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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역대급 천재-213화 (213/288)

213화

다시 화산으로(1)

과거 종남의 벽운 도사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이후 현무는 아주 오랜 시간 수련에만 매진했다. 심지어 그는 아직 두 번째 제자도 받지 않았는데, 통상적으로 무(武)라는 도호를 받은 제자들이 최소한 세 명의 제자를 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덕분에 이준형은 현무 도사의 유일한 제자로 아주 오랜 시간 그와 함께 수련을 이어갈 수 있었다. 삼대 제자의 두 번째 기수를 지나 세 번째 기수까지. 어마어마한 소문이 강호를 휩쓸고 화산파에 당도했을 때도 그들은 오직 수련에 열중했다.

홀로 인급의 마존 열넷을 참했다는 소문부터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포달랍궁의 장로를 단독으로 처치했다는 소문.

그리고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 당대의 활불을 참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소문까지.

하나하나가 모두 현실성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고작 약관을 갓 넘긴 나이에 초절정이라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던가.

하지만 이준형은 어쩌면 백운호라면? 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목격했던 그 천재성. 그리고 검종의 무공이 갖는 특별함. 게다가 고작 열일곱이라는 나이에 절정에 올랐던 그 터무니 없던 성장 속도까지······.

현무 도사는 말했다.

“우마가 있다. 소는 느리지만 꾸준히 가고, 말은 빠르지만, 쉽게 지친다. 당장 말이 멀리 간 것 같으나 시간이 지난 이후 누가 더 멀리 갔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진정 경계해야 할 것은 소가 빨리 달린 말을 보고 그것을 따라가겠노라 무리하여 달리는 일이다.”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저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거늘. 문시진인, 문시진인.”

자하기공은 천하를 통틀어 견줄 것을 찾기 힘든 신공이다. 또한 이준형은 광양지체를 타고나 자하기공에 가장 어울리는 체질이라는 평을 듣는 인재다. 거기에 최고의 스승과 함께 십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고련 했다.

그리고 영약.

화산파에 존재하는 영단은 두 가지. 매화신단과 자소단이다. 그 중 전자인 매화신단은 그 복용자들이 모조리 초절정의 경지에 오름으로써 그 효능을 입증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화산파가 배출했던 마지막 천하제일인 만리우보 백운진인이 기연으로 구해온 천고의 영약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영단이었다.

공청석유(空靑石油), 만년설삼(萬年雪蔘), 천년균사(千年菌絲), 백안금구(白眼金龜), 그리고 용혈(龍血).

그 가운데 한 가지만 하더라도 인세에 보기 드문 귀물들이 무려 다섯 가지나 들어갔다. 그것을 다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봐야 했다.

매화신단을 제외한다면 유일하게 남은 것은 자소단이었다. 하지만 본래 자소단은 그리 뛰어난 영약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었다. 화산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무당이나 소림만 보더라도 소청단과 소환단 외에 태청단과 대환단이라는 영단 비방이 존재했으며 십 년에 한 번 정도는 그 단환들을 꾸준히 생산하고 있었다.

심지어 화산금정 강진이 홍매당의 수석 연단사가 되기 전에는 자소단의 약효가 소청단이나 소환단보다 훨씬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강호의 인식이었을 정도다.

물론 지금에야 자소단, 소청단, 소환단 가운데 자소단을 으뜸으로 친다지만, 어쨌거나 여전히 태청단이나 대환단과 비교하면 그 약효는 크게 부족하다.

“사부님 이것은?”

“예전에 사조님께서 주셨던 영단이다. 너도 직전에 먹었던 영약의 반감기도 끝난 것 같고, 새로운 영단을 복용할 시기가 된 것 같구나.”

“네? 하지만 이건 사부님께 더 필요하신······.”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절정의 경지를 앞에 둔 어느 날.

현무 도사가 준형에게 목갑 하나를 내밀었다. 유지에 잘 쌓여있는 그 목갑에는 반으로 쪼개진 영단이 들어 있었다.

