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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123화 (123/150)

123. 라마콘 왕국 침공

“오늘이 우리 왕국 마지막 날인가?”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저 새끼들보다 네 대가리를 먼저 부숴 버리기 전에.”

“글쎄. 우리 왕국의 마지막 날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우리의 마지막 날은 맞는 거 같네.”

“아, 이 새끼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진짜!”

라마콘 왕국 국경 지역, 데아단트 요새의 성벽 위에서 근무중이던 병사들은 긴장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국경선 너머 새까맣게 몰려든 남부 대륙의 연합군을 보고 크게 위축된 탓이다.

“어림잡아도 70만은 넘겠는데?”

“우리 왕국을 침략하려고 70만을 모아? 미친 거 아니야?”

데아단트 요새에서 징집병까지 긁어모아 마련한 병력은 총 7만 정도.

물론 이것도 훈련 안 된 청장년들에게 투구와 창 한 자루 쥐어 줬다고 병사로 카운트 했을 경우의 숫자였다.

즉, 실질적으로 병사라 부를 수 있을 만한 병력의 숫자는 3만이 겨우 넘어가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전력 차이가 10배가 넘잖아. 이거 진짜 막을 수 있는 거냐?”

“아주 그냥 쓸고 지나가겠다는 생각이네.”

“너희들의 말이 맞다.”

“다오넬 경! 죄송합니다! 근무에 집중하겠습니다!”

잡담을 떠들던 병사들의 곁에 홀연히 나타난 데아단트 요새의 사령관 다오넬 때문에 병사들은 긴장하며 다시 태세를 정비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잡담을 떠들다 걸리면 중대 군기위반으로 영창 정도로는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오넬 사령관은 오히려 병사들을 적극적으로 위로했다. 고무줄도 끊임없이 잡아당기면 끊어지듯, 긴장감도 너무 커지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놈들은 우리에게 항복을 받아 낼 생각으로 쳐들어온 것이 아니다. 우리의 터전을 짓밟고, 유린하기 위해서 찾아온 거지. 어쩌면 우리가 엘프들에게 했던 업보를 고스란히 돌려받는 것인지도 모르겠구나.”

“사령관님…….”

“하나 그 업보를 청산해 줄 수 있는 녀석들은 엘프들뿐이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은 놈들에게 우리나라, 우리 가족들을 지켜내는 것뿐. 그보다 중요한 게 남아 있느냐?”

“없습니다!”

“좋다. 전원 마지막 전투 점검에 만전을 기하도록!”

다오넬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이 다시 한 번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할 무렵, 연합군 측에서 사신이 찾아왔다.

얘기는 듣지 않아도 뻔했다.

“마지막으로 권고한다. 지금 당장 요새의 문을 열고 연합군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최악의 상황만은 면하게 해 주겠다!”

그에 대한 다오넬의 대답은 이것이었다.

퓽! 푹!

“다음에는 그 화살이 네놈의 머리통을 관통할 줄 알아라!”

“미련한 놈들 같으니. 네놈들이 자초한 화다. 어디 한 번 감당해 보거라!”

사신은 다오넬과 라마콘 왕국에 저주를 퍼붓고는 말을 타고 돌아갔다. 그렇게 사신이 돌아가기가 무섭게 연합군이 오랜 정적을 깨고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준!”

다오넬의 외침이 터져 나오자 성벽 위의 궁병들부터 시작해서 투석기와 공성쇠뇌까지 모두 접근하는 연합군을 향해 한껏 시위를 당겼다.

“발사!”

슈슈슈슈슈슈슈슈슈슈슈슉……!

후웅! 후웅! 후웅! 후웅!

그렇게 연합군의 선두가 사정거리 내에 들어오자 수많은 화살들과 바위들이 허공을 가르며 쳐들어오는 병사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크아악!”

“커헉!”

“돌격하라! 걸음을 늦추지 마라!”

“뛰는 걸 멈추는 순간 따라오던 아군의 발에 짓밟혀 죽는다는 것을 명심해라!”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화살비와 우뢰처럼 떨어지는 바위의 세례에도 연합군의 진격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도 가자!”

성문이 열리고 대기 중이던 라마콘 왕국의 기마대가 병사들을 이끌고 출전했다.

적들의 기마대와 공성 병기가 성문 앞에 도착하기 전에 그것들을 저지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와라, 라마콘의 겁쟁이들아!”

