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사냥터로 뛰어들다
“드디어 움직이나…….”
엘리멘탈 나이츠가 움직이는 순간은 요한도 알 수 있었다. 그들 수백 명이 가지고 있는 기운의 크기는 100만의 대군과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들 선봉에 마자현이 없는 건 불행 중 다행이네.’
과거의 마자현은 자신에게 분명 헥토르와 버금가는 강력한 적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은 자신의 동료이자 든든한 아군이었지만.
“그럼 인사라도 해 볼까?”
퓽! 슈슈슈슈슈슈슈슈슉!
요한의 시위를 떠난 화살이 무리를 이끌고 빠르게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가 그대로 다시 구름 너머에서 지상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병사들을 지옥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바로 그 화살 세례였다.
갑옷으로도, 방패로도, 타워 실드로도 막을 수 없었던 그 화살들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적들의 목숨을 노리며 하강하였다.
하지만…….
“이 정도로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니…….”
“어설픈 놈이로구나. 크하하하!”
엘리멘탈 나이츠는 퍼펙트 오러가 깃든 자신들의 무구로 쏟아져 내리는 화살들을 어렵지 않게 쳐냈다.
물론 뇌앙의 진짜 모습은 쏟아지는 화살 세례가 아니었다. 화살 세례가 끝나고 이어지는 진짜 재앙이 남아 있었으니까.
그걸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엘리멘탈 나이츠가 간과할 리 없었다.
콰르릉! 콰쾅!
곧이어 약속했던 것처럼 수많은 뇌전의 다발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자 메르페우스가 소리쳤다.
“전원 오러 실드를 펼쳐 방어한다!”
화르륵! 콰우우우! 촤르르륵! 꽈드득!
메르페우스의 외침에 따라 엘리멘탈 나이츠 전원이 머리 위로 오러 실드를 펼쳤다.
그러자 거센 화염이, 휘몰아치는 폭풍이, 출렁대는 파도가, 사나운 모래바람이 일어나며 떨어지는 뇌전의 재앙을 막아 냈다.
“생각했던 것보다 위력이 더 엄청나군.”
“과연 뇌전의 마나…… 원소들의 왕이라 이건가?”
“설마 쫄았냐?”
“쫄기는…… 재미있어서 그렇지. 이 괴물을 상대로 과연 우리가 얼마나 선전할 수 있을 지 그게 너무 궁금해 미칠 것 같거든.”
뇌앙을 어렵지 않게 막아 낸 엘리멘탈 나이츠는 돌진을 재개했다. 말을 타고 있지 않음에도 그들의 속도는 말을 탄 기마대보다 곱절은 더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역시…… 이 정도로 막기는 힘들다 이건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귀찮은 놈들이구먼.”
요한은 뇌앙을 아무렇지 않게 막아 내는 엘리멘탈 나이츠를 보고 입꼬리를 피식 말아 올렸다. 그때와 지금 느끼는 녀석들에 대한 감상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 요한이 엘리멘탈 나이츠에게 느꼈던 기분은 마치 거대한 벽과 같았다.
한 놈, 한 놈은 자신의 상대가 아닌데 그걸 모두 모아 놓고 보니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요한은 엘리멘탈 나이츠가 그렇게 큰 벽으로 와닿지 않았다. 단순히 현실의 거리가 멀리 때문은 아니었다.
파지직, 파직……!
그 순간. 아무것도 없었던 요한의 손바닥 위로 한 줄기 번개가 파직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요한은 순수하게 뇌전의 오러로 만들어진 번개의 화살을 오리하르콘 활시위에 걸어 당겼다. 그리고 시위를 놓았다.
콰르릉!
발사된 것은 화살이 아닌 번개였다. 번개처럼 빠른 화살 정도의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번개를 쏜 것이다.
이전까지 번개의 화살은 화살이라는 매개체가 있어야 컨트롤이 가능했다. 뇌전의 마나 특성상, 형상을 고정시켜 다루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살을 매개체로 쓰는 것과 순수한 번개의 화살을 사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기술이나 마찬가지였다.
번쩍! 파지지직!
털썩……!
엘리멘탈 나이츠가 확인한 건 저 먼 황성의 첨탑 꼭대기에서 빛이 번쩍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한 줄기 벼락이 날아오더니 곁을 달리던 동료 한 명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애초부터 피하거나 막는 등의 대응할 여유 따위는 찰나의 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세상 어느 누가 빛을 막아서 벨 수 있단 말인가?
