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선제공격
“네, 네놈은 누구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쉿.”
퓨슝.
요한이 손가락을 튀기자 한 줄기 번개가 요한에게 소리치던 왕의 심장을 그대로 관통했다.
파지직, 파직!
“그르르르르……!”
번개에 심장이 관통당한 왕은 그 자리에 드러누워 뭍에 나온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다가 게거품을 물고 눈을 뒤집어 깠다.
그대로 숨을 거둔 것이다.
“이거 쓸 만하네?”
요한은 자신이 날린 ‘비뢰탄지’를 보고 살짝 감탄하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비뢰탄지는 무공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무공이 아닌, 무려 뇌제의 독문무공의 초식이라 할 수 있었다.
요한은 지난 반년 동안 마나 로드를 이용한 뇌전의 마나 사용법…… 즉, ‘폭뢰’를 완벽하게 다루기 위해 뇌제의 심득 2편에 기록되어 있던 몸뚱이를 만들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했다.
그 노력은 굉장히 힘들면서도 굉장히 간단했다. 그 방법이란 폭뢰를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조금씩 터트리는 것.
그렇게 점차 강도를 올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폭뢰에 완전 면역이 된 몸뚱어리를 얻을 수 있는데 뇌제는 이 몸뚱이를 ‘뇌성지체’라고 불렀다.
그렇게 뇌성지체를 완성한 요한은 마지막 뇌제의 심득인 3편을 다시 읽어 보다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처음 읽었던 것과 글자 자체는 완벽히 똑같았으나 이해되는 내용이 전혀 달랐던 것이다.
알고 보니 뇌제의 심득 3편은 뇌성지체를 이룬 자만이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무공’이었다.
그렇게 요한은 심득 3편에 기록된 뇌제의 무공들을 열심히 수련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으로는 폭뢰와 뇌성지체를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련한 무공의 이름은 바로 뇌공(雷功)이었다. 미사여구 하나 없이 단순한 번개의 무공이었지만 요한은 이보다 이 무공에 잘 맞는 이름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날린 비뢰탄지 역시 뇌공의 초식 중 하나였다.
요한은 지금까지 매개체가 없으면 번개의 마나를 외부적으로 컨트롤 할 수 없었다. 번개의 마나가 제멋대로 가장 가까운 전도체에게 날아가 감전되는 탓이다.
그러나 뇌공 덕분에 지금처럼 매개체 없이 순수한 번개의 마나로 적을 조준해서 가격하는 것도 가능해진 것이다.
다시 상황으로 돌아와서 비뢰탄지를 눈으로 보고 확인한 왕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의 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설마…… 아바타?”
“어떻게 네놈이 여길…….”
“그러게. 쥐새끼처럼 잘도 숨어 다닌 탓에 나도 찾느라 애를 먹었거든. 술래잡기를 대륙 스케일로 하는데 나라고 별수 있나?”
지금 이들이 숨어 있는 곳은 버려진 마을의 어느 가옥 지하실을 개조해서 만든 것이었다.
다급히 개조하느라 넓이만 신경을 썼을 뿐, 부실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지만 한 번만 쓰고 버리기에는 충분한 회의장이었다.
이들은 이런 식으로 절대 이런 곳에 숨어 있을 거라 생각되지 않는 곳만 골라 숨어서 일을 진행했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남부 연합의 왕들이란 사람들이 모양 빠지게 이게 뭐야, 이게.”
“노, 놈을 잡아!”
한 왕이 다급하게 요한을 가리키며 소리치자 기사들은 똥 씹은 표정으로 검을 빼 들며 요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쨌든 왕의 명령이니 덤벼들지 않을 순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왕들이 도망칠 시간조차 벌지 못했다.
턱, 콰직! 콰당! 퍽!
요한은 몸에 박히는 검은 모두 무시한 채 달려드는 병사들을 잡아 땅에 패대기치거나 주먹으로 후려갈기는 등,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들을 상대했다.
그것만으로도 그 자리에 있던 최상급 오러 익스퍼트 기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떨어져 나갔다.
