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뇌앙
스르르르륵…….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갑자기 검은 구멍이 생겨났다.
검은 구멍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연기였다. 새까만 연기는 순식간에 구멍 안쪽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더니 일대를 뒤덮었다.
운무처럼 짙게 깔리던 연기가 사라지자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다름 아닌 100만이 넘는 군세와 헥토르의 친위 부대였다.
“저건…….”
“세상에…….”
“정말로 벨로반 왕도인가?”
병사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로한 제국의 황도에서 벨로반 왕도에 도착했으니 어안이 벙벙한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
하나 이와 같은 경험을 여러 번 해 본 친위 부대의 입장에서는 딱히 놀랄 것도 없었다.
“정말이지 주군의 능력은 볼 때마다 놀랍습니다.”
“누가 아니라나. 최전방에서 이 나라를 지키겠다고 개고생 하고 있을 이 나라의 병사들이 안쓰러울 뿐이지.”
“그러니 우리가 그 고생을 일찍 끝내 줘야 할 게 아니겠나?”
친위 부대는 여유가 넘쳤다. 자신들이야말로 헥토르가 엄선한 최강의 기사단. 엘리멘탈 나이츠였으니까.
게다가 황도에 아무리 많은 병력을 남겨 놨다 하더라도 이쪽은 병사들의 숫자만 100만이 넘는다.
당연히 대비할 시간도 없었을뿐더러 지금부터 대비한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인 것이다.
“내일 아침은 벨로반의 왕성에서 맞을 것이다. 모두 돌격하라!”
와아아아아아!
헥토르의 부관, 카스토르의 외침에 기마대를 선두로 100만의 병사들이 해일처럼 벨로반 왕도의 외성벽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외성벽만 넘으면 벨로반 왕국을 점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저 성벽만 넘으면 시가전인데 백성들을 인질로 잡은 상황에서 사실상 내성전은 크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뭐지? 뭔가 이상한데…….”
“그러고 보니…….”
질주하던 기마대는 위화감을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위화감의 정체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더 달렸을까?
성벽에 조금 더 가까워지고 나서야 기마대는 자신들이 느끼던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뭐, 뭐야? 성벽 위에 병사들이 없잖아?”
“보초병도, 경계병도, 아무도 없다! 어떻게 이럴 수가…….”
아무리 무드산 평야 전투에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외성벽 위에 보초를 서는 병사들일 단 한 명도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이건 방심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 위화감이 불안감으로 변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
기마대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각이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있는 타이밍은 한참 넘어 버렸다.
그리고 그 사실을…… 황성의 가장 높은 첨탑 꼭대기에서 바라보고 있던 요한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씨익!
“제 발로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개자식들아.”
요한의 시위가 하늘로 향했다.
* * *
요한이 이변을 감지한 것은 하이든이나 하워드와 별개로 먼저 로한 제국과 클레멘타인 왕국과의 마지막 전투, 노체 평야에서 있었던 전투를 보고받은 직후였다.
“뭐? 헥토르가 전면으로 나섰다고?”
“그렇습니다. 100만의 군세를 상대로 헥토르는 혼자 나서서 그들에게 맞섰습니다. 그리고 이후는 믿기 힘드시겠지만…….”
정보원이 보고를 망설이자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으니까 본 대로만 얘기해.”
“헥토르의 몸에서 이상한 것이 뿜어져 나왔다고 합니다. 검은 연기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100만의 군세를 모조리 집어삼켰다고…… 연기는 곧장 알 같은 것을 토해 내더니 그 알에서 다섯 명의 불길한 존재들이 튀어나왔다고 보고받았습니다.”
“흐음…….”
요한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본래 헥토르 그 녀석은 정말로 필요한 일이 아니고서는 결코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짓은 하지 않는다. 특히, 자신의 능력을 조금이라도 노출시킬 수 있는 그런 짓은 하지 않아. 게다가…….’
검은 연기에서 태어난 다섯 존재들도 마음에 걸렸다. 전생에서 헥토르는 그런 존재들을 소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헥토르가 전면으로 나서서 그렇게까지 눈에 띄는 짓을 했다는 건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란 뜻이었다.