콰르릉! 콰릉! 콰릉!
그로부터 몇 발의 화살이 더 날아왔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번개의 화살이 관통당하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져 전신의 구멍이란 구멍에서는 연기를 내뿜었다. 그 한순간에 몸속까지 전부 구워져 버린 것이다.
메르페우스는 그 모습을 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원소의 마나 중에서도 가장 그 틀을 형상화시키기 어려운 게 불의 마나라 하지만 뇌전의 마나에 비교하면 어린아이의 장난과도 같은 수준이라 들었다. 한데 그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든 녀석이라면 어쩌면…….’
그는 세차게 고개를 털어 쓸데없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애써 지워 냈다.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러 실드로 전방을 가드해라!”
메르페우스는 악다구니를 지르며 크게 소리쳤다. 그 순간, 남들보다 훨씬 뛰어난 기감을 자랑하는 그의 감각에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자신의 감각을 믿고 본능적으로 진심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타압!”
콰우우우!
검을 휘두르는 순간, 그의 검끝에 이제는 수족보다 다루기 편해진 물의 마나가 앱솔루트 오러로 강화되며 검을 휘감았다.
사실 순수한 물 그 자체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 그 사실은 뇌전의 오러를 상대로도 충분히 큰 힘을 발휘했다.
콰르릉!
본능적으로 진심을 다해 검을 휘두른 궤적 끝에 뇌전의 화살이 그대로 충돌하였다. 조금이라도 망설이거나 궤적이 틀어졌다면 절대로 막지 못했을 공격이다.
게다가 메르페우스의 물의 마나는 조금의 티끌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물의 마나. 어찌 보면 뇌전의 마나와는 상극이라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검의 위력까지 확실했다. 자신의 진심이 담긴 일격이 타점에 들어오는 순간, 정확하게 뇌전의 화살과 충돌했으니까.
그야말로 완벽한 대처였다.
그런데…….
“크윽……!”
메르페우스는 이를 악물었다. 모든 대처가 완벽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우습게 무시하는 것처럼 밀고 들어오는 화살의 위력 때문이었다.
콰앙!
그는 부족한 오러를 좀 더 끌어 올리며 검격에 훨씬 더 많은 힘을 싣고 나서야 뇌전의 화살을 방어할 수 있었다.
물의 마나를 완벽히 다루는 그랜드 오러 마스터가 이 정도인데 다른 수하들은 어떻겠는가?
파지직! 콰릉! 파지지직!
기사단 모두가 타고난 재능에 혹독한 수련을 거쳐 원소의 마나 능력자임과 동시에 오러 마스터의 강자들이었지만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타점을 확인할 길이 없어 전체적으로 두른 오러 실드로는 뇌전의 화살 앞에선 알몸이나 마찬가지였고 설령 감각으로 대응하려 해도 불가능했다.
일단 기감으로 느끼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데다 설령 기적적으로 느꼈다 하더라도 몸이 반응했을 땐 이미 화살이 대상을 뚫고 지나간 뒤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적에 가까운 행운으로 우연히 전력을 다해 막아 냈다 하더라도 문제였다.
콰르릉!
“이런 젠장……!”
화살은 단숨에 원소의 퍼펙트 오러를 박살 내며 기사의 몸을 관통했다.
털썩…….
그러면 어김없이 이목구비에서 하얀 연기를 피워 올리며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절명할 뿐이었다.
즉, 메르페우스를 제외한 기사단원들은 화살이 날아오면 즉사가 확정된 운명이나 다름없던 것이다.
“속도를 더 높여라!”
메르페우스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부하들을 독촉하는 것뿐이었다. 자신조차 간신히 막아 내는 화살을 부하들이 방어한다는 건 크게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는 속도를 높여서 요한에게 더 빨리 접근하는 것이 더 확실한 방법이었다. 적어도 요한에게 접근하면 더 이상 이 지랄맞은 화살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다행히 지금은 한 발씩 날아오는 상황이라 조금의 피해만 감수하면…….’
콰릉! 콰릉!
“……!”
콰릉! 콰릉! 콰릉!
“이게 무슨……!”
그 순간, 자신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처음에는 두 발이, 그다음에는 세 발의 화살이 동시에 날아오기 시작했다.