“비열한 연합군의 개자식들에게 쫄지 마!”

콰아아앙!

그렇게 두 무리의 기사단이 속도를 앞세워 충돌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상대는 기사단만 1만이 넘는 와중에 라마콘 측은 2천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적으로 다섯 배가 넘는 가운데 힘과 힘의 대결에서 라마콘 왕국이 연합군을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나 라마콘 왕국은 포기 하지 않았다.

“크헉!”

“좀 뒈져라, 이 새끼야!”

푸욱, 서걱!

‘죽을 때 죽더라도 그 전에 한 놈이라도 더 데려간다!’

배가 뚫리고, 팔이 잘려 나가는 상황 속에서도 검을 휘둘러 적의 목을 베고, 검을 든 팔이 나가 떨어지면 이로 목을 물어뜯어서라도 죽인다.

멸망을 코앞에 둔 조국을 지키는 기사의 각오와 숫자만 믿고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덤비는 연합군 기사의 태도는 분명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젠장, 방심하지 마라!”

“놔두면 죽을 놈들이다! 섣불리 1 : 1로 싸우지 말고 확실하게 숨통을 끊으란 말이다!”

라마콘 왕국 기사들의 독기에 놀란 연합군 기사들이 빠르게 대처를 하기 시작하면서 절망적인 상황은 더욱 암울해질 뿐이었다.

그렇게 앞을 가로막던 기마대와 병사들을 모두 처리한 연합군은 빠른 속도로 요새를 향해 붙기 시작했다.

“사다리를 연결해라!”

“공성차 앞으로!”

“우리도 투석기로 응수해라!”

병사들이 성벽에 붙기 시작하자 전황은 순식간에 거침없이 타올랐다.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오르려는 무리, 그리고 침입하는 병사들을 어떻게든 막으려는 무리가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서로를 공격했다.

“이쪽에 사다리가 걸렸다!”

“얼른 잘라 버려!”

“이쪽! 끓는 물과 기름이 부족하다!”

“바위도! 바위도 가져와!”

라마콘 왕국 병사들의 저항은 거셌지만 중과부적이었다.

끓는 물과 기름을 붓고, 사다리를 자르고, 바위를 굴리고, 화살을 쏟아부으며 저항했지만 결국 성벽 위로 병사들이 하나둘 올라서기 시작한 것이다.

“됐다! 성벽 위로 올라왔다!”

“올라간 놈들은 사다리를 수호해라!”

“올라온 놈들 먼저 죽여!”

“죽어라! 더러운 라마콘의 졸개들아!”

한두 명씩 성벽 위로 올라와 사다리를 지키기 시작하자 더 많은 병사들이 순식간에 성벽 위로 쏟아져 올라오기 시작했다.

라마콘의 병사들은 창칼을 휘두르며 끝까지 저항했지만 크게 의미가 있진 않았다. 죽어 나가는 연합군의 숫자보다 성벽을 기어 올라오는 연합군의 숫자가 더 많았던 것이다.

결국…….

콰아아앙!

“성문까지 뚫었다!”

“전군, 진격하라!”

성벽까지 거의 점령당한 상태에서 성문까지 박살 나자 완전 무장한 기마대가 사나운 기세로 들이쳤다.

“각하! 틀렸습니다! 지금이라도 후퇴를……!”

“어디로 후퇴를 한단 말이냐? 이놈들을 데리고 후방으로 도망칠 순 없다! 우린 오늘 여기서 죽을 것이다!”

검을 뽑아 든 다오넬은 지휘관들과 함께 뚫린 성문으로 달려 나갔다. 그곳에는 침입한 기마대가 무자비하게 병사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멈춰라, 이놈들!”

“이 성의 지휘관 다오넬 백작이다! 놈을 생포하는 자는 큰 포상이 있을 것이다!”

“나머지는 전부 죽여도 좋다!”

“그게 네놈들 말처럼 쉬울 것 같으냐!”

다오넬은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르며 기마대를 공격했다. 그 역시 오러 엑스퍼트에 이른 실력자.

평범한 기사들로는 그를 감당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문제는 그를 상대하는 기사들 역시 평범한 기사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걱!

“커헉!”

오러 엑스퍼트에 이른 기사 열댓 명이 그를 상대하자 다오넬이 전력을 다해 저항했음에도 순식간에 검을 든 팔이 날아가고 왼쪽 다리가 잘려 버렸다.

