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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130화 (130/150)

130. 1 VS 100만

이곳은 북부 대륙, 클레멘타인 왕국 국경선. 노체 평야.

북부 대륙의 거의 모든 대륙을 무리 없이 집어삼킨 로한 제국군의 선봉에는 이 남자. 헥토르 황태가가 군을 이끌고 있었다.

“전하, 클레멘타인 왕국 연합군이 도착한 모양입니다.”

새까만 흑마에 타고 있던 헥토르는 부하의 보고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고 평야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야 너머 지평선을 새까맣게 채우고 있는 건 클레멘타인 왕국 연합군의 전력이었다.

“어림잡아도 수가 100만은 넘을 것 같습니다. 놈들의 사정을 고려했을 때, 뒤를 생각하지 않고 전 병력을 끌고 온 것 같습니다, 전하.”

보통 군을 파병하면 아무리 많아도 전군의 3할이 마지노선이고 목숨을 걸었다 해도 7할이 한계였다.

모든 병력을 전방에 투자해 버리면 후방을 급습당했을 때, 어이없이 무너져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한 제국의 지휘관들이 보기에 클레멘타인 연합국이 동원한 전력의 수는 거의 10할에 가까웠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왕국의 병력과 지금 보고 있는 병력의 숫자가 거의 동일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클레멘타인의 왕, 루카스가 대단한 녀석인 건 사실인 듯싶군요. 아쉽습니다. 그런 녀석이 제국에 있었다면 전하의 쓸 만한 수족이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확실히 조금 아쉽긴 하군.”

헥토르는 부관, 카스토르의 말에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정말로 아쉬움을 느끼는 것인지, 빈말인지 구분이 불가능했다.

가면을 쓰지 않았음에도 헥토르의 얼굴은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사람의 감정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간 태자 전하의 인재 사랑은 못 말리겠군.’

카스토르는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황태자의 뒤에는 그가 발견하고 스카우트한 인재들과 재능이 보여 직접 키운 인재들까지 다양한 강자들이 그를 추종하고 있었다.

자신도 오러 마스터의 강자였지만 헥토르를 추종하는 강자들에 비교하면 특출 날 것도 없는 평범한 사람에 속했다.

특히 희귀하다고 정평이 난 원소의 마나 사용자들만으로 구성된 기사단, 엘리멘탈 나이츠는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황태자만의 정예 기사단이었다.

‘하지만 가장 대단한 사람은 누가 뭐래도 태자 전하 본인이시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전하, 군을 움직일까요?”

“아니, 일단 이곳에서 대기한다.”

“하오시면…….”

“오랜만에 몸을 풀고 싶군.”

“……!”

황태자가 직접 나서겠다는 말에 카스토르는 물론이고 그를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지간해서는 적들 앞에 직접 나서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설마…….’

카스토르는 짐작 가는 바를 떠올렸다. 어젯밤, 남부 대륙의 소식을 접한 헥토르의 반응이 미묘했다.

특히 남부 대륙에서 활약 중인 아바타…… 요한에 관해서 들었을 때는 가면 같은 헥토르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을 정도였다.

‘그 미소는 인재에 대한 탐욕이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 그 미소는 마치…….’

그사이, 헥토르는 200만 대군을 놔두고 홀로 천천히 말을 몰아 걸어 나왔다.

그가 어느 정도 걸어 나오자 당연히 그 모습을 클레멘타인 왕국군 진영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제국군 측에서 혼자 걸어 나오는 이가 황태자가 맞소?”

“헥토르 황태자? 헉! 맞는 것 같습니다.”

“설마 전령으로 찾아오는 건 아닐 거고,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그 순간.

뿌우우우우우우……!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가 제국군 진영에서 웅혼하게 울려 퍼졌다. 그러나 제국군은 그 자리에서 단 한 발도 움직이지 않았다.

여전히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건 헥토르 한 사람뿐.

“이런 미친…….”

“전투 개시의 뿔피리를 불고도 혼자서 이쪽으로 다가온다고?”

으드득……!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우리들이 무시받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알겠군.”

“죽는 게 소원이라면 그렇게 해 줘야지.”

