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요한, 헥토르와 마주하다!
“헥토르!”
헥토르는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저 녀석은 뭐지?’
자신에 대한 적개심이 담긴 눈동자는 수도 없이 봐 왔던 헥토르였지만 요한의 눈빛만큼은 전혀 달랐다.
나라를 공격당한 울분? 수도를 기습당한 분노?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밑바닥에 깔린, 자신의 자존심마저 자극하는 요한의 포효에 헥토르가 느낀 감정은…….
‘뭐가 됐든 상당히 불쾌한 녀석이로군.’
순수한 분노와 짜증이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카스토르는 등에 빗겨 멘 창을 뽑아 들더니 말에서 내려 앞장섰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엘븐 글로리아와 드월븐 팩토리아, 구르칸 산맥과 요한의 집을 습격했던 이계의 존재들과 매우 흡사한…… 아니, 같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계의 다섯 번째 존재는 사실 너무나도 강력한 에너지를 보유한 탓에 이 땅에 일정한 형태를 가지고 존재할 수가 없었다.
하여 카스토르는 자신의 주인을 위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희생하였다.
덕분에 그는 그랜드 오러 마스터도 뛰어넘는 힘을 가질 수 있었지만 그 탓에 빠른 속도로 영혼이 침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놈의 목을 가지고 와라, 카스토르.”
“기꺼이 전하의 명을 받듭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카스토르의 의식이었지만 명령을 내리는 헥토르도, 복명하는 카스토르도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창을 꼬나 쥔 카스토르가 앞으로 나섰다.
콰우우우우우우!
순간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땅과 하늘을 뒤덮었다. 엘리멘탈 나이츠의 단장이자 그랜드 오러 마스터였던 메르페우스와도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기세의 에너지였다.
‘방심은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간다!’
자신의 전력을 끌어 올린 카스토르가 곧바로 땅을 박차며 정면으로 신형을 뽑았다.
슈육!
그림자가 미처 그를 따라가지 못하고 길게 늘어지며 순식간에 공간을 지워 버리는 카스토르의 움직임은 상상을 초월했다.
쾅쾅쾅쾅!
바람도 그를 막지 못해 몇 번이나 거칠게 길을 터 주며 충격파가 수없이 발생하였다.
그렇게 요한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지워 버린 카스토르의 창두가 앞으로 뻗어 나가며 요한의 목을 꿰뚫었다. 마치 공간과 함께 뚫어 버릴 것 같은 기세로…….
그런데!
턱!
“……!”
카스토르가 꿰뚫은 요한의 모가지는 허상에 불과했다. 오히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카스토르의 목이 요한의 손아귀에 잡혀 들려졌을 뿐이었다.
“크윽!”
카스토르는 답답한 숨을 토해 내며 수치심과 분노를 담아 창을 휘두르려 했지만…….
“잔챙이는 꺼져.”
파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그 순간, 카스토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전류가 미친 듯이 사방을 내달렸다.
어찌나 전류가 과격하게 뿜어져 나오는지 전류의 다발 일부가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 땅이 파이고 하늘에 흠집이 생길 정도였다.
결국…….
털썩. 프스스스스…….
요한이 놔주자 힘없이 바닥에 쓰러진 카스토르의 몸에서 새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러더니 미약한 바람이 불자 숯 더미처럼 검게 탄 카스토르는 그대로 재가 되어 바람을 타고 사질 뿐이었다.
요한은 카스토르의 죽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헥토르와 마주섰다.
이곳에는 요한과 헥토르를 빼고 더 이상 그 어떤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요한은 다시 만난 헥토르를 눈 깊숙한 곳까지 끌어 담았다.
그 순간, 만감이 교차하며 영문 모를 감정들이 북받쳐 올랐지만 요한은 묵묵히 그 감정들을 억누르며 한마디를 건넸다.
“오랜만이다, 헥토르.”
“이상하군, 우리가 언제 만났던 적이 있었던가?”
헥토르는 신기했다.
