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12화 (12/288)

12화

정기비무회(5)

강아현의 검이 움직였다.

이전 가볍게 손을 섞었을 때와는 달랐다.

장광의 실력은 분명 삼대 제자 가운데서도 최상위권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강아현은 아예 급이 다르다. 그녀는 사실상 이준형과 함께 삼대 제자의 최강을 다투는 무력의 소유자다.

검에 실린 예기가 날카로웠다.

분명 내가 든 검처럼 날이 서지 않은 무인검이지만, 왠지 저 검은 달라 보였다. 앞을 가로막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베어버릴 것 같은 예기가 느껴진다.

장광과는 다른 의미에서 함부로 검을 부딪칠 수 없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이 녀석의 검에는 최소한의 방향성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그것은 단순히 ‘나 너 때릴 거다!!’ 라고 떼나 쓰던 장광의 검과 다르게,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나의 검을 유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물론 상대의 검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예측할 수 있다면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야 했다. 실제로 장광의 경우가 그러했다.

내가 가장 많이 상대해본, 몽원경의 태사조님 같은 경우, 싸움이 어려운 것은 태사조님의 수가 종종 나의 예상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태사조는 나와 비슷한 수준의 내공, 그리고 납매검의 범위 안에서 나를 상대한다. 그렇기에 태사조와의 싸움은 마치 바둑과도 같았다. 서로의 수를 파악하고, 종종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수법을 내민다.

물론 마지막은 항상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검을 들이미는 것으로 끝을 내지만 말이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날카롭다.

몸을 틀어 검을 피한다.

이 녀석의 의도대로다.

강아현은 조금 전 싸웠던 장광과도 그리고 태사조님과도 달랐다.

녀석은 최소한의 수 싸움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몽원경 속 태사조님과의 수 싸움과는 달랐다. 그곳의 태사조님이 나와 동등한 조건에서 수를 주고받는다면 강아현은 자신의 우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바둑으로 치자면 나는 돌을 하나 놓는데 녀석은 한 번에 두 개씩 돌을 놓는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나의 몸 상태가 이상할 정도로 좋다는 점이었다.

이건 그저 단순히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강하게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이건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

강아현의 들숨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세한 틀어짐. 그녀의 검이 쏘아졌다. 속임수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속임수다. 본래라면 피해를 감수하고 수를 이어나가야 한다.

그래, 반 시진 전. 장광과 싸우기 전의 나였다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감각 자체가 다르다. 세상이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강아현의 움직임을 조금 더 빠르게, 그리고 더 선명하게 읽어낸다. 녀석이 상정한 나의 움직임은 바로 직전 장광과 싸우던 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더 빠르고, 조금 더 강하며, 조금 더 예민했다.

이 차이가 그녀의 계산을 깨트린다.

-부웅

하지만 아직이다.

부족하다.

이대로 흘러간다면 결국 그 끝은 나의 패배다.

괜찮을까?

그래, 물론 강아현은 장광과 다르다. 내가 굳이 기를 쓰고 그녀를 이길 이유는 없다. 게다가 그녀에게 패배하는 것은 그리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아니!! 천만에!!’

하지만 나의 마음이, 나의 감정이 그 수많은 합리적인 핑계들을 거부했다.

이를 악물었다.

더 빠르게.

더 유연하게.

더 격렬하게.

전신의 근육을 쥐어짠다. 관절이 비명을 지르고 뼈가 삐거덕댄다. 본래의 나라면 진즉에 쓰러졌어도 이상하지 않은 격렬한 동작들이었다.

하지만 할 수 있다.

평소 조금만 움직여도 신기루처럼 사라지던 기해혈의 쥐꼬리만 한 내공이 끊임없이 나의 몸을 순환하며 그 모든 동작에 힘을 보탠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점점 늘어난다.

강아현이 이를 악물었다.

-쾅!!

그녀의 검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경력이 나의 오른팔을 흔든다. 괜찮다. 상정한 범위 이내다. 그 충격을 그대로 활용하여 강아현의 다음 공격 범위를 벗어났다.