“오래전, 백운 진인께서는 천고의 영약을 구해오셨었다. 당시 일대 제자인 백자 배분과 이대 제자였던 허자 배분의 사조님들께서는 오랜 시간 고민을 하셨지. 그리고 그 영약을 삼대 제자들인 청자 배에 주기로 결정하셨다. 지금 나 역시 그와 같다.”

“허나!!”

“만약 홍매당이 지금과 같지 않았더라면 나도 진즉에 이 약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영약이 필요한 시점마다 꼬박꼬박 자소단이 지급됐으니까.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강호에 흐름이 달라졌다. 너의 동기인 운호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또한, 너는 광양지체로 천하에 보기 드문 체질을 타고 태어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무 도사가 자신의 경지를 드러냈다.

상서로운 자색의 서광이 그의 주변을 은은하게 비춘다. 이야기로만 전해오는 신선들이 산다는 자하궁의 기운이 그와 같을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이준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사부님!! 대공을 축하드립니다!!”

자하신공의 팔단공.

즉 강호에서 말하는 초절정의 경지다. 마침내 화산파에 또 하나의 초절정 고수가 탄생한 것이다. 그것도 고작 쉰이 조금 넘은 나이에.

“약간의 깨달음을 얻고 나니 알겠더구나. 처음 걸음마를 떼는 아이에게 보행기는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미 잘 달리는 아이가 더 잘 달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보행기가 아닌 부단한 노력이라는 것을. 이 영단은 아직 절정에도 이르지 못한 너에게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럴 리가 없었다.

물론 상승의 경지로 갈수록 자하기공 역시 깨달음이라는 것이 중요시되기는 하겠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공이다. 심지어 이런 천고의 영단은 그 ‘깨달음’이라는 것의 단초가 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이준형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래, 얼른 복용하도록 해라. 내가 도와주겠다.”

반쪽짜리 영단.

그것이 대환단인지, 태청단인지. 아니면 정말 전설로만 내려오는 매화신단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영단이 이준형이 지금까지 복용했던 그 어떤 영단과도 비교되지 않는 압도적인 약효를 자랑했다는 점이었다.

물처럼 흩어진 영약의 기운을 만난 자하기공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광양지체의 넓고 두터운 기맥이 그것을 모조리 받아냈다.

현재 이준형의 성취는 자하기공의 삼단공. 심지어 사단공을 코앞에 둘 만큼 튼튼했다. 그의 나이가 고작 스물셋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성취였다.

약효로 끓어오른 기운이 순식간에 한계점을 넘어섰다. 닿을 듯 닿지 않던 상승의 경지가 쑤욱 다가왔다. 기운의 응집이 한층 더 단단해졌고 반응이 빨라졌다.

현무 도사의 장심이 그의 명문에 닿았다.

기운의 인도가 한층 더 편안해졌다. 운기행공의 과정을 통해 기운이 갈무리됐고 그 과정에서 영약의 기운이 자하진기로 변환되는 효율이 한층 더 높아졌다.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이 끝났다.

이준형이 반개하고 있던 눈을 떴다.

그의 사부인 현무 도사가 보여줬던 자하궁의 기운에 비하자면 티끌과 같았다. 하지만 그 눈동자에 서린 그 보랏빛의 서기는 분명 그와 같은 근원을 공유하고 있었다.

스물셋.

절정에 오르기에는 충분히 빠른 나이였다.

***

화산을 대표하는 고수인 청무 진인이 폐관 수련에 들어간지도 어느덧 사 년이 흘렀다.

운대봉의 정상.

-쿠과과과광!!!

완벽하게 닫혀있던 폐관동에서 어마어마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상서로운 자색의 구름들.

바로 근처에서 생활하던 청허 진인이 빠르게 그곳으로 다가갔다.

자색 구름에서 진한 자하기공의 향기가 느껴졌다. 단순히 그 구름 속에서 몇 차례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하루 온종일 운기행공을 한 것과 비슷한 효과가 느껴질 정도다.