결국…….
“전하,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 보겠습니다. 그 틈에 어서 피하십시오.”
“하지만…….”
“어서!”
결국 왕들과 동행한 오러 마스터들까지 나서서 요한을 막게 되었다.
그들의 검에서 피어오르는 마스터 오러는 분명 위협적이었지만 그들을 상대하는 요한의 모습은 여전히 심드렁했다.
“충성심은 갸륵한데 말이야. 쓸데없는 짓이란 건 잘 알고 있지?”
“그대에게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소. 우리는 그저 주군이 무사히 이곳을 빠져 나갈 수 있기만 하면 되오. 그래도 내 마지막 상대가 아바타라 다행이라 생각되는구려.”
마지막 유언을 마친 오러 마스터들이 요한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확실히 오러 마스터들의 움직임은 오러 익스퍼트와 수준이 달랐지만…….
파직!
요한은 그런 그들과도 차원이 달랐다.
풀썩……. 후두두둑!
요한이 그들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그가 지나온 길을 따라 뇌전이 살짝 방출되며 오러 마스터들이 순식간에 자리에 쓰러졌다.
그들이 어떻게 쓰러진 것인지, 무엇에 당한 것인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왕들은 자신들의 운명이 여기서 끝이라는 것만 자각했을 뿐이었다.
* * *
연합국의 수장들이 체포되자 그것으로 남부 연합군은 완벽하게 와해되었다.
수장들은 남부 대륙에 전쟁을 초래하고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렸다는 명목으로 모두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세대의 왕족들 중에서 벨로반 왕국에 충성을 바친 방계 왕족 중 한 명을 골라 왕위를 계승하였다.
“전하! 아니, 폐하! 피폐해진 남부 대륙의 중심을 잡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원하실 분은 폐하밖에 없으십니다!”
“부디 황좌에 오르소서!”
“폐하를 중심으로 남부 대륙이 뭉치지 않고서는 저 포악한 로한 제국에 맞설 수가 없습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새롭게 즉위한 된 남부의 왕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벨로반 왕국의 국왕, 포라드가 황제로 즉위하는 것을 건의했다.
그에 따라 벨로반 귀족들 역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고 결국…….
“경들의 뜻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지.”
포라드는 벨로반 왕국…… 아니, 이제는 제국이 된 벨로반 제국의 1대 황제로 등극하게 되었다.
“아깝지 않냐?”
“뭐가?”
“어쩌면 네가 저 자리에 있을 수도 있었잖아? 다른 녀석이었다면 자신이 차린 밥상을 엄한 녀석이 먹어치웠다고 길길이 날뛰어도 모자랄걸.”
황제로 등극하는 포라드의 모습을 보면서 가루칸이 말하자 요한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너 내 진짜 꿈이 뭔 줄 아냐?”
“뭔데?”
“이 싸움이 끝나면 조용한 곳에서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고 아들 딸 한 명씩 낳아서 평범하게 사는 거. 그게 내 꿈이다. 그걸 위해서 싸우고 있는 거고.”
“그러냐.”
남들이 들으면 그게 무슨 꿈이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가루칸은 충분히 친구의 꿈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다.
* * *
벨로반 왕국이 제국이 되자 벨로반 왕국의 일등공신이자 최고의 가문이라 할 수 있는 크림포드 가문도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이든은 극구 사양하며 자신의 자리에 만족했지만 그래서는 다른 제후들과 귀족들이 납득하지 않으며 본을 보일 수 없는 말에 결국 제국의 공작가로 발돋움한 것이다.
따라서 벨로반 제국 최고의 가문으로 우뚝 솟은 크림포드 공작가였지만 그만큼 할 일은 더 많아지고 책임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북부 대륙과의 전쟁을 코앞에 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더 더욱…….
벨로반 왕국이 제국으로 거듭나고 다시 3개월이란 시간이 지났다.
“슬슬 훈풍이 부는 걸 보니 겨울이 곧 끝나겠구나.”
