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다중성 금속 골렘
슉슉슉슉!
검은사자 기사단이 이실로데를 제치고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갔다. 그들이 이실로데보다 빠른 게 아니라 일부러 이실로데가 속도를 줄인 것이다.
먼저 앞질러 나간 기사단은 골렘들을 상대로 협공을 시작하면서 놈들의 주의를 끌었다.
‘이런 미친……!’
‘파워와 스피드가 상상을 초월하는군!’
‘오래 버티긴 힘들겠어.’
직접 상대해 본 골렘들의 전투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자신들의 엑스퍼트 오러로는 제대로 공격해도 흠집조차 나지 않는데 놈들의 주먹질은 스치기만 해도 팔이 저려 왔으니까.
게다가 움직임도 무시무시해서 아무리 오러로 안력을 보강해도 골렘들의 움직임을 놓치기 일쑤였다.
상대는 무려 5미터가 넘는 크기를 자랑하는 거대한 석상이었다. 그런 게 눈앞에서 슉 하고 사라지면 두려움보다 앞서는 건 경외감이었다.
콰앙!
“정신 똑바로 차려! 죽고 싶어?”
부족한 부분은 동료들이 채워주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물론 십수 년 동안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수련한 동료들과의 합은 완벽 그 자체였다. 그러나 골렘들의 순수한 파워와 스피드는 그런 합을 우습게 능가하였다.
아니, 바꿔 말해서 그 정도의 합이 없었다면 이만큼 버티는 것도 불가능했으리라.
고작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사단에게는 하루 종일 싸우는 것 같은 체감이 들었다. 그만큼 시간이 길게 느껴진 것이다.
그 순간.
‘지금!’
“타압!”
이실로데의 폭발적인 기합과 함께 그의 검이 비어 있던 델타의 목을 가로질렀다.
콰우우우!
검 한 번을 휘둘렀을 뿐인데 궤적 주변으로 칼바람이 휘몰아칠 만큼 전력을 담아 휘두른 일격이었다.
기사단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실로데의 일격이라면 설령 이 일격으로 쓰러트리지 못하더라도 치명상은 입힐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실로데의 무거운 표정을 확인하는 순간, 기사단의 표정도 덩달아 사색으로 물들었다.
델타의 목에 부딪힌 퍼펙트 오러가 무시무시한 기세를 발하고 있는데도 녀석의 목은 약간의 흠집만 생겼을 뿐, 전혀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대체…….”
“퍼펙트 오러에도 멀쩡한 몸뚱이라고?”
상대하면 상대할수록 골렘들은 경악할 만한 사실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절벽 위에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던 릴리안도 마찬가지였다.
“저 골렘들 말이에요. 진짜 골렘이 맞긴 한 거예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뇨, 제가 책에서 봤던 골렘들이랑 특징이 좀 다른 것 같아서요.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도 관절 부위는 노출될 수밖에 없고, 그래야지만 골렘이 제대로 가동할 수 있다고요.”
“잘 봤네. 맞아. 괜히 인간 흉내 낸답시고 관절 부위까지 전부 외피로 덮어 버리면 가동이 불가능하지. 관절이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그러자 릴리안이 델타와 시그마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저건 뭐예요? 크기만 다를 뿐, 어떻게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가진 골렘이 오히려 인간보다 훨씬 더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거죠? 심지어 퍼펙트 오러를 막을 정도의 내구력을 가진 외피라면 0.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못하는 게 정상일 텐데.”
“혹시 다중성 금속이라고 알아?”
“다중성 금속? 그게 뭔가요?”
요한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대답했다.
“과거 마도 문명 시절에 저명한 연금술사들과 마도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 성과의 결과물이지. 한마디로 하나의 금속에 복수의 성질을 부여한 마법이자 연금술이야. 예를 들어 액체임과 동시에 고체인 금이나, 냉기와 열기를 함께 가지고 있는 구리 같은 개념이랄까?”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이에요?”
“지금 눈으로 보고 있잖아. 다만 저 두 녀석에게 사용된 금속은 평범한 금속이 아니긴 하지만 말이야.”
“어떤 금속인데요?”
“마스터 오러를 막을 수 있는 칠흑의 금속하면 떠오르는 거 있어?”
“설마……! 아다만티움?”
