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166화 (166/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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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잘못인가(14)

“쯧, 어린놈이 살 거 다 산 늙은이들처럼 구는 꼴이라니. 아이야 그런 초탈한 자세는 나 같이 볼 거 못 볼 거 다 보고 이제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들이 보여줄 때나 어울리는 법이다. 어릴 때는 원래 구르는 나뭇잎에도 꺄르르 웃어주고 사소한 일에 목에 핏대도 좀 세워주고 내 손녀처럼 예쁜 아이를 보면 머리 대신 아랫도리로 생각도 좀 하고 그래야지.”

“······.”

운호의 뜨악한 표정에 영보가 잠시 헛기침을 내뱉었다.

“크흠······. 그, 마지막은 취소하도록 하마. 아무튼 놀라지 않는 걸 보니 이미 다 알고 있었구나. 내 눈을 속이고 기절한 척을 할만한 수준도, 그럴만한 상황도 아니었으니. 그 검이더냐? 허허, 참. 그 조악한 품질에 비해 참으로 놀라우리만큼 선명한 영성이로구나. 보통 그 정도로 오래된 검이라면 그 혼백 또한 흐려지기 마련이거늘.”

무언가 알고 있다.

역시나 이전의 혼잣말로도 짐작했지만 아무래도 영보는 지금 현재 파검의 상태에 대하여, 그리고 정답과 같은 검에 대하여 뭔가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운호가 질문했다.

“혹시 이런 검들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십니까?”

“잘 아느냐고? 그래, 소싯적에 망할 황룡검에 워낙에 크게 데였던 터라 아주 잘 알고 있지.”

“황룡검이라면?”

“뭐, 네 또래의 무림인이라면 모를 수도 있겠지. 태조께서 건국기에 사용했었다고 ‘주장’하는 황실의 수호검이다. 내가 보기엔 제국을 건국하고 여기저기서 좋은 거 잔뜩 끌어다가 만든 검 같다만······. 하여간 사람인지, 아니면 정말 어딘가의 영수라도 되는지. 무언가 기이한 것이 머무는 검이다. 마치 막야검처럼 말이다.”

운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황룡검에 대한 설명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막야검이라니. 이건 마치 그 검을 직접 봤다는 말 같았다.

“막야검이라면? 간장막야의 막야검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명공 간장이 만들었다는? 설마 그걸 직접 보신 겁니까?”

“그래. 막야검만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내가 직접 봤지. 여기저기서 ‘이게 진짜다.’ ‘아니다, 내 것이 진짜다.’ 떠들고는 있지만 그거 죄다 사기다. 진짜 막야검은 내 아버지, 전대의 대장군께서 구해다가 황제에게 바쳤다. 아마 지금쯤 황실 보물고에서 먼지나 쌓여가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막야검이라면 전설적인 보검 아닙니까. 그걸 그냥 보물고에 박아둔다고요? 아무리 옛날 검이라고 해도 중원의 검이면 제 정답보다 사용하기 훨씬 편할 텐데요?”

“그래, 확실히 너의 그 검은 무게중심도 그렇고. 일반적인 중원의 검술과 영 어울리지 않아 보이더구나. 아마도 막야검 쪽이 그런 면에서는 더 나을 것이다.”

“허면 왜?”

“네가 말했던 것처럼 옛날 검이니까. 아, 더 정확히 말하자면 너무 옛날 검이기 때문이라고 해야겠구나.”

“너무 옛날 검이요?”

간장과 막야라고 하면 무려 이천 년 전. 전국 시대의 명검이다. 지금 운호가 사용하는 정답보다 아주 약간 앞선 시기다. 하지만 시간으로는 약간이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간장 막야, 그리고 정답 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그래, 그거 검 자체가 굉장히 좋은 검이기는 한데······. 청동검이다.”

“네? 청동검이요?”

“물론 일반적인 청동검과는 조금 다르다. 표면에 기이한 처리가 되어 있어서 벌써 이천년 전 검임에도 불구하고 예기가 살아있지. 강도 역시 어지간한 철검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제대로 정련된 강철에는 안되는군요.”