* * *
“이게 되네?”
요한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순수한 뇌전의 화살도 쏘다 보니 숙련도가 늘어갔고 어느 순간부터는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연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상대도 숫자가 만만치 않았기에 아무리 빠르게 연사한다고 해도 한 발씩 사냥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녀석들은 무서운 속도로 접근하고 있었으니까.
‘그럼 두 발로 늘려 볼까?’
처음에는 엉뚱한 생각이었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처음에는 감을 잘 못 잡아서 어설프게 헤매기도 했다. 하지만 요령을 깨닫고 두 발을 동시에 쏘는 게 안정화되자 세 발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세 발 이상은 힘들었다. 그 이유는 손가락이 다섯 개였기 때문이다.
검지와 중지, 약지, 소지 사이에 각각 한 발씩 걸어 쏘다 보니 다중 사격은 세 발이 한계였고 순수한 뇌전의 화살을 의지만으로 생성하여 체이싱 애로우를 쏘는 건 아직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아니, 차고 넘쳤다.
한 발 한 발이 위력적인 순수한 뇌전의 화살 속사하는 것만으로도 엘리멘탈 나이츠의 숫자를 빠르게 줄일 수 있었는데 그게 동시에 세 발씩 발사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세 발씩 속사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마저도 익숙해지자 엘리멘탈 나이츠의 숫자가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엘레멘탈 나이츠도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성벽이다!”
“성문으로 접근하지 말고 그냥 뛰어넘어!”
성문 앞은 여전히 몰려 있는 병사들과 기사들 때문에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그 숫자가 크게 줄어들어 그들만으로 골렘들을 뚫고 외성문을 부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엘리멘탈 나이츠는 메르페우스의 명령에 따라 곧장 성벽 위로 몸을 날렸다. 그들의 능력이라면 성벽을 뛰어서 넘어서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중 가장 먼저 성벽을 뛰어넘은 사람들은 기동성이 뛰어난 바람의 마나 보유자들이었다.
“됐다! 이러면 아무리 놈이라도 함부로 그 위험한 화살을 쏠 수는…….”
“…….”
“뭐야, 무슨 일인데?”
뒤따라 성벽 위로 올라온 기사들은 앞서 올라온 기사든이 왜 묵언으로 아래만 쳐다보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을 따라 시선을 내리는 순간, 그들 역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잠깐, 도시가 왜 이렇게 조용하지?”
“설마 아무도 없는 건…….”
성벽 밖에서 이 정도 난리가 났으면 왕도 안은 이미 소란이 일어났어도 열두 번은 더 났어야 했을 일인데 왕도는 조용했다.
마치 개미 새끼 한 마리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설마 그 짧은 시간 동안 왕도의 그 많은 사람들을 대피시켰다는 건가?”
“아니, 그건 불가능해. 전투가 시작되고 이제 고작 한 시간이 좀 넘게 지났을 뿐이다. 그 사이에 모든 사람들이 지금처럼 대피한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야.”
“그건 더 말도 안 되지! 우리가 올 줄 어떻게 알고? 우리도 여기 도착할 때까지는 몰랐다고. 태자 전하께서 그런 능력을 가지고 계신지 몰랐으니까!”
“그런데 저 녀석은 어떻게 그걸 알고 먼저 대비를 한 거지?”
그들의 시선이 저 멀리 황성 첨탑 위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요한에게 향했다. 요한은 그들을 향해 냉정히 시위를 당겼다.
콰릉! 콰릉! 콰릉!
다시 한 번 빛이 번쩍이고, 천둥이 치면서 세 명의 기사가 목숨을 잃었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간 세 발의 화살은 절대로 표적을 놓치는 일 없이 정확하게 세 명의 목숨을 앗아 간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다름없다. 놈의 목숨을 끊는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할 일은 다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가자!”
그들은 서둘러 성벽을 뛰어내려 도심 속으로 흩어졌다.
‘탁 트인 평야가 아니라 엄폐물이 많은 도심 속으로 흩어져서 접근한다면 녀석도 쉽게 대응하지는 못할 것이다!’
메르페우스의 판단은 지휘관이라면 적절한 생각이었다.
다만 그가 입꼬리를 말아 올린 요한의 표정을 확인했다면 아마 조금은 생각을 달리하지 않았을까?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