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지옥이 된 숲
“그르륵! 크륵……!”
구울에게 목덜미를 뜯겨 죽은 대원의 입에서 절대로 터져 나올 리 없는 육성이 괴이하게 흘러나왔다.
그것은 결코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무언가의 울음소리였다.
그렇게 이상한 괴성을 흘리며 목이 뜯긴 대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킁킁!
뜯겨진 목에서는 죽은피를 줄줄 흘리며 초점 없는 공허한 눈동자는 살아 숨 쉬는 자신의 동료를 바라보며 코를 킁킁거릴 뿐이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시체들도 우리 적이란 사실이다.”
그들은 구울이 어떤 존재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만 그들이 자신들의 적이란 건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1, 2조 조장은 살아남은 동료들을 향해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살아 움직이는 시체들은 우리 동료가 아니다! 망설이면 우리가 죽는다! 철저하게 상대하면서 한 곳으로 모여!”
명령을 내리긴 했어도 조장들은 대원들이 쉽게 명령을 따를 수 없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적이라고 해도 눈에 보이는 상대는 방금 전까지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동료들이다. 심지어 그들은 하프 엘프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무시받던 노예 출신들이 아닌가?
그들에게 있어 동료는 동료이기 이전에 가족이었다. 아무리 괴물이 되었다고 해도 가족을 향해서 비정하게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하지만 구울은 달랐다.
크아아아!
그들에게 살아 있는 동료들은 그저 증오스러운 생명체일 뿐이었다. 숨을 쉬는 생명체를 잡아 죽인다. 그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것이 구울들의 지상 과제였다.
당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당하는 대원들의 숫자는 많아지고 구울들의 숫자는 더욱 늘어만 갔다.
그 와중에도 화살은 쉴 새 없이 날아와 반드시 대원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이제는 화살의 숫자가 적다고 안심할 때가 아니었다.
화살에 죽은 동료들 역시 구울로 부활하고 있었으니 이제는 한 발 한 발의 화살이 공포 그 자체가 된 것이다.
“으아아아!”
“감정을 갖지 마! 눈앞에 있는 놈들은 그냥 괴물이다!”
“제발 편히 눈 감아라!”
구울들이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하기 시작하자 결국 대원들도 마음을 독하게 먹고 구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딱히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푹!
“좋아. 됐…….”
콰작!
구울의 심장 깊숙이 검을 박아 넣은 대원이 입가에 미소를 그리는 순간, 검이 박힌 구울은 그 상태 그대로 검을 박아 넣은 상대의 모가지를 시원하게 물어뜯었다.
화살로 머리를 관통해도 마찬가지, 심지어 목을 잘라 내도 목 없는 몸뚱이가 달려들어 손톱으로 할퀴거나 주먹으로 공격했다.
설령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해도 구울들을 쓰러트리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젠장! 심장을 찔러도 안 되고 머리를 박살 내도 움직이는 놈들을 어떻게 하라고……!”
사실 알고 보면 구울들을 쓰러트릴 방법은 꽤나 간단했다.
은이나 미스릴, 오리하르콘 같은 정화의 힘이 담긴 무기를 사용하면 구울 같은 하급 언데드 몬스터 정도는 비교적 쉽게 쓰러트릴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언데드 몬스터는 마도 시대의 종말과 함께 종적을 감췄고, 지금은 그 대처법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당연히 이런 작전에 미스릴이나 은제 무기를 지참하고 다닐 레인저 부대는 많지 않았다.
“일단 후퇴해! 포인트까지 후퇴한 후에 대장님과 다시 작전을 세운다!”
“가자!”
1, 2조 조장들은 부하들을 데리고 결국 도주를 선택했다.
차라리 죽는 것으로 시간을 벌 수 있다면 전멸을 하더라도 버티려 했지만 이대로라면 오히려 적을 만들어 주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포인트에 도착한 1, 2조의 대원들은 눈앞의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왔나.”
“이, 이게 대체…….”
“보는 바와 같다.”
