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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134화 (134/150)

134. 릴리안의 분투

또륵.

데이드라의 핏물이 떨어진 자리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숲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숲이 오염된 건가?”

“아니, 저건 숲이 오염됐다거나 병든 것과는 달라. 저건 마치…….”

“다른 숲이 된 것 같군.”

한 엘프 전사의 의견에 다른 전사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자신들을 보도 듣도 못한 광경이지만 검게 물든 숲도 분명 숲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숲의 아이들이라 불리는 엘프족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확신이었다.

문제는 그 어떤 숲에도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는 엘프족이었지만 저 숲만큼은 도저히 적응할 자신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이 자리를 지켜야 하는 입장이 아니었다면 당장 몸을 돌려 도망쳤을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마찬가지다! 저 마녀를 막아라! 그리고 숲을 지켜라!”

“가자!”

슉슉슉슉슉슉!

엘프들은 빠르게 화살을 속사했다. 어떻게 그 많은 인원이 화살을 쏘면서 단 한 번도 나무에 걸리지 않고 목적에 명중할 수 있는지 신기에 가까웠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으드득, 으득!

검게 번지며 타락한 나무들이 제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마치 팔을 벌리듯 가지를 벌려 데이드라에게 쏟아지는 화살들을 스스로 막기 시작했다.

“뭐지? 나무가 스스로 움직였다고?”

“설마…… 엔트?”

그러나 나무가 움직이는 이유를 분석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나무들이 가지를 떨어 나뭇잎을 암기처럼 날려 보냈기 때문이었다.

“산개!”

엘프 전사들은 빠르게 움직여 암기처럼 날아오던 나뭇잎을 피해냈다. 그 속도와 위력이 워낙 강했던 탓에 엘프 전사들이 조금 당하긴 했지만 그 숫자가 많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촤악. 촤악!

“조심해! 발밑에서 덩굴이 솟구친다!”

흙바닥을 뚫고 발밑에서 솟구친 덩굴에 한 번 붙잡히면 달아날 방법은 없었다.

“좀 떨어져라! 이 개 같은……!”

단검에 오러까지 씌워 있는 힘껏 내리쳐 봐도 무용지물. 오히려 덩굴은 잡힌 부위를 타고 오르며 서서히 몸을 옥죄었다.

“커억! 살려…….”

콰직!

그러면 사실상 탈출한 방법은 완전히 사라진다. 남은 것은 전신을 휘감은 덩굴이 온몸의 뼈를 으스러트리며 죽이는 것뿐이었으니까.

“너희들은 나를 따라와라! 나머지는 화살로 엄호한다! 불화살을 사용해도 좋다! 적은 저 검은 숲 전체라고 생각해라!”

“예!”

결국 오러 마스터에 이른 세 명의 대장, 루데인, 아포, 솔카이드가 자신의 정예 병력을 데리고 직접 검은 숲으로 뛰어들었다.

그에 맞춰서 무서운 기세로 쏟아져 내리는 불화살은 가히 불의 비를 연상시켰다.

본래 숲이 크게 다칠 수 있는 불화살은 되도록 쓰지 않는 것이 엘프들의 불문율이었지만 상대가 검은 숲 자체라 과감하게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불화살도 크게 의미는 없었다. 화살이 나무나 덩굴에 박히는 순간, 상처 부위에서 검은 진액이 흘러나와 불을 삼켜 버렸기 때문이다.

그사이 검은 숲에 진입한 전사들 사이에서는 얼마 가지 못하고 이변이 발생했다.

“수, 숨이……!”

“저, 저리가! 저리 가란 말이야?”

“어머니? 어머니가 왜 여기에…….”

“다들 정신 차려!”

전사들은 환각을 보며 몽유병 환자처럼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목을 그러쥐고 쓰러진다거나 피를 토하며 고통을 호소하는 자들도 있었다.

“이건…….”

“독이다! 모두 호흡을 조절해!”

세 명의 대장이 서둘러 대처법을 알려 주었지만 딱히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았다.

“그러기에 내 숲에 허락 없이 들어올 때는 신중했어야지. 지금 들이마신 버섯 포자는 한 모금만 삼켜도 끔찍한 환각과 고통을 쉴 새 없이 보여 주다가 결국 죽음으로 이끌거든.”