사형이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대공을 이룬 것일까?

폐관동의 문이 열리고 청무 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햇빛을 받지 못해 새하얀 얼굴을 제외한다면 삼 년이나 폐관동에서 수련했다고 믿기 힘든 건강한 모습이었다.

“사형?”

하지만 그 복잡한 표정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청무 진인이 고개를 저었다.

“실패했다.”

이미 오래 전 청무진인은 자하 기공의 구단공에 올랐고, 심지어 그것을 완성하기까지 했다. 백운진인이 천하제일인의 칭호를 얻었을 때 그의 성취가 구단공의 끄트머리 정도였음을 생각한다면 청무진인의 성취는 이미 석년의 백운진인을 앞질렀다고도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화산파 역사에 없었던 전입미답의 경지인 셈이다.

하지만 십단공의 경지는 쉽지 않았다.

재능의 문제일까? 아니면 수련 방식의 문제일까?

“한계를 넘어선 기운을 일 점에 모아 경지를 돌파해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미 청무 진인의 내공은 한계점에 도달해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청무 진인이 선택한 길은 어떻게든 내공을 압축하여 한계 이상으로 긁어모은 후 그를 막아서는 장벽을 박살내는 길이었다. 마치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 통에 억지로 꾹꾹 물건을 눌러 담는 형상이다. 그것은 자칫 잘못하면 통 자체가 깨질 수도 있는 위험이 있다.

“아무래도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한 것 같구나. 이번에도 기해혈이 거의 깨질 뻔했다.”

“그렇군요······.”

흘러나왔던 상서로운 자색의 구름은 청무진인이 압축했던 자하진기의 내공인 셈이다. 그의 몸이 꽉 차 더 이상 기운이 담길 공간이 없었으니 그렇게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겠지.

“그래, 내가 폐관하고 있는 동안 뭐 특별한 소식은 없었느냐?”

“본문에 경지에 오른 아이가 나왔습니다.”

“경지라면? 혹시 굉명? 굉원?”

청허 진인의 고개가 움직이지 않았다.

“맙소사!! 현무, 현무로구나.”

설마 굉자 배를 모조리 건너뛰고 현자 배에서 초절정의 고수가 나올 줄이야. 현무는 이제 지천명을 갓 넘긴 젊은 나이다. 청자배 사형제 가운데 그보다 성취가 빨랐던 것은 청무 본인밖에 없다.

물론 현무가 홍매당에 화산금정이라는 걸출한 인재가 들어오고, 그가 개량한 자소단에 커다란 혜택을 받은 1세대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놀라운 것은 놀라운 것이다.

하지만 청무 진인의 놀람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또 있습니다.”

“또?”

그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았다.

굉자배 가운데 설마 다른 아이들이? 뭔가 기연이 있었던 것일까? 가능성이 있어보이는 아이들의 이름이 연달아 그의 입에서 흘러 나왔지만 청허는 연신 고개를 좌우로 흔들 뿐이다.

“설마 또 현자 배인 것이냐? 현종?”

“비슷합니다만 틀렸습니다.”

“현광? 현정? 현우? 아니, 녀석아 갑갑하게 굴지 말고 그냥 속 시원히 이야기를 좀 해봐라.”

“그게······. 운호입니다.”

순간 청무 진인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운호?

설마 내가 알고 있는 그 백운호?

물론 그가 언젠가 경지에 오를 재능을 타고났음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녀석은 백오십 년전 화산파를 대표하는 고수였던 증무 진인의 유업을 물려받지 않았던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직 그 아이의 나이는 이십대 초반에 불과하다.

헌데 초절정이라니.

“운호라면 설마 백운호 그 아이를 말하는 것이냐?”

“네. 사형. 기억하시는군요.”

“맙소사······. 허면 지금 그 아이는 어디에 있는 게냐? 아직도 청해 대장군부에 있는 것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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