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얻은 것과 잃은 것
마나 로드.
말 그대로 뇌전의 마나가 흐르는 통로다.
물론 이것은 요한의 몸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라 요한이 마나를 운용하기 위해 만들어 낸 가상의 개념이었다.
지금까지 요한은 마나 로드가 단순히 뇌전의 마나가 흐르는 길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뇌제의 심득을 보고 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오러 유저는 몰라도 뇌전의 마나를 다루는 아바타만큼은 바로 이 마나 로드의 컨트롤이 뇌전의 마나를 다루는 핵심이었던 것이다.
뇌전의 마나는 다른 마나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이 있었다. 그건 마나 자체가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의지가 바로 마나의 힘 그 자체라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뇌전의 마나는 그 자체로 증폭하고 반발한다. 그 증폭량이 적게는 몇 배에서 많게는 수십…… 수백 배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때문에 요한은 그 의지를 죽이고 힘을 통제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나의 의지를 죽인다는 것은 곧, 힘을 죽인다는 것.
뇌전의 마나가 원소의 마나 중에서 효율이 가장 안 좋다고 정평이 난 게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뇌전의 마나를 있는 그대로 사용하면 통제가 불가능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요한은 빈센트를 공격하면서 뇌전의 마나 자체는 전혀 통제하지 않았다.
대신 뇌전의 마나를 흘려 넣고 마나 로드를 폐쇄해 가며 간접적으로 뇌전의 마나를 통제하였다.
마나 로드가 폐쇄된 탓에 뇌전의 마나는 어쩔 수 없이 뚫린 길을 향해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마나는 잔뜩 분노를 표출했다.
분노는 힘이 되었다. 아주 작은 양의 뇌전의 마나가 순식간에 서로 반발하고 증폭하며 강대해졌다.
그리고 이내 마나 로드가 손목 어림까지 폐쇄되고 뇌전의 마나가 주먹에 압축되었다. 요한은 주먹에 있는 마나 로드조차 폐쇄하며 폭발시키듯이 외부로 마나를 발산하였다.
그 결과, 전력을 다한 퍼펙트 오러로 자신을 방어하던 빈센트가 흔적도 없이 날아갔다.
그때 요한이 처음 사용했던 뇌전의 마나는 고작 오러 비기너가 바늘에 오러를 1초쯤 유지시킬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이 정도란 말이지.’
요한은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며 쓰게 웃었다. 위력도 위력이지만 후유증도 매우 컸기 때문이다.
통로를 좁혀 나가는 동안 뇌전의 마나가 증폭하며 반발하는 여력을 고스란히 팔로 감당했다. 그 고통은 팔이 찢겨 나간다는 표현조차 상냥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마나 로드의 컨트롤이 지금보다 훨씬 익숙해지면 고통을 느끼는 시간도 그만큼 짧아지겠지.’
이것 노력과 연습밖에 방법이 없었다.
어쨌거나 ‘쥬피터’라는 금단의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도 그에 버금가거나 그보다 더 강한 힘을 손에 넣은 것은 만족할 만한 성과였으니까.
“다 쓸어 담았냐?”
“예, 마스터.”
요한은 블랙과 존타나의 병사들을 이용해서 그들의 군량을 전부 아공간 창고에 쓸어 담았다.
장장 80만 명이 이틀을 먹을 군량에다 지금도 군량 보급 부대가 쉬지 않고 존타나에서 이곳으로 행군하는 중이었다.
‘그것까지 모두 챙겨 간다면 꽤 괜찮은 용돈벌이 정도는 되겠어.’
슈웅!
군량뿐만이 아니다. 장비와 약초 등, 챙길 수 있는 건 모두 아공간 창고에 챙긴 요한은 가볍게 하늘을 날아 존타나 왕국의 보급 부대를 찾아서 날아가 버렸다.
병사들은 새처럼 날아가는 요한을 멍하니 올려다보는가 하면 자신의 볼을 꼬집어 보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지금 꿈꾸고 있는 거 맞지?”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대꾸한 병사가 시선을 돌렸다. 꿈이라고 하기엔 죽어 널브러진 동료들의 처참한 시신이 너무나도 눈에 밟혔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평원에서 있었던 대전투가 끝나고 난 후였다.
“돌아간다!”
“후퇴하라!”
결국 언데드 병사들의 벽을 뚫지 못한 존타나 연합군은 해가 지고 평원에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하자 퇴각 명령을 내렸다.
“사, 살았다…….”
“배고파 뒈지는 줄 알았네.”
“으윽……!”
“좀만 참아. 돌아가면 곧바로 치료해 줄 테니까.”
