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절망
뇌전의 마나의 장점은 원소의 마나 중에서도 차원이 다르다고 얘기할 만큼 강한 극강의 파괴력이다.
그리고 단점은 그런 파괴력을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위력을 늘린 ‘폭뢰’의 경우에는 장점과 단점 양쪽이 모두 극대화된다.
따라서 날뛰는 뇌전의 마나로부터 아군만 골라서 피할 방법 같은 건 없다.
하지만…….
콰르릉! 콰쾅!
“으아악!”
“버, 번개가 또 떨어진다!”
“피해!”
“멍청아! 여기에 피할 곳이 어디 있다고……!”
지금은 그런 단점을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적어도 요한의 눈에 보이는 사람들 중에서 아군은 없었으니까.
요한의 화살 비는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렸고 화살 비를 따라서 낙뢰도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렸다.
내리치고, 번져 나가는 번개 때문에 제국군 병사들의 숫자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저기다! 성문이 눈앞에 있다!”
“성문만 뚫고 지나가면 우리의 승리다!”
“아무리 놈이라도 시가지에서 이런 위험한 기술을 쓰지는 않을 터! 조금만 더 버텨라!”
그나마 다행이라면 쏟아지는 낙뢰가 너무나도 위협적이라 성벽 위에서 성문을 견제하는 병사들 역시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대로라면 돌진력을 그대로 살려서 성문을 일점 돌파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나 그 생각은 외성문 앞을 지키고 있는 거상들을 발견한 순간 의문으로 바뀌었다. 거대한 동상이 외성문 앞을 단단히 틀어막고 있었던 것이다.
“뭘까요, 저건?”
“설마 저런 걸로 외성문을 지킬 생각은 아니겠지?”
“상관없다! 쓸데없는 게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면 부수고 가면 그뿐! 공성차는 앞으로 나서라!”
지휘관의 외침에 따라 공성차를 이끄는 기마대가 전력으로 질주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몇 번이나 공성차를 옮기던 기마대가 낙뢰에 타 죽었기 때문에 그들의 표정에는 절박함과 독기가 가득 묻어 나오고 있었다.
“뚫고 들어가자!”
“다 부숴 버려!”
그렇게 오러 소드와 오러 랜스를 곤두세우며 성문 앞까지 돌진한 공성차와 기마대. 그 순간…….
번쩍.
“뭐, 뭐지?”
“왜 그래? 불안하게.”
“아니 방금 동상의 눈에서 안광이 터져 나온 것 같은데…….”
“에이, 그럴 리가……. 네가 잘못 본 거겠지.”
“잡담하지 마라! 이제 곧 성문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
그 순간까지도 하늘에서는 낙뢰가 끊임없이 쏟아졌고 지휘관의 말대로 외성문이 코앞이었기에 기사는 자신의 생각을 조용히 안으로 삼켰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그는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해야만 했었다. 그랬다면…….
콰아아앙!
지금 일어난 끔찍한 악몽을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었을 테니까.
“뭐, 뭐야?”
“대체 무슨 일이야?”
“동상이…….”
뒤따라오던 기마대는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앞쪽에서 별안간 벽력 터지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더니 앞서 달리던 기마대와 공성차가 자신들의 머리 위를 지나며 뒤로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금세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도, 동상이 움직인다!”
5미터 크기의 동상, 델타와 시그마는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외성문으로 접근하는 병사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젠장! 일단 저 동상들부터 처리해!”
“너희 셋은 나를 따라와라! 나머지는 공성차를 가지고 성문으로 직진해라!”
어느 오러 마스터가 후배 오러 마스터 셋을 대동하여 델타와 시그마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시그마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공성차를 막기 위해 움직였고, 델타만 남아서 오러 마스터 넷의 앞을 가로막았다.
“우리를 얕잡아보는 거냐, 놈!”
“타압!”
오러 마스터 넷은 퍼펙트 오러를 전력으로 휘두르며 빠르게 델타를 압박했다. 하지만 상대는 다름 아닌 마도 시대의 보물…… 다중성 금속 골렘이었다.