테라스에서 차를 마시던 요한과 하이든, 하워드 3부자는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 섞여 있는 온기를 느끼며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게요. 당분간은 이 잠깐의 평화가 그리워질 순간이 오겠죠.”
“네게는 더 많은 짐을 요구하게 될 거고.”
하이든의 걱정 어린 시선에 요한은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대꾸했다.
“잠깐일 뿐이에요. 준비는 전부 끝났으니까…… 결코 이 전쟁이 오래가지는 않을 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느냐?”
“이 전쟁은 결국 저와 헥토르의 싸움이 될 테니까요. 누가 이기냐에 따라서 전쟁의 승패가 갈리겠죠.”
“…….”
하이든은 부정하지 못했다. 자신의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요한은 이미 국가라는 규격을 아득히 초월한 최강의 단일 전력이었다.
막말로 지금 남부 대륙에서 요한이 혼자 쳐들어간다고 했을 때 그를 막을 수 있는 나라가 있을까? 아니, 그건 연합국이라도 불가능했다.
“헥토르라는 존재가 정말 그 정도더냐? 네가 그토록 신경 써야 할 만큼?”
형 하워드의 질문에 요한은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생각을 정리하며 대답했다.
“그 녀석이 정말로 무서운 건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솔직히 지금 그 녀석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 지 장담하는 건 힘듭니다. 다만 확실한 건 제가 아니면 누구도 녀석을 막기 힘들다는 사실이죠.”
“하면 그 얘기도 사실일 수 있겠구나. 헥토르가 클레멘타인 왕국 연합군 100만을 홀로 상대한 것도 모자라 전멸시켰다는 소문 말이다.”
“전면에 나서는 일이 거의 없는 녀석이 그런 짓을 벌였다는 건 반드시 그럴 필요가 있었다는 뜻일 겁니다. 어쩌면 저조차 상상 못 할 변수가 발생했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동료를 모으고 병사들을 모은 것이로구나. 최대한 변수를 억제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워드의 추론에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만이 녀석을 막을 수 있는 것처럼, 그쪽에서도 지금의 저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헥토르뿐입니다. 그만큼 다른 변수가 발생하는 쪽이 더 불리하게 되겠죠. 헥토르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테고요.”
요한에게는 그 변수가 바로 아인종 동맹군이었다.
봄이 되어 남북 대전이 시작된다면 북부에 위치한 엘프들과 드워프들, 어인족들을 이용해 로한 제국 측에 큰 피해를 줄 생각이었다.
북부와 남부의 전력이 비등한 상태라면, 적들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각하! 공작 각하! 아, 대공 각하도 여기 계셨군요. 마침 잘됐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리 호들갑인 게야? 숨 좀 돌리고 차분히 얘기해 보게.”
뭐가 그렇게 급한 것인지, 시종은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하고 다급히 보고했다.
“큰일 났습니다! 엘븐 글로리아와 드워븐 팩토리아가 적의 기습을 받았다고 합니다!”
시종의 보고에 세 사람의 표정이 한순간에 차게 식었다.
“상대는? 병력의 규모는 얼마나 되지?”
“그게…… 찾아온 전령의 얘기로는 각각 한 명이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인간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존재인데 문제는 차원이 다르게 강하다고……. 그 말을 남기고 전령은 숨을 거두었습니다.”
“인간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존재?”
“그러고 보니 헥토르가 100만 명의 적군을 물리쳤을 때 그들을 희생양으로 무언가를 소환한 것 같다는 얘기를 첩자에게서 들은 것 같은데 설마…….”
“아무래도 이번 일을 준비하기 위해 직접 나선 모양이군요.”
요한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리더니 다급하게 물었다.
‘벌써 움직이는 건가. 하여간 성격도 급한 녀석들이군.’
“릴리안은?”
“방금 전에 그 소식을 듣자마자 엘븐 글로리아로 출발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말릴 새도 없이 날아가시는 바람에…….”
“그럼 멀리 가지는 못했겠군.”
파직!
요한의 몸이 뇌전으로 뒤덮임과 동시에 사라졌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