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정기비무회(3)
자신의 강맹한 검격 앞에 저 얄팍한 검을 내미는 운호의 모습을 바라보며 장광은 확신했다. 저 비리비리한 검 따위는 감히 이 공격을 막을 수 없다. 그러니 이 녀석은 이제 이 검 앞에서 곤죽이 될 것이다. 봐줄 생각은 없었다. 저 비렁뱅이의 건방짐은 이미 도를 넘어섰다.
-퍽!!
응?
그렇기에 장광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자신의 검은 원하던 곳을 내려치지 못했고, 그의 검을 가로막던 녀석의 검은 대체 언제 자신의 손목을 두들긴 것일까?
아니, 백번 양보해서 백운호의 검이 그의 손목을 내려칠 수 있었던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저 슬쩍 가져다 댄 것 같은 비리비리한 공격이 장광 자신이 전력을 다한 공격을 이렇게까지 틀어놨다고? 전신의 힘을 이용한 한 번의 공격에 한정 짓는다면 그가 휘두르는 일 검의 위력은 삼대 제자 중 제일인 이준형 이상인데?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상황.
그렇기에 그는 생각했다. 그래, 그냥 우연이다.
상대는 고작 비렁뱅이 백운호다. 장광의 칼날이 백운호를 위협했다.
-부웅
그래, 보라. 감히 검을 맞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피하기에 급급한······.
-퍽
그의 팔뚝에 붉은 선이 생겨났다.
아니, 아직이다. 괜찮다. 한 방. 딱 한 방만 제대로 맞춘다면!!
* * *
화산 장문인 굉허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표정을 격해지는 비무에 대한 걱정이라 판단한 재무각주 굉진자 이진섭이 웃으며 말했다.
“장문인,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기껏해야 아이들 비무 아닙니까. 너무 위험해질 것 같으면 바로 말릴 수 있도록 이대 제자들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위험이라······.”
“네, 물론 광이가 아직 미숙하여 자기 힘을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하는 점은 있습니다만 그래봐야 무인검입니다. 염려하시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겁니다.”
장문인이 재무각주를 힐끔 바라봤다.
그럭저럭 장로 직함을 달 정도이기는 했지만, 본래 무공에는 크게 재능이 없는 사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를 못 알아봐서야. 아무래도 당분간 문파 업무보다는 무공 수련에 더 힘쓰는 것을 권해야 할 듯싶었다.
“저 운호라는 아이. 혹시 찬이가 신경을 쓰는 아이입니까?”
“네? 그럴 리가요. 찬이라면 지금 자기 앞가림 하기에 급급할 텐데······. 잠깐만요. 설마 지금 그 말씀은?”
굉허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맙소사. 알겠습니다. 제가 오늘 비무회가 끝나는 대로 바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 *
재밌다.
이것은 꿈속에서 태사조님과 검을 나눌 때와는 조금 다른 재미였다. 어쩌면 태사조님이 나를 상대할 때 이런 느낌이 아니셨을까?
녀석의 검을 보고 그 움직임을 읽는다. 너무나도 뻔한 질문.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너무나도 많았다.
어느 답을 선택할까?
그 순간 깨달았다.
태사조님의 질문이 주어진 수십개의 답안 중 오직 한 가지만이 정답인 질문이었다면 장광이 건네는 질문은 수십 개의 정답 가운데 내가 원하는 답 어느 것을 선택해도 상관 없는 질문이라는 점을 말이다.
몇 번의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나는 답변을 가장한 질문을 던졌고, 녀석은 질문처럼 보이는 응답을 했다.
아마 녀석은 자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가 선택한 질문들은 나의 유도에 의한 답변이나 다름없었다.
검을 주고 받았다.
나의 질문이 차곡차곡 쌓인다. 녀석의 답변 역시 차곡차곡 쌓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오롯하게 한가지 방향으로 향했다.
-쿵쿵쿵
심장이 빠르게 피를 내뿜었다.
머리가 뜨겁다. 녀석의 초식에 나의 초식을 쌓고, 거기서 도출된 결과에 다시 또 나의 초식을 쌓았다.
