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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149화 (149/150)

149. 전쟁의 끝

“여긴…….”

“이제 정신이 좀 드냐?”

눈을 뜬 헥토르가 가장 먼저 본 건 푸른 하늘이었다. 바닥에 누워 있던 그는 상체만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난 것인지 대지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조금 더 눈을 돌리자 금방 근처에 앉아서 쉬고 있던 요한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살아 있는 거지.”

‘나는 분명…….’

헥토르는 이마를 짚었다. 아련하게 밀려오는 두통 사이에서 자신의 마지막 기억을 더듬거려 찾아갔던 것이다.

“쿠에게 내 의식을 먹혔을 텐데…….”

“그런데도 네가 여기 있다는 건 뻔하지 않겠냐?”

“그렇군. 그렇게 된 건가.”

헥토르는 요한을 쳐다보았다. 자신조차 감당 할 수 없었던 미증유의 존재를 쓰러트린 남자의 시선에서는 복잡한 감정만이 느껴졌다.

“이상하군. 나는 분명 네 녀석을 처음 보는 것일 텐데…… 낯설지가 않구나.”

“나도 그래. 너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미치도록 죽이고 싶었으니까.”

“하면 이제 나를 어떻게 할 셈이더냐. 여기서 죽일 텐가?”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아쉽게도 여긴 네 무덤이 아니다. 잠시 자고 있어라.”

파지직! 털썩…….

요한은 헥토르를 감전시켜 기절 시킨 뒤에 쓰러진 그를 내려다보았다. 헥토르를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막상 다시 만난 헥토르는 자신이 알던 헥토르가 아니었다.

자신을 전혀 알지 못하는…… 그저 겉모습만 똑같은 인간이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네놈들이 저지른 업보에 대한 책임은 져야겠지.”

요한은 전력으로 자신을 회복시킨 뒤,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무드산 평야로 날아갔다.

* * *

무드산 평야의 전투는 로한 제국의 우세로 점점 더 전황이 기울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로한 제국은 오랜 시간 준비한 대륙 통일 계획을 이용해 순식간에 북부 대륙의 병사들을 하나로 규합하는데 성공했지만 벨로반 제국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으아악!”

“도, 도망쳐!”

“저건 괴물이야!”

벨로반 제국 연합군의 결속력은 거미줄과 같았다. 그것은 남부 연합군 때부터 가지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였다.

“물러서지 마! 너희들이 도망치면 너희들의 나라가 무너진다!”

“가족들을 버릴 생각이냐!”

그나마 나라와 가족을 팔아서 이 정도로 버틴 것이지 그것도 이제 한계가 보였다.

사건의 발단은 10만의 제국군 최정예 병사들과 함께 등장한 로한 제국의 황제, 데카우스와 그의 근위 기사들 때문이었다.

병사 한 명, 한 명이 능히 열의 병사를 감당할 수 있었고, 기사들은 전원이 오러 유저 이상이었다.

무엇보다 데카우스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삼성검은 세 명이 모두 그랜드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실력자들이었다.

그에 반해서 벨로반 제국 연합군의 병사들은 더 이상의 추가 지원이 없는 상황. 그나마 최선을 다해서 버티고 버티던 호문쿨루스와 언데드 병사들 역시 한계가 찾아온 상태였다.

호문쿨루스야 절반 이상은 살아 있는 생명체였기 때문에 한계가 찾아올 수밖에 없었고 언데드 군대 역시 마찬가지.

그들에 대한 정보는 이미 로한 제국 측에서도 입수한 상태였기에 충분한 대비를 해 놓은 것이다.

“그나마 언데드 놈들이 골칫거리가 될 거라 생각했다만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전황을 살피던 데카우스의 평가에 곁에 있던 총사령관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은과 미스릴제 무구로 무장한 크루세이더들을 그쪽에 전부 배치해 두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을 이끌고 있는 대장이 쥴리에르 경이니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쥴리에르는 데카우스의 삼성검 중 한 명이자 크루세이더들의 대장이었다. 그가 착용한 무구는 통짜 미스릴제였으며 검에는 오리하르콘이 어느 정도 섞여 있었다.