1, 2조 조장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먼저 떠난 브랜드 일행이 당해서? 오히려 브랜드 일행은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죽기는커녕 부상조차 입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한 얘기겠지.
그야 당연했다. 적이 우글거릴 줄 알았던 절벽 위에는 적이 한 명도 없었으니까.
“벌써 도망친 겁니까?”
“도망친 게 아니다. 처음부터 없었던 거지.”
“그럼……!”
“맞아. 아무래도 우리는 함정에 걸린 모양이다.”
이런 절벽 위에서 협곡 아래로 공세를 쏟아부으면 하다못해 짱돌 하나를 던져도 위력적일 수밖에 없다.
끓는 기름이나 화살비도 효과적인 공격 수단이고 바위 더미를 굴리면 적을 학살함과 동시에 길도 막을 수 있었으니 일석이조였다.
당연히 협곡을 수비하는 입장에서 절벽 위는 반드시 사수해야 할 진영이었고 당연히 그에 따른 대비도 되어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다고?
요한은 하늘에서 그들의 당황한 모습을 내려다보며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그걸 처음부터 알았다면 진즉에 협곡 안쪽으로 밀고 들어갈 걸 후회하고 있겠지. 협곡 관문만 넘으면 왕도가 코앞이니까. 뭐, 실제로 그렇게 했다 하더라도 결과가 달라질 리는 없겠지만.”
“……!”
그 순간, 브랜드가 흠칫하며 번개처럼 시선을 숲 쪽으로 향했다. 숲속에서 다가오는 수많은 인기척들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젠장, 설마 여기까지 쫓아온 건가…….”
“설마 매복이 또 있었나?”
브랜드의 질문에 1조 조장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설명하기는 좀 그렇고, 좀 이따 보시면 알…….”
슈욱…… 퍽!
그 순간, 숲속에서 빠르게 날아온 화살 한 발이 대원 한 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 갔다. 그 모습에 1조 조장이 두 눈을 부릅뜨며 하던 말도 멈추고 발작하듯 소리쳤다.
“시체를 절벽 아래로 던져 버려! 어서!”
조장의 외침이 있기도 전에 곁에 있던 2조 대원들이 기겁하며 시체를 서둘러 절벽 아래로 던져 버렸다.
“뭐, 뭐야? 너희들 미쳤어?”
동료의 시체를 아무 거리낌 없이…… 오히려 다급하게 절벽 아래로 버려 버리는 동료들의 행태에 3조 대원이 멱살을 잡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브랜드의 표정은 심각했다.
죽은 사람도 마찬가지로 2조 대원이었다. 그런데 2조 대원들이 자신들과 같은 조원을 다급하게 절벽 아래로 던진 것이다.
게다가 동료의 시체를 버릴 때 보인 그 표정. 그건 두려움과 공포라는 말 이외에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젠장, 왔다!”
브랜드는 곧 그 이유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저게 어떻게…….”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는 대원들. 문제는 그들의 부상이나 상태만 봐도 명백히 죽은 상태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조심하십쇼! 저것들은 동료가 아니라 괴물입니다!”
“화살에 당한 놈들뿐만이 아닙니다! 놈들에게 당한 대원도 같은 괴물이 됩니다!”
“화살에 당해? 그래서 방금…….”
브랜드는 조원들이 기겁하며 시체를 던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나 그뿐이었다. 뒤에는 까마득한 절벽, 앞에는 달려오는 구울의 무리. 도망칠 곳은 없었다.
‘처음부터 여기가 우리의 무덤이란 뜻이었군.’
슉! 콰앙!
브랜드는 피식 웃으며 시위에 화살을 걸어 쏘았다. 오러가 담긴 화살은 가볍게 구울의 머리를 박살 냈지만 구울은 멈추지 않았다.
심장을 쏴도 마찬가지였다. 가슴에 주먹만 한 구멍이 생겨도 구울을 개의치 않고 달려와 이내 대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퍼억! 콰작!
“무슨 놈의 힘이……!”
“이이익……!”