“그 전에 너를 죽이면 그만이다!”

루데인, 아포, 솔카이드는 자신의 검을 퍼펙트 오러로 무장하며 사납게 데이드라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촤악! 서걱! 우지끈…… 콰앙!

세 명의 오러 마스터는 확실히 빠르고 강력했다. 자신들을 덮쳐 오는 검은 숲의 나무 괴물들과 덩굴을 빠르게 제거하며 데이드라와의 거리를 무섭게 좁혀 들어갔으니까.

“지금이다!”

서걱!

결국 각고의 노력 끝에 데이드라에게 접근한 세 사람은 각각 그녀의 머리를 베고, 심장을 관통하고, 몸을 갈랐다.

그런데…….

“분명 내 숲에서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정답을 얘기해 줬잖아. 어째서 너희만큼은 멀쩡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거지? 정말 이상한 녀석들이야.”

“……!”

“커헉!”

털썩…….

‘이, 이럴 수가……!’

환영이 걷히고 진실이 드러나자 세 사람은 경악에 찬 표정으로 현실을 부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데이드라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공격했던 상대가 사실은 다른 대장들이었던 것이다.

결국 세 사람은 서로를 죽인 꼴이 되었고 그렇게 오러 마스터 대장 삼인방은 어이없는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데이드라는 일부러 환영을 풀어 주고 그 모습을 전사들에게 보여 주었다. 더욱 더 큰 절망을 맛보기 위해서.

“으으으……!”

“으아악!”

“도, 도망쳐!”

절망한 엘프 전사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소용없었다.

“들어오는 건 너희들 마음이지만 보내주는 건 내 마음이란다. 벌레들아.”

이미 숲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그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아니, 어쩌면 데이드라가 이 숲에 찾아온 순간부터 엘븐 글로리아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데이드라가 지배하는 검은 숲은 빠른 속도로 엘프의 숲을 침식하고 있는 중이었다. 종국에는 세계수도 집어삼키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이 세상의 모든 숲과 식물은 다시 나를 여왕으로 섬기게 되겠지. 하아…… 정말이지 너무 오래 걸렸…….”

슈웅…… 콰앙!

감회에 젖어 있던 데이드라는 문득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위험한 기척을 감지하고 서둘러 두꺼운 나무껍질 보호막을 세워 자신을 방어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전력을 다한 퍼펙트 오러도 간단히 막아 내는 나무껍질이 날아오는 화살 한 발에는 어이없이 뚫려 버린 것이다.

‘막기는 늦었다!’

나무껍질을 뚫고도 기세를 잃지 않은 화살 때문에 기겁한 데이드라는 빠르게 고개를 틀어 화살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물론 그 탓에 앉아 있던 가시나무 옥좌에서 볼품없이 굴러떨어지기는 했지만…….

“어떤 빌어먹을 벌레가 감히 이 몸을……!”

자신의 추태를 자각했는지 덩굴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난 데이드라가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저건……?’

그녀는 검은 숲 안에서 너무나도 당당하게 멀쩡한 모습으로 자신을 직시하고 있는 한 명의 엘프 여전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릴리안이었다. 데이드라가 릴리안을 보고 놀란 건 자신의 숲에서 멀쩡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뭐야, 허약한 벌레들만 있는 줄 알았더니 제법 예전의 그 징그러운 모습이 남아 있는 벌레도 있었잖아?”

‘무엇보다…….’

데이드라의 시선이 릴리안이 들고 있는 활로 향했다. 바람의 신궁, 실피드…… 저 활은 그녀에게 있어서도 최악의 악몽이라 할 수 있었다.

릴리안은 그녀를 직시하다가 시선을 실피드로 돌렸다. 그러고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이제 알겠어. 어째서 실피드가 지금까지 누구도 사용할 수 없었던 건지…… 이건 주인을 가리는 활이 아니었던 거야. 적을 가리는 활이지.”

릴리안은 다시 눈을 들어 데이드라를 똑바로 직시하였다. 그녀의 눈에서는 한 점의 혼탁함이나 망설임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를 감싸고 있는 죽음의 마나는 그녀의 몸속으로 침입하려는 독 포자들을 남김없이 썩어서 사라지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릴리안에게 독 포자로 인한 환각이나 고통은 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죽은 동족들의 영혼에서 흘러나온 죽음의 마나가 충만한 덕분에 그녀는 힘이 흘러넘쳤다.