무엇보다 최악인 건, 자신이 전생에 알고 있던 헥토르의 능력은 새 발의 피였다는 사실이다.
‘알면 알수록 내가 아는 그 녀석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야. 물론 그 녀석의 악취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요한은 자신이 알고 있는 헥토르의 성향을 생각하며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 * *
“헥토르 네 녀석은 예전부터 그랬지. 적이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뭘 지키고 싶어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부수는 걸 누구보다 잘해 내는 녀석이었고.”
슈웅!
요한이 시위를 놓자 먼저 출발한 화살을 따라서 수천 발의 화살이 구름 너머로 날아갔다.
“물론 네 녀석의 변태 짓거리를 가장 많이 도운 사람이 나라는 건 좀 창피하긴 하지만.”
요한이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순간, 구름 너머로 사라졌던 화살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뭐지?”
“뭐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데? 비인가?”
“아, 아냐. 저건……!”
슈슈슈슈슈슈슈슈슈슈슈슈슈슝……!
엄청난 숫자의 화살들이 하늘에서 장대비 같은 기세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화살의 비가 내리는 곳은 다름 아닌 로한 제국의 병사들 머리 위였다.
“도, 도대체 누가 어디서 화살을 쏜 건데?”
“지금 그게 문제냐? 방패 들어! 화살을 막아라!”
병사들은 방패를 들어 화살을 방어했다.
만약 요한의 화살 때문에 저승에 가 있을 친구들이 그 모습을 보았다면 배를 잡고 웃거나 콧방귀를 뀌었을 것이다.
그들은 요한의 화살 앞에서 방패나 엄폐물이 얼마나 무력한지 알고 있었으니까.
푹푹푹푹푹푹푹푹푹푹푹……!
“커헉!”
“크아악!”
“방패가 뚫린다! 일반 방패로는 어림도 없어! 타워 실드로 막아!”
쏟아지는 화살에 일반 방패는 종잇장처럼 뚫려 나갔고 갑옷을 입은 병사들의 몸뚱이도 그대로 관통하며 땅에 박혔다.
타워 실드라고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일단 쏟아진 자리에 걸린 병사들은 무조건 죽음이 확정이라고 봐도 무방했으니까.
“화살의 숫자는 적다! 겁먹지 말고 달려라!”
“저 성벽만 넘으면 우리의 승리다!”
지휘관들의 외침에 병사들은 용기를 얻었다. 그들의 말처럼 화살은 고작 수천 발에 불과했고 자신들은 100만 명이 넘었다.
수천 발에 화살에 겁먹어 도망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성벽만 넘으면 상대도 무작위로 화살을 날릴 수는 없을 게 아닌가?
하지만 그건 그들의 달콤한 망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건 그냥 가이드야. 진짜를 부르기 위한 가이드.”
쿠르릉, 쿠릉!
요한이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순간, 먹구름에서 불안하게 뇌성벽력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아이 씨, 불안하게 갑자기 천둥이 치고 지랄이야!”
“그러게. 방금 전만 해도 하늘이 맑았는데…….”
“그런데 이 화살들…… 왜 파지직거리는거지?”
점점 더 요란해지는 천둥의 굉음에 어느 병사들이 땅에 박힌 화살의 이변을 깨닫는 순간, 재앙이 강림했다.
콰르릉! 콰쾅!
하늘과 땅을 가르며 엄청난 기세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는 번개의 다발들. 그것은 마치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재앙을 연상시켰다.
그야말로 번개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기상이변에 사람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히히히힝!
“워, 워! 진정해라, 진정!”
“으아악!”
놀란 말들은 앞발을 들며 미친 듯이 투레질을 하다가 기수를 떨어트리고 도망가다 수많은 병사들을 밟아 짓이겼다.
그건 애교에 불과했다.
콰르릉!
떨어진 번개에 직격당한 병사는 일단 완전히 분해가 되어 형체조차 남지 않았다.
