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14화 (14/288)

14화

검종지보(2)

아니, 그보다 공야찬 사숙이 본래 이런 사람이었나?

내가 알고 있는 사숙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보신주의자의 끝판왕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서는 뭔가 비밀을 숨긴 고수의 풍모가 느껴졌다.

게다가 검종지보는 또 무슨 말인가.

대충 어감상 검종의 보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 같긴 한데.

강아현도 그렇고, 대체 검종이 뭐란 말인가.

대충 상황을 봤을 때 증무 태사조님이 구사하는 그 검술의 활용을 검종이라 칭하는 듯싶긴 한데, 그게 뭐라고 이렇게들 난리일까?

궁금증이 밀려온다.

뭐, 어떻게 생각해보면 오히려 기회일지도 모른다. 대체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할 기회 말이다.

“자, 잠깐만요. 사숙님. 검종지보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시치미 뗄 생각은 하지 말아라. 하재철과의 대련에서부터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검종지보까지 손에 넣었을 줄이야.”

“사숙님, 정말 도무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내 어깨를 움켜쥔 공야찬 사숙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아악!! 사숙님!! 사숙님!! 제발 무슨 일인지 제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해 주세요. 제가 대체 왜 사숙님께 뭔가를 숨기겠어요.”

“네가 손에 넣은 것이 검종지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아니, 대체 검종지보가 뭐길래 이러시는 거에요. 강아현도 그렇고. 검종이니 기종이니. 설마 제가 화산이 아닌 외부의 무공을 익혔다고 의심하시는 건가요? 맹세코 제가 익힌 것은 모두 화산의 무공입니다. 전 화산파에 입문하여 가르쳐 주시는 대로 배웠을 뿐이에요!!”

“흥, 계속 그렇게 시치미를 뗄 생각이냐?”

“시치미라니요. 사숙님도 제 상황, 그리고 제 사정 다 아시잖습니까. 제가 얼마나 간절하게 화산 본산에 남고 싶어 하는 지를요. 그런 제가 대체 왜 외부의 무공을 익히겠어요.”

내 말에 거짓은 없었다.

사실 꿈속에 우화등선했다고 알려진 태사조가 나타나 검술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 말이나 되겠는가?

그리고 공야찬 사숙 역시 그런 내 상황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어깨를 조여오던 공야찬 사숙의 손아귀가 살짝 느슨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의심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솔직하게 말해라. 강아현과의 비무에서 사용했던 그 마지막 초식. 화산의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는 알아볼 수 있다. 그건 아직 매우 어설펐지만 분명 검종지보였다.”

“검종지보라고요?”

증무 태사조님이 나에게 내밀었던 숙제다.

헌데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물론 나에게는 대단한 깨달음이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납매검을 활용한 기술에 불과하다. 실제로 난 강아현을 제대로 이기지도 못했다.

게다가 아무리 공야찬 사숙이 이런저런 욕을 먹는 사람이라고 해도 화산파의 이대 제자이며 무려 검술 총론의 강의를 담당할만한 고수다. 헌데 그런 고수가 이렇게까지 군다고?

“하지만 그건 그냥 납매검일 뿐인데······.”

“납매검이라고? 그게?”

그것은 내가 처음 증무 태사조님께 그것 또한 납매검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와는 다른 반응이었다.

내 어깨를 잡고 있던 사숙의 손아귀에 스르륵 힘이 풀렸다.

“그래, 분명 그렇다면 말이 되는······. 아냐. 하지만 어떻게. 그렇다면 대체 왜 어째서 이 아이가?”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횡설수설하는 공야찬 사숙.

그래, 바로 지금이다.

“사숙님 대체 검종이 뭐길래······.”

“기종과 함께 화산을 구성하는 두 갈래의 커다란 길 중 하나다. 뭐 지금에 와서는 두 갈래의 커다란 길이라고 하기에도 우스워졌지만.”

“두 갈래의 커다란 길이요?”

“그래, 두 개의 대로. 선심후수(先心後手)의 기종과 검술일성(劍術一成)의 검종.”

선심후수의 기종과 검술일성의 검종?

분명 선심후수라면 익숙하다. 그것은 우리 화산파의 무공을 관통하는 근본이념이니까. 하지만 검술일성이라니. 그건 듣도 보도 못한 말이다.

“자, 잠깐만요. 사숙님. 우리 화산 무공의 요체는 선심후수 아니었나요? 그런데 검술일성이라니요.”