끼리릭…….

릴리안이 화살 없이 시위를 당기는 순간, 활 전면에 바람이 모여 압축되기 시작하면서 작은 구슬 같은 것이 형성되었다.

“치잇!”

데이드라는 그것을 보고 위기감을 느꼈는지 전력을 다해서 덩굴과 나뭇잎, 독침 등을 쏟아부었다.

단 하나만 명중해도 릴리안의 목숨을 손쉽게 앗아 갈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릴리안은 태연하게 시위를 놓았고 그 순간…….

콰우우우우우우!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의 회오리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적을 향해 쏘아져 날아갔다.

그 모습은 화살이 아니라 흡사 자연재해…… 혹은, 용 한 마리가 포효하며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폭풍은 릴리안에게 날아오던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빠르게 날아갔다. 데이드라는 전력으로 기운을 끌어 올려 자신을 감싸 지키는 나무 수 그루를 세웠다.

그것은 거의 탑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크고 두꺼운 나무들이었지만 폭풍의 화살과 부딪치는 순간, 무서운 기세로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나무들은 전부 형체도 없이 깎여 나갔고, 그 속에서 반쯤 몸이 날아간 데이드라가 이를 갈며 릴리안을 노려보았다.

릴리안은 그런 데이드라를 무심하게 쳐다보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널 다시 한번 쓰러트리기 위해 실피드가 지금까지 비축한 힘이야. 쉽게 생각하지 않았음 좋겠어.”

“한낱 반푼이 다크 엘프 주제에 감히……!”

쿠구구구구궁……!

그녀는 잠시 숲의 침식을 멈추고 그 힘도 모두 끌어모아 자신의 최강 전력이라 할 수 있는 하수인을 소환하였다.

그것은 검은 나무로 목조한 것 같은 거대한 드래곤이었다. 데이드라는 드래곤의 머리와 반쯤 융합한 상태로 릴리안을 노려보며 크게 이죽거렸다.

“장난은 끝이다! 지금부터 네년에게 지옥이 어떤 것인지 직접 보여 주도록 하지.”

“아니, 끝났어. 넌 절대 날 이기지 못해. 난 여기에 내 모든 걸 걸었거든.”

“웃기는 소리!”

고오오오오오오…… 콰아아아아아!

드래곤의 입에서 압축된 맹독의 브레스가 엄청난 기세로 쏟아져 나온 순간, 릴리안도 힘껏 당겼던 시위를 놓았다.

콰과과과과과과!

그 순간, 그녀가 착용하고 있던 목걸이에서 스산한 붉은 빛이 터져 나왔다.

그녀가 착용하고 있는 목걸이는 놀랍게도 리치킹의 목걸이였다.

물론 그녀가 목걸이의 새로운 주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리 내려 둔 요한의 명령에 따라 목걸이가 품고 있던 엄청난 양의 죽음의 마나가 그녀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실피드가 모아 두었던 힘과, 리치킹의 목걸이에서 넘겨받은 엄청난 양의 죽음의 마나.

그 두 가지가 한데 어우러져 검붉은 회오리바람이 무서운 기세로 맹독의 브레스를 집어삼켰다.

“아, 안 돼……! 이럴 순 없어!”

회오리와 브레스는 서로 맹렬하게 격돌하기 시작했지만 점차 회오리가 브레스를 집어삼키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콰자작! 콰득!

회오리는 데이드라를 집어삼키며 나무로 만들어진 용의 몸뚱이를 그대로 분쇄하였다.

“아아…… 우리의 주인이시여, 부디 숙원을 이루소서…….”

죽음의 마나가 침식하기 시작하자 결국 죽음을 예감한 데이드라는 주인의 염원이 이뤄지길 기원하며 그렇게 눈을 감았다.

“하아, 하아…….”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릴리안은 데이드라의 최후를 확인한 후에야 지상으로 내려섰다.

하지만…….

‘어서 돌아가야 하는데…….’

머리는 핑 돌고, 몸은 무겁다.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지면이 코앞까지 다가오는 걸 보았다.

털썩…….

결국 모든 힘을 소진한 그녀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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