물론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잔류 번개는 주변에 즐비한 생체 전기를 따라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방전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으그그그그그극!”
“사, 살려 줘…….”
빛에 한없이 가까운 속도를 가진 번개를 피할 수 있는 병사 따윈 없었다. 그건 오러 마스터라고 해도 불가능했다.
콰아앙!
“허억!”
운 좋게 방전되는 번개의 파편을 막은 오러 마스터급의 기사가 자신의 퍼펙트 오러를 한층 더 끌어 올렸다.
사실 막았다기보다는 정면을 방어하고 있던 차에 방전된 번개가 와서 충돌한 것이지만 상관없었다.
‘좋아 이대로 튕겨 내기만 한다면…… 응?’
파지직! 콰릉!
“무, 무슨…… 이건 평범한 번개가……!”
자신의 퍼펙트 오러를 집어삼키는 번개를 확인한 기사가 눈을 부릅떴다. 그것은 평범한 번개가 아닌, 뇌전의 마나로 이루어진 오러와 번개가 섞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크아아아악!”
퍼펙트 오러를 분쇄하며 번개에 삼켜진 기사는 그렇게 비명을 지르며 새까맣게 탄 재가 되어 쓰러졌다.
오러 마스터가 이럴진대 병사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따라서 쏟아져 내리는 번개는 그들에게 죽음의 선고와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뇌제 역시 이 초식의 이름을 뇌앙(雷殃)이라고 불렀다. 인간은 피할 수 없는 번개의 재앙이었기 때문이다.
“오, 쓸 만한데?”
물론 뇌앙은 범위기에 가까운 단일 무공 초식에 가까운 기술이었다. 그것을 자신의 주병기인 활과 화살을 이용해 광역기로 개발한 건 순전히 요한의 응용력이었다.
‘애초에 뇌공이라는 것 자체가 일정한 형태가 없는 무공이기에 가능한 변형이라고 하지만 이 정도로 효과가 뛰어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야.’
슝! 슝! 슝!
요한은 쉬지 않고 화살을 하늘로 쏘아 보냈다. 그럴 때마다 제로스의 망토에 보관되어 있던 수천 발의 화살들이 막대한 뇌전의 마나를 머금고 구름 너머로 사라졌다.
사실 뇌공을 익히고 난 이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다름 아닌 ‘뇌심법’이라 불리는 마나 호흡법이었다.
뇌심법은 뇌전의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자가 익혀 봤자 효과를 티끌만큼도 볼 수 없는 쓸모없는 마나 호흡법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뇌전의 마나를 다루는 자에게는 천금보다 귀한 보물이라 할 수 있었다.
잘 때도 자연스럽게 뇌심법을 사용할 정도로 뇌심법에 적응한 이후, 요한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제반의 팔찌로 끌어 모으는 마나가 강물이었다면 뇌심법으로 끌어모으는 뇌전의 마나는 그야말로 바다에 필적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마나의 소모가 심한 뇌전의 마나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뇌심법에 더해 제반의 팔찌까지 사용하는 요한은 지금, 뇌앙으로 소모하는 마나보다 차오르는 마나가 훨씬 더 많았던 것이다.
“자, 아직 화살은 차고 넘치니까 분발 해 보라고.”
슝!
이번에는 요한이 쏜 화살을 따라 무려 1만 발의 화살이 뒤를 따르며 구름 너머로 사라졌다. 그렇게 사라진 1만 발의 화살은 당연히 제국군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피, 피해!”
“피할 수 없습니다!”
“젠장 막지도, 피하지도 못하면 대체 어쩌라는 거냐고!”
쏟아지는 화살들은 방패로 막을 수도, 몸을 날려 피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맞으면 무조건 즉사였다.
파지지직!
설령 급소에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피부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화살에 담긴 뇌전의 마나가 대상을 감전시켜 목숨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는 제국군의 병사들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콰르릉, 콰릉!
“온다…….”
“신이시여, 제발…….”
번쩍!
쏟아져 내린 화살 비는 이어질 진짜 재앙의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걸…….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