지능이 퇴화한 구울들은 무기를 다루지 못한다. 하지만 육체의 리미터를 해체한 녀석들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게다가 방어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달려드는 부분도 위험했다.
고통조차 느끼지 않으니 힘들게 사지를 잘라내도 아랑곳 않고 달려들어 결국 대원들의 목을 물어뜯었다.
전황은 처음부터 구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크아악!”
“이거 놔!”
순식간에 레인저들과 구울들이 얽히고설키며 아비규환이 되어 버린 전장.
대원들이 서로를 도와주며 구울에게 완전히 당할 때까지 놔두는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괜찮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었다.
“으으으으…….”
“야, 야 인마! 너 왜 그래? 정신 차려!”
고작 팔뚝을 가볍게 물렸을 뿐이다. 치명상은커녕 싸우는데 아무런 지장도 없는 가벼운 부상에 불과했다.
고작 그 정도 부상에 대원이 게거품을 물며 눈을 까뒤집었다. 상처 부위 주변이 빠른 속도로 검게 변색되면서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한 것이다.
“설마 독인가?”
결국 중증 간질 환자처럼 몸을 떨다 숨을 거둔 대원.
그런데…….
콰작!
죽은 녀석이 별안간 자신을 안아 들며 걱정하던 동료의 목을 득달처럼 달려들어 물어뜯었다.
“커억!”
이런 일이 여기저기서 수없이 많이 발생하고 있었다.
구울에게 직접적으로 당해서 죽은 대원들 말고도 조금만 상처를 입어도 바로 상처 부위를 통한 감염이 일어나 목숨을 잃고 구울이 되는 것이다.
“이런 미친…….”
브랜드는 절망했다.
결국 마나는 바닥이 났고 칼날은 부러졌으며 화살통도 텅 비어 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파도처럼 밀려드는 구울의 무리를 보고 결국 브랜드는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그렇게 브랜드와 레인저 부대는 모두 전멸하였다.
그들이 전멸하자 한 여인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흡사 달의 여신이 지상으로 내려온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고고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는 너무나도 차갑고 공허하며 음울한 기운으로 넘쳐흘렀다. 그녀의 몸에서 발산되는 죽음의 마나 때문이었다.
살아 있는 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구울들은 그녀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고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정리는 다 끝났어요.”
릴리안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외치자 위에서 요한이 내려와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구울들은 마찬가지로 요한에게도 관심을 주지 않았는데 그녀가 구울들을 제대로 통제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그래, 수고했어. 최근에 가니온한테서 열심히 흑마법을 배우더니 아주 제대로 해냈네?”
“가니온에 비하면 아직 한참 부족한 수준이죠. 언데드도 이 정도가 한계고요. 아직은…….”
그란체스카 공국에서 다크 엘프로 타락한 이후, 릴리안은 죽음의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죽음의 마나를 이용해서 쓸 수 있는 흑마법에 대해선 완전히 무지한 상황이었는데 이를 요한은 가니온을 통해서 해결한 것이다.
“이 정도라고 해도 요즘 시대에 구울 정도면 대단히 위험한 존재라고. 봐서 알잖아. 수천 명이 넘는 레인저들이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전멸해 버린 거. 괜히 흑마법사가 대군을 상대로 최강의 전력이라 불리는 게 아니라고.”
죽음의 마나는 위력적이지만 죽음이 존재하는 곳에만 존재한다. 전쟁터는 그 죽음이 만연하는 곳이다.
병사들이 죽어 나갈수록 소체로 사용할 언데드와 언데드로 부활시킬 죽음의 마나가 넘쳐흐른다. 죽음의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다음은 어떡하죠? 이 녀석들을 레반돌프군 쪽에 뿌려 버릴까요?”
“아니, 아직은 그럴 필요 없어. 아직 시험해 보고 싶은 장난감이 남아 있거든.”
“아, 협곡 안쪽에서 대기 중인 ‘그것들’말이죠? 그런데 그것들이 그렇게 강한가요?”
“보면 깜짝 놀랄걸.”
요한은 자신 있게 대답하며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렸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