“뿔피리를 불어라! 진군이다!”

뿌우우우우우우……!

클레멘타인 왕국군에서도 뿔피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100만의 병사들이 비장한 각오를 가슴에 품고 전장으로 내달렸다.

그들 모두 클레멘타인 왕국…… 그중에서도 루카스 국왕에게 도움을 받은 주변 나라들의 기사나 병사들이었다.

“루카스 국왕에게 은혜를!”

“우리들의 조국에 무궁한 영광을!”

“가자!”

그림자들 때문에 망할 뻔한 나가 루카스 국왕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그 은혜는 이루 형용할 수가 없을 터.

게다가 여기서 로한 제국에게 밀리면 자신들의 왕국은 끝이라는 걸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헥토르가 혼자 전선에 나선 상황. 그를 보호해 줄 병력은 아무도 없었다.

“이거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니면 뭐란 말이냐!”

“상대는 제국의 촉망받는 황태자다! 놈을 죽이면 단숨에 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

“상대가 혼자라고 절대 망설이지 마라!”

어느덧 전장 한복판에 선 헥토르의 눈에 100만의 군세가 노도와 같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광경은 마치 인간으로 만들어진 해일이 덮쳐 오는 것 같기도, 태산이 산사태로 쏟아져 내리는 광경처럼 보이기도 했다.

도저히 인간 혼자서 결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광경에, 헥토르는 태연히 말에서 내리더니 말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쳤다.

찰싹.

“먼저 돌아가서 기다리고 있거라.”

히히히힝!

말은 주인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한 번 가볍게 투레질을 하고는 그대로 본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애마를 돌려보낸 헥토르는 몸을 돌려 연합군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중무장한 중장갑 기마대가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무서운 기세로 돌진해도, 그들이 들고 있는 랜스에서 서슬 퍼런 오러가 번뜩여도 헥토르의 모습은 변화가 없었다.

너무나도 태연한 자연체. 자연스럽게 손을 늘어트리고 허리를 곧게 편 헥토르는 여전히 무심한 두 눈으로 코앞까지 다가온 중장갑 기마대를 쳐다볼 뿐이었다.

“너무 겁먹어서 꼼짝도 못 하는구나!”

“그대로 짓밟아 주마, 놈!”

“네놈의 오만함을 후회하면서 죽어라!”

그렇게 헥토르가 기마대의 거친 숨결과 함께 충돌하려던 그 순간!

후우우우우우우우…….

돌연 헥토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어마어마한 양의 검은 안개가 충돌 직전의 중장갑 기마대를 휘감으며 파도처럼 앞으로 쓸고 지나갔다.

“뭐, 뭐야?”

“평범한 안개가 아니다! 조심해!”

우드득, 콰직! 빠드득! 찌이익!

그러나 경고를 해 봐도 이미 늦었다.

검은 안개에 휩싸인 기마대는 다시 볼 수 없었다.

대신 그 안에서 들리는 소름끼치는 소성만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음을 알려 줄 뿐이었다.

“자, 잠깐!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중장갑 기마대를 순식간에 집어삼킨 검은 안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뒤따라오던 병사들까지 노리며 퍼져 나갔다.

병사들은 창칼을 휘두르며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애초에 형태가 정해지지 않은 안개를 칼로 베고, 창으로 찌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결국 퍼져 나간 검은 안개는 병사들까지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으아악!”

“나, 나 좀 꺼내 줘!”

“당겨도 안 빠지잖아!”

“그냥 잘라 버리라고!”

일단 한 번 검은 안개에 팔이나 다리가 붙잡히면 잡힌 사지를 잘라 내지 않은 이상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도 탈출은 불가능했다.

오히려 동료를 돕다가 자신들까지 안개에 먹히자 병사들은 결국 동료들을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그마저도 소용이 없었다.

검은 안개가 증식하면서 퍼지는 속도가 워낙 빨랐던 탓에 말을 타고 필사적으로 도망쳐도 먹혔던 것이다.