촤촤촤촤촤촤!
델타는 양손을 몇 가닥의 촉수처럼 길게 뽑아내더니 채찍처럼 그것을 자유자재로 휘둘렀다.
“이런 젠장!”
“크아아압!”
“이이익……!”
양쪽을 합해 열 가닥이 넘는 촉수를 미친 듯이 휘두르며 네 명의 오러 마스터를 압박하자 그들의 검이 정신없이 춤을 추었다.
‘일격, 일격이 묵직하다! 자칫 스치기라도 했다간 중상을 피하지 못한다!’
‘아니, 대체 뭘로 만들어졌기에 퍼펙트 오러가 부딪힐 때마다 부서져 나가는 거지?’
그들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채찍을 막을 때마다 채찍이 잘려 나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퍼펙트 오러가 뭉텅이로 깎여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델타의 몸체가 통짜 아다만티움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강화 보조 마법으로 동체가 일반 아다만티움보다 훨씬 단단했으니 어지간한 퍼펙트 오러로는 감당이 불가능 할 수밖에…….
게다가 상대는 체력이 존재하지 않는 골렘. 그에 반해서 오러 마스터는 초인의 경지를 넘어섰다고 해도 인간이다.
정신없이 방어에만 치중하다 보니 결국 그들의 체력과 정신력도 빠르게 소모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최고의 컨디션이었을 때도 수세에 몰렸는데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마나까지 깎여 나가면 답은 뻔하다.
“이런……!”
“아, 안 돼!”
촤악! 촤악! 촤악! 촤악!
미처 검으로 막지 못하면 목이 달아나고, 조금이라도 오러의 힘이 부족하면 검과 함께 몸통이 잘리고, 도망치려다 다리가 잘리고, 절망한 채 반으로 갈리기도 했다.
오러 마스터 4인이 죽음을 당하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병사들에게는 가히 지옥의 사신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더 최악인 건 구경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콰르릉! 콰콰쾅!
“뭐 해!”
“빨리 앞으로 가라고!”
“성문을 열고 들어가란 말이다!”
뒤에서는 여전히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낙뢰를 피해서 병사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심지어 그것도 꽤나 많은 숫자가 줄어들었고 또한 지금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성문이 힘들면서 사다리를 걸어서 성벽으로 올라가라!”
“어차피 성벽 위에 병사들은 한 명도 없다!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기어 올라가!”
지휘관의 다급한 외침에 병사들은 빠르게 성벽에 사다리를 걸기 시작했다. 다만 외성벽 자체가 매우 높아서 사다리를 조립하는데 꽤나 긴 시간이 필요했다.
문제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화살비가 이윽고 성문 앞까지 당도했다는 것이었다.
파지직, 파직!
콰르릉!
“커어억!”
“으아악!”
“으그그그그극……!”
사다리를 타고 열심히 오르다가도 화살 한 발이 떨어지면 그걸로 끝이었다.
화살을 따라 떨어지는 낙뢰가 마치 사슬처럼 병사와 병사를 타고 전이되며 사다리를 오리던 많은 병사들을 그대로 감전시켜 떨어트린 것이다.
게다가 뇌전의 마나는 평범한 번개가 아니라서 사다리 역시 순식간에 부서지거나 타서 재가 되어 못 쓰게 되기 일쑤였다.
결국 정문을 뚫는 것이 가장 외성벽을 돌파하기 확실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저것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식으로 움직이려면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다! 계속 몰아붙이다 보면 언젠가는 멈춘다!”
“쉬지 말고 몰아 붙여!”
“어차피 여기서 멈추면 우리들의 목숨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휘관들은 격려와 협박이 반쯤 섞인 악다구니를 지르며 병사들을 독촉했다.
기사들 역시 후퇴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독기를 가득 품고 두 골렘에게 달려들었다.