그만한 무구를 갖춘 그랜드 오러 마스터가 상대하면 데스 켈러미티라 해도 크게 힘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설마 남부에 이만한 전력이 숨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군. 벨로반 왕국이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폐하.”

“아바타의 출현도 그렇고 이만한 군세를 순식간에 결집시킨 능력도 그렇고 예사 녀석들이 아니군. 선황들의 안배가 조금이라도 부족했다면 천 년의 대계를 코앞에 두고 내 손으로 무너트릴 뻔했어.”

데카우스는 진심으로 놀라고, 또 두려웠다.

사실 자신들의 숨겨진 전력이라면 대륙 정벌 정도는 식은 스프를 먹는 일이라 생각하며 선황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선황제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며 대륙에는 그 어떤 이변이 일어나도 절대로 이상하지 않다고.

그 모든 이변을 힘으로 제압하고 다스리기 위한 준비였음을 말이다…….

“아바타는 어찌 되었느냐?”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니 아마 황태자 전하의 계획을 눈치채고 그곳으로 달려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황태자 전하의 힘이라면 제아무리 아바타라 해도 능히 처리하시고 돌아오실 것입니다. 응?”

“왜 그러지?”

“이쪽으로 날아오는 강대한 기척이 느껴집니다. 때마침 황태자 전하께서 돌아오시는 모양입니다.”

총사령관은 저 멀리서 다가오는 거대한 기운을 느끼고 그것이 황태자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니, 오러를 다룰 줄 모르는 이들조차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만큼 이쪽으로 다가오는 거대한 기운이 뿜어 대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번쩍! 콰르릉! 콰릉!

“응? 저건…….”

‘뭔가가 잘못됐다!’

헥토르가 돌아왔다면 저 하늘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물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어둠은커녕 밝은 빛과 심장이 떨어질 것 같은 우레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은 누군가에게는 큰 절망이 되었고, 누군가에는 큰 희망이 되었다.

“아가씨! 저기 좀 보십시오! 그분입니다! 요한 대공께서 오셨다고요!”

정신없이 적을 베던 클레번은 빛이 밝아 오는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하지만 릴리안은 하늘로 시선조차 주지 않고 눈앞의 적을 베며 소리쳤다.

“당연한 일 가지고 허둥대지 말고 정신 차려, 클레번! 지금은 눈앞의 적을 베는 데 집중해라!”

‘그렇구나. 아가씨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던 건가? 그래서…….’

누구도 돌아오지 않는 요한을 욕하며 두려워 도망치는 와중에도 릴리안은 묵묵히 자리는 지키면서 검을 휘둘렀다.

클레번은 그녀의 끝없는 용기가 어디서 샘솟아 나오는 지 알 수 없었는데 이제 보니 그것은 요한에 대한 무한에 가까운 믿음 덕분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환호를 받으며 전장에 떨어진 한 줄기 낙뢰 속에서 마침내 요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을 포위하라!”

“절대로 폐하께 접근하게 둬선 안 된다!”

요한이 자신들의 진영으로 떨어지자 일당십을 자랑하는 병사들 수만과 오러 유저의 기사들이 필사적으로 요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이 기세를 피워 올리며 달려드는 모습은 흡사 사방에서 해일이 덮쳐 오는 듯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나노, 지금부터 내 반경 100미터 안으로 들어오는 놈들은 전부 찢어 버려.”

[네, 마스터.]

요한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낸 오리하르콘 무구들이 매서운 기세로 허공을 날아다녔다.

그리고 요한에게 접근하는 병사들을 그야말로 무참히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요한은 데카우스를 향해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병사들도 황제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들다 보니 결과적으로 요한이 걷는 길을 따라 피와 시체의 융단이 그가 걸어온 길을 덮었다.