수많은 병사들이 본진으로 돌아가는 길에 충분한 휴식과 식사를 꿈꾸며 마음의 위안을 삼았다. 이 지옥 같은 전장에서 그나마의 위안도 남아 있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뭐? 그게 무슨 개소리야! 총사령관님이 돌아가시다니?”
“파울로 네놈은 대체 뭘 한 거냐!”
전장을 지휘하다 돌아온 지휘관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빈센트의 부고 소식에 파울로의 멱살을 잡고 윽박을 질렀다.
하지만 다른 지휘관들은 그것보다 더 큰 문제를 직면하고는 심각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큰 문제지만 지금 당장 급한 문제는 놈이 우리 군량과 군수품을 모조리 약탈해 갔다는 것이네.”
“당장 병사들을 먹일 식량도 부족한 데다 약이나 붕대도 없어서 진영 전체에 병사들의 곡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이러다가는 오늘밤부터 탈영병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거요.”
심지어 이들은 연합군이다. 존타나 왕국이라면 모를까, 다른 연합군의 병사들이 타국을 위해서 굶고 치료도 못 받아 가면서까지 싸울 의리는 없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텨 봅시다. 무슨 수를 써서든 제가 이 문제를 해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하루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파울로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고개 숙여 부탁하는 것뿐이었다.
“내일 아침…… 늦어도 오후까지는 보급 부대가 도착할 겁니다. 그때까지만 버텨 주신다면 반드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장담합니다.”
물론 그마저도 요한에게 털린 지 오래라는 걸 파울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진짜 심각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크, 큰일 났습니다! 부사령관님!”
“무슨 일이냐!”
“지금 평원에서……! 아무튼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한눈에 봐도 정신없어 보이는 병사는 뭔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에 심각성을 느낀 파울로와 지휘관들이 막사 밖으로 뛰쳐나와 평원을 확인하였다.
“이, 이게 무슨……!”
“허허……. 이것이 종말이 아니라면 뭐가 종말이란 말인가?”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그렇게 해가 지고 죽은 자들의 시간이 찾아오자 영면에 들었던 평원의 망자들이 다시금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아를 가리지 않고 일어난 망자의 군대는 모두 가니온을 따르고 있었다.
그 숫자만 무려 40만.
지금 다시 전투를 시작한다면 연합군은 전멸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가라.
가니온이 검끝으로 연합군 진영을 가리키자 가니온의 뒤를 따르던 언데드 군세들이 우르르 연합군의 진영으로 개떼처럼 달려가기 시작했다.
“도, 도망쳐!”
“후퇴하라!”
“언데드 대군이 몰려온다!”
그 모습을 확인한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장비도, 동료도 다 내팽개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차라리 저녁을 굶은 사람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자, 잠깐만! 나도 데려가! 나도 데려가라고!”
“닥쳐! 너까지 데리고 도망쳤다간 나도 죽는다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부상을 당해 혼자서 거동이 불편한 병사들은 대부분이 그 자리에서 버림을 받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밀려오는 죽음을 그저 공포에 찬 두 눈으로 바라보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존타나 연합군은 불과 하루 만에 궤멸하고 말았다.
* * *
그날 밤.
“다녀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요한을 가족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맞이해 주었다.
“왔구나, 요한. 그래, 몸은 좀 괜찮고? 어디 다친 곳은 없니?”
“저는 진짜 괜찮아요. 어머니.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너는 안 괜찮아도 괜찮다고 할 애잖아. 안 되겠다. 이 엄마가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강제로 옷을 벗기려는 아네트를 말리며 요한은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유난이라고 할 정도로 아네트의 자식 걱정은 살짝 도를 넘는 감이 있기도 했다. 요한은 그런 엄마의 걱정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필요한 일이었다고 하지만 죽었던 자식이 다시 살아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재회의 해후를 나누기도 전에 또 다시 자식이 전장으로 향했으니…….
요한에게는 이보다 더한 호들갑이라도 받아들여 줄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여보, 그쯤하고 우리 요한이 좀 쉬게 둡시다. 애 힘든 일 하고 왔는데 당신까지 이러면 더 지쳐요. 안 그러냐.”
“정말이니? 요한아, 엄마가 이러는 게 부담스러워?”
“에이, 그럴 리가 없잖아요. 어머니가 걱정해 주는 게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데요.”
요한은 따뜻하게 웃으며 엄마를 꼬옥 끌어안아 주었다. 요한은 그날 밤, 아네트가 잠들 때까지 곁을 지켜 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네트는 잠드는 게 아쉬운지 어떻게든 눈을 뜨려 노력했지만 결국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요한은 그런 엄마의 머리카락을 살짝 정리해 준 뒤 이불을 덮어 드리고 밖으로 나왔다.