“선심후수라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 화산 무학의 핵심은 결국 검에 있다. 오직 검을 깨닫는 사람만이 도를 얻을 수 있어. 이는 140년 전 우화등선하신 증무진인 목운평 태사조님으로 증명되지.”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결정 짓는 것은 힘의 크기와 규모잖습니까. 백운 태사조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노련한 고양이라도 결코 황소를 당해낼 수 없다고요.”

공야찬 사숙이 웃었다.

“그래, 고양이는 소를 당해낼 수 없지. 하지만 어디 사람이 그와 같다더냐? 힘의 크기와 규모는 이겨낼 수 없다고? 그렇다면 너는 대체 어떻게 장광을 이긴 거지?”

“그······, 그건.”

“게다가 애당초 화산의 주류는 기종이 아닌 검종이었다. 140년 전 목운평 태사조님께서 갑작스럽게 우화등선하시지만 않았더라도 그건 변하지 않았겠지.”

“네? 갑작스러운 우화등선이라고요?”

“그래, 검종의 대종사셨던 목운평 태사조님께서 그렇게 가시는 바람에 수많은 검종의 비기들이 실전됐다. 그것만 아니었더라도······.”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증무 태사조님께 배우는 것들이 그 실전됐다는 검종의 비기들인 건가?

잠깐의 딴생각.

정신을 차렸을 때 나를 바라보는 공야찬 사숙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것을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열정? 욕망?

뭐라고 콕 찝어 규정짓기 어려운 감정들이 그 뜨거운 시선에 넘실거린다.

“백운호. 화산에 남는 것이 네 목표라고 했었지?”

“네. 그거야 당연히······.”

“좋다. 그 목표 내가 도와주지.”

“네? 저를 도와주신다고요? 뭘 어떻게?”

그가 나의 손을 움켜쥐었다.

“내가 네 사부가 되어주마.”

* * *

“마지막에 그 아이를 데리고 간 것이 찬이었지요?”

“네. 그렇습니다.”

“그 아이 검을 움직이는 것이 찬이가 하루 이틀 공을 들인 건 아닌 듯하던데요.”

“그러니까 그것이 아무래도 남들 눈을 피해 몰래 가르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몰래 가르쳐요?”

“그게, 최근 굉무 사형도 그렇게 가고 찬이가 워낙에 고분고분하여서 제가 제대로 신경을 못 썼습니다. 죄송합니다.”

화산 장문인 굉허자가 잠시 침묵했다.

“장문 사형. 제가 따로 찬이를 찾아볼까요?”

“재무 각주님이 찬이를 찾는다고요? 허허, 이제 와서 뭘 어쩌시려고요.”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애당초 뜬구름을 잡는 것은 그 녀석 하나로 족하지 않겠습니까. 앞길이 창창한 삼대 제자까지 그렇게 끌어들이는 것은 곤란하지요.”

굉허자가 잠시 앞서 있었던 비무들을 복기했다.

“찬이가 그 아이를 개인적으로 얼마나 지도를 했다고 보십니까.”

“드러내놓고 가르치는 기미는 없었으니······, 아마도 2년은 족히 넘지 않았을까요?”

“2년이라······.”

굉허자의 머릿속에 조금 전 백운호가 그려졌다.

왜소한 체구. 그리고 부족한 내공.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냥 내버려 두세요.”

“네? 그냥 내버려 두라고요? 하지만······.”

“보아하니 삼대 제자들 가운데 가장 자질이 떨어지는 아이를 고른 것 같은데 그 정도면 찬이도 그 나름대로 선을 지킨 것 같군요. 게다가 그 아이의 무공도 결국 화산의 무공입니다. 아예 절전시킬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장문인의 갑작스러운 변덕에 굉진자가 얼른 맞장구를 쳤다.

“좋은 말씀이십니다. 뭐, 검종의 폐해가 크다고는 하지만 꼴이 저래서야 그것에 넘어갈 사람도 없겠군요.”

“맞습니다. 그보다 이번 기수의 삼대 제자들 가운데 발군이라던 재무 각주님의 손자는 어디 있습니까?”

“아, 저기. 저기 이제 올라옵니다.”

그래. 이 멍청한 녀석아. 그 정도면 됐다. 나서지 말아라. 그렇게 쥐 죽은 듯이 살아라. 그렇다면 그 명맥만은 유지하도록 해주마.

화산파의 장문인 굉허자가 자신의 불쌍한 사질에게 작은 관용을 베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