“서둘러 상처를 치료해 주거라. 라마콘의 국왕 앞에서 놈을 인질로 사용할 것이다.”

“크크크…… 네놈들 앞에서 꼭두각시 노릇을 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구나. 지옥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다.”

으득!

다오넬의 입에서 엄청난 양의 출혈이 발생하였다. 혀를 뭉텅이로 씹은 것이다.

혀의 출혈과 잘려 나간 사지의 출혈이 더해지자 다오넬의 안색은 순식간에 창백해지며 숨을 거두었다.

“쯧쯧쯧…… 미련한 놈.”

“성을 정리하고 바로 진군할 것이다. 휴식은 진군하면서 취하도록!”

“부족한 보급품은 현지에서 조달하도록 한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약탈을 공식적으로 허가한 사령관의 허락에 병사들은 환호하며 마을로 흩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고향을 버리고 떠났지만 남기로 선택한 사람들도 겨로 적지 않았다.

평생을 나고 자란 고향을 버리고 떠난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일까? 하나 고향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에겐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꺄아아악!”

“엄마! 으아아앙!”

“제발 아이만은 살려 주세요! 대신 저를……!”

“시끄러!”

퍼억! 콰득! 촤악! 서걱!

병사들의 잔인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때려 부수고, 약탈하고, 죽였다.

아무 집이나 쳐들어가 재산을 빼앗았고, 남자들은 죽였으며, 여자들을 길거리로 끌고 나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강간했다.

사람들의 비명과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불에 탄 집들이 차례차례 무너져 가는 와중에 병사들은 피와 돈에 굶주린 짐승처럼 사람들의 목숨과 재산을 빼앗았다.

이 광경을 썩 탐탁찮게 보던 기사 한 명이 기사장에게 건의했다.

“병사들의 도가 너무 지나친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는 게 아닙니까?”

“놔 둬. 이 연합군은 특성상 전쟁에 이겨도 자신들이 공을 독식하는 게 힘들다. 그러니까 자기 몫은 자기가 챙겨야 되는 거야. 그게 지휘관이 됐든 병사가 됐든 말이다.”

“그래서 사령관님께서……! 하지만 이건!”

“하지만이고 자시고, 그럼 네가 저 녀석들한테 싸워서 고생했다고 보상 챙겨 줄래? 저기 있는 병사들 중에는 우리나라보다 다른 나라 병사들이 훨씬 많은데?”

결국 기사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만행은 연합군이 깃발을 꽂는 성마다 벌어졌다. 연합군은 불과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라마콘 왕국의 절반 이상을 집어삼킨 것이다.

오히려 전투보다 진군하는 데 시간을 더 많이 할애했을 정도이니 얼마나 파죽지세인지는 보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라마콘이 이런 식으로 그나마 적은 병력을 분산해가며 적의 진군을 지연시킨 이유가 있었다.

“서부 4성에서 대피한 피난민들의 수용이 완료되었습니다. 전하.”

“그래 고생했네. 피난민들의 피해는 어떤가?”

“대부분의 피난민들이 대피할 수 있었으나 데아단트 영지와 올레젤 영지에서 피난을 시작한 백성들은 피난길 도중에 기력이 쇠하여 미처 전부 챙길 수 없었나이다.”

기사장은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렸고 헤블론은 무거운 눈빛으로 침음을 삼키면서도 기사장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들의 희생은 뼈아프나 그것은 경의 잘못이 아니네. 모두 내가 부덕하고 모자란 탓이지. 본래라면 왕좌를 넘볼 수도 없었던 나 같은 모자란 왕을 지금까지 믿고 받쳐 주어서 진심으로 고맙네.”

헤블론의 치하에 기사장과 기사들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그의 말을 부정했다.

쿵!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은 부디 거두어 주시길 통촉하나이다! 전하! 저희는 전하를 모신 이후로 진정한 기사가 무엇인지, 기사도가 무엇인지를 매일 배우며 실천했습니다! 전하를 모시는 하루하루가 명예로웠으며 실로 보람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청이 있다면 다음 생에도 전하를 모실 수 있도록 윤허해 주시옵소서!”

“그것 참…… 나야말로 분에 넘치는 부탁이구먼. 하하하! 그럼 마지막으로 뜨겁게 불살라 보세. 여기가 백성들을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니 말일세.”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헤블론 왕과 기사들은 최후의 전장으로 나아갔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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