영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운호 역시 경험했던 일이다. 남궁철이 선물했던 그 명검. 순수하게 검의 성능만으로 봤을 때는 정답이 따라가기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운호가 새로운 검을 구하지 않은 것은 단지 정답에 깃든 파검의 백이 워낙에 대단한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헌데 만약 그런 명검도 아니고 이전에 운호가 사용했던 화산검 정도의 강도도 이겨내기 힘든 검이라면? 아무리 거기 깃든 백이 대단한 도움을 준다고 해도 그건 사용하기 힘들다.

“게다가 황룡검과 다르게, 너무 오래된 검이라 그런지 희미해. 뭐, 공 늙은이가 말하기를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그건 귀신도 마찬가지라 그렇다고 하더군. 그런 의미에서 네 놈의 검은 참 특이하단 말이지. 연원을 알기 힘든 형태지만, 그래도 그 검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신검 소리를 들을만한 검이었을 테고, 그렇다면 재질로 유추해봤을 때, 적어도 천년은 더 된 검이라는 소린데. 참으로 팔팔하단 말이지.”

운호가 답하는 대신 물었다.

“공 노인이라고 하심은?”

“아, 저기 남경에서 철방을 크게 하는 영감이다. 본인 말로는 아직 제국이 건국되기 전에 태조의 옆에서 달자들의 목을 베었다고 하더구나.”

“네? 제국 건국 전 사람이라면 올해로 백 세가 넘으셨단 말씀이십니까?”

“본인 주장으로는 그렇다. 나도 40년 전에 처음 봤는데, 그때도 영감이었으니 적당히 허풍이 섞였다고 쳐도, 적어도 제국이 건국되던 시기의 사람은 맞는 것 같다.”

남경의 철방. 그리고 공노인.

운호가 머릿속에 그 단어들을 깊게 새겼다.

한참을 침묵하던 파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남경에 큰 철방을 하는 공 노인이면 만련공방인가?

‘아십니까?’

-뭐, 저 작자가 아는 것과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제법 양질의 무구를 저렴하게 대량 생산하는 곳이다. 주문 제작도 해준다고는 들었는데 품질은 좋은데, 가격이 터무니없이 바가지라고 들었다.

영보가 물었다.

“지금 방금 검과 감응했구나.”

“네!?”

“그렇게 놀란 표정 지을 필요 없다. 갑자기 입을 다물고 표정에 그런 변화를 보이는데 눈치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짐작해야지.”

눈치가 조금? 과연 지금 이걸 그런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을까?

입에서 언어로 내뱉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주고받는 대화다. 그 시간은 찰나. 게다가 얼굴의 표정 역시 무표정을 유지했다.

“어쨌거나 나에게 크게 신세를 졌으니 그걸 갚긴 갚아야겠지?”

“신세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영보가 운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흥, 이제 와서 잡아떼시겠다? 그 검에게 다 듣지 않았더냐. 내가 너를 구해줬다는 것을.”

“물론입니다.”

“헌데······. 응?”

한참 말을 이어나가려던 영보가 운호의 순순한 인정에 잠시 당황했다.

운호가 영보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장군님께서 저를 구원해주신 것은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제가 제 부하인 왕효와 장당을 구해야 했고, 그것이 그들에게 신세를 입힌 게 아닌 것처럼, 대장군님 역시 대장군님의 부하인 저를 구할 것이 저에게 신세를 입힌 것은 아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듣고 보니 확실히 맞는 말은 맞는 말이다.

물론 운호는 자신이 보낸 부하들을 자기가 직접 구출하러 간 것이고, 운호가 위기에 빠진 것은 원인을 살펴보자면 그 상관인 수색단장의 잘못이지만 결국 그 수색단장의 한참 윗사람이 바로 영보 자신이다.

물론 여기서 ‘요즘 업무는 아들이 다 보고 있고, 나랑은 아무 상관없다.’ 라고 말을 할 수도 있긴 했지만, 이 어린아이와 말싸움 한번 이겨보자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또 너무 추하지 않은가.