한편,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요한은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짐짓 미안한 듯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 방법이 틀린 건 아닌데…….”
지휘관들의 말처럼 골렘들을 계속 압박해서 마나를 소모하게 만드는 건 어찌 보면 하나밖에 없는 골렘들의 공략 방법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 다중성 금속이라고 해도 기본 중량 자체가 매우 무거운 아다만티움을 초고속으로 움직이고 변형시키는 건 엄청난 마나가 소모된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걸려 있는 몇 가지의 보조 마법들을 항시 발동 시키는 것 역시 마찬가지. 효율은 좋지만 그만큼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다.
“괜히 미안하네.”
그래서 요한은 나노 크리에이터와 함께 골렘에 몇 가지 기능을 추가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콰르릉! 파지직!
[델타와 시그마와 낙뢰의 에너지를 흡수하였습니다. 에너지 충전률 300% 상승.]
뇌전을 흡수하여 에너지로 저장하는 기능이었다.
에너지가 거의 바닥을 보였던 델타와 시그마의 에너지 저장소가 무려 300% 과충전이 되면서 순식간에 에너지가 넘쳐나기 시작하자 다시 한 번 골렘들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그렇게 추가된 기능 중에 하나가 바로 에너지 방출이었다. 즉, 과충전된 뇌전을 방출하여 기본 공격에 뇌전 속성을 실어서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촤아악! 파지직, 파직!
델파와 시그마의 공격에 맞은 병사들 주변으로 번개 사슬이 형성되어 근처에 있던 다른 병사들까지 감전돼 죽는 경우가 생겨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저 접근하기만 해도 골렘의 몸을 덮고 있던 뇌전이 반응하여 자동으로 방전되어 적을 감전시켰다.
적아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맹점이 있었지만 어차피 적군뿐인 장소였기 때문에 그런 단점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상황이 그러하다 보니 대적 불가한 골렘 두 기를 쓰러트리고 외성문을 돌파하여 들어가는 건 그야말로 밤하늘에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려운 임무가 되어 버렸다.
“으으으…….”
“이, 이건 불가능해!”
“100만이 아니라 1,000만이 덤벼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그쯤 되니 병사들은 물론이고 기사들도 더 이상 의욕이 나지 않았다. 이쪽은 아군이 기하급수적으로 죽어 나가고 있는데 아직 적의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그들이 느끼기에 이건 더 이상 전쟁이 아니었다. 단순한 학살극일 뿐이지.
결국 최후방에서 이를 지켜보던 병사들은 고개를 젓더니 주변 눈치를 살피면서 조금씩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차피 자신들이 도망쳐 봤자 신경 쓸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게 한두 명씩 도망치기 시작하자 마치 들불에 번지는 불처럼 병사들이 앞다퉈 도망쳤다.
그런데…….
“이런 병신 같은 새끼들.”
후웅! 촤르륵!
“크아악!”
“커억!”
뒤쪽에서 나선 한 사내가 검을 뽑아 휘두르자 눈을 의심할 만큼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검끝에서 나온 날카로운 검풍이 마치 뱀처럼 굽이치며 나아가더니 도망치는 병사들을 일거에 베어 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 참, 하여간 백만이든 천만이든 쓸모없는 것들을 모아 놔 봤자 오합지졸이라니까.”
“그러게. 그래도 저 정도로 날뛰었으면 체력이건 정신력이건 마나건 상당히 소모했을 테니 밑지는 장사는 아니지.”
무려 100만 명의 목숨을 희생시켜 놓고 ‘밑지는 장사’를 운운하는 이들.
이들이 이렇게 자신감 넘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들이 전원 원소의 마나를 사용하는 엘리멘탈 나이츠였기 때문이다.
“가자. 주군께서 더 이상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기 전에 우리가 정리한다.”
“예, 단장님.”
엘리멘탈 나이츠를 이끄는 기사단장 메르페우스가 여유롭게 앞장서자 기사단 역시 그의 뒤를 따라 빠르게 전장으로 진입했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