‘이 녀석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설령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었다 하더라도 이만한 그릇의 사내를 몰라 봤을 리가 없다. 그런데 나는 정말 이 사내를 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요한이 익숙한 듯 자신의 안부를 묻는 모습이 거짓 같다거나 어색해 보이지도 않았다. 자신의 감이었지만 헥토르는 확신했다.
요한은 자신을 알고 있다고…….
“만난 적이 있었어. 네 녀석은 당연히 기억을 못 하겠지만. 그때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해서 이 자리에 다시 섰지만 지금은 올바른 선택을 해 보려고.”
“네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 올바른 선택이란 것이 나와 마주 서는 것인가?”
“그래.”
요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헥토르가 나직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쉽군, 네 녀석 정도의 사내가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고를 줄은.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거라. 네 녀석이 보고 있는 그 길에는 절망밖에 없다. 하지만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본다면 네놈은 세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요한은 헥토르가 내민 손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때도 이랬었지.’
[지옥에서 기어 올라와 내 옆에 서라. 내가 세상을 안겨 주마.]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지? 내 손에 뭐라도 묻은 건가?”
자신이 내민 손을 요한이 빤히 내려다보자 헥토르가 물었다. 그러자 요한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그때 똥 묻은 손 한번 잡았다고 그 대가를 너무 혹독하게 치르는 것 같네. 하기야, 내 잘못이지 그걸 누굴 탓 하겠냐. 안 그래?”
“말에 가시가 있군.”
“그 가시가 지금부터 널 죽일 거다.”
요한은 순식간에 활을 꺼내 시위를 당겼다. 활을 꺼내고, 시위를 당기고, 화살을 쏘기까지 걸린 시간이 불과 한 호흡도 되지 않았다.
순수한 뇌전의 화살을 코앞에서 쏜 것이다. 그걸 피하거나 막을 방법 따윈 당연히…….
스르르륵…….
당연히 없을 줄 알았다. 검은 안개가 순식간에 헥토르의 정면을 가로막기 전까지는 말이다.
헥토르의 정면을 보호막처럼 휘감은 검은 연기가 순수한 뇌전의 화살을 방어했다.
그 어떤 방패로도 방어가 불가능했던…… 심지어 앱솔루트 오러로도 막기 힘들었던 그 화살을 검은 연기는 마치 소금을 뿌린 호수처럼 부드럽게 삼켜 버렸다.
그 광경에 헥토르는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마치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이 익숙함만 보일 뿐이었다.
암흑신과의 계약을 통해 손에 넣은 힘은 그 정도로 절대적이었으니까.
‘이 정도로는 위협조차 되지 않는다 이건가?’
“그렇게 나와야지.”
그 순간, 순수한 뇌전의 화살을 집어삼킨 검은 연기의 방패가 이번에는 수십 가닥의 촉수가 되어 요한을 향해 쏘아져 날아왔다.
그랜드 오러 마스터였던 메르페우스조차 피하지 못한 촉수의 스피드다 심지어 이 정도로 코앞에 있는 상대를 놓칠 리가 없었던 촉수였지만…….
파지직! 콰릉!
뇌전을 발끝에서 뿜어내며 뒤로 물러서는 요한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그야말로 섬전처럼 거리를 벌린 것이다.
슈르르르륵……!
촉수는 그에 굴하지 않고 요한을 향해서 빠른 속도로 뻗어 나갔다.
슉슉슉슉슉슉!
그러자 요한의 주변 공간에서 물결 같은 파동이 일렁이더니 순식간에 황금빛 무구 스무 자루가 밝은 빛을 뿜으면서 촉수를 향해 날아갔다.
번쩍!
촉수와 무구들이 부딪히며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헥토르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검은 연기에 삼켜지면 빠져나올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검은 연기와 무구들이 충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순식간에 무구들이 검은 연기 속으로 먹혀 들어갔다.
마치 먹잇감을 포획한 뱀이 먹이를 휘감아 잡아먹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번쩍!