“네 엄마는?”
“잠드셨어요. 형은요?”
“일 때문에 왕성에 있다. 그래, 피곤한 건 알지만 시간이 된다면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 물론 쉬고 싶다면 내일 해도 상관은 없단다.”
“아뇨, 저는 괜찮아요. 서재로 가시죠.”
그렇게 서재로 이동한 부자는 따뜻한 홍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 엄마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한다. 너도 알다시피 네 일로 충격을 심하게 받았으니. 요새도 네가 전장에 나간 날이면 잠을 이루지 못한단다. 그러니 네가 이해 좀 해다오.”
“그건 걱정 마세요. 모든 게 끝나면 엄마가 얼굴 좀 그만 보자고 할 때까지 효도할 생각이니까요.”
“그러냐.”
요한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하이든은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나저나 삼국에 관련된 전쟁은 어찌 되었느냐? 빠르면 내일 중으로 해결될 것 같다고 하더니.”
“아 그거요. 안 그래도 오늘 끝내 버렸어요.”
“그게 정말이냐?”
“그럼요. 가니온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쓸 만하더라고요. 그런데 무슨 일 있으세요? 표정이 살짝 안 좋아 보여서요.”
하이든의 무거워진 표정을 보고 요한이 걱정하자 그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곤 대답했다.
“네 업적이 높아질수록 너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질까 봐 걱정이구나. 실제로 왕족파 귀족 중에는 네 명성이 왕가보다 높아질까 봐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그걸 왕족파 귀족들의 수장께서 말씀하시네요?”
“그래서 마음이 착잡한 게 아니겠느냐? 차라리 다른 집 자식 놈이었다면 마음 놓고 경계라도 할 텐데…….”
“그래서 저더러 그들의 눈치를 살피라는 말씀이신가요?”
하이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히려 지금 와서 네가 그들의 눈치를 살피면 그들은 자신의 의심에 확신을 가질 거다. 그러니 너는 네 식대로 하거라, 나머지는 이 애비가 전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막말로 네가 정말로 흑심이 있는 게 아니라면 전하와 왕자 저하께서도 분명 네 진심을 알아주실 게다.”
“그렇겠죠. 다른 누구도 아닌 하이든 크림포드 백작과 하워드 크림포드 소백작이 충성을 바친 군주니까요.”
“그래, 고맙구나. 그래서 지금부터 무엇을 할 작정이냐?”
하이든의 질문에 요한은 사악함이 듬뿍 담긴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다.
“나라 기둥을 뿌리 뽑아야죠. 다른 나라를 침공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자기 나라도 망할 각오를 해야 공평한 거잖아요.”
* * *
뮤탄, 레반돌프, 존타나가 연합해서 시작한 벨로반 침공 전쟁이 막을 내렸다.
승자는 벨로반 왕국이었다. 그것도 벨로반 왕국의 병사는 단 한 명도 희생하지 않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
“포라드 국왕 전하 만세! 요한 대공 각하 만세!”
“꺄악! 대공 각하! 여기 좀 봐 주세요!”
“어머, 가면 쓴 모습도 분위기 있고 멋있었는데 진짜 얼굴은 또 왜 이렇게 잘 생겼대?”
가니온의 반란을 제압했을 때도 환호를 받긴 했지만 이번에는 차원이 달랐다. 왕국의 모든 국력을 쏟아부어도 막기 힘들었던 환란을 혼자서 해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왕도의 모든 백성들이 거리로 나와 요한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고자 치열하게 자리다툼을 벌였다.
대로변의 주택 창문과 옥상에서는 요한이 지나가는 길마다 꽃가루를 뿌렸고 젊은 여인들은 그와 말 한 번, 인사 한 번이라도 나누고 싶어 애간장을 태웠다.
“가루칸 대족장님!”
“멋있으세요. 대족장님!”
“와, 저기 봐! 릴리안 공주님이다!”
“우윳빛깔 릴리안! 사랑해요, 릴리안!”
비단 요한뿐만이 아니었다. 가루칸과 릴리안 등, 이번 전쟁의 일등 공신들 또한 백성들의 큰 환호를 받았다. 릴리안은 팬클럽이 결성되었을 정도였으니…….
“크흠! 이럴 줄 알았으면 사인 연습이라도 미리 해 둘 걸 그랬나?”
블랑카는 그런 동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심 기대를 가졌지만 입성할 때까지 그의 이름은 단 한 차례도 불리지 않았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