“허면 목숨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러니까 그래 승진!! 승진에 내가 도움을 주지 않았더냐.”

“제가 주변에 이번 일의 공로가 장군께 있음을 알리지 않은 것도 제가 사사로운 공을 탐해서가 아니라 장군의 어떠한 의도가 있음을 짐작하고 조용히 있었던 것뿐입니다. 지금이라도 주변에 그것을 알려야 한다고 하시면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뭐 또 꼭 그럴 필요는 없고. 사실 쥐새끼 같은 놈이 도망갈 엄두도 못 내고 그렇게 죽었으니 네 공이 아예 없다고 볼 수도 없긴 하고······.”

영보가 곤란한 표정으로 턱을 긁적였다.

이래서 요즘 아이들이 참 되바라졌다는 것인가? 분명 나 때만 하더라도 어른이 이야기하면 그냥 고개 숙이고 예, 예. 했던 것 같은데. 하지만 그래도 신기하게 이렇게 따박따박 대꾸하는 녀석이 밉지는 않았다.

그래, 아무 말 못 하고 웅얼거리는 놈보다는 어딜 가건 이렇게 딱 부러지는 놈이 낫다.

“그래, 뭐 좋다. 그렇다면 네가 나에게 신세를 갚는 것이 아닌. 네가 나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으로 하자.”

이번에는 운호가 놀랐다.

영보는 귀한 사람이다.

관을 대표하는 초고수인 사상의 일원이고, 청해대장군부의 수장이며 운호의 인생보다 몇 배는 긴 시간을 이곳에서 제국의 수호신으로 살아왔다.

자리는 사람을 만들고, 그렇게 부여된 권위는 사람의 행동 자체를 그렇게 변화시킨다. 영보는 군부의 수장이다. 그리고 그 말은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보다는 명령내리는 것이 더 익숙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헌데 부탁이라니.

대장군의 입에서 나올 단어로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놀람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영보가 말한 부탁이라는 것이 운호를 한 번 더 놀라게 했다.

“반년. 반년 이내로 그때 그 검술을 완성해라.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내 기꺼이 너를 도와주마.”

영보만한 고수가 무공을 지도해주겠다는데 그게 부탁이라고?

운호가 여기서 팔자에 없는 무관 노릇을 하는 것도 영무결에게 일주일에 한 번 잠깐씩 무공을 지도 받을 수 있기 때문 아니던가.

헌데 영보라면 영무결과 동급, 어쩌면 영무결보다 한 수 위의 고수다. 이건 오히려 운호 쪽에서 영보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게 다는 아니시겠죠?”

“아니, 그게 다다. 네 말대로라면 내가 부하인 너를 구하는 것이 대장군으로써의 마땅한 의무였으니, 네가 포달랍궁과 장족 놈들을 상대로 청해성의 안위를 지키는 것은 대장군부의 장군으로써 당연한 의무 아니겠느냐. 그 당연한 의무를 굳이 이야기 할 필요는 없겠지.”

반년.

그리고 마땅한 의무.

운호는 영보의 말에서 그가 짧게는 반년 안에 포달랍궁과 커다란 충돌을 예상함을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궁금한 것은 한 가지.

“왜 저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전 이제 여기 온 지 반년밖에 안 됐습니다.”

“그거 아느냐? 난 내 아들이 참으로 자랑스럽다. 청출어람 청어람이라는 것이 뭔지를 너무 잘 보여주는 아들놈이거든.”

노인들 특유의 동문서답.

운호가 일단 그 말에 동조했다.

“네, 좌장군은 일세의 영웅이시죠.”

“그래, 이야기에 따르자면 태조 황제인 목종께서도 마찬가지로 참으로 자신의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하더구나. 헌데 말이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목종보다는 태조 쪽이 더 끌리는구나. 물론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고, 이만하면 잘 해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이 재밌게 바뀌어버렸구나.”

이번 일로 포달랍궁의 초절정 고수가 하나 사망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어려움은 참으로 많을 것이다. 적은 당장 눈앞의 적인 포달랍궁만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거기에 매달려 봐야지. 그렇지 않으냐?”

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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