그리하여 한 수? 두 수? 아니다.
녀석의 답변은 단순했고, 변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변수가 존재하지 않는 단순한 과정이라면?
스물일곱 번.
예지는 아니다. 그것은 예측이자 유도였다.
열세 번째 초식에서 녀석은 아쉽게 나를 놓친다.
“쯧, 쥐새끼 같기는!! 요리조리 참으로 잘 빠져나가는구나.”
그리하여 열여섯 번째 초식에서 녀석의 오른손 검지를 나의 검이 두들긴다.
-뻑!!
제법 강력한 위력의 검격이었지만 차이 나는 내외공이 그 위력을 경감시킨다. 녀석의 얼굴에 고통이 잠시 머물렀다.
하지만 그 고통을 분노로 치환하여 더욱 거세게 나를 몰아붙인다.
열여덟 번째.
녀석의 검이 흔들린다.
약간의 변수다. 녀석의 외공이 내가 예상 한 것만은 못했던 것 같다. 열여섯 번째 공격에서 얻어맞았던 오른손 검지가 부어오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머릿속에 그려놨던 답안들이 조금씩 수정된다. 더 쉽다.
장광의 호흡이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나보다 높은 내공을 가졌지만, 그만큼 소모되는 양도 많았던 덕분이다.
나의 공격은 처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녀석의 뼈와 근육을 지켜주던 내공이 흔들린 다음이다. 잘 단련된 피부는 여전히 질겼지만, 그 아래를 단단히 받쳐주던 강철같은 근육은 그 단단함을 조금씩 잃기 시작했다.
-퍽!!
고통은 분노로 치환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에는 명백한 한계점이 존재한다. 분노로 치환되지 못한 채 축적되는 고통은 결국 다른 감정으로 치환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공포다.
장광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글쎄다. 내가 쥐새끼면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너는 뭘까?”
녀석은 아마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토록 멸시하던 나에게 공포를 느낀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좋다. 이자도 밀린 이자가 무섭듯, 공포 역시 쌓인 것이 한 번에 터지는 것이 더 무서운 법이니까.
나의 검이 녀석의 몸 곳곳을 두들겼다.
확실히 녀석의 외공은 경지에 이르렀다. 피부가 질기기 짝이 없다. 아무리 무인검이라지만 검으로 몸을 긁었음에도 찢긴 옷감 아래 생채기 하나 나지 않는다.
하지만 검이 주는 충격이 근육과 뼈를 흔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실핏줄이 터져나가며 시뻘건 멍들이 몸 곳곳에 생겨났다.
스물네 번째.
이제 녀석의 검에서 처음의 그 폭발적인 기세는 완전히 사라졌다. 남은 것은 그저 오기뿐.
그렇기에 나의 검에는 여유가 넘쳐났다.
비무를 관리하는 사숙 중 하나가 고민하는 모습인 눈에 들어왔다.
이건 최초의 예상보다 두 초식이나 빠르다.
하지만 아직이다.
장광은 아직 자신을 잠식하고 있는 감정이 공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는 곤란하다. 저잣거리의 생활을 통해 얻은 교훈 가운데는 어설프게 밟아놓는 것은 아예 안 밟아놓느니만 못하다는 것이 존재한다.
만약 상대를 밟을 것이라면, 감히 다시는 덤빌 엄두도 내지 못하게 그 골수까지 공포를 심어줘야만 한다.
호흡을 가다듬고 지난 삼 년간 부지런히 쌓아온 내공을 운용했다.
그 양은 얼마 되지 않았고, 기맥 역시 부실했지만 충분한 시간을 들여 끌어모은 힘은 상당했다.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파괴력.
장광이 휘두르는 검에는 여전히 한 방만 제대로 걸리면 자신이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담겨있었다. 이토록 두들겨 맞는 와중에도 그런 믿음을 유지하다니. 어떻게 보자면 대단한 놈이기는 하다.
단번에 공포라는 감정을 느낄 만큼 막대한 고통.
그리고 최소한 몇 주는 두고두고 오늘의 비무를 떠올릴 만한 부위.
나의 검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