릴리안이 놀라서 요한을 쳐다보자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나도 직접 상대해 봤는데. 핵을 노리지 않고 저걸 직접 부수는 건 아무리 오러 마스터라 해도 불가능에 가까워. 평범한 아다만티움도 까다로운데 녀석들을 구성한 핵에다 아무래도 골렘을 강화시키는 여러 가지 보조 마법을 새겨 넣은 것 같더라고.”
릴리안은 그 사실에도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골렘에도 이 정도인데 만약 그녀가 나노 크리에이터를 알았더라면 아마 기절했을 수도 있으리라.
나노 크리에이터는 오리하르콘을 베이스로 기체, 액체, 고체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뿐인가? 냉기와 온기는 기본이고 에고…… 즉, 자아까지 이식한 다중성 금속의 결정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요한이 릴리안의 호기심을 해결해 주는 사이에도 전투는 더욱 치열해지고 있었다.
“이런……!”
콰앙!
델타가 휘두른 주먹을 검면으로 받아 낸 이실로데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오러 마스터가 된 이후로 오러로 신체 능력을 강화했을 경우, 어디 가서 힘으로 꿇려 본 적이 전혀 없었는데 델타가 아무렇게나 휘두른 주먹에 전신이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후웅…… 콰앙!
“각하!”
“이럴 수가…….”
그렇게 정신없이 날아간 이실로데가 벽에 파묻히자 그 광경을 지켜보던 병사들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자신들의 최고 전력이 이런 식으로 무력하게 쓰러져선 안 되기 때문이었다.
“젠장!”
“각하!”
기사단은 어떻게든 이실로데를 돕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시그마를 붙잡고 있는 것만 해도 그들에게는 최선…… 아니,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허허, 이것 참……. 오랜만에 뼈 빠지게 힘든 상대를 만나 보는구먼.”
벽에서 빠져 나온 이실로데는 헛헛하게 웃으며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소매로 스윽 닦아 냈다.
“걱정 마라, 이것들아. 이 정도로 이 이실로데는 쓰러지지 않는다!”
콰우우우우!
다시 한 번 마나를 끌어 올리자 그의 몸에서 폭풍 같은 기세가 휘몰아치며 강대한 힘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그 기세를 살려 다시 한 번 델타에게 쇄도하였다. 자신의 전력 이상을 끌어 올린 그의 움직임은 방금 전보다 한층 더 빠르고 위력적이었다.
물론 그 대가로 이 전투가 설령 승리로 끝난다한들 불구를 피할 수 없을 지도 몰랐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어차피 여기서 죽으면 모든 게 끝이란 말이다!’
누구보다 절박한 심정으로 델타에게 맞붙은 이실로데의 검이 춤을 췄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그 무엇보다 위력적으로 검이 움직일 때마다 수많은 검영이 피어나면서 델타의 몸을 두들겼다.
“하아아아압!”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병사들이 보기에는 수십…… 아니, 수백이 넘는 검의 잔영들이 쏟아져 내리는 검처럼 보였다. 도저히 피할 구멍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델타 역시 두 팔을 ×자로 교차 방어한 채 자세를 낮추고 쏟아지는 검영들을 그저 묵묵히 견뎌내고 있었다.
검의 잔영이 쏟아질 때마다 델타의 몸에는 무수한 흠집들이 생겨났다. 이대로 델타의 몸을 갉아먹으면 승리의 가능성이 생길 수도 있을 터.
문제는 흠집이 생겨나는 속도보다 사라지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르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이실로데는 검의 잔영들이 가진 힘을 모두 일격에 담아 내질렀다. 이거라면 확실히 델타의 심장을 꿰뚫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푹!
그리고 그 확신은 현실이 되었다. 정말로 자신에게 남은 전력을 다한 일격이 델타의 가슴을 관통한 것이다.
하지만…….
“후욱, 후욱…… 이런 젠장.”
이실로데의 검은 델타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애초에 델타는 인간이 아니다.
검이 관통한 자리에는 심장도, 핵도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이전에 검이 가슴을 관통한 건 그의 검이 가진 위력 때문이 아니었다.
이실로데의 눈이 도려낸 듯 동그랗게 뚫려 있는 델타의 가슴으로 향했다. 자신의 검이 관통하기 직전, 녀석의 가슴에 생긴 구멍이었다.
