쩌엉!
블랙이 남은 주먹으로 베니스의 얼굴을 후려갈기자 그의 얼굴이 처참히 뭉개져 버렸다.
철푸덕…….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쓰러진 베니스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즉사한 것이다.
그에 맞춰 2세대 호문쿨루스들이 베니스 기사단은 전멸 시켰다. 남은 것은 한때 뮤탄 왕국의 희망이었던 자들의 시신뿐이었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