-후우

한 번의 날숨으로도 탁기가 다 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이 한 번의 호흡으로 나의 승률은 삼 푼쯤 올라갔다. 강아현 역시 그것을 읽었을까?

그녀가 빠르게 나에게 쇄도했다.

납매검.

화산의 기본 검공.

입산한 이후 무려 3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나는 이것을 수련해왔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이것을 완벽하게 숙달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는 검형에 있어서만큼은 삼대 제자는 물론이거니와 어지간한 사숙들보다도 더 능숙하게 펼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몽원경이라는 곳에서 증무 태사조를 만난 이후 그 자신감은 완벽하게 박살 났다. 납매검에는 내가 아직 알지 못했던 수많은 활용이 존재했고 그것을 하나하나 깨달아가는 것은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녀의 검술이 변했다.

더 화려하게. 그리고 더 강력하게.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납매검이 아니다.

그래,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녀는 화산파라는 집단을 구성하는 조직 가운데 수위를 다투는 조직인 옥녀봉 홍매당 당주의 딸이다. 그녀가 보통의 삼대 제자들처럼 납매검만을 익혔을 리 만무했다.

순식간에 상황이 바뀌었다.

이전까지의 비무가 그녀가 두 점을 내려놓는 바둑이었다면 이제는 숫제 바둑알 대신 장기알을 내려놓는 수준이다.

머리가 뜨끈하게 달아오른다.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 파훼할 수 없는 공격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그녀의 공격을 상대하는 것뿐이다. 이래서야 결과는 뻔하다.

결국 그녀가 그려낸 방향대로 흘러갈 뿐이다.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어떻게?

모르겠다.

그렇다면 일단은 버티자.

일 합, 이 합, 삼 합.

분명 무인검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검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는 예리한 생채기가 생겨났다. 어느새 나의 도복 곳곳이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버텨낸다. 결정적인 공격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붉게 달아올랐다.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따라 이상할 정도로 기운을 뿜어내던 기해혈이 뻐근하다.

슬슬 한계에 도달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검은 여전히 결정적인 순간으로 나를 밀어 넣지 못했다.

물론 이대로 간다면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애당초 이렇게 버티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내가 몽원경에서 사조님의 검을 얼추 다 파악할 수 있었던 것도, 장광과의 비무에서 녀석의 검을 손쉽게 파훼할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이전까지 강아현과의 비무를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까지도. 그 모든 것의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구사하는 검술이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납매검이었기 때문 아니었나?

헌데 왜?

대체 어째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내가 버틸 수 있는 거지? 나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한 강아현을 상대로?

생각한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머리가 뜨끈하다. -쿵쿵쿵, 심장에서 시작된 혈류의 흐름이 머리에서까지 느껴진다.

그녀의 검이 움직였다. 손목의 움직임과 호흡 그리고 시선.

나의 몸이 빠르게 반응했다.

예리한 파공음이 귓가를 스친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손목의 움직임.

호흡.

시선의 방향.

힘의 작용점. 방향성. 무게중심.

아니, 중요한 것은 고작 그 정도가 아니다. 상황을 결정짓는 정보들은 그의 수십 배, 아니 수백 배를 넘어선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들이다.

그랬다.

납매검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 정보들의 일부, 아니 그 일부의 아주 작은 조각에 의지하여 그녀의 검을 피해냈다.

사고가 확장됐다.

그렇다면 만약 내가 이 파편화된 정보들을 하나로 꿰어낼 수 있다면?

왈칵 코피가 쏟아진다. 기해혈이 뻐근함을 넘어 아려오기 시작했다. 그래, 그런 건 애당초 무리다. 촌각의 시간. 대체 어떻게 그 모든 것을 하나로 엮어낼 수 있을까? 사람의 힘으로 그런 것이 가능할 리 만무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네가 알고 있는 납매검(臘梅劍)이다.

헌데 어째서였을까?

그 순간 나는 증무 태사조님의 그 말씀이 떠올랐다.

그것 역시 내가 알고 있는 납매검이다?

그리고 마침내 강아현의 검이 나에게 오직 패배라는 한 가지의 답변만이 강요된 질문을 던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