결국 두 다리로 달려서 도망치는 걸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렇게 100만에 달하는 병사들이 거의 다 검은 안개에 잡아먹히자 루카스가 목이 터져라 외치며 달려왔다.

“헥토르!”

“왔군.”

헥토르는 일부러 검은 안개를 홍해 바다처럼 갈라 길을 터주었다. 그렇게 헥토르와 마주 선 루카스는 검을 뽑아 들더니 마나를 전부 끌어 올려 자신과 검을 강화했다.

그 순간, 그의 검에 피어오른 것은 놀랍게도 앱솔루트 오러였다.

“우리 제국 출신도 아닌 평범한 대륙의 국왕이 그랜드 오러 마스터라……. 필경 죽음을 넘나드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을 테지. 어떤가? 지금이라도 내 앞에 무릎을 꿇겠다면 너와 네 가족들만큼은 제국에서 황족 못지않은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고작 네놈에게 아첨하기 위해서 손에 넣은 힘이 아니다. 이 힘은…… 네놈처럼 가증스러운 침략자에게 대항하기 위해, 내 조국과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손에 넣은 힘이란 말이다!”

콰앙!

루카스가 포효와 함께 땅을 박차자 엄청난 폭음과 함께 그와 헥토르 사이의 거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백 미터가 넘는 거리를 단숨에 좁힌 루카스가 검을 휘둘러 헥토르의 목을 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초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헥토르는 마치 그의 공격이 안중에도 없다는 듯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꾸물렁!

“이게 무슨……!”

태산도 일격에 벤다는 앱솔루트 오러가 형체도 없는 검은 안개에 완전히 막혀 버렸다. 마치 회초리로 부드러운 솜이불을 후려친 듯한 감각이었다.

헥토르는 당황스러워하는 루카스를 쳐다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런가? 아쉽군. 자네 정도라면 훌륭한 컬렉션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늘.”

“……!”

그때였다.

루카스의 검을 막은 검은 연기가 검을 휘감으며 타고 올라온 것이다. 깜짝 놀란 루카스는 서둘러 팔을 뺐지만 이미 손목이 잡힌 오른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서걱!

그에 루카스는 왼손에 오러를 실어 단숨에 오른팔을 잘라 버렸다. 그리고 재빠르게 관수를 헥토르의 목에 내질렀다.

다시 거리를 벌리면 지금과 같은 기회는 절대 오지 않을 거란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신속한 판단력과 정확한 직감이다. 부족한 건 능력뿐인가.”

헥토르는 순순히 루카스를 칭찬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고 또한 사실이었다.

결국 필사적으로 최선의 선택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루카스의 왼손마저 검은 연기에 붙잡힌 것이다.

이내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루카스는 허탈하게 비웃음을 터트리며 헥토르에게 마지막 경고를 전했다.

“끌끌끌……! 세상이 벌써 네놈의 것이 되었다고 생각하나? 한때는 나도 그랬지. 나보다 강한 놈은 없을 거라고. 그러다 지금 네 녀석을 만난 것처럼 네놈도 반드시 마주치게 될 것이다. 네놈을 지옥의 구렁텅이로 처박아 줄 악마를 말이야.”

“그대의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군. 안 그럼 너무 지루한 인생이 될 것 같으니. 잘 가게.”

슈루룩!

결국 루카스마저 삼켜지자 무려 100만에 달하는 클레멘타인 연합군은 그렇게 헥토르 한 명에게 전멸하고 말았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가 직접 나서서 100만의 병사들을 먹어치운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꾸물렁, 꾸물렁…….

100만의 병사들을 먹어치운 검은 안개가 꾸물거리며 변화를 보이더니, 어느 순간 무언가를 토해 냈다.

마치 까만 알처럼 생긴 그것은 진짜 알이었는지 금세 금이 가더니 그 안에서 다섯 개의 형상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서 오라. 나의 수족들이여, 다섯 가지의 재앙들이여.”

그 순간 헥토르의 입가에 핀 미소가 헥토르 본인의 것인지, 아니면 그 속에 깃들어 있던 ‘쿠’의 미소인지 그 누구도 구분할 수 없었다.

심지어 헥토르 본인조차도…….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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