“놈이 어딜!”

“타핫!”

황제를 지키던 삼성검 중 두 명이 참다 못 해 요한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하지만…….

“꺼져. 너희들이랑 놀아 줄 기분 아니니까.”

파지직!

요한은 달려든 두 사람의 공격을 피하며 순식간에 둘의 얼굴을 그러쥐더니 붉은 번개를 방출하였다.

퍼억! 퍼억!

그러자 제대로 반항조차 해 보지 못하고 수박처럼 터져 나가는 두 사람의 머리……. 그랜드 오러 마스터들의 최후 치고는 너무나도 허망하고 두려운 최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요한이 자신의 앞에 서자 데카우스는 요한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그 명성이 자자한 아바타로구나. 이름은 무엇이냐?”

“요한이오. 이런 식으로 뵙게 되어 유감입니다. 데카우스 황제.”

“네가 여기 있다는 말은 헥토르가 네게 졌다는 뜻이겠지?”

“헥토르는 아직 살아 있소. 그곳이 녀석의 죽을 자리는 아니었으니까.”

“나 역시 그러한가?”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에서 내리시오.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상관없지만 추천은 하지 않겠습니다.”

요한의 권유에 데카우스는 순순히 자신의 백마에서 내려 손을 내밀었다. 요한은 가지고 있던 멍에를 황제의 손과 발에 걸었다.

그리고 전장을 향해서 크게 외쳤다.

“전쟁은 끝났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 * *

드디어 전쟁이 막을 내렸다.

로한 제국의 항복으로 대륙을 남북으로 가른 전쟁이 막을 내렸지만 그 여파는 거대한 해일이 되어 대륙을 집어삼켰다.

사람들의 원망과 질타의 시선은 당연히 패자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시선의 정점에 그들이 있었다.

서걱!

와아아아아아아!

벨로반 제국의 황도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중앙 분수 광장.

그 한 가운데에서 로한 제국 황족들의 목이 잘려 나갈 때마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물론 자신의 차례가 다가온 헥토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저주받은 트리스탄의 망령 놈들!”

“지옥에나 떨어져 버려라!”

사람들은 헥토르를 향해 돌을 던지고, 병사들은 제지하는 척 하지만 크게 효과는 없었다. 돌에 맞은 헥토르의 머리가 깨져 흐른 피가 하얀 죄수복을 붉게 적셨다.

멍한 표정으로 단두대 앞까지 걸어간 헥토르가 단두대에 목을 가져다 댄 순간, 그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헥토르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앞에 서 있던 건 다름 아닌 요한이었다.

“날 되살려 준 신이 네놈의 최후를 즐겁게 봐 줬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징그럽게 긴 인연이었고, 죽어서도 만나지 말자. 잘 가라. 나의 오랜 친구이자 적이여.”

서걱!

요한은 단두대가 아니라 자신의 검으로 직접 헥토르의 목을 쳤다. 그렇게 목과 분리되어 바구니에 떨어진 헥토르의 얼굴은 허망함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마지막 황제의 단두대형을 끝으로 그렇게 로한 제국에 대한 징벌이 끝나자 벨로반 제국은 앞장서서 대륙 부흥에 전심전력을 쏟았다.

“이쪽에 인부들 좀 지원해 줘!”

“새참 들고 하세요!”

뚝딱뚝딱.

대륙 전체가 불이 붙었던 전쟁의 참상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산 사람들은 살아가야 했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그만큼 많은 노력과 투자가 필요했다.

벨로반은 그 모든 일에 앞장서서 대륙의 복구를 지원했다.

특히 가장 부족한 식량과 물자의 자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덕분에 북대륙에서도 벨로반 제국의 이름을 모르는 백성이 없을 정도였다.

그 덕분에 벨로반 제국의 명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져만 갔고…… 이제는 로한 제국을 대신하여 대륙 최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 회귀한 도련님이 살아가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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