검은 연기 안쪽에서 약간의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자 헥토르의 눈이 살짝 커졌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빛은 점점 더 강해지며 순식간에 증폭하더니 오리하르콘 무구들이 순식간에 검은 연기를 뚫고 나와 버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방금 전 무구들을 휘감았던 뇌전과 지금의 뇌전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저건…….’
그 순간!
번쩍! 콰르릉!
검은 연기의 방패를 뚫고 한 줄기 순수한 뇌전의 화살이 날아와 헥토르의 뺨을 스치고 날아갔다.
‘붉은 번개?’
헥토르는 자신의 뺨을 오른손으로 가볍게 훑었다. 오랜만에 보는 자신의 피는 여전히 붉었다.
“너도 사람처럼 피가 빨갛구나. 신기하네.”
“그러게. 나도 놀라는 중이다.”
“지금부터는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이건 아직 나도 제대로 통제가 안 되거든.”
그러면서 요한은 시위에 다시 한 번 순수한 뇌전의 화살을 걸었다. 그건 방금 전 자신의 뺨을 훑고 지나간 것과 같은 붉은 빛의 번개였다.
“공교롭군. 그것 역시 마찬가지라니.”
콰르릉!
다시 한 번 붉은 번개의 화살이 작렬했지만 이번에는 검은 연기가 더욱 크게 부풀어 오르면서 화살을 막아 냈다.
마치 먹구름 안에서 날뛰는 번개처럼 검은 연기에 삼켜진 붉은 뇌전이 미친 듯이 날뛰었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그 순간 검은 연기에 먹힌 헥토르가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곳은 다름 아닌 요한의 등 뒤였다.
요한의 등 뒤에서 나타난 검은 연기 속에서 헥토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촤악!
요한은 빠르게 반응하고 몸을 날렸지만 헥토르의 검이 그보다 빨랐다.
헥토르의 섬전 같은 일격이 요한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자 그의 어깨에서 붉은 피가 허공으로 뿌려졌다.
하지만 아쉬워할 시간도 없었다. 어느새 요한이 자신의 품으로 파고들어 다리를 후려 찬 것이다.
헥토르는 곧장 검은 안개로 정면에 보호막을 만들며 몸을 틀었다. 그 순간, 붉은 번개가 깃든 요한의 다리가 검은 안개를 찢어발기며 헥토르의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요한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빠르게 헥토르를 향해서 쇄도 했지만 어느새 헥토르는 나타났을 때처럼 검은 연기에 삼켜져 수백 미터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쫄아서 거기까지 도망친 거야? 아깝네. 조금만 더 빠르게 찼으면 네 녀석의 머리를 수박처럼 깨부술 수 있었을 텐데.”
“네 녀석이야말로 천운에 감사해라. 그렇지 않았다면 심장이 잘려 나갔을 테니까.”
서로를 향해 이죽거리며 여유를 부리는 두 사람이었지만 내심은 그렇지 않았다.
‘젠장! 접근했을 때 끝장을 냈어야 했는데.’
‘섣부른 접근전은 오히려 독이 되는가.’
공간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상대 앞에서는 아무리 뇌전의 속도라 한들 크게 의미를 갖지는 못했다.
‘즉, 기습적으로 접근했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얼마든지 거리를 벌릴 수 있다는 얘기지. 젠장,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거리 싸움에서 진다는 건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야. 조금 당황스럽네?’
당혹스럽기는 헥토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응당 기습을 취하면 자신이 유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 역시 속도라면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요한의 속도는 자신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했고 작정하고 행한 기습에서 되레 역습을 당해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
‘게다가 뇌전의 마나가 몸속으로 파고드는 것 역시 성가시군.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다.’
몸을 침투한 뇌전의 마나는 암흑의 마나가 순식간에 먹어 치웠지만 문제는 그 찰나의 순간조차 요한은 놓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원거리가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근거리조차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뜻인가.’
서로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실력에 당황했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