자신은 검을 그 구멍으로 그저 찔러 넣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크크큭! 지금 내가 악몽을 꾸고 있는 거라고, 누가 얘기 좀 해 줬으면 좋겠군.”
덥석.
델타는 손을 뻗어 이실로데의 목을 잡아 들어 올렸다.
“커헉……!”
이실로데는 꽉 막힌 소리를 터트리며 괴로움에 몸부림쳤지만 마나가 바닥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으드득!
델타가 손아귀에 조금 더 힘을 주자 부러진 이실로데의 목이 허무하게 부러져 꺾여 버렸다.
델타는 죽은 이실로데의 시신을 한편으로 조심스럽게 치워두었다. 이 역시 요한이 사전에 내린 명령 때문이었다.
그 즈음하여 시그마 또한 기사단을 완벽히 전멸시켰다. 오히려 여기까지 버텨 준 기사단의 노력을 칭찬받아야 마땅하리라.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의 노력은 헛된 물거품이 되었다.
“이, 이게…….”
두 골렘을 바라보는 해리의 시선에 공포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레반돌프 최고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이실로데와 검은사자 기사단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 죽인 두 마리의 괴물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이런……!”
해리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당황하고 말았다. 자신뿐만 아니라 병사들 역시 자신과 똑같은 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포에 질린 눈. 저것은 더 이상 싸울 수 있는 병사의 눈이 아니었다.
그 순간, 골렘들의 두 팔이 꾸물거리기 시작하더니 눈에 띄는 변화를 보였다. 델타는 양손이 날카로운 검으로 변했으며 시그마는 길고 유연한 채찍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악몽이 시작되었다.
쫘악!
시그마가 왼손을 휘두르자 채찍으로 변한 손이 수십 미터 이상 길게 늘어나며 몰려 있던 병사들을 후려갈긴 것이다.
콰아아앙!
채찍은 단단한 돌바닥을 찢고, 절벽에도 깊은 상처를 새겼다. 그 정도로 위력 있는 채찍에 걸린 인간의 육신이 어찌될지는 굳이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시그마는 이제 오른손까지 사용하여 양손으로 병사들을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그사이, 델타는 병사들 속으로 뛰어들어 검으로 변한 두 손을 빠르게 난무했다.
협곡에 지옥도가 펼쳐지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크아아악!”
“사, 살려 줘!”
“여기서 나가야 해!”
“좀 뒤로 빠지라고!”
공포는 빠르게 전염되었고, 병사들을 통솔해야 할 기사들의 숫자는 부족했으며 심지어 살아남은 기사들조차 병사들을 베어 넘기며 도망치기 바빴다.
“하하하…… 이건 악몽이야…….”
서걱.
해리는 무너져가는 자신들의 꿈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게 그 자신이 살아생전 눈에 담은 마지막 광경이었다.
해리의 목이 잘려 나가고, 병사들이 미친 듯이 도망치기 시작하면서 가까스로 레반돌프군은 협곡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악마들은?”
“더 이상 쫓아오지 않는 것 같은데?”
“사, 살았다……!”
“그런데 이제 어떡하지?”
병사들은 당황스러웠다.
총사령관도, 그의 부관도 모두 죽어 버렸다. 그렇다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저 지옥으로 다시 들어가는 건 무조건 사양하고 싶었다.
결국 책임자를 찾고 찾다 보니 죽은 이실로데와 해리, 그리고 목숨을 잃은 수많은 지휘관들의 뒤를 이어 가장 영향력이 없었던 모노바 자작에게까지 돌아왔다.
“회, 회군한다. 저 지옥에 다시 돌아가는 것만큼은 무조건 사양이라고. 너희들도 그렇지?”
“역시 모노바 경! 아니, 새로운 사령관님의 명령이시다!”
“회군한다! 서둘러라!”
“빨리 이 지옥을 뜨자고!”
병사들은 모노바 자작의 결정에 환호하며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회군 준비를 마쳤다. 이는 모노바 자작이 그림자가 아닌, 레반돌프의 귀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그렇게 회군을 준비하던 이들에게 레반돌프 왕성에서 전령이 찾아와 황당한 전갈을 전해 주었다.
“크, 큰일 났습니다! 지금 벨로반에서 찾아온 사신들에게 왕자님들이